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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부 예배를 마치고 내려오니 청소년부 애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간식을 먹고 있다. 요즘 애들의 화제는 단연 광우병이다. 허풍이 심한 N이 친구들이 자기를 광우병이라고 놀린다며 막 웃고 있었고, 애들은 아 이명박 졸라 짜증나! 라는 말을 내뱉고 있었다.
그러자 사모님께서, 예전에는 나랏님 욕하면 잡혀갔었는데 세월이 좋아졌다며, 아이들에게 면박을 줬다. 옆에 계시던 모 집사님께서는 너그들이 광우병의 증상을 알기나 하냐며, 요즘 애들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휩쓸려 있다고 철없는 아이들 취급을 하신다. 나는 고등학생인 E에게로 다가가, 괜찮아, 얘들아 너희가 잘하고 있는거야! 너희들 말이 맞으니까 힘을내,라는 이야기를 해줬다.
잠시 후 아이들이 예배를 드리러 올라가고, 나는 남아 있는 사모님, 집사님들의 이야기를 듣는데, 갑자기 화가 솟구쳐올라온다. 소 수입안하면 미국이랑 거래를 안할 거냐며, 거래 안하면 어디랑 교류를 할 거냐며, 이거 하나 양보하고 다른 것 얻는게 낫다는 이야기를 하신다. 미국은 앞으로 계속 승승장구할 수 밖에 없는데, 미국에 밉보여서 좋을 게 뭐가 있냐고. 그리고 요즘 애들은 철이 없어서 아무것도 모르고 날뛰어서 큰일이라고 이야기하신다. 그리고 요즘엔 언론이 문제라며 (내가보기에는 당신들 보는 언론이 문제인데) 이렇게 여기저기서 말이 나오게 자유롭게 놔두면 안된다고, 독재 때가 차라리 좋았다는 말씀을 하시는데, 나는 순간 그 곳의 누구와도 말을 섞고 싶지 않아졌다. 정말 너무 흔하게 볼 수 있는 논리인데도, 주변에서 라이브로 생생하게 들으니 나름의 충격이 컸다 -_- 어른 예배 드리기 전까지 항상 사모님과 수다수다 하는 것이 일과였는데, 오늘은 복수닷! 누구와도 말을 섞지 않겠다 -_- 라고 결심했다. (말을 섞으면 논리력으로 밀리거나, 작정하고 말하면 심히 재수없어지는 자신을 알기에 몸을 사린 사건 -_-) 물론 복수의 타격은 없다, 내가 좀 심심했을뿐. -_- (뭔 복수가 이러냐 ;;;; 너무 자기만족적이다, 완전 '복수는 나만의것'이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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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늘, 어제 지은 죄도 있고 하여 -_- 엄마에게 저녁을 사기로 했다. 뭘 먹을까, 묻는데 엄마가 불고기! 라고 답을 하신다. 요즘들어 고기는 쳐다보기도 싫어서 안먹고 있는, 김밥에 햄도 빼고 먹는 요즘인 터라 나는 또 발끈! 했다. 절대 소고기 따위는 먹지 않겠다며! (내가 좀 귀도 얇고, 단순하다는 거 알긴 안다 ;;;)
결국 우겨우겨 회무침을 먹으러 갔다. (심지어 돈도 더썼다 ;; -_-) 자리에 앉아 엄마에게 어제의 한이라도 풀듯 구박을 시작했다. 엄마는 이런 때 소고기를 먹겠다는 얘기가 나오냐며.... 엄마는 그거 30년 있다가 발병되면 엄마는 어차피 죽을 때 다됐을테니 상관없어, 라고 말한다. 30년은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발끈하며 "엄마!!!! 그럼 나는 -_-" 이라고 말했다. "아, 그렇긴 하네"라고 말하는 어무이, 친엄마 맞나요 ㅜㅜ 나는 매우 열을 열을 내며, 엄마같은 사람 때문에 이명박같은 사람이 여지껏 대통령을 해먹고 있는 거라고, 목에 핏대를 올렸다. 엄마에게 정치적 색깔은 잘 안드러내려고 하는데, 순간 또 확! 오르는 열이라니 -_- 하지만 엄마는 나조차도, 어이구 그래그래 하는 눈초리로 쳐다보는 것 같았다 ;;;;; 나 서른이 목전이거등요? ㅜㅜ (나이를 객관화시켜 적고나니 좀 슬픈듯)
암튼, 내가 그동안 '도무지 어딨니, 난 들어본 적이 없어'라고 했던 그 남일같던 논리들은 내가 애써 귀막고 듣지 못하고 있던 너무나 가까운 곳에 있었다. 몰랐던걸까? 아니다, 보지 않고, 나누지 않고, 나 역시 애써 설득하려 하지 않았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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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돌아와 아이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00야! 어른들말에 주눅들지 말고 너희 생각을 키우렴! 요즘 청소년들 좀 짱인 것 같아
이명박 진짜 나쁜 사람 맞잖아! 화이링이야! 휴일 잘보내 ^^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이들에게 '너희가 철없는 것이 아니야' 라는 걸 일깨워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어른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 다음주에 어른들이 또 우리 애들 구박하면 그때는 소심한 복수 아니라, 좀 못되보여도, 이미지관리 안되도 대심한 복수를 해버릴테다!
ps
조금전 한녀석으로부터 답장이 왔다
우왓! 감사합니다! 선아쌤은 어른들중에서 좀짱인듯
절대주눅들지않고 끝없이 넓고 깊게 생각하면서 자라나겠습니당 ^^
용기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
어이구 이쁜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