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12월 1일과 11월 30일은 느낌이 다르다. 특히나 서른 살을 한달 앞두고 있는 스물아홉 아가씨는 더 그런건가. 다른 1일과는 달리, 오늘은 유난스럽게도 12월이다, 를 외치는 사람이 많았고, 그 와중에 나는, 이제 한달 있으면 서른이군, 이라는 생각을 자의에 의해서, 또 타의에 의해서 여러 번 하게 됐다.

사실 생각보다는 아무렇지도 않아요,

라고 말하면서 나는, 한 스물 일곱, 여덟살 때부터 예방 주사를 한 스무번은 맞았던 것 같아서, 그래서 정작 서른 앞에서는 꽤나 의연한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한다. 이렇게, 모아놓은 돈도, 특별한 사회적 기반도, 장래를 함께할 듬직한 누군가도 없는,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서른 살을 맞이하게 됐지만, 게다가 스스로의 인간적/인격적 완성도도 여전히 바닥을 헤매고 있는 중이지만, 수없이 많은 사례들을 통해, 아마도 그럴 거야, 라고 스스로를 계속 주입시켜와서 그런지, 말 그대로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다.

하지만 생각보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건, 아무렇지도 않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냥 막연히 서른이 아니라, 상황적으로 맞닥뜨리게 될 것들을, 이를테면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라는 질문에 서른이요, 라고 답하는 상황 하나만 상상해봐도 굉장히 스스로 적응이 어렵고 소스라치게 놀랍다. 설문조사 하나를 참여하더라도 이젠 25-29세가 아닌 30-34세에 체크하게 될 스스로를 낯설어할 내 자신을 상상하는 일이 낯설고, 지금은 장난처럼 만 나이를 이야기하는 것이 타인에게 더욱 구차스럽게 여겨질 것이라는 걸 짐작하는 일 역시 유쾌하지만은 않다. 역시 아무렇지도 않은 건 아닌 것이다. 그러니까, 이 글 역시, 12월의 첫날에 다시한 번 맞는 예방주사인 셈이다.


이십대에는 늘 한살 한살 먹을 때마다 스스로에게 놀랐고, 내 나이에 적응하지 못했고, 내 나이를 사랑하지도 못했다. 삼십대 때는(이라고 쓰는 순간도 징그럽게 어색하다) 부디 매 순간 나의 나이를 사랑할 수 있길, 그리고 그 사랑에 걸맞는 사람이 되길. 감히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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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02 00: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2-02 00: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주미힌 2008-12-02 0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서른 별거 없어요;;;
2000년 밀레니엄이 그랬듯이... 흐흐

웽스북스 2008-12-03 02:26   좋아요 0 | URL
밀레니엄 비유, 아, 적절하다...^^

L.SHIN 2008-12-02 0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 순간, '내가 20대 때는..' 이라는 서두를 내밀며 말하는 것이 습관이 되는 날이
올겁니다.(웃음) 하지만 그거, 생각보다 어색하지 않아요.
'내가 어른이구나' '이제야 제대로 어른 대접 받는구나' 라는 것을 느끼는 날이
'이제 나이 먹었네'보다 훨씬 많아서 나름대로 자신이 대견 스러울 때도 있으니까.
아직 20대인줄 알고 약간 무시하고 들어왔다가도, '서른입니다' 라고 말하면 상대방의
눈빛이 달라지는 것을 눈치 챈다면, 그리고 29나 30이나 별로 차이 없는 자신을 깨달으면
그깟 숫자 아무것도 아닌 것을 알게 될테니까. 괜찮아요.^^

웽스북스 2008-12-03 02:27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하긴 전 스무살 시절 얘기하면서
나 어릴 땐 그랬잖아,
뭐 이런 표현 쓰곤 해요. ㅎㅎㅎ

이제 저 어른대접 해주세요 엘신님 ㅎㅎ

Mephistopheles 2008-12-02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 이제 웬디양님의 "발랄"에 "연륜"이라는 아이템이 장착되는 순간이 도래하고 있습니다.^^

웽스북스 2008-12-03 02:27   좋아요 0 | URL
발랄연륜 괜찮은데요
내년도 컨셉으로 밀까보다 ㅋㅋ

순오기 2008-12-02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른이라고 말하게 될 웬디양과 딱 강산 두번의 차이군요.ㅜㅜ
그 나이때는 정말 좋았는데~ 이러면서 내 나이를 생각한다누.ㅜㅜ

웽스북스 2008-12-03 02:28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의 지금도 정말 좋아보이는걸요~ ^_^

네꼬 2008-12-02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서른이 되면 징그러워요? 내가 징그러워요? ㅠㅠ (야야 징그럽다, 야.--> 내가 나에게. 흑흑.)

2008-12-03 02: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08-12-03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어릴때 그렇잖아요. 매해 보는 어른들이 매해 나이를 물어요. 매해 대답해주면서 이런 도대체 다들 기억을 똥꾸멍으로 하는거야? 작년 나이에 한살 더 보태면 되잖아? 했었거든요.

그런데 어느순간부터 저는 다른사람의 나이를 기억하지 못해요. 몇년생이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의 나이도 70년부터80년까지는 계산이 가능하지만 80년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의 생년은 들어봤자 나이 계산이 안되요. 그리고 다음에 또 물어요. 몇살이라 그랬죠? 정말이지 제가 기억을 못하더라구요.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는 언니 동생이고 오빠 동생일지 모르겠지만 제가 볼 땐 다 동생이라서 그들이 스물둘, 이든 스물일곱, 이든 저한테는 마찬가지더라구요.

제가 나이를 물을때마다 도대체 이 여자의 뇌는 똥꾸멍에 박힌건가, 라고 생각하는 어린 청춘들이 꽤 있을거라고 저는 지금 생각을 해요.


웬디양님은 이렇게, 모아놓은 돈도, 특별한 사회적 기반도, 장래를 함께할 듬직한 누군가도 없는,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서른 살을 맞이하게 됐지만,
이렇게, 모아놓은 돈도, 특별한 사회적 기반도, 장래를 함께할 듬직한 누군가도 없는,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서른 살을 훌쩍 지났어요, 저는.

네꼬 2008-12-03 22:24   좋아요 0 | URL
다들 기억을 똥꾸멍으로 하는거야?
다들 기억을 똥꾸멍으로 하는거야?
다들 기억을 똥꾸멍으로 하는거야?

아아아 나는 다락님이 정말로 너무 좋아. 지나치게 좋아. 정말 좋아. 아아아. 안 그래요, 웬디양님? 이 여자의 뇌는 똥꾸멍에 박힌 건가,라니.크핫. >.<


웽스북스 2008-12-04 12:22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저도저도 완전 그래요~ ㅎㅎㅎ
있죠~ 저는 더 심각하게 너가 올해 4학년인가? 이러면 중 3이고 막 그래요 ㅋㅋㅋㅋㅋㅋㅋ 어이없죠 ;;; 저는 똥꾸멍으로도 기억을 못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 예전에 후배들한테 학번 물어봤을 때,

네, 저는 02학번이고, 얘는 03인데 3수했고요, 얘는 그냥 03이에요, 뭐 이런 얘기를 하는데, 그래서 니들 셋이 뭐가 다른데? 라고 했었죠. (여전히 01학번 밑으로는 애들이 몇살인지 계산도 안되고, 정말 06학번이라는 본적도 없고 머리에 피도 안말랐을 것 같은 학번이 내년에는 4학년인건가 싶고 그래요)

네꼬님, 다락방님 진짜 너무 웃겨요. 이건 꼭 다락방님 말투를 상상하면서 읽어야 해요. 그래야 애정이 스무배가 된다니까요~ ^_^ (우리 다락방님 만나면 꼭 시켜봐요, 다들 기억을 똥꾸멍으로 하는거야?)

메르헨 2008-12-03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에 말이죠...직장언니들을 만났는데 그 모임에서 제가 가장 어려요.
그 언니들 왈 모임 할 때마다 묻습니다.
너 올해 몇이었지?
스물 여섯? 아니 스물 여덟? 서른은 아직 아니잖아 그치?
좌절합니다.
이미 서른하고 두살이다 더 먹었다구요.하핫...^^
댁들만 나이 먹는게 아니라구 나도 먹는다구. 그럽니다.
서른...멋모르고 지나갔어요.
이미 인생의 중요하다는 걸 거의 다 이루었기 때문인듯...취업,결혼,출산...
지금 생각하면 이십대를 좀 격~하게 보내볼걸...그랬습니다.^^

웽스북스 2008-12-04 12:24   좋아요 0 | URL
하하하하 메르헨님 완전 완전 동안이신가봐요.

이십대에 취업, 결혼, 출산을 다 하셨군요. 제 이십대의 목표는... 취업도 결혼도 출산도 아니고... 인간이 되는거였는데, 그래도 깨달은게 있다면, 저 목표는, 죽을 때까지 가져가야되는 거구나, 뭐 이런거.

얼마 전 결혼한 친구 집들이를 갔더니, 결혼하고나서 제일 좋은건, 누구나 한번은 해야하는 저 시끌벅적한 통과의례를 자기는 이미 했다,는 안정감이래요. 하핫. 격~하지 않을 수 있었으면 안하는 쪽이 좋을 수도 있지요. ^_^ 격하게 보다는 '신나게'를 선택할래요. 전.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