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그러니까, 이게 핑계를 대자면 한도끝도없는데, 이건 청소잘하는 T군 핑계를 대는 게 제일 적절하고 그럴듯해 보인다. 오늘은 교회 대청소날, 그런데 청소잘하는 T군이 급성 인후염으로 낯빛이 안좋다. 이번 주 내내 그랬단다. 그래서 청소잘하는 T군은 청소를 안하고 집으로 갔다. 그러니 대청소를 땡땡이치고 회사로 일을 하러 가려고 하던 내가 계획을 완수할 경우 너무 미안해지는 상황이 오는 거다. 사람 수 적은 교회를 다니다 보면 한사람 한사람이 참 크다
그렇지만 이건 꼭 T군 때문만은 아니다. 실은 어제 일을 하고 집에 오기 전, 오늘 회사에 오지 않아도 될 정도의 조치는 해놓고 왔었다. 그러니까 완벽한 조치가 아니라, 굳이 가지 않아도 월요일날 죽지는 않을 정도로 해놨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나는 오늘도 회사에 가야겠다고 결심을 하면서도 내심은 회사에 안갈 결심을 어제부터 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니 T군은 내게 구실을 만들어줬을 뿐이다. 세상에나! 힘든 대청소가 출근보다 낫다니, 난 역시 머리를 쓰는 일보다는 몸을 쓰는 일 체질인가보다.
그러니까 오늘까지 회사를 간다면 이번 한주 난 죽을지도 몰라,라고 혼자 끊임없이 생각을 한거다. 하루도 못쉰다니, 말이 돼? 하면서. 아무리 생각해도 주말근무는 정말 우울한 것이구나, 혼자 있고, 조용하고, 집중도 잘되고, 일도 잘되고, 음악도 크게 틀어놓을 수 있어,라는 수많은 장점을 상쇄하는 단 하나의 단점, '그래도 출근하지 않는 게 더 낫다' 이거 써놓고 나니 싱글의 수많은 장점을 상쇄하는 커플의 단 하나의 장점 '그래도 커플이 낫다' 같구나.
그래서 예배를 드리며, 대청소 후 집에 돌아와 내가 해야 할 일들에 대해 리스트업을 했는데, 오우! 너무 많은 것이다. 그래, 난 회사에 갈 수 없어. 회사에 계신 과장님께 전화를 걸어 친절하게도 폴더 위치 하나하나 설명해가며 파일을 보내달라고 했다. 그리고 대청소를 하고 집에 왔다. 그런데, 실은 아무것도 안했다. 하하하. 파일도 안열어봤다. 그리고 11시다- 너무 아무것도 안한 것 같아 스스로에게 미안한 마음에 한 거라곤, 집.청.소. 아아, 몸쓰는 일 체질이야 역시 ㅠㅠ
급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아, 실은 이 글이라도 쓰지 않으면 불안증, 조급증이 장난이 아닌 거야. 아무리 월요일이 오는 게 싫다고 해서, 잠들고 나면 바로 월요일인 게 아쉬워서 일요일날 잠을 자지 않더라도 월요일은 오니까. 잠들지 않은 만큼 그저 더 피곤할 뿐이니까, 일찍 자버릴까,라고 생각하지만- 아!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이렇게 아무것도 안해놨을 수가 있는걸까. 고스란히 내일로 넘어가는데, 이 월요병, 아무래도 너무 고질적이고, 오래간다. 그러고보니 지난 주에도 월요병 관련 글을 썼잖아- 지속되는 월요병은 곧 사표를 내야 할 징후라는데 말야
|
|
|
|
그저 너의 삶이 그런 시기에 도달했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넌 지금 스테이지 1의 문턱에 서 있는 거야. 그래서 이 세상이 너구리를 얼마나 싫어하는지를 비로소 알게 된 거지. 방법은 한 가지야. 너구리인채로 도망을 다니거나, 아니면 쉽게 너구릴 포기하거나.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 - 박민규>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