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대문이 불타 사라진 일에 우리나라 국민 대부분이 이렇게 다함께 격분할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남대문이 소중한 문화재인 건 맞지만, 남대문이 국보 1호라 해서 우리 나라의 수많은 다른 문화재들보다 탁월하게 훌륭하거나 훨씬 더 소중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대운하 건설을 가장 큰 공약으로 내세운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은 나라다. 남대문만큼이나 소중한, 수없이 많은 문화재들을 '고의로' 없애버리겠다는 것이나 다름 없는 이야기를 너무 당연한 듯 한 사람을 지지했던 국민들이니, 그리고 그 옆에 어떻게든 땅한뙈기 장만해 보려고 애를 쓰는 사람들이 즐비한 곳이니, 사람들이 남대문 앞에서 이렇게까지 황망해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나보다. 문화재는 괜찮고, 남대문은 안된다는 사고는 어디서 왔는지, 대운하 착공 뒤 사라지게 될 문화재 하나 하나에 이렇게 가슴 아픈 마음을 과연 가져줄 것인지 의문이다. 순위 매기기에 의한 상징성이라는 것이 우리의 사고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실감할 수 있었다.
사실 내가 대운하를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환경이지만, 그리고 지금까지 가장 크게 대두됐던 이유도 환경이지만, 자신이 살지 않을, 미래세계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이니, 그래서 크게 개의치 않고 추진하려 하던 사람들이니 이제부터라도 부디 과거(문화재)가 좀 발목을 잡아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는 남대문이 보기 좋게, 아름다운 형태로 복원되는 것에는 사실 큰 관심이 없다. 그래봐야 이미 원형과 같을 수는 없으니까. 더 화려하고, 더 아름답게 복원한다 하더라도 이미 불타버린 남대문이 이전의 가치와 동일한 가치를 가질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이것들을 계기로, 대운하 반대를 외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조금이라도 힘이 실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이던 그의 추진력에 제동이 걸리길 바랄 따름이다. 운하에 쓸려 없어질 문화재들도 남대문처럼 소중한 문화재라는 걸 이제라도 깨달은 사람들이 좀 더 많이 대운하 사업에 반대해 주길, 그래서 대운하 사업이 부디 중단되길 바란다. 적어도 내게, 아니 앞으로의 우리 모두에게, 그것이 더 중요한 문제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