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된 언어 - 국어의 변두리를 담은 몇 개의 풍경화, 개정판
고종석 지음 / 개마고원 / 2007년 7월
품절


만약에 남북의 언어가 정말 '이질화' 됐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그 과정이 가속도를 얻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우리가 전체주의 질서를 채택하지 않는 한, 그 이질화의 흐름을 바꿀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또 굳이 그 흐름을 바꿀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죽은 언어가 아니라면 언어는 변화하게 마련이다. 그리고 언어를 변화시키는 것은 우리가 쉽게 통제할 수 없는 언어적/언어외적 조건과 상황이다. 우리가 지금의 한국어를 19세기 한국어와 일치시킬 수도 없고 굳이 일치시킬 필요도 없다. -36쪽

내가 감염된 인간이듯, 내 한국어는 감염된 언어다. 우리는 모두 감염자다. 그리고 모든 언어는 감염된 언어다. 이런 사실을 깨닫는 것은 우리가 민족어에 대해서, 그리고 민족어 문학에 대해서 관찰자의 거리를 가지고 차분히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73쪽

바람직하든 그렇지 않든 국경의 높이는 점점 더 낮아지고 있고 그 낮아진 국경을 넘어 유럽-미국산 언어들은 점점 더 자주 한국어와 접촉하고 한국어에 간섭할 것이다. (중략) 그것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물론 피할 수 없다는 것은 그것이 꼭 바람직하다는 뜻은 아니다. 언뜻 멋져 보이는 한자어를 포함한 외래어의 남용에는 분명히 다소간의 허영심(을 향한 호소전략)이 작용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그 허영심을 비웃을 수는 있을지언정 그것을 공동체 차원에서 억지로 막을 수는 없다. -92쪽

소통은 언어가 존재하는 처음이자 마지막 이유다. 소통할 수 없을 때 언어는 쇠약해지고 끝내 사멸한다. 언중은 당연히 자신의 언어 생활에서 일반적으로 소통을 확대하려고 애쓴다. 그런데 외래어를 비롯한 이물질이 한국어에 스며드는 것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소통 가능성에 대한 염려 때문에 그러는 것은 아닌듯 하다. 소통 가능성이 없거나 극히 약한 외래 요소들은 저절로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외래어를 비판하는 것은 상상된 순수성에 대한 집착 때문일 것이다. 뒤에 흘끗 살피겠지만 이들은 순수성에 대한 집착으로 소통 가능성을 희생시키기까지 한다. 그들은 불순해진 지금의 한국어를 한탄하고 순수했던 과거의 어떤 한국어를 상상한다. (중략) 그러나 그 순수한 한국어 가운데도 깊이 살펴보면 그 어원이 중국어나 몽고에서 온 것이 상당수 있다. (중략) 우리가 알고 있는 거의 모든 문명어들은 외래 요소와의 혼합을 경험했다. 그리고 그 혼혈은 그 언어를 풍부하게 만들었다. -98쪽

한 힘있는 일간신문이 주묵도가 높은 난의 제목으로 사용해 매일 독자에게 읽히는 수고를 하고도 낱말 하나의 생명력을 되살려내지 못한다면, 한국어 어휘의 '순도'를 지금보다 훨씬 더 높이겠다는 순수주의자들의 꿈이 이뤄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도 좋다. 더구나 이런 시도는 윤리적으로도 바탕이 튼튼하지 못하니, 자신의 우세한 지위를 이용해 자신과 극소수 동지들만이 아는 말을 사용하면서 내 말을 알아듣고 싶으면 이 말을 배워라 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략) 그들이 사전에서 찾아낸 순수한 한국어는 그 효과에서 그들이 책상 위에서 새로 만들어낸 말과 다름없다. 누가 그들에게 자신들의 '개인 언어'를 사회에 강요할 권리를 주었는가. 그런 개인언어가 이내 민중언어로 통용될 수 있는 사회는 멋진, 무서운 신세계일 수밖에 없다. -100쪽

나는 이 잡종 언어의 흐드러진 개화가 걱정할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발랄한 언어는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어떤 해방감을 드러낼 뿐이다. 엄격한 규율이 지배하는 진짜 세상, 곧 오프라인 세상에서 빠져나와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는 해방감 말이다. (중략) 물론 채팅 언어의 일부는 언젠가 표준 한국어로 편입될 수 있다. 그것은 한국어 화자의 다수가 그것을 표준 한국어로 받아들일 때다. 그리고 그것이 표준 한국어에 편입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안된다. 어떤 말이 바른 말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것은 언중이기 때문이다. -102쪽

섞임과 스밈은 문화적 생물학적 진화의 피할 수 없는 요건이다. 순수한 한국어라는 것 역시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허깨비다. 설령 그런 것이 존재한다고 할지라도 '순수한 한국어'만으로 이뤄진 언어 체게는 흉측하기 짝이 없는 전체주의의 언어일 것이다. 아름다운 순수어를 고집하는 마음은 아름답지 않ㄴ다. 아름다움은 섞임과 스밈 속에, 불순함 속에 있다. -104쪽

내가 이해하는 자유주의자는 만인이 파시즘을 옹호하고, 만인이 볼셰비즘을 지지해도 이를 수락하지 않는 정신의 이름이다. 그 자유주의자는 비판을 통해서 그리고 그것만으로 충분치 않을 때는 폭력에 호소해서라도 전체주의를 분쇄할 각오가 돼 있는 사람이다. 그는 사상의 자유시장을 옹호하지만 그 사상의 자유시장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사상에 대해서만은 너그러울 수 없는 사람이다. -110쪽

민족주의라는 것은 비록 이념의 모습을 갖추기는 했지만 본질적으로 감정 상태이기 때문이다. -120쪽

민족주의의 융성이 한 민족의 독립을 가져올 수는 있지만 독립을 얻은 민족의 구성원들을 자유롭게 할 수는 없다. 역사는 그것을 증명한다. 민족주의는 그것이 강대국의 민족주의든 약소국의 민족주의든 얼마나 자주 대외적 패권주의와 대내적 집단주의를 가져왔는가? -123쪽

우리는 우리가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일본 사람들의 노력으로 한자어화된 서양의 문화를 손쉽게 빌어쓰는 길을 걸었다. 확실한 것은 메이지 이래 일본 열도에서 만들어진 무수한 신조어들은 한자라는 매개를 통해 즉각 한국어에 흡수됨으로써 한국어의 어휘를 배가시키고 한국인들의 세계 인식 수준을 크게 높였다는 사실이다. 그 모든 것을 우리 자신의 힘만으로 해내지 못했다고 해서 우리말의 풍부화와 그것을 통한 우리 의식의 획기적 전환이 우리에게 좋은 일이었다는 사실마저 변하는 것은 아니다. -1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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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7-11-04 1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옮겨쓰다 힘들어서 일단 스톱

다락방 2007-11-04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이거 한번 읽어볼까요? 저는 소설아니면 취미가 없는데, 아프락사스님도 웬디양님도 급칭찬모드시라면..흐음..

웽스북스 2007-11-04 22:02   좋아요 0 | URL
읽어보세요 다락방님! 저도 소설이 제일 좋아요 ㅎㅎ
고종석 아자씨는 소설도 잘쓴다는! ㅋㅋ

마늘빵 2007-11-05 0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고종석씨 소설 <제망매>도 있답니다. :)

웽스북스 2007-11-05 12:22   좋아요 0 | URL
아프락사스님 제망매 읽으셨어요?

마늘빵 2007-11-06 08:33   좋아요 0 | URL
네!

양승훈 2008-02-17 0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종석씨 글이 아름답죠~~ 유려하다는 표현이 적절한 듯해요~~ 보통 비평적 글쓰기에선 항상 '건조함' 때문에 졸음 유발이 일색인데,, 이 책 저도 읽으면서 참 윤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언젠가 이 블로그 놀러왔었는데~ 잘 지내시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