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꽃을 보고싶어, 집에 가는 길에 사모님께 문자를 보냈다. (음, 그러니까 목사님 사모님, 뜬금없이 사모님이라고 쓰니, 어쩐지 사장님 싸모님 이런 기분이기도 하다) 사모님은 예배를 위해 토요일에 종종 꽃시장에 가시는데, 내일 아침에 꽃시장에 가실 거면 저좀 데려가 달라는 요지의 문자였다. 그런데 사모님께 답장이 이렇게 왔다. (딱 이렇게 온건 아니고, 몇번에 걸쳐 왔다갔다하는 문자를 조합해보면)

"선아야, 내일 꽃시장은 안가고, 꽃구경 갈 거야. 집 근처에. 벚꽃이 정말 예쁘게 피었어. 여의도도 갈 필요 없어. 축제도 하고, 환상적이야. 이리로 와. 아침에 모닝커피 마시고 같이 가자"

당연히 나의 게으름으로 모닝커피는 마시지 못했지만, 나는 나름 스물아홉의 마지막 봄에 이쁘게 사진한장 찍어보겠다며 원피스에 구두를 신고 산책로를 우아하게 거닐겠다고 생각하며 사모님을 만나러 갔다. 그런데, 어라, 분위기가 좀.

"사모님, 거기가 어딘데, 그렇게 벚꽃이 이쁘게 핀 거에요?"
"응? 나도 몰라, 안가봤는데"
"뭐에요, 예쁘다면서요"
"그래야 니가 오지~"

아, 그러니까 난 사모님한테 낚인 거였다 ㅜㅜ 사연인즉슨 농협에 계신 모 집사님이 목사님 어머님(그러니까 사모님 시어머님)께 주말농장을 분양해주셨는데 그 집사님이 지금 농촌진흥센터인지, 암튼 그쪽 행사로 센터 내 주민들을 상대로 한 벚꽃 축제 진행을 위해 그쪽으로 가 계시고, 사모님은 목사님 어머님(그러니까 시어머니)과 함께 주말농장을 보러 가기 위해 모 집사님을 만나러 그 곳에 들러 벚꽃을 함께 보고 주말 농장으로 간다는 계획. 어라, 분위기가 좀. (다행히 목사님 어머님께서도 나를 좀 예뻐하신다 -_-v)

다들 가족 단위로 모여서 청바지에 운동화신고 잔디밭을 뛰노는데, 나홀로 다른 풍경을 지니고 서 있는, 그 곳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된듯 하다. 꽃길을 한바퀴 걷긴 했는데, 어째 영 짧고, -_- ㅋㅋ 주말농장에 갔을 때는 더더욱 가관이었다. 하하하. 완전 낚였어.

그래도 모처럼 사모님과 차를 마시며 케잌을 먹고 수다를 떨며 여유로운 한때를 보냈다. 아름다운 풍경에서 제대로된 사진은 찍지 못했지만, 풍경보다 즐거운 기억을 남겼으니 됐다. 하하하. 아무리 생각해도 좀 웃긴 하루.

2

사모님과 헤어져 잠시 쇼핑을 하겠다며 근처에서 내려 이것저것을 둘러보는데, 딱 마음에 드는 선글라스 발견! 그 선글라스를 쓰기 전에는 오오 난 정말 아무 선글라스나 잘어울리는군, 하며 말도 안되는 감탄을 하고 있었는데, 그 선글라스를 쓰고 난 후에는, 흐, 어째 다른 선글라스는 어울리지가 않는다. 심지어 지난 2년간 잘 어울린다고 믿으며 쓰고 다녔던 나의 현재 선글라스도 안어울리는 것 같다. (집에와서 쓰고 확인해본 결과 -_-) 그렇지만 가격은 나의 최대지불의사를 한참 넘어선 가격이다. 최대지불의사가 좀 적긴 하지만 ;; -_-

백화점을 나오며 C에게 문자를 보냈다. C야, 딱 마음에 드는 선글라스를 봤는데 가격이 00야. C의 답장은 나의 예상에서 한자도 더하지도 빼지도 않은 그대로였다. "참아라" "참을 필요도 없어, 못사, 미련없이 뒤돌아 나왔어"

그런데 나는 지금 그 선글라스가 아른아른거리고, 두달간 책을 안사고 커피를 안마시면 그 선글라스를 살 수 있다는 사실에 꽂혀 있다. 하지만 난 지금까지 '먹는 돈을 아껴서' 뭘 사본 기억이 없다. 살 수 없을 것 같으면 안사고, 부족함 없이 먹고 살면서도 살 수 있을 것 같은 것들만 샀다. (그래서 비싼 물건을 가져본 적이 별로 없다 -_-) 지불능력 너머에 있는 물건을 할부로 사본 적도 없다. 이번달 월급과 통장 잔고로 살 수 없을 것 같으면, 그냥 안샀다.

이렇게 쓰고 보니 굉장히 비싼 것 같지만 -_- 그렇지는 않다. 뭐 산다면 충분히도 살 수 있는 가격이기도 하고, 그보다 훨씬 비싼 선글라스들도 많다. 허나 내겐 그 가격을 주고, 고작 한철 눈에 두를 뿐인 그 무엇을 산다는 건 참 스스로 사치스럽게 여겨진다. 그래서, 미련없이 돌아서긴 했는데.....


자꾸 미련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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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좋아 2008-04-13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사요.
후회는 나중에 해도 늦지 않아....(퍽)

웽스북스 2008-04-13 00:41   좋아요 0 | URL
이봐요이봐요 이거 진짜 차좋아님스러운 발언인거 아시죠? ㅋㅋㅋ
봄도왔고, 우리향편님이랑 차한잔 해야되는데 ^_^

개인주의 2008-04-13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어때요.. 지르고 갚으면 되지..-_-)> 다음달 자동이체때 두통만 해결하면 될뿐..

웽스북스 2008-04-13 12:33   좋아요 0 | URL
ㅎㅎㅎ 누피님...ㅋㅋㅋㅋ
저 근데 사실 카드값으로 합계되서 나오면
또 잘 모르고 별 감각 없고 그렇긴 해요

하나 사고나면 본능적으로 좀 균형을 맞추나봐요
(어라 이러다 사겠다 ㅋㅋㅋ)

2008-04-13 11: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4-13 12: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4-14 19: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도넛공주 2008-04-13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일주일을 참다가 다시 가봅니다.그때에도 여전히 처음처럼 좋다면 사세요.경험상 다시는 똑같은 물건 찾기도 쉽지 않고요...근데 선글라스는 사본적이 없어서,유행 타나요? 안 타는 아이템이라면 더더욱 사셔야죠.(불을 지르고 있다)

웽스북스 2008-04-13 12:36   좋아요 0 | URL
흐흐흐 도넛님 최고에요 ㅋㅋㅋ
사실 선글라스도 은근 유행을 타더라고요
늘 새로운 것들이 나오니까요

그 새로운 것들을 묘하게 이전 것들을 촌스러워 보이게 만드는
놀라운 재주를 가지고 있어요 그죠?

비로그인 2008-04-13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웬디님 보고싶어요.
뜬금없이 일요일아침부터.
프랑스영화 숙제하다가.크크 ^^
근데 하늘이 구리구리 해요.

웽스북스 2008-04-13 12:37   좋아요 0 | URL
어 그런가요?
나는 날씨가 좋다고 생각했는데, 정신이 이상한가봐요 ㅋㅋ

그런데 리사님
나는 뜬금없는 걸 참 좋아해요 뭐든 ^_^
뜬금없을 때 생각나는 게 진심이라고 믿거든요

그래서, 고마워요

웽스북스 2008-04-13 21:34   좋아요 0 | URL
으흑 오늘 산 기본티가 꽉 끼어서 아무래도 먹는 것좀 줄여야 할 것 같아요
칙촉 먹고 싶었는데 옆에 놓고 구경만 하고 있는 중 ㅜㅜ

먹는 것 줄이면 살빠지고 돈아끼고
그럼 또 뭔가 더 살 수 있는데
아, 참 말처럼 뭐든 쉽다면 얼마나 좋을까!

순오기 2008-04-13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난 안경 도수가 너무 높아서 선글라스도 크게 못 맞춰요. 마구 팽팽 돌아가니까 최대한 작게...그랬더니 완전 시각장애인 안경이 됐다지요.ㅠㅠ아가씨때 안사면 결혼해선 자기 위해 뭘 사기는 힘드니까, 지금 마구 질러도 돼요~ㅎㅎㅎ

웽스북스 2008-04-13 21:35   좋아요 0 | URL
아.... 저는 렌즈를 껴서요
선글라스는 그냥 일반 선글라스를 사요

도수를 넣으면 렌즈를 빼고 가야하는데
그럼 실내에서도 선글라스를 끼고 있어야 하잖아요 ㅋㅋ

그나저나 오늘 또 보러 갔다가 다시 되돌아왔어요

마노아 2008-04-13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글라스가 어울렸던 적이 한 번도 없어서 비슷한 경험이 없어요. 모자도 절대 안 어울리는 나의 네모진 얼굴이라니...아, 가심이 미어져요..;;;

웽스북스 2008-04-13 21:35   좋아요 0 | URL
아 정말요?
마노아님은 있는 얼굴 그대로가 예뻐서 그런가봐요

가리면 가릴수록 보기 좋은가봐요
검을수록, 클수록 잘어울려요 ㅋㅋㅋ

Mephistopheles 2008-04-13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할부도 친구처럼 쉽고 빠르게...
할부도 친구처럼 쉽고 빠르게...

웽스북스 2008-04-13 21:36   좋아요 0 | URL
제 친구들이 좀 전체적으로 느릿느릿하고 까탈해요 ㅋㅋㅋ

다락방 2008-04-13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요 사.
참지마요 참지마.


나도 요즘 썬글라스 하나 사둬야겠다, 뭐 이러고 있어요. 그래봤자 한번도 사지 못하고 여태 살아오긴 했지만요. 사요 사!!

웽스북스 2008-04-13 21:36   좋아요 0 | URL
엄훠, 다락방님 선글라스 디게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오늘 다시 보러 갔다가 또 그냥 되돌아 왔는데 ㅜㅜ
저 은근 소심해요 하여튼 ㅋㅋㅋ

해적오리 2008-04-13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만 생각해보니 제 선글라스가 10년이 되었다넌... ㅋㅋㅋ 제가 암 생각없이 사는게 확 드러나버리는군요. ^^;;;

전 오늘 산에 가서 꽃구경 많이 했어요. 부럽죠? ^^

웽스북스 2008-04-14 00:55   좋아요 0 | URL
10년 된 해적님의, 이제는 친구같을 선글라스도 부럽고
오늘 꽃구경도 부럽고 ^_^ 헤헤헤

전 공원을 걸어다니기만 했는데도 삭신이 쑤셔요 ㅋㅋ

시비돌이 2008-04-13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만 생각해보니 제 선글라스가 20년이 되었을까요? 제가 암 생각없이 사는게 확 드러나는걸까요? 전 오늘 산에 안 가서 꽃구경을 많이 하지 못했습니다. 안 부럽죠? ^^ 세상 살다살다 댓글을 다 표절하는군요.

웽스북스 2008-04-14 00:56   좋아요 0 | URL
가만 생각해보니 제 선글라스는 2년이 되었을까요? 제가 암 생각 없이 사는 게 전혀 드러나지 않죠? 전 오늘은 산에 안갔지만 꽃구경은 제법 했습니다. 부럽나요, 안부럽나요? 살다살다 표절한 댓글을 다 보게 됩니다. 흐흐.

해적오리 2008-04-14 08:29   좋아요 0 | URL
시비돌이님 오랫만이에요. ^^
님께서 제 댓글을 표절하시다니 근래에 보기드문 영광이옵니다. ^^
봄꽃 빨리지는 거 같은데 지기 전에 구경 함 다녀오세요~

웽스북스 2008-04-14 11:56   좋아요 0 | URL
시비돌이님은 꽃보다아름다운 지혜린양과 함께 살아서
꽃구경이 따로 필요 없으실듯 ^_^

2008-04-13 23: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4-14 00: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L.SHIN 2008-04-14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자리 운세를 다시 읽어보시고...스스로 자문해 보세요.
"내가 이걸 사고 후회할 날과 즐거워 할 날중 어느게 더 많은가?"

저도 예전에 파리에서 만든 선글라스를 충동구매했다죠. 그리고 몇년 안되 잊어버렸죠.
그런데 선글라스는 오래 못가요. 몇년이면 질리게 되거든요.

웽스북스 2008-04-14 11:57   좋아요 0 | URL
ㅎㅎㅎ사실 후회야 순간이죠~
질리게 된다는 게 문제에요 정말

그나저나 그 별자리 운세, 정말 신통하단말이죠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