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철학책을 읽으며 철학적 문제의 깊이에 대한 감탄과 배꼽 빠지는 웃음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을까? 플라톤의 "테아이테투스"라면 가능하다.


"테아이테투스"는 지식 이론에 대한 대화편이다. 대화 중의 한 결론이 "It is not possible to believe what is not, either about anything which is or in any absolute sense."였다. 화이트헤드가 서양 철학사를 플라톤에 대한 각주라고 하더니 과연 그렇구나... 하며 감탄을 했다. (물론, 여기서 내가 상정하고 있는 철학자들은 무어, 럿셀, 비트겐쉬타인, 특히 비트겐쉬타인이다.)


그런데 저 결론이 있고 난 몇 줄 아래서 대화자인 테아이테투스가 소크라테스에게 "When someone thinks 'ugly' instead of 'beautiful', that is truly false belief."라고 하자 소크라테스가 받는 말이 가관이다: "You obviously have a low opinion of me, Theaetetus, and don't think you need be cautious." -아, 여기서 대박 웃음이 터져야 한다!


이 대목을 읽고 혼자 대꾸르르 구르다가 친구에게 설명하자니 설명하기가 힘들고 설명을 시도하다 포기하다, 혼자 안타까워 하다를 반복했다. 그랬더니 친구가 "혼자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뭐해?"라고 하더라.


아, 플라톤, 그대는 정말 악마적이오. 당신의 농담을 이해하고 배꼽을 잡고 웃을 수 있으려면 당신의 철학의 깊이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하다니, 그것도 무한한 깊이의 샘물과 같은 사상을!


2. <지웠음> 2012/03/10


3. "간송 전형필"이라는 책을 읽었다. 친구에게 빌린 것인데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어디까지가 저자의 상상이고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저자 스스로 책에 상상력을 발휘했음을 밝히고 있으니 크게 문제되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내가 사실이었으면 하고 바라는 부분은, 전형필이 오세창의 숙제를 받아 첫번째로 구입한 그림이 겸재의 그림이고 두번째로 구입한 그림이 조영석의 그림이라는 대목, 그리고 "훈민정음"과 관련하여 김태준과의 관계를 다룬 대목이다. 이런 부분들에서 우리는 많은 이야기꺼리들을 상상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꺼리들이 단순히 어떤 작가의 상상에서 비롯된 이차적 상상이 아니라면, 그 이야기들은 더 많은 힘을 갖게 될 것이다. 전송에 대한 자료들을 더 읽다보면 충분히 검증가능한 부분이겠지 싶다. 계속 관심을 기울여 봐야 겠다. 


4. "길모어 걸스" 시즌1을 다 봤다. 생각보다는 실망. 미국 드라마의 한계라고나 할까... 싱글맘을 통해서 다룰 수 있는 소재는 무궁무진할 것이다. 그러나 드라마는 애초부터 한계를 안고 출발한다. 싱글맘의 부모들이 부자다. 그 부모들의 부모는 그 이상의 부자다. 이럴 경우 드라마의 갈등 구조는 딱 틀 안에 갇히게 된다. 테레비에서 나중 시즌 에피소드를 해 주어서 봤는데 싱글맘은 부자가 된 원래 아이 아버지와 파리로 여행 중이고 아이는 완전 공주마마가 되어 있고 그렇더라...


5. 테레비에서 "토토로"를 봤다. 영국은 더빙을 안하기 때문에 영어 자막으로 봤다. (프랑스에서는 죄다 더빙을 하더라) 재미있게 봤다. 얼마 전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조니 뎁, 헬레나 본 햄 카터 주연)을 봤었기 때문에 은근 비교하게 되더라. 나는 "토토로"가 훨씬 좋았다. "앨리스"는 감독이 뭔가 새로운 해석을 가하고자 한 것은 좋았는데 인위적이고 식상했다. "토토로"는 모든 게 아주 자연스러웠다. 그것은 이념적이 아니었다. 나는 "토토로"를 보고 그런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예를 들면 영화 "매트릭스"는 아주 유치하다. 봐주기가 곤란했다. 반면 "공각기동대"는 전혀 급이 다르다. 나는 일본의 문화에 대해서는 일부러라도 눈을 감고 있지만 내가 본 두 만화영화는 각자의 영역에서 탁월했다. 나는 일본의 힘에 대해서 두려워 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토토로"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6. "세한도"를 읽고 있다. 좋은 책이다. 완당문집이 궁금해서 알아보니 번역이 되어 있더라. 완당이 문경이 되어 줄 수 있으리라.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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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시즌이라 거리든 어디든 차로 사람들로 넘쳐난다. 나도 어제 킹스턴에 가서 쇼핑을 좀 했다. DVD도 하나 사려고 했는데 줄이 너무 길게 늘어서 있어서 포기했다. 돌아오는 길. 라디오에서 서글픈 곡 하나가 흘러 나오더라. 구글링해보니 Johnny Cash의 Hurt라는 곡이었다. 이런 멜로디, 이런 가사를 얻을 수는 있겠지. 그러나 그것이 이런 목소리에 얹혀질 수 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거야... 친구랑 이런 말을 주고 받았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듣기 좋은 곡은 아니지만 생각난 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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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크리스마스고 한 해가 마무리되는 때이다. 올 해엔 나에게 많은 일이 일어났다. 정확히는 작년의 마지막 날부터. 올 여름 나는 공장 일을 그만 두고 영국으로 건너왔다.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도전하고 부서지고 있다. 새로운 경험들과 새로운 도전들이 나의 시야를 온통 차지하고 있다. 괴테의 파우스트는 "일이 곧 전부이다"라는 말로 끝난다. 숱한 방황과 실수들은 그것이 끊임없는 노력의 필연적인 부산물이었다는 것으로 가볍게 양해된다. 그것이 지혜로운 괴테의 마지막 사상이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어쩌면 그것은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것을 외면하고 만 것일 수도 있다. 즉, 시간과 관계라는. 그렇다. 인정하자. 괴테도 나도 관계지향적인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그러나 한 해의 이 즈음에는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나의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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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반 강사가 휴가를 가서 다른 반에 들어가 수업을 받았다. 그러다 보니 한 반에 한국인이 네 명이나 되었다(1/3). 우연히도 수업 주제 중 하나가 성형수술이었다. 수업 교재는 BBC 다큐먼터리이었는데, 당연하다는 듯이 한국의 한 클리닉에 내내 카메라를 들이밀고 있었다. 성형수술은 딱 좋은 토론 주제다. 학생들 사이에 토론을 활성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인 학생이 4명이나 포진해 있는 클라스에서 성형수술을 주제로 다룬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일단 한국이 성형수술 대국인 건 분명한 사실일 것이다. 다큐멘터리에서는 강남의 어떤 구역에만 클리닉이 400개나 된다고 소개했다. 심지어 한국의 7번째 성장 동력이라는 얘기까지 하더라(난 믿지 않는다). 다큐먼타리에서는 한류붐을 타고 아시아 여성들이 수술을 받으러 한국을 찾는 이야기를 자세히 다루었다. 한 중국 여성은 수술을 통해 김태희처럼 예쁜 보조개를 갖게 되었다...


한국인 두 여학생이 토론 내내, 거의 90%의 점유율로 이야기를 했다. 가장 핵심적인 이야기는 취업에 있어 일순위는 실력이 아니라 외모라는 것. 강사는 놀라워 하며 몇 가지를 계속 지적했다. 첫째, 성형수술이 혹 남성 위주의 사회를 전제하는 것은 아닌가? 둘째, 직원을 뽑는데 외모를 일순위로 한다는 것은 위험한 일 아닌가? 셋째, 사회가 온통 외모에 집착하는데 대한 아무런 토론이나 반성이나 문제제기가 없는가? 넷째, 비용이 상당한데 그걸 어떻게 충당하는가?


한국의 세 학생들은 외모에 집착하는 한국의 현실에 대해 끊임없이 얘기했고 다른 나라에서 온 학생들은 놀랍다는 표정으로 그저 한국 학생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나도 그저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는데 끝까지 참지는 못했다. 그러한 현실은 분명히 잘못되었다, 나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한국에도 많다, 다만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 혹은 현실을 모르는 사람이라는 핀잔을 받을까봐 두려워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다...


한국에서 성형수술에 대한 토론이나 문제제기는 사실상 억제된다. 첫째, 그것은 개인의 선택이고 자기 만족이기 때문이다(한 한국 여학생은 성형수술이 남성 본위의 사회를 전제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이야기하기 위해 "자기만족"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둘째, 그것은 사회가 강요하는 구체적인 현실이기 때문이다. 즉, 개인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한국 학생들이 내내 이야기한 취지가 이런 것이었다). 


보다시피 토론을 억제하는 장치는 분명히 기만적이다. 한쪽에서는 그것은 개인의 선택사항이니 입을 다물라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사회가 요구하니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요점은, 그러니 입을 다물라는 것이다. 그 뿐이다.


그러나 분명한 건, 성형수술을 하건 말건은 개인의 기호겠지만 외모가 구직에 있어 일순위라는 인식이 어느 정도 공감대를 얻는 현실에 대해서는 강력한 비판 의식이 없어서는 안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것은 분명히 잘못된 현실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분명히 인정해야만 하는 것은, 외모에 대한 강요가 강력한 남성 본위 사회의 반영이라는 점이다. 성형수술이 일종의 자기만족이라거나 남성 역시 외모가 중요시되고 있다는 이야기로 이러한 현실을 가릴 수는 없다. 채용에 있어 외모가 일순위로 적용되는 경우는 대부분 여성에 있어서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가?


나는 강사가 제기한 문제들에 이렇게 대답하고 싶었다. 첫째, 남성 본위의 사회를 반영하는 것 맞다. 둘째, 실력보다 외모? 난 잘 모르겠다. 나중에 다른 친구와 이야기해 본 결과, 요즘은 실력이 뛰어난 친구가 외모도 뛰어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셋째, 사실상 문제제기는 없다. 그것은 주로 여성의 영역이기 때문에 남성들이 언급하기가 힘든 측면이 있다. 즉, 여성 스스로가 문제 제기를 해주어야 사회가 편안하게 그 문제를 다룰 수 있을 것이다. 넷째, 성형수술 비용이 많이 들지만 아마 투자로 생각할 것이다. 취직에 있어서나 결혼에 있어서나. (나는 영어가 짧아서 이걸 말로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


아마 나의 이러한 생각들에서 분명한 편견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성형수술의 문제를 주로 여성의 영역으로 한정시키고 있다는. 나는 분명히 그걸 인정한다. 그러니 이런 식의 말싸움 뿐인 문제제기는 하지 말자. "니네들 남자들이 예쁜 여자 좋아하는 건 사실이잖아~" 나는 해결책을 찾고 싶을 뿐이다. 이러한 현실이 잘못되었다는 것에 공감한다는 전제하에서 말이다. 유럽에서 여성들이 참정권을 얻을 때 남성들이 수혜적으로 그러한 권리를 여성에게 준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여성들이 외모에 더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할 수록 남자들은 안심을 한다. 외모가 주요한 기준이 되는 한 여성들은 남성들의 부차적 경쟁자일 뿐이기 때문이다. 남성들이 이 문제에 있어 수동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얘기다. 그럼 누가 나서야 하는가? 당연히 여성들이다. 여성부, 여성단체들, 여대 총학들... 이미 충분히 하고 있을까? 그 사정까지는 내가 파악해 보지 않았다. 그저 껍데기만 이야기만 하고 마는 시사 프로그램 몇몇을 보았을 뿐이다. 내가 보기에 이 문제는 한국에서의 불평등한 성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말하자면, 속물적인 상업주의에 곁들여져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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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학원 시간이 변경된 것을 제대로 챙기지 못해서 학원에 한 시간이나 늦었다. 수업에 들어가지는 못하고 학생 카페에 가서 하이데거를 읽었다. 내가 예전에 읽었던 것은 "철학이란 무엇인가"가 아니라 "형이상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철학이란 무엇인가"는 나에게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했다. 문자는 항상 종이장이라는 이차원을 넘으려 발버둥친다. 우리는 종종 성공적인 발버둥을 발견한다. 예를 들면 아모스 오즈라는 이스라엘 작가의 소설들. 하이데거를 다 읽고 나는 그저 가방에 책을 쑤셔 넣을 뿐이었다. 마치 현란한 특수 효과들로 가득 찬 스타워즈 2탄을 극장 맨 앞 자리에서 보고 난 직후처럼 내 머리에 남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시간이 남아 또 헌책방에 갔다. 버나드 쇼우의 "성 조안"과 플라톤의 "테아이테투스"를 샀다. 버나드 쇼우는 영국에서 셰익스피어 다음으로 인정받는 극작가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한국에서도 그렇고 영국에서도 그렇고 버나드 쇼우 작품을 찾기가 힘들다. -한국에서는 교보문고 외서부, 영국에서는 헌책방 서너 곳. 집에 오면서 "성 조안"을 읽었다. 단순한 대화체 문장들. 나는 긴장하며 읽었다. 읽으면서 꼭 극장에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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