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지난 2년여의 시간동안 몸담았던 네이버 책 커뮤니티 북꼼이 오늘부로 문을 닫았다. 마지막 애정을 담아 남긴 쓴소리는 그저 허공의 울림으로 끝났고, 그곳에 누군가 남긴 댓글을 확인하려 카페메인에서 글의 링크를 눌렀을 때, 그곳은 폐쇄된 카페라는 메시지가 떴다. 폐쇄 사실을 결국 이런 방식으로 확인하게 된다. 예상치 못했던 일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허망함은 어쩔 수 없다.
북꼼으로 처음 선정됐을 때, 나는 매우 기뻤다. 온라인상에서의 커뮤니티 활동이 그리 익숙지 않았기에,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커뮤니티, 라는 것 자체가 신선하게 느껴졌었고 그 사실만으로도 벅찼다. 열심히 해보겠다며 처음으로, 운영진을 해보겠다고 손도 들어봤고, (정말 나답지 않은 짓이었다.) 이곳이 아니었으면 만나지 못했을 좋은 인연들도 정말 많이 만났다.
그럼에도 북꼼의 마지막을 알리는 글에 나는 그동안 고마웠어요, 라는 말을 남길 수가 없었다.
처음,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나와 비슷한 기분이었던 것 같다. 적어도 내가 만나고, 소통했던 사람들은 그랬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모여있다는 것의 신선함. 즐거움에 조금은 들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많은 것을 기대했고, 이 곳을 정말 좋은 곳으로 만들어나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이것 저것 즐거운 일들을 많이 도모하고 계획했었다. 하지만, 이 곳을 만든 사람들은 우리와 기대가 달랐다. 우리가 한달에 두권 받는 책의 리뷰를 잘 생산해내주고, 매달 올라오는 오늘의 책 리뷰도서 리스트에 안정적인 리뷰를 공급해주는 사람들이길 바랐다. 그 이외의 활동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비판의 목소리에는 소통, 혹은 개선의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결국 여러가지 크고 작은 문제들에 부딪쳐 그곳을 좋아하던 초기 멤버의 대다수가 그 곳을 떠나게 됐다. 그리고 나도 곧 그곳에 대한 애정을 버렸다. 그들은 내게 그곳을 좋아하는 한명의 사람이기를 바랐던 것이 아니라, 네이버,라는 곳에 컨텐츠를 공급해주는 1명의 리뷰어, 컨텐츠 생산자이기를 바랐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북꼼의 운영은 오히려 운영은 순조로웠다.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도 없었고, 우리와 재미있게 놀아달라고 투정부리는 사람도 없었다. 운영진들과 힘들게 만들어놓은 북꼬미언 의견창구 같은 제도는 당연히 남아있지 않았다. 지정도서의 리뷰도 잘 생산됐다.
그런데 사람들은 더 이상 그 곳을 찾지 않았다. 조회수가 0 혹은 1인 글들이 파다했으며, 서로 누가 누군지도 모르는, 그런 곳이 돼버렸다. 그 곳에 여전히 애정을 가지고 있던 몇몇 사람들은 이제 무안해서 간단한 글도 못남기겠다는 얘기를 했다. 그 곳에 애정을 가지고 글을 남기는 일이 오히려 어색한 기현상이 벌어졌다.
그렇게 얼마간 북꼼을 운영한 후 네이버는 오늘의 책 리뷰어를 따로 뽑는다는 공지를 냈다. 많은 사람들은 그 때 북꼼의 운명을 예감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신기가 있어서인가, 물론 아니다, 그간 네이버에게 북꼼의 존재가 무엇이었는지를 알고 있던 사람들에게 그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북꼼을 폐쇄하겠다는 공지가 올라왔다. 일언반구, 의견을 구하는 절차도 없었고, 전체 공지메일이나 쪽지를 날리지도 않았다. 나를 비롯한 몇몇 사람들이 글 혹은 덧글로 불만을 표현한 후에야 겨우 공지메일을 날렸을 뿐, 그 외의 목소리에 대해서는 듣는 시늉도 하지 않았다. 아쉬움을 표현하는 많은 사람들의 인사에도 따뜻한 한마디조차 없었다. 그저 정해진 날짜가 되자 모두 탈퇴시켜야 폐쇄가 가능하오니 강제탈퇴를 양해바란다는 쪽지가 왔고, 그 다음날 카페가 사라졌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아무리 스스로 비참해진다고 하더라도, 토사구팽, 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공교롭게도 현재 네이버는 네티즌으로부터 굉장한 질타를 받고 있다. 그들의 오만함을 지적하는 목소리에 대해 그들은 '억울하다'라고 항변하고 있다. 그들이라면, 억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든다. 그것은 그들이 사이트를 운영하는 데 지극히 실리적이며, 유저를 사람으로 대하는 철학 자체가 결여돼 있기 때문이다. 그런 자세라면 네티즌의 질타의 이유는 모를 수 밖에 없다. 그러니 억울할 수 밖에. 하지만 북꼼의 폐쇄는 그 원인이 그들에게 있음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유저들을 대함에 있어, 그들을 단순히 컨텐츠 이용자/생산자라 여기고, 그러므로 그에 대한 대안이 생길 때에는 언제든 버릴 수 있는 존재라 여기는 것. 그렇기에 그들이 그 곳에 애정을 갖고 '사람'으로서 남겼던 시간과 추억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치부해버릴 수 있는 것. 이러한 철학의 부재가 이 모든 일들의 근본적인 원인이 되는 건 아닌가 싶다. 그저 좋은 컨텐츠를 많이 생산해내주거나, 혹은 주는대로 고분 고분 잘 이용해주길 바라는 것.
이런 모습이 현 정부와 닮아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나뿐일까? 국민들이 그저 말 잘 듣고, 시키는대로 순조롭게. 그렇게 살길 바라는 것, 그래서 가끔 당근 같은 것 (북꼼에 비유하자면 책 두권) 던져 주면서 그저 필요한 것만 쏙쏙 빼낼 수 있는 대상으로 삼는 것. 비판의 목소리는 듣지 않는 것. 겸허한 듯 사과하지만 결국은 이전과 변함없이 행동하는 것. 정말 소름이 끼칠 정도로 닮아 있다. 그리고 그들의 내실을 채워주는 컨텐츠 생산자로서의 나를, 고분고분 컨텐츠를 이용하는 유저로서의 나를 바랐듯, 그저 적절히 소비해주고, 적절히 세금을 내는 것이, 그들이 바라는 국민으로서의 우리의 역할일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단계는? 북꼼이 거쳐온 모습이 어느 정도는 우리의 이미 도래한 듯한 미래를 보여주고 있지 않는가. 더 이상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지 못한다면 아무렇지도 않게 버려질 수 있는 존재. 오버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만, 지난 한달 조금 넘는 시간동안, 북꼼의 모습을 보며, 네이버의 모습을 보며, 현 정부가 하는 태도를 보며, 돌아가는 모양새와 근저에 깔린 기본 철학(이라는 말이 좀 아깝지만)이 어쩌면 이렇게도 비슷한가, 라는 생각을 지속적으로 해왔었다.
사실 멍청하게도, 13일이 다가오기 전, 생각을 돌이켜주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그래도, 내가 한때 좋아했던 곳이 이런 곳이라고 믿고 싶지는 않은 순진한 희망. 가능성이 0.00001%도 아닌 0%라는 걸 알면서도 괜스레 한번 더 기대해보는 것. 어제 마지막 글을 남기고도, 혹시나, 혹시나, 생각을 돌려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나로서는 이명박과 비슷하다는 게 최고의 독설이었건만 ;;;;) 그렇지만 기대는 무너졌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반성하지 않는 이명박 정부에게 기대하지 않듯, 그들에 대한 기대도 접었어야 했는데, 내가 어리석었다.
그리고, 나는 네이버에 올렸던 모든 리뷰를 지웠다. 30개 가량의 도서 리뷰와 50개 가량의 영화 리뷰를. 유저의존도가 높은 검색컨텐츠 기반으로 성장한 네이버이기에, 결국 그 기반을 무너뜨리는 건 이 방법 뿐이라며, 매우 귀찮은 절차를 거쳐야 함에도, 나는 한시간 내내 그 글들을 모두 지웠다. 더 이상 당신들에게 컨텐츠 생산자로 남아있지는 않겠다며. 물론 내 컨텐츠가 없어도 네이버는 문제 없이 운영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혹시나 누군가 나의 의견에 공감하길 바라는 마음, 그리고 그저 내가 작은 시작이었길 바라는 마음이 내 안에는 강하게 남아 있다. 뭐, 그래도 공룡 네이버는 끄떡도 하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