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책을 읽는 대학 동문들 모임에서 이번 집회 참여를 함께하기로 했다. 그 과정에서 여러 사람들이 이미 약속된 모임들이 있었음을 밝혔고, 나는 제일 부러운 모임이 '교회 사람들과 함께하기로 했어' 와 '직장동료와 함께하기로 했어'였다. 생활의 많은 부분을 함께하는 사람들과 같은 마음으로 지내고 있다는 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우리 교회나, 회사나, 그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평온하기만 하다. (실은 교회는 지난주에 빠져서 잘 모르겠긴 하다 ;;) 특히 회사는 - 정치적 대화를 피하고 싶어 내가 요즘 점심 식사 시간도 잘 피하고 하긴 하지만 - 어쩐지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얘기하다가는 서로 불편해질 것 같은 분위기. 그 과정에서 우리 D대리님이 흘러가듯, 아 오늘 백만 시민 촛불집회 가야되는데, 라는 얘기를 했고 오호라! 나는 슬쩍 나도 오늘 간다는 입장을 피력하며, 가게 되면 같이 가자고 이야기를 모았다. 8시쯤 나는 먼저 배신하고 광화문으로 갔고, 9시가 넘은 시간에 D대리님이 오셨다기에, 나는 대학 동문 모임을 버리고 홀로 독야청청 광화문에 온 D대리님에게 달려갔다. (두번이나 배신을 하다니 ㅋㅋ) 컨테이너 주변도 둘러보고 (장관이더군) 거리행진을 하고, 잠깐 맥주를 마시며 뉴스를 보고, 다시 광화문 컨테이너 근처에서 누군가의 손모델이 돼주기도 하며, 전국민적 센스에 감탄을 보내다가 그렇게 돌아왔다. 일단은 회사사람과 시위를 함께 해봤다는 것에 매우 뿌듯함을 느끼며.
위험한 일이 있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면서도 (스티로폼을 옮길 때 근처에 있었다) 내심은, 그래도 오늘은 뭔가 매듭지어지길 바라기도 했었다. 하지만 시위가 급진적으로 진행되지 않았다는 건 참 다행스럽기도 하다만 결전의 그날인데, 아무것도 결론내리지 못하고 돌아간다는 것에 참 힘이 빠지기도 했다. 컨테이너 앞에서 7시간동안 벌였다는 그 폭력과 비폭력에 대한 끝장토론에 참가하지는 않았지만, 내 안에서도 무엇이 옳은가에 대한 두 마음이 토론을 벌였다. 그리고 나도 함께 모인 사람들도 모두 결국은 비폭력의 손을 들어줬다는 건, 그것도 말이 통해 먹지 않는 이 정권 앞에서 비폭력으로 마음을 모았다는 건, 실은 모두가 장기전을 각오했다는 이야기가 될런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5년간은 우리는 어쩌면 거리에 나앉을 일이 많겠지. 전국민을 척척박사로 만들어주신 엠비님께서는, 이제 우리를 서울 도심 지리박사, 추운날 더운날 거리에서 버티기 노하우 박사, 이런 것들로 만들어주실지도 몰라. 온국민이 가방에 촛불하나쯤은, 사무실 책상 서랍에 촛불 하나쯤은 늘 지참하고 다니게 될지도 몰라.
실은 나 식코를 보면서 무슨 일만 생기면 거리로 나온다는, 그래서 프랑스 정부는 국민들을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정말 부러웠다. 휴일 하루 줄어드는 것에도 거리낌 없이 거리로 나올 수 있는 국민들과, 그 국민을 두려운 마음으로 존중하는 프랑스 정부가 말이다. 하지만 나는 단지 부러웠을 뿐, 이걸 우리의 이야기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이명박 정부가 대통령이 됐을 때, 기대할 건 이제 시민사회의 성숙 뿐이라고 이야기하면서도, 나는 이런 모습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저 시민단체의 목소리가 좀더 커지길 바랐고, 나는 그들을 위한 좀 더 적극적인 후원자가 돼야겠다는 지극히 평범한 그림을 넘어서는 생각을 해내지 못했다.
물론 아직도 이것은 우리의 이야기가 아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아직 국민들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으니까. (오늘 대국민 성명으로, 더 열심히 하겠다는 소리를 했을 때, 자기도 민주화 1세대 출신이느니 어쩌느니 하는 이야기를 했을 때, 나는 기함했다) 우리는 그 밤, 소통을 위해 그렇게 고함을 질러댔건만 컨테이너의 벽을 넘어 청와대까지 들렸을 그 소리는 MB의 마음의 벽을 뛰어넘지 못했나보다. 우리가 하고 싶은 얘기를 아는건지 모르는건지. 계속 그렇게 다른 소리를 하며 스리슬쩍 넘기면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지.
분명히 말하지만, 우리는 소가 성장하기 위해 소의 고기를 먹어서 생기는 병인 광우병의 이야기를 넘어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생을 집어삼키며 양적 성장을 도모하는, 광우병보다 더 무서운 모습으로 우리의 생을 위협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거다. 6일 집회에 오셨던 경상도 아줌마의 말투로, 도대체 을매나 더 말해야 알아듣겠노~ 라며 따박따박 면박이라도 주고싶다. 못알아들으면 알아들을 때까지 하겠다고, 가방에 촛불넣고 다닌다는 심정으로 5년을 살겠다고 (그전에 물러나주면 고맙고) 광우병 재협상은 끝이 아닌 시작이라고, 그래서 우리는 그것들을 우리들의 이야기로 만들겠다고. 아, 자꾸만 비장해진다 -_-
실은 어제 오늘, 계속 마음이 몽글몽글해져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글이 갑자기 좀 오버스러워졌다는 거 안다는 얘기다 -_-) 이번주 시사인을 뒤늦게 보면서, 현장에 나온 100인의 인터뷰를 읽으면서, 우리 사장님은 미국산 소고기 들여오면 그 소고기를 쓸 것 같다며 살인 방조자가 되기 싫어 나왔다는 중국집 주방장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변화에 대한 긍정적인 기대를 갖고 그 자리에 나온 어린 학생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헬쓱해졌으면서도 눈은 반짝반짝 빛나는 진중권 아저씨를 보면서. 시위 현장에서도 여러번 마주쳤던 니나의 글을 알라딘을 통해 읽으며, 또 파란여우님의 글을 읽으며, 나는 자꾸만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니나의 글에 '잊어버렸던 미래'라는 표현이 있었다. 맞다, 잃어버린 게 아니었구나. 잊어버렸던 것일 뿐이었지. MB덕에 우리 모두가 그 잊어버렸던 걸 다시 찾게 된다면, 아니, 적어도 많은 사람들이 꿈꾸게 됐다면,
사실 MB는 정말 요정이었던 걸까? (자꾸만 떠오르는 그 요정만화, 어떤놈이 제정신으로 이모냥으로 정치하겠삼? 하하, 하긴 그건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