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폭력의 주체는 시위대가 아니에요. 누구도 폭력을 쓰지 않아요. 폭력은 위험하다, 이제 그만하자, 라고 시민들에게 얘기하는 것 자체가 비폭력을 위시한 또 하나의 폭력이 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해요. 우리가 상대하는 국가라는 악의 실체는 실은 너무나 거대해요. 그래서 그 앞에서는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내가 참 무기력한 존재구나, 라고 실감을 하면서 그냥 촛불하나 들고 서 있다가 올 수 밖에 없어요. 그렇게, 답답하고 속상하게 있다 오는데, 누가, 어떤 폭력을 쓴다는 거에요? 가던 길을 막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하는, 그러면서 물대포에 색소와 화학물질을 타서 쏘는 경찰들이 폭력의 주체이죠. 사람들은, 그렇게 한달을 넘게 거리로 나왔는데 아무것도 얻은 게 없어서, 고개 한 번 숙이고 다음날부터 강경진압 하겠다고 얘기하는 모습에 너무 화가 나서, 그래서 거리로 나오는 거에요.
저는 그렇게 얘기하시는 게 제일 위험해 보여요. 다양성을 인정하자, 상대의 입장을 존중하고 인정해라. 이건 굉장히 하기 쉬운 얘기고, 어떻게 보면 다소 멋있어보이기까지 하는 얘기죠. 그렇지만 관용해야 할 것과 불관용해야 할 것은 명백하게 구분돼야 해요. 이건 보수와 진보가 서로를 인정하는 차원에서 논의돼야 할 문제가 아니에요. 이건 인정할 수 있는 다른 입장과 의견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절대악과 그 악에 맞서는 약자들의 이야기에요.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라면 이렇게 화가 날 때마다 거리로 나와서 목소리를 내는 시민들에게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게 맞는 거죠.
목사님은 우리 교회 사람들이 세상을 보는 프레임으로서의 역할을 하시니까, 어떤 말씀을 하시기 전에 다양한 의견들을 많이 보시고, 충분히 고려해보고, 또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어요. 어쨌든 사람들은 목사님께 영향을 받고, 목사님을 통해 세상을 보니까, 그 역할을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청년강좌 4번째, 보수VS진보 시간에 결국은 흥분해서 한 얘기다. 이건 오늘 예배 시간에 느꼈던 불만도 같이 표출된 것. 나는 스스로 진보라고 생각하지 않으나 목사님보다는 진보 성향에 가깝다고 생각하고, 목사님은 스스로 진보적이라는 자의식을 가지고 계신데, 얘기를 하다보니 여기까지 진행됐구나. 결국 목사님은 내게 기회가 되면 시청에 나가보마, 약속하셨지만 목사님도 나도 서로에게 설득당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그래도 얘기할 수 있었던 건, 지난 번에도 잠깐 얘기한 것 같지만, 서로에 대한 어느정도의 믿음에서 바탕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짧게 끝날 수 있었는데, 나의 흥분으로 인해 30분이나 귀가가 늦어진 다른 분들께 죄송할 따름이다. -_- (우리 모두의 공동의 목표는 '일찍 끝내기' 였는데, 오늘은 내가 중죄를 지었구나 으흑) 그래도 오늘이 마지막날이었으니까, 얘들아 이해좀 해주렴. M이 있었으면 더 오래 갔을텐데, 그래도 이정도면 양호하잖니 ^_^
어쩌면 시작하기 전에 집에서 잠깐 잔다고 하고는 중앙선데이를 살짝 열어봐서 더 그랬는지도. 중앙선데이는 정말 가관이다. 아무리 C양 때문에라고 해도 이젠 진짜 끊어야지 -_- 미국에서 소고기 먹고 살았어도 아무 이상 없었던 민주당 의원들, 지금 아무말도 하지 않는 것 비겁하다, 아고라에서 얘기하는 사람들은 국민 전체의 3%에 불과하다, 이명박과 콘돌리자라이스 만나서는 민주주의는 원래 시끄러운 것이다, 그래도 조용한 독재보다는 낫다 운운하는 것들. (너 독재 맞거든? -_-) 그래놓고 뒷쪽에 장장 몇페이지에 걸쳐 채식을 찬양하고 권유하는 그런 행태라니 -_- 1년동안 구독하면서 1면 탑만 보고도 열받아서 안본 날이 더 많지만, 이제는 정말 정말 끊어야지.
2
그런데 누나, 시위같은 것도 나가고 그랬어?
응
왜? 나는 사람 많은 거 진짜 싫던데
나도 싫어. 그래도 이명박은 정말 (또 흥분)
그러게, 왜들 그런 놈을 뽑아서 난리인지
라며 집에 오는 길에 같은 자리에 있었던 동생과 대화를. 그 전에 목사님 또 지난 주처럼 극단으로 몰고 가시며, 너는 보수냐 진보냐 물어보시는데, 내 동생은 그런 건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을 녀석이라. 그저 자신이 살고 있는 게임 세계 내에서의 커뮤니케이션과 그 세계의 제패에만 관심이 있는 녀석인지라 -_- ㅋㅋ 자신은 잘 모르겠다고 답을 했다. 그냥 저는 머무르는 걸 좋아하는데, 그래서 집에도 늦게 들어오던대로 맨날 늦게 들어오는데, 그럼 보수인가요? 라고. (이 기준은 뭥미 ㅋㅋ) 그래서 목사님이 이런저런 질문을 하는데 동생의 답이 보수나 진보로 딱 떨어지지 않자 그냥 넘어갔었다. 보수인지, 진보인지를 가르는 작업을 누구도 의미 있다고 여기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그런 몇가지 사실들로 인해 규정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 있으니까.
너는 투표 안했었나?
나? 했지. 나는 권영길 뽑았는데?
그럼 넌 진보인가?
내가 진보냐? 권영길이 진보지.
하하하, 그래 니 말이 맞다.
3
보수냐 진보냐,가 중요하지 않은 건 사람들이 한가지 모습만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적 성향은 진보를 표방하는 사람들과 일치하는 부분이 더 많이 있지만, 진보를 표방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과연 진보, 혹은 좌파라고 말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저, 기본으로 돌아가자, 라고 이야기하는 거니까. 이 논쟁은 어디서부터 시작된걸까. 자신을 보수로 규정하고 있는 수구파들이 자신에 반대되는 이야기를 하면 그저, 반대하니까 너는 진보, 빨갱이, 좌파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우리 시대를 여전히 이분법적으로 만들어가고 있는 것 같다. (사실 빨갱이, 좌파라는 말을 듣고 기분나빠하는 것도 좀 우습긴 하다. 다만 거기에 미칠 정도로 비장한 사상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 사람에게 그런 얘기를 하는 경우가 너무 잦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를 좀 조목 조목 들어보고 싶긴 하지만) 진보 진영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에 반대되는 얘기를 들으면 이런 보수적인!!! 이라는 말을 하나, 보수적이라는 말로 그들을 칭찬해주기엔 너무 아까운 경우가 많다. 진보 진영에 있는 사람들을 화나게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보수가 아니라 수구니까. (하하하. 이 부분 너무 편향적이라는 거 안다만,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_-) 사실 보수와 진보는 대립이 필요 없는 개념인지도 모르겠다.
식코에 나왔던 할아버지가 기억난다. 옳은 것은 받아들이면서도 정치적으로는 보수를 지향하던 건강한 모습. 그런 것들이 인정되는 사회. 언젠가 그런 모습을 기대할 수 있을까? 일단은 보수인척하는, 보수에 물타기하는 수구 척결이 선결 과제인 것 같다. 아. 과격한 웬디씨.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