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동부 예배를 마치고 내려오니 청소년부 애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간식을 먹고 있다. 요즘 애들의 화제는 단연 광우병이다. 허풍이 심한 N이 친구들이 자기를 광우병이라고 놀린다며 막 웃고 있었고, 애들은 아 이명박 졸라 짜증나! 라는 말을 내뱉고 있었다.

그러자 사모님께서, 예전에는 나랏님 욕하면 잡혀갔었는데 세월이 좋아졌다며, 아이들에게 면박을 줬다. 옆에 계시던 모 집사님께서는 너그들이 광우병의 증상을 알기나 하냐며, 요즘 애들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휩쓸려 있다고 철없는 아이들 취급을 하신다. 나는 고등학생인 E에게로 다가가, 괜찮아, 얘들아 너희가 잘하고 있는거야! 너희들 말이 맞으니까 힘을내,라는 이야기를 해줬다.

잠시 후 아이들이 예배를 드리러 올라가고, 나는 남아 있는 사모님, 집사님들의 이야기를 듣는데, 갑자기 화가 솟구쳐올라온다. 소 수입안하면 미국이랑 거래를 안할 거냐며, 거래 안하면 어디랑 교류를 할 거냐며, 이거 하나 양보하고 다른 것 얻는게 낫다는 이야기를 하신다. 미국은 앞으로 계속 승승장구할 수 밖에 없는데, 미국에 밉보여서 좋을 게 뭐가 있냐고. 그리고 요즘 애들은 철이 없어서 아무것도 모르고 날뛰어서 큰일이라고 이야기하신다. 그리고 요즘엔 언론이 문제라며 (내가보기에는 당신들 보는 언론이 문제인데) 이렇게 여기저기서 말이 나오게 자유롭게 놔두면 안된다고, 독재 때가 차라리 좋았다는 말씀을 하시는데, 나는 순간 그 곳의 누구와도 말을 섞고 싶지 않아졌다. 정말 너무 흔하게 볼 수 있는 논리인데도, 주변에서 라이브로 생생하게 들으니 나름의 충격이 컸다 -_- 어른 예배 드리기 전까지 항상 사모님과 수다수다 하는 것이 일과였는데, 오늘은 복수닷! 누구와도 말을 섞지 않겠다 -_- 라고 결심했다. (말을 섞으면 논리력으로 밀리거나, 작정하고 말하면 심히 재수없어지는 자신을 알기에 몸을 사린 사건 -_-) 물론 복수의 타격은 없다, 내가 좀 심심했을뿐. -_- (뭔 복수가 이러냐 ;;;; 너무 자기만족적이다, 완전 '복수는 나만의것'이다 -_-)

2

그리고 오늘, 어제 지은 죄도 있고 하여 -_- 엄마에게 저녁을 사기로 했다. 뭘 먹을까, 묻는데 엄마가 불고기! 라고 답을 하신다. 요즘들어 고기는 쳐다보기도 싫어서 안먹고 있는, 김밥에 햄도 빼고 먹는 요즘인 터라 나는 또 발끈! 했다. 절대 소고기 따위는 먹지 않겠다며! (내가 좀 귀도 얇고, 단순하다는 거 알긴 안다 ;;;)

결국 우겨우겨 회무침을 먹으러 갔다. (심지어 돈도 더썼다 ;; -_-) 자리에 앉아 엄마에게 어제의 한이라도 풀듯 구박을 시작했다. 엄마는 이런 때 소고기를 먹겠다는 얘기가 나오냐며.... 엄마는 그거 30년 있다가 발병되면 엄마는 어차피 죽을 때 다됐을테니 상관없어, 라고 말한다. 30년은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발끈하며 "엄마!!!! 그럼 나는 -_-" 이라고 말했다. "아, 그렇긴 하네"라고 말하는 어무이, 친엄마 맞나요 ㅜㅜ 나는 매우 열을 열을 내며, 엄마같은 사람 때문에 이명박같은 사람이 여지껏 대통령을 해먹고 있는 거라고, 목에 핏대를 올렸다. 엄마에게 정치적 색깔은 잘 안드러내려고 하는데, 순간 또 확! 오르는 열이라니 -_- 하지만 엄마는 나조차도, 어이구 그래그래 하는 눈초리로 쳐다보는 것 같았다 ;;;;; 나 서른이 목전이거등요? ㅜㅜ (나이를 객관화시켜 적고나니 좀 슬픈듯)

암튼, 내가 그동안 '도무지 어딨니, 난 들어본 적이 없어'라고 했던 그 남일같던 논리들은 내가 애써 귀막고 듣지 못하고 있던 너무나 가까운 곳에 있었다. 몰랐던걸까? 아니다, 보지 않고, 나누지 않고, 나 역시 애써 설득하려 하지 않았던 것.

3

그리고 돌아와 아이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00야! 어른들말에 주눅들지 말고 너희 생각을 키우렴! 요즘 청소년들 좀 짱인 것 같아
이명박 진짜 나쁜 사람 맞잖아! 화이링이야! 휴일 잘보내 ^^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이들에게 '너희가 철없는 것이 아니야' 라는 걸 일깨워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어른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 다음주에 어른들이 또 우리 애들 구박하면 그때는 소심한 복수 아니라, 좀 못되보여도, 이미지관리 안되도 대심한 복수를 해버릴테다!


ps

조금전 한녀석으로부터 답장이 왔다

우왓! 감사합니다! 선아쌤은 어른들중에서 좀짱인듯
절대주눅들지않고 끝없이 넓고 깊게 생각하면서 자라나겠습니당 ^^
용기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

어이구 이쁜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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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8-05-12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국과의 외교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저지르는 오류는 '외교'가 일방적인 것처럼 말한다는 거에요. 지금을 걱정하면서 미래를 보지 못하고, 자기 자신의 밥그릇 때문에 다음 세대의 밥그릇은 발로 차버리는 작태를 부리고 있죠. 학생들이 스스로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겠다는데 늙은 양반들이 무슨 염치로 '얘'들 탓을 하는지..
스스로 지키지 않으면 아무 것도 지켜낼 수 없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을 '애'들의 행동이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용.

웽스북스 2008-05-12 20:02   좋아요 0 | URL
네, 그들이 생각하는 미래의 범위가 '자신의 생이 다하는 날'까지라는 게 한계인거죠. 그러니 이명박은 길어야 15년 이상을 볼 수가 없는 거겠죠. 어른들도 마찬가지이고요. (다음부터 대통령을 좀 젊은 사람으로 뽑던가 해야되는 거 아닐까요? -_-)

애들이 생명을 지키면 자신들이 자동차를 팔 수 없다고 생각해버리니, 참 대단한 어른들이에요 정말....

라주미힌 2008-05-12 20:05   좋아요 0 | URL
ㅋㅋㅋ 이명박.. 길어야 15년...
에너자이저가 아니라 그나마 다행.. ㅡ..ㅡ;

삼성, 현대가 미국에 물건 팔면 자기들이 주머니가 두둑해지나 ㅡ..ㅡ;
그렇다고 고용이 늘어나나.. 웃겨..

웽스북스 2008-05-12 22:41   좋아요 0 | URL
백만스물하나 백만스물둘
아훙 생각만해도 끔찍해요

웃겨 진짜 ㅋㅋㅋ

2008-05-12 20: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5-12 22: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도넛공주 2008-05-12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기득권층이 그러는 건 접어두고라도,전 정말 이해가 잘 가지 않는게...완전히 피해자 위치에 있을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의 해바라기 성향이예요.그 또한 피해일까요?(귀막고 눈가려 놓은 것)

웽스북스 2008-05-12 22:44   좋아요 0 | URL
그죠
그게 사실 또 제일 슬픈 거기도 해요

이건 정말 구조적으로 깨야 하는 건데 말이죠 ;; -_-

Mephistopheles 2008-05-12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이 아무리 회까닥 뒤집혀져도 결코 뒤집혀지지 않는 진실이 하나 있어요.
"아이들은 어른의 스승이다." 이런 진리를 애써 외면하고 펌하하는 어른들이야 말로 속칭 문제아이며 열등생인 겁니다.

웽스북스 2008-05-12 22:44   좋아요 0 | URL
예 정말 그렇죠
요즘 문제아 열등생 너무 많아요 그렇죠?

전호인 2008-05-12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들 자라날 때와는 다릅니다.
초등학생인 우리아이들만 하더라도 분명한 자기주장이 있습니다.
그들의 주장을 주장대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깊은 사고와 통잘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이미 시대가 그렇게 바뀌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웽스북스 2008-05-12 22:45   좋아요 0 | URL
그 주장에 귀기울일 줄 아는 사람이 진짜 어른인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주장이 성숙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고요

2008-05-12 23: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5-12 23: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차좋아 2008-05-13 0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광우병에 국한지어서 생각하지 말고 아이들이 하고자 하는, 하고 싶어하는 말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고, 귀 기울여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광우병은 촉매일 뿐
아이들의 의견에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아서,
힘들다고 아우성치는 아이들의 소리를 귓등으로도 듣지 않아서,
어른들이 들어 줄만한 소재의 방편으로서 광우병 사건을 활용하는 건 아닐까요?

어쩌면 세상과의 소통의 창구가 광우병이고 촛불은 아닐까요?
광우병보다 걱정 되는 건 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소외된 세대입니다.






웽스북스 2008-05-13 09:32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제가 윗글에서 하고싶던 말도 그거랑 좀 비슷했는데
잘 전달이 안됐나보군요

으흑!

차좋아 2008-05-13 13:39   좋아요 0 | URL
아니요~ 전달이 안되서 하는 말은 아니었구요^^;;
그냥 웬디양님 이야기 듣고 저도 울컥 해져서 하고 싶은 말 풀어 놓은 거에요.

학생들의 집회 참여에 대한 찬.반 논란이 광우병 못지 않게 뜨거운 것 같습니다. 다음 볼 때는 이 문제로 한번... ㅋㅋ

웽스북스 2008-05-13 15:23   좋아요 0 | URL
향편님 이젠 놀랍지도 않아요
도발향편이라고 불러드리죠 앞으로는 ㅋㅋㅋ

(그러니까, 댓글이 수정됐군요 ㅋㅋㅋㅋ 아까 쓰신거 다 봤어요~)

차좋아 2008-05-13 22:11   좋아요 0 | URL
ㅜㅜ
너무 빨라 웬디양님.
실시간 웬디양..

딱히 수정해야할 멘트는 아니었던 것 같지만
오늘은 그냥 조심스러웠어요^^

웽스북스 2008-05-13 22:46   좋아요 0 | URL
제가 좀 한 실시간 해요 ㅋㅋㅋ
뭘 또 조심하구 그러세요
맨날 할말 다 하시면서 ~ ^^

Jade 2008-05-13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웬디양님은 누구에게나 좀 짱이시군요 ㅋㅋ

웽스북스 2008-05-13 09:33   좋아요 0 | URL
우리 제이드님은 좀 많이 짱
(러브러브 샤방샤방 막이런다 ㅋㅋ)

Koni 2008-05-14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절대주눅들지않고 끝없이 넓고 깊게 생각하면서 자라나겠습니당 ^^]라는 답장이 아주 멋진데요. 똘똘한 아이들입니다.^^

웽스북스 2008-05-15 12:08   좋아요 0 | URL
예 우리 은지가 좀 똘똘하긴 하죠 ^^
문자 받고 좀 많이 뿌듯했어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