기억력 수준이 바닥에서 허우적대기 경지인 나이지만, 아직도 기억한다. 고등학교 때 문학 시간에 문학 선생님이 '타는 목마름으로'를 읽으면서 눈물짓던 순간을. 나는 6차 교육과정의 첫세대인데 우리 때 문학 교과서에 '타는 목마름으로'가 처음으로 실렸었다. 이 시가 교과서에 실릴 날이 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며 선생님은 노래까지 부르다가 결국에는 조용히 감격의 눈물을 지으셨었다.

시간이 흘러, 나는 대학에 갔고, 졸업을 한 이후였던가, 휴학을 했을 때였던가. 용돈벌이로 고모 아들인, 7차 교육의 첫 주자인 민이의 과외를 했었다. 기말고사나 중간고사 기간 때는 전과목을 봐주기도 했었다. 이 때 나는 근현대사라는 과목이 생긴 걸 알고 감탄에 감탄을 했었다. 근현대사를 제대로 가르치는 학교는 거의 없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사람들과 얘기할 때도 잠깐 나왔지만, 고려시대 상납품이 뭐였는지는 동그라미 쳐가며 줄줄 외우게 하면서도, 정작 가까운 역사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었던 게 우리의 역사이다. 그런 건 시험에 나오지도 않았고, 제대로 배우지도 않는 것들이었다. 다행히 나는 좋은 선생님을 만나 교과서에 없는 근현대사도 제대로 배웠었다. 그 선생님은 늘 교과서와는 다른 관점으로 쓰인 유인물들을 우리에게 나눠주며 역사의 진실을 알려주려 애쓰셨다. 그러고보니 그 선생님도 노래를 부르셨다. 두부처럼 잘려나간 어여쁜 너의 젖가슴. (난 아무래도 노래만 기억하는 인간인가보다. -_- 태정태세문단세~ 안다안~테안단티노모오~데라토~) 선생님은 안녕하신지, 이 시절을 어떤 심정으로 통과하고 계신지 궁금해진다. 

암튼, 민이의 교과서를 보면서 나는 그 날 문학선생님이 그러했듯, 아, 정말 괜찮은 시대가 왔구나, 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이제 진도에 쫓겨서 흘리듯 배우는 것이 아닌. 5.16과 5.18을 구분 못하는 아이가 수두룩한 (실제로 화려한 휴가를 보고 '저 사건(5.18)이 진짜 있었던 사건인 거야?' 라고 묻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그런 역사 교육은 아니구나. 게다가 교과서의 내용이 참 건강하다는 느낌이었다. 거기에 더해진 '누드교과서'라는 애들 참고서는 정말 더욱 훌륭해 보였다. (물론 내가 좀 문외한이긴 하지만, 당시 받았던 느낌이 그랬다는 거다) 이런 역사를 배우고 자라는 아이들은 그래도 뭔가 좀 다르겠지, 하는 기대도 했었다.

퇴근길에 시사인을 보면서 알았다. 사실 역사 교과서 문제가 있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크게 관심갖지 않았던 터라 (반성) 그게 정확히 근현대사 교과서 이야기를 하는 건지도, 문제의 교과서가 무엇인지도 잘 몰랐는데 문제의 금성출판사 근현대사 교과서라는 책을 보니 내가 민이 방에서 보면서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던 교과서가 이 금성 출판사의 교과서였구나. 가장 잘 나가던 교과서가 공공의 적이 되어버린 사건. 친북, 반미, 반재벌 관점이라고 객관화 되어버린 현실. 정확히 바라보고 제대로 만든 것이 말 그대로 잘못이구나.

감탄이 수포로 돌아가던 순간이었다. 앞으로도, 이런 허탈함을 얼마나 경험하게 되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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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8-12-16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현대사 과목도 있구낭;;;;;

웽스북스 2008-12-20 01:37   좋아요 0 | URL
라주미힌님 이러니까 나스미디어가 쩐 회사라는 말을 듣는 건가봐요. ㅋㅋ

무해한모리군 2008-12-16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학생인 저희 조카는 518을 '조상님들'이 민주주의를 위해 피를 흘리신 일이라고 하더군요.. '조상님'들이라니.. 그렇게 먼먼 이야기인 모양입니다.

보석 2008-12-16 16:00   좋아요 0 | URL
조상님들;;;; 조선시대쯤에 일어난 일처럼 느껴지네요;

웽스북스 2008-12-20 01:38   좋아요 0 | URL
휘모리님. 이거 읽고 정말 충격 받았었어요. 아, 조상님이라니.
(적어도 70년대는 돼야 조상님...이...죠...;; ㅋㅋㅋㅋ)

from 80년생

가시장미 2008-12-18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휴. 학교가 대학보내는 학원이 되어버렸네요. 그것도 인기있는 학원도 아니고 울며겨자먹기로 끌려가는 학원. ㅋㅋ 어디서부터 어떻게 고쳐야 할지. 첫 단추를 잘 못 낀 탓에 시간이 흘러도 잘못된 문제들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것 같아요.

그나저나 그사세가 막을 내렸는데. ㅠ_ㅠ 왜 그렇게 빨리 끝난거죠?
(이걸 웬디양님께 물으면 어째! ㅋㅋ)
월욜과 화욜 저녁에 즐거웠는데.. 삶의 낙이 하나 사라진 기분.. 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