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몸담고 있던 (지금은 눈팅만 하는) 네이버 서평단 북꼼에서 우수 리뷰어로 선정된 적이 있었다. 그 때 친하게 지내던 누군가, 내게 소감을 물었고, 나는 별로 기쁘지 않다,고 답했다. (물론 북꼼의 우수리뷰어가 소감을 답해야 할만큼 대단하고 비장한 그 무언가는 물론 아니다, 그냥 재미로 물어봤던 거였다)
당시 나는 그 책이 싫은, 아쉬운, 이유를 열심히 쓰긴 했지만, 내가 좋아하는 책도 아니었고, 그 책으로 우수리뷰어에 뽑히는 게 그다지 영예스럽지도 않다 여겨졌다. (실은 그 책과 함께 선정됐던 다른 책을 더 좋아라했었다, 나는- 그 책은 읽느라 살짝 고역스러운 책이었다- 그 이후 우리는 안좋은 책의 리뷰를 써서 우수리뷰어로 뽑혔던 사람들끼리 '간신나라 충신' 클럽을 만들었었다)
하지만 진짜 기쁘지 않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 때는 북꼼의 새로운 기수가 시작된지 5개월 남짓 지났을 때였고, 북꼼에서는 한 기수에 우수리뷰어로 선정된 전례가 있는 사람들은 다시 선정하지 않는 문서화되지는 않은 관례가 있었기에, 그 때는 이미 '뽑힐 사람은 다 뽑힌' 상태였다. 그러니, 내가 우리 문학동에서 정말 리뷰를 잘 쓴다고 생각하고 제일 먼저 읽어보는, 좋아하던 리뷰어들은 이미 한번씩 다 우수리뷰어가 됐었고, 정작 내가 뽑히던 때에는 그들이 다 빠져나간, 즉 진짜배기들이 빠져나간 뒤였다. (승부라고 하니 어쩐지 좀 비장하긴 하지만) 물론 그 가운데서도 '가장 우수했다고' 뽑아주신 건 감사하지만 그건 엄밀히 말한 '최우수' 상은 아닌 셈이였다.
이창동 감독이 청룡 영화상 작품상 후보로 노미네이트 되는 것을 거부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물론 시상식에도 참석하지 않고 말이다. 검색해보니 예전에 오아시스 때에도 청룡영화상 후보를 거부한 전력이 있다.
올해 나는 작년에 비해 그리 많은 영화를 보지 못했지만
제일 좋았던 영화 다섯편을 대라고 한다면
일본영화 한편, 중국영화 한편, 독일영화 한편, 아일랜드영화 한편, 그리고 '밀양' 을 꼽을 것이다
제일 좋았던 영화 네편을 대라고 한다면
일본영화 한편, 중국영화 한편, 독일영화 한편, 그리고 '밀양'을 꼽을 것이다
제일 좋았던 영화 세편을 대라고 한다면
일본영화 한편, 독일영화 한편, 그리고 '밀양'을 꼽을 것이다
제일 좋았던 영화 두편을 대라고 한다면
독일영화 한편, 그리고 '밀양을 꼽을 것이다
그리고 한편만 대라고 한다면, 고민고민하다가 나는 '밀양'을 꼽을 것이다
누군가 내 개인적인 취향이라 치부해버릴런지 모르겠지만, 내가 영화를 많이 보지 못해서 그런지, 나는 올 한해 밀양을 뛰어넘는 영화를, 더욱이 한국 영화를 만나지 못했다. 올 한 해가 거의 저물고 있으니, 이변이 없는한 계속 그럴 것이다. 그래, 디워도 못봤고, 화려한 휴가도 못보긴 했지. 못봤는지 안봤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영화들이 밀양을 뛰어넘는 영화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이 두 영화를 봐야 할 이유는 느끼지 못하고 있으며, 그렇다 하더라도 내 생각이 변할 것 같지도 않다.
올해 내가 봤던 한국영화 중 두번째로 좋았던 영화를 고르라 한다면, 나는 플란다스의 개,를 선택하겠지, 하지만 그건 올해 개봉한 영화가 아니잖아!
그러므로 기사를 접하면서 올해 청룡영화상은, 어떤 작품이 받게 되든, 그리 영예롭지 못한 상이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청룡영화상 작품상에 노미네이트될 작품을 만들 깜냥 역시 되지 못하긴 하지만, 같은 입장이었어도, 나 역시 같은 선택을 했을 것 같긴 하다. 아, 도무지 세상은 소신을 보일 기회를 주지 않는단 말이지
ps
혹시나 내가 만나지 못한 밀양을 뛰어넘을 만한 올해 개봉한 한국영화가 있다면, 그 영화에게 심심한 사과의 마음을 전하며, 하지만 없으리라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