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하책방 모임은 이제 멤버가 여섯명으로 굳어가고 있는 것 같다. 처음에는 좀 적응이 안됐던 H모님도 이제 토론의 다양성을 더해준다는 측면, 전혀 생각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 생각하게 해본다는 측면에서 반가운 존재가 되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토요일 아침마다 나가기 귀찮은 것도 사실. (뭔가 대단한 아침시간인 것 같지만 모임은 11시라는 거) 그래도 나갔다 하면 다시 들어오기 싫을 정도로 저녁시간 다되갈 때까지 그렇게 수다수다하다가 아쉬움을 안고 돌아오곤 한다. 다음은 김애란, 그러나 O양 결혼식 관계로 참석할 수 없게 되버렸다. 그래도 또 지금은 아쉬운 마음에 한시간이라도 앉아있어보겠다며 종로에서 분당가는 버스 물색중이다.


2

어제의 토론책은 배수아의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이었다. 지하책방 모임이 아니었으면 아마 배수아의 작품은 읽지 않았겠지. 처음 만난 배수아의 작품은 생각보다 재미있긴 했지만, 나는 배수아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고, 모임에서 얘기를 하다 보니 더 비호감에 가까워졌다. 나는 그녀가 자신의 역할을 사회가 자신에게 기대하는 것 이상으로 설정해놓고 그만큼에 가려고 늘 애쓰는데 역부족인 것만 같다고, 그런데 자신은 그걸 잘 모르고 '내 얘기좀 들어봐, 니들 이런 거 알아? 이런 세계도 있어!'라고 말하는 나르시스트인 것 같다고 얘기했다. 물론 그녀가 던지는 화두들이 재미있고, 그런 데 흥미를 갖는 이들도 있긴 하지만, 난 그냥 그렇고 아마 그녀의 작품은 더 읽지 않을 것 같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고 나니 왠지 좀 미안해졌다. 책정리를 하다보니 아직 읽지 않은 소설집에 배수아의 소설이 하나 포함돼 있는 걸 발견했다. 그거라도 읽어봐야겠다. 나의 생각을 뒤집어줄 수 있을런지는 모르겠지만.


3

여섯명의 멤버 중 남자는 딱 한명이고, 나머지는 다 여자인데, 공교롭게도 기혼이 더 많다. 그래서
잘 알지 못했던 부분에 대한 대화를 하게 될 때가 많다. 모임의 주선자인 똑부러진 S씨는 돌앞둔 아이의 엄마인데, 그간 겪었던 산후 우울증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는데 나도 모르게 울컥할 뻔했다. 그 마음이 얼마나 절절한지. 순간순간 느꼈을 자기혐오는 또 어떻게 극복했을지. 산후우울증 얘기를 시작했을 때, 그걸 왜 겪는지가 얼른 와닿지 않았던 내가 미안해지는 순간이었다. 그 외 다른 분들의, 결혼 후 남편과 부딪치는 이야기들, 역시나 생각지 못했던 부분들이나 나 역시도 같은 상황이라면 싫었을 게 분명했을 이야기를 듣고 나니, 역시 생각하고 경험해온 영역이 너무나 좁다는 것에 대한 나 자신의 한계에 다시 부딪치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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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수다수다 커피한잔의 대화가 있었던 곳은 대학로 학림다방이었다. 말로만 듣고 지나만 가보던 이 곳에 직접 들어가본 것은 처음이었는데, 들어서자마자 그곳만의 묘한 아우라가 느껴진다. 한쪽 구석에서 동창회로 추정되는 모임을 하고 있는 열댓명의 아주머니들은 왠지 젊은 시절 추억의 한조각을 이 곳에 두고온 듯한 표정들이었다. 나는 촌스럽게도 '스트롱' 커피를 시켜 마셨다- 간만에 찐한 커피를 들이키니 참 좋군! 게다가 리필도 해주는 센스라니 @_@


5

교회로 가야하는 시간인 저녁 9시까지 시간이 조금 떠서 동네 극장에서 M을 봤다. 행복을 보려고 했는데 시간을 놓쳐버렸다. 남은 영화들 중 M을 고른 이유는 단 하나였다. 아무도 같이 안봐줄 것 같아서. 극장에 들어서니 이 세상 그 누구도 정말 나와 이 영화를 함께 봐주지 않았다. 여기까지 바랐던 건 아니었다. 그래도 토요일 저녁인데, 이 극장 안에 나 혼자라니, 콰당 문이 닫히는 순간 갑자기 외로워진다. 영화를 보고 나니 더 그렇다. 참 외롭고 쓸쓸한 영화, 그렇게 11월의 첫번째 토요일은 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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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장수 2007-11-05 0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M 볼 때는 사람 꽤 많던데,,,
저도 예전에 심야영화 한 편을 혼자서 본 적이 있는데, 나름 괜찮지 않나요?^^

웽스북스 2007-11-05 12:09   좋아요 0 | URL
그런것들이 좀 기억에 남긴 하죠
'우리밖에 없었다'는 좀 있었던 것 같은데 '나밖에 없었다'는 최초인 것 같아요

다락방 2007-11-05 0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게 11월의 첫번째 토요일은 가고

제 11월의 첫번째 토요일도 가버렸어요. 다시 안오겠죠.

웽스북스 2007-11-05 12:09   좋아요 0 | URL
모든 것이 그렇죠 ^^
그만큼 소중하게 보내야 하는데 말이죠-

마늘빵 2007-11-05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하책방 모임 좋군요. 소규모로. 저도 그런거 해보고팠는데. 이제 논문도 끝났고 한번 시도를 해볼까 생각중...

웽스북스 2007-11-05 12:09   좋아요 0 | URL
전 옆에서 지르는 거 전공인데! ㅋㅋ (해봐해봐해봐요~ 이런거 ㅋㅋ)

마늘빵 2007-11-06 08:34   좋아요 0 | URL
하게 되면 여기서 모으지 않을까 싶은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