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다니엘 글라타우어 지음, 김라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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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서로에 대해 아는 게 정말 아무것도 없다니, 참 이상하지 않아요? 우리는 환상 속의 가상 인물을 만들어내 서로에 대한 몽타주를 작성하고 있어요. 질문을 하지만 답을 들을 수 없다는 게 그 질문들의 매력이죠. 그래요, 우린 서로의 질문에 곧이곧대로 대답하는 걸 피하면서 상대방의 호기심을 자꾸 자극하고 계속 부채질해대고 있어요. 우린 행간을 읽으려 애쓰고 낱말과 낱말, 철자와 철자 사이에 숨을 뜻을 읽으려 애쓰죠. 상대방을 정확하게 평가하려고 안간힘을 써요. 그러면서도 자신의 본질적인 면만은 드러내지 않으려고 철저하게 조심 또 조심해요. -32쪽

우리는 그 만남 뒤에도 자신의 외모를 둘러싼 비밀을 누설할 필요가 없습니다. 각자가 상대의 어떤 점을 보고 그 사람을 알아보았다고 생각하느냐가 흥미로운 것이지, 우리가 실제로 어떻게 생겼는지가 흥미로운 것은 아닙니다. -59쪽

이런 상황에 딱 맞는 사람이 바로 저일 거에요. 당신의 실제 삶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왠지 가깝게 느껴지는 그런 사람이 필요하잖아요. -124쪽

뭐라고 위로의 말이라도 해드리고 싶지만 '즐거운 성탄절과 복된 새해'처럼 들릴 거 같아 그만 둘래요. -125쪽

물론 저에게도 당신은 여느 누구가 아닙니다. 당신은 제 안에 있으면서 저와 늘 동행하는 제 2의 목소리같은 존재입니다. 당신은 저의 독백을 대화로 바꿔놓았습니다. -132쪽

이번에도 제 안에 제 2의 목소리가 있어 그 목소리가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질문을 던지고, 제가 미처 못 찾은 답을 주고, 자꾸 제 외로움을 뚫고 들어와 그것을 깨뜨려놓았습니다. -133쪽

미안해요. 나 조금 취했어요. 이제 이걸 보내고 난 자러 갈 거에요. 굿나잇 키스. 당신이 결혼한 사람이라 속상해요. 우린 잘 어울리는 한 쌍이 될 수 있을텐데. 에미. 에미. 에미. 난 에미라는 글자를 쓰는 게 좋아요. 왼쪽 가운뎃손가락 한 번, 오른쪽 집게손가락 두 번, 그리고 오른쪽 가운뎃손가락으로 두 번. 에미, 나는 이 글자를 천 번이고 만 번이고 쓸 수 있어요. 에미라고 쓰는 건 에미에게 입 맞추는 거에요. 우리 이제 그만 자요. 에미. -154쪽

당신의 메일 한 마디 한 마디가 다 고마워요. -181쪽

레오. 못하겠어요. 당신에게 이 세계를 전할 수가 없어요. 당신은 결코 이 세계의 일부가 될 수 없어요. 이 세게는 너무 빈틈없이 꽉 짜여 있어요. 일종의 요새와도 같아요. 정복당할 리 없고 침입자 하나 허용하지 않는. 굳게 닫혀 있는 요새 말이에요. 우린 '바깥'에 머무는 수밖에 없어요. 이게 우리에게 허용되는 유일한 길이에요. 그렇지 않으면 저는 당신을 잃게 돼요. -182쪽

사랑하지 않는 두 사람은 상대의 사랑을 그리워하는 데서 열정을 얻는 법이에요. 저로서는 이것 이상으로 지혜로운 조언은 해드릴 수가 없네요.-185쪽

그 남자도 일부러 여자를 만나려고 애쓰지 않고, 모든 게 저절로 되도록 운명에 맡기며, 저절로 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요. -191쪽

3분 뒤
Aw:
잘자요

2분뒤
Re:
굿나잇

1분뒤
Aw:
굿나잇

50초 뒤
Re:
굿나잇

40초 뒤
Aw:
굿나잇

20초 뒤
Re:
굿나잇

2분 뒤
Aw:
새벽 세시에요. 북풍이 부나요? 굿나잇.

15분 뒤
세시 십칠분이네요. 서풍이에요. 쌀쌀하고요. 굿나잇.

다음날 아침
제목 : 좋은 아침
굿모닝, 레오

3분 뒤
Aw:
굿모닝, 에미-264쪽

당신에게 이메일이 와 있는 걸 보면 가슴이 두근거려요. 어제 그랬고, 일곱달 전에 그랬던 것처럼 오늘도 꼭 그래요. -268쪽

에미, 저를 불감증이라 여겨도 할 수 없어요. 크건, 작건, 풍만하건, 말랐던, 펑퍼짐하건, 납작하건, 둥글건 모났던 간에 저는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가슴에 관심 없어요. 저는 여자를 이루는 다른 모든 것은 뚝 떼어놓은 채 오로지 가슴 크기에만 관심을 갖는 재주는 없습니다. -273쪽

3분 뒤
Re:
지나간 시절을 되풀이할 수는 없어요. 지나간 시절은 어디까지나 지나간 시절이고, 새로운 시절은 지나간 시절과 같을 수 없어요. 지나간 시절은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늙고 쇠잔해요. 지나간 시절을 아쉬워해서는 안 되죠. 지나간 시절을 아쉬워하는 사람은 늙고 불행한 사람이에요. 그거 알아요? 저는 빨리 집에, 레오에게 오고 싶었어요.

50초 뒤
Aw:
내가 이따금 당신의 집이 되는 거 좋아요!
-292쪽

2분 뒤
Re:
잘 자요. 저는 당신을 무척 사랑해요. 우리의 만남이 두려워요. 만나고 나서 당신을 잃게 된다는 것을 상상할 수도 없고, 상상하고 싶지도 않아요. 에미.

3분 뒤
Aw:
'잃는다'는 생각 같은 건 하지 말아요.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이미 잃는 거에요. 잘자요. 내 사랑. -363쪽

3분 뒤
Aw:
아니요, 에미. 얘기하지 말아요. 대신 내가 제안을 하나 할게요. 진지하게 하는 거니까 웃으면 안 돼요. 내가 문을 살짝 열어 둘 테니 그냥 들어오세요. 현관에서 왼쪽 첫번째 방으로요. 방은 어두울 거에요. 내가 당신을 보지 않고 포옹할게요. 그리고 눈을 감은 채로 키스할게요. 한 번, 단 한 번의 키스!

50초 뒤
Re:
그러고 나서 저는 도로 나와요?

3분 뒤
Aw:
아니요! 키스하고 난 다음에 블라인드를 올리고 우리가 누구에게 키스를 했는지 보는 거에요. 그리고 나는 당신 손에 와인 잔을 쥐여줄 거고 우린 건배를 하겠죠. 그런 다음 계속 서로를 보는 거에요. -367쪽

양심의 가책요? 아니요. 레오, 베른하르트에게 양심의 가책은 느끼지 않았어요. 다만 내 자신이 두려울 뿐이었죠.
저는 제 방으로 올라가 당신에게 이메일을 쓰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요. "내 사랑 레오. 오늘 당신에게 갈 수 없어요. 이 모든 상황을 감당할 수가 없어요." 이 말만 써놓고 몇 분 동안 모니터를 들여다보다가 결국 지워버렸어요. 전 당신을 포기할 수 없었어요. 그건 곧 나 자신을 포기하는 것일테니까요.
레오, 무슨 일인가가 일어났어요. 제 감정이 모니터를 벗어난 거에요. 전 당신을 사랑해요. 그리고 베른하르트는 그걸 알아차렸어요. 추워요. 북풍이 불어오고 있어요. 이제 우리 어떡하죠?

10초 뒤
Aw:
주의. 변경된 이메일 주소입니다. 보내신 주소에서 수신자가 메일을 불러올 수 없습니다. 전달된 새 이메일들은 자동으로 삭제됩니다.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시면 시스템 관리자에게 문의하십시오. -3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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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8-10-26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째 밑줄이 스포일러네 ㅋㅋ

다락방 2008-10-26 1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한권을 다 옮겨온 것 같아요, 웬디양님.
그러게 이거 스포일러네 ㅎㅎ

웽스북스 2008-10-26 21:50   좋아요 0 | URL
그죠. ㅎㅎㅎ
아, 근데 정말 너무 잘읽었어요 정말 ^_^

다락방 2008-10-26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막,

에미 이제 어떡하지? 정말 어떡하지?

이랬어요. ㅜ.ㅜ

웽스북스 2008-10-27 12:58   좋아요 0 | URL
그죠 ㅜ_ㅜ

니나 2008-10-27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헑쓰~ 정말 스뽀..ㄷㄷㄷ ㅋㅋㅋ
그치? 한 번 읽으면 그냥 죽~ 끝까지 놓을 수가 없다니깐

웽스북스 2008-10-27 12:58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 그니까, 이게 손에서 정말 놔지지가 않더라.
출근길에 읽었음 큰일날뻔했어.

무스탕 2008-10-27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스템 관리자 모가지를 흔들어서라도 레오랑 연락이 닿았어야 했는데.. ㅠ.ㅠ

웽스북스 2008-10-27 23:38   좋아요 0 | URL
아쉽긴 해도. 전 결말이 꽤 마음이 들었어요.

다락방 2008-10-28 08:59   좋아요 0 | URL
저도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결말이다, 막 이랬어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