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7일 동희오토 정문앞에서는 경찰과 지역노동자들의 마찰이 있었다.

노동조합이 점심시간에 공장안에서 집회를 하는데 집회신고를 하는 법은 없다. 여기에 지역의 노동자들이 연대를 하는 것도 상식이다. 그런데 집회전부터 경찰은 5개중대가 공장안에 대기하고 있다가 정문을 통해 들어가려는 연대온 노동자들을 막고는 불법집회라고 해산하라고 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무장한 병력은 노동자들중 12명을 폭력적으로 연행하고 그중 3명을 구속했다.

이날 집회에서는 경찰의 몰상식한 폭력이 많았는데 그중 하나가 여성 노동자에 대한 성희롱이다. 공장앞에서 뿐 아니라 12명의 노동자들을 연행한것에 대한 항의방문을 간 경찰서 앞에서 줄곧 몸에 손대지 말라고 항의하며 여성경찰을 투입하라고 요구했으나 듣지 않았다.

특히 경찰서 앞에서는 뒤쪽에 뻔히 여경이 보이는데도 굳이 여경을 투입하지 않고 직접 여성노동자의 팔목을 잡고 어깨를 잡고 늘어지다 여성노동자와 몸이 맞닿은채 넘어지는 상황을 연출한 경찰 최00, 나는 이작자의 의도를 모르겠다. 여성노동자를 진압한다는 명목으로 손목을 잡고 어깨를 잡고 즐거운건가? 이게 사람인가?

서산경찰 최00의 성희롱 엽기행각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남자경찰이 왜 여성을 잡느냐. 서산경찰서에도 여경이 있지 않나. 저기 여경이 있으니 여경을 불러라.” 는 항의에

“니가 여자였어? 나는 남자인줄 알았지” 라고 말하며 비웃다가 주변 노동자들이 항의하자 꽁무니를 빼고 도망갔다. 뭐 이런 것들이 경찰일까?

문제는 서산경찰 최00가 성희롱 엽기행각 끝에 꽁무니를 뺀 후에도 끝나지 않는다.
분노한 여성노동자가 명백한 성희롱이라며 계속 항의하고 사과를 요구하는 과정이 또 황당하다. 

먼저 서산경찰서 김00 형사에게 전달한다.

“지금 바로 사과하면 사과를 받겠으니 당장 사과하라고 해라.”
묵살되고 또다시,
“오후 5시까지 사과하면 인정하겠다. 하지만 그때까지 사과하지 않으면 문제제기 하겠다.”
또 묵살.

이후 노동자대표단과 서산경찰서 대표(정보과장, 수사과장, 김0헌 형사)와의 면담에서 다시 성희롱문제를 제기하고 사과를 요청하자 이번에는 서산경찰 수사과장이 피식웃으며 말한다.

“백주대낮에 경찰관이 무슨 성희롱이야. 본인이 그냥 그렇게 생각하는 거겠지.”
이런 제기랄, 이정도면 무식한 것들이 집단적으로 지랄하는 수준이다.

서산경찰의 성희롱 가해사실은 이렇다.
일단 서산경찰 최00의 성희롱이 있다.

두번째로 성희롱이 벌어진 현장에서 사과를  요구하는 여성노동자를 폭력적으로 제압하고 도망가도록 도와준 경찰들 모두 2차 가해자다. 당신들은 눈앞에서 벌어진 성희롱 가해자를 비호해서 내빼게 도와줬다. 당신들은 경찰이다. 성희롱이 벌어지면 그 사고현장에서 문제를 바로잡도록 노력해야 하는데 오히려 가해자를 비호하는 과정에서 여전히 여성노동자의 손목을 잡고 어깨를 잡고 흔들며 폭력을 행사했다. 
그후에도 그날 현장에 여경은 나오지 않았다.

세번째로 수사과장, 당신 또한 2차가해자다. 그냥 2차가해가 아니라 매우 뻔뻔한 파렴치한이다. 설사 백주대낮에 경찰이 그러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해도 일단 피해자가 요구하면 당신은 이렇게 답하는게 상식이다.

“그런일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피해자가 요구하니 일단 내부에서 진상조사를 해보겠다. 만약 그런일이 있었다면 재발방지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이런것까지 가르쳐줘야 하나? 국민들의 치안을 위해 경찰을 고용하고 거기에 세금을 내는 것 외에 이제 우리는 경찰에게 성폭력 교육까지 직접 해줘야 하나? 그과정에서 성희롱 당하고 그것으로 모자라 조롱당하면서! 백주대낮에!!

다음날 다시 지역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이 면담하고 사과를 요구했는데 아직도 묵살로 일관하고 있다. 

서산경찰 최00, 수사과장, 그리고 책임을 지고 있는 서산 경찰서장. 당신들의 무식하고 뻔뻔한 한심함이 도를 넘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까먹고 대충넘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모양인데, 천만에. 당장 책임자를 처벌하고 경찰서장은 사과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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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다. 정말이지 요즘은 한해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게 간다. 뭔가 무지 바쁘게 하기는 했는데 되는 일도 없이 바쁘다.

징역을 사는 사람에게 연말은 어쨌든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는 하지만 줄지어 기다리는 빨간날들, 쉬는 날들이 반갑지 않다. 면회도 안되고, 하루에 30분씩인 운동시간도 없다. 심한 경우 연속해서 4일 5일을 문이 한번 열리지 않고 꼼짝없이 5명이 코딱지만한 방안에서 꾸겨져 있어야 하는것은 지겨운 일이다.

특히 노동운동을 하며 사는 우리는 언제든 감옥은 갇힐수 있는 곳이라는 결의를 하고 살기도 하고 실제로 별 탈없이 잘 살아내기도 하는데 그래도 감옥이다. 동지들이 구속되면 할 수 있는 애정표현을 다 해주자.

감옥에서 징역을 사는 동지를 위한 것이야 마음의 표현이니까 동지들이 알아서 잘들하지만 살아본 사람의 노하우를 담아서 징역사는 동지들에게 연말연초 애정표현을 하자고 제안한다.

1. 면회하기
1) 기본적으로 하는 것이다. 갇혀 있어보면 하루도 빠지지 않고 면회를 오는 사람은 노동운동을 하고 들어온 나밖에 없어서 함께사는 사람들이 부러워한다. 별다를 것 없는 말들, 안부의 말들이지만 면회를 하는것은 가장 즐거운 하루 일과임이 분명하다.  

 

먼곳의 동지를 찾아갈 경우, 수용인원이 많은 교도소에 갇혀있는 경우 미리 예약을 하고 가면 편리하다. 예약은 해당교도소로 전화를 하고 주민번호와 주소를 불러줘야 하고 아침 9시부터 10시 11시 12시 이런식으로 정각의 시간만 받는다. 주의할 것은 4시에 맞춰가고 싶어도 4시에 이미 면회할 수 있는 인원이 다 차버리면 미리 전화해도 못하니까 일정을 미리 맞출수 있다면 며칠전에 미리 해두는 것이 좋다.

2) 면회시간은 법무부에서 나온 수용자 지침에는 ‘소의 사정에 따라 30분 이내로 한다’ 고 되어있는데 보통 5분에서 10분이다. 불과 2년전만해도 5분하라고 해서 5분만 하지는 않았다. 30분 이하의 시간인데 왜 5분밖에 안되었는데 못하게 하냐고 면회온 동지도 안나가고 나도 우기면 그냥 10분이고 15분이고 했다. 내 기억에 나는 5분만 했던적은 없었다.  

 

그런데 망할것들이 요즘은 면회를 가보니 칸막이를 완전히 막고 마이크로만 들리는데 마이크를 아예 다른곳에서 통제하면서 5분이 지나면 끊어 버린다. 얼추 할말을 다 했으면 상관없지만 5분이고 7분이고 정해진 시간이 지났다고 할말이 아직 있는데도 일방적으로 끊어버리면 그 자리에서도 항의하고 나와서 교도관들에게 충분히 항의하고 오는 것이 징역사는 동지들에게 예의다.

항의 하면 보통 교도관들은 이렇게 말한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5분만 하는데, 한사람만 특혜를 줄수는 없다. 그리고 여기는 수용자가 많아서 어쩔수 없다.” 
 

그러면 이렇게 대답해야 한다.
“지랄하네. 누가 우리만 특혜를 달래? 법무부에서 만든 규정이 30분 이내이니까, 최소한 니네가 만든 규정은 지키라는거고, 수용자가 많은것도 니네 잘못이고, 인원이 많으면 그만한 시설을 해놓고 사람을 가둬야지. 사람이 많다고 일부러 시간내 먼길 온사람을 5분지났다고 할말도 못하게 하고 나와야해? 그정도 관리능력 없으면 사람 구속시키지나 말든지. 죄없는 사람 끌고와서 이게 무슨짓이야?”

영국의 경우 수용인원이 가장 많은 교도소가 400명으로 제한하고 있다. 그 이상의 인원을 한꺼번에 수용하면 수용자들을 인간적으로 충분히 배려하지 못하고 그러면 반드시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기결이든 미결이든 설사 죄가 있다해고 사회와 격리되는 것 이외에 인권의 침해가 없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내가 살았던 대전의 경우 수용인원이 5000명이 넘는다. 이쯤되면 교도관과 수용자의 관계는 인간적이기 어렵다. 그것을 전제하고 있는 수용이고 수용인원 자체가 이미 인권을 충분히 배려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저 짐승처럼 가두고 감시하기에 급급하다.

2. 편지쓰기
1) 연말에는 일부러 예쁜 카드나 연하장을 보내도 좋고
2) 요즘은 인터넷으로 편지를 하면 날마다 쓸수 있고, 바로 다음날 전달된다.

편지를 쓰고 받는것도 하루의 큰 일과중 하나다. 생전에 그렇게 많은 편지를 쓰고 받아보지 않았다. 시간을 그렇게 보낼수 있어서 좋고 밖의 소식을 들어좋고, 나의 결의를 쓸수 있어 좋다. 평소에 잘 모르던 동지들의 새로운 면을 보는 것도 좋고 그렇게 받았던 편지들은 잊혀 지지않는다.

3) 재주가 좋은 동지들은 꽃이나 단풍잎을 잘 말려서 편지에 함께 보내주기도 하는데, 중학교때 이후 그런 편지를 감옥설면서 말고는 받아본적이 없다. 이런 편지를 보내주는 동지를 어떻게 잊을까.

4) 편지와 함께 소속사업장이 연맹, 지역 집회에서 나온 유인물들을 따로 모아서 일정기간마다 서류봉투에 넣어 등기로 보내는 것도 좋다.  

 

징역사는 사람은 담장 밖의 소식에 가장 갈증난다. 주요 사업의 경우 대의원대회 자료나 쟁점 사항들을 따로 모아 출력해서 역시 등기로 보내주는 것도 좋다. 마치 가뭄에 단비를 마시는 느낌으로 읽게 되고 오래간만에 마음이 설레이기도 한다.  

 

등기는 우체국에 직접 가서 보내게 되는데, 이때 그 즈음에 나온 기념우표를 한판 사서 함께 보내는 것은 센스! 감옥안에서는 별게 다 부럽고 신기한데, 남들은 다 일반우표 쓸때 예쁘게 편집된 기념우표 한판씩 등기로 들어오면 어깨가 으쓱해진다.  

 

동지에 대한 애정표현이란 마음의 표현이고 정성이다. 우리가 감옥이 아니라면 언제 소속된 사회에서 ‘있어’ 보겠는가. 물론 그 우표 자랑하고서 혼자 쓰지도 않는다. 이리저리 징역 함께 사는 주변사람들과 나누어 쓰면 그것도 좋은 일이다.

3. 국가인권위원회 자료 보내주기 
 꼭 보내줘야 하는것은 아닌데, 혹시 교도소에 잘 적응을 못하는동지나, 아니면 안에서 투쟁을 빡세게 하는 동지들에게는 보내주면 도움이 된다. 인터넷으로 국가인권위원회 사이트에 들어가서 ‘수용자’, 혹은 ‘수용자처우’를 검색하면 여러 가지 자료가 있다.

주로 수용자 처우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의 보고서들이고 대략 400~500페이지로 양이좀 많은데 출력해서 역시 등기로 보내주면 된다. 썩 마음에 드는 수준은 아니지만 그만하면 안에서 교도관들과 싸울때 도움이 된다. 
 

4. 안에서 동지가 투쟁을 하는 경우
여러 가지 이유로 투쟁을 하는데 밖에서 알게되면 일단 교도소 정문에 집회신고서를 내고 안의 동지와 소통하면서 시간이 지나도 안풀리면 기자회견을 하고 그다음에는 집회를 해주면 된다. 인원이 많이 참가하기 어려우면 1인시위라도 하면 된다.

살아보니까 내가 안에서 싸우고 있는 경우에도 보통 밖에는 잘 말하지 않는다. 밖의 동지들이 오히려 바쁘게 싸우고 있고 나는 안에서 편한데, 동지들을 번거롭게 혹은 걱정하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밖으로 알렸다면 분명 문제가 있는것이다. 함께 싸워준다.

그 외 영치품을 넣어주는 것, 책을 넣어주는 것, 가족들에대한 예의등을 다음 지면에서 다루어보겠다. 당연히 아는 것이지만 잘못하는 것이기도 한데, 동지에 대한 애정표현은 넘쳐도 좋다. 부족하지 않게 하자. 우리 모두 노동해방을 위해 소중한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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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이해남 지회장이 분신하던 가을 나는 감옥에 있었다.


7월에 수배되어 10월말에 연행될때까지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주로 천막에서 살았고, 천막이 침탈당한 후에는 정규직 노동조합에서 살았다. 회사식당에서 밥먹고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조합원들을 만났으니, 대한민국에서 수배된 자가 살기에 현대자동차 공장 만큼 좋은 곳이 없다고 생각했다.  

 
10월 23일 샤워실에서 씻고 나온 나를 얼핏 보기에도 40여명이 넘는 경비들이 샤워실 문밖에 대기하고 있다가 납치해서 정문에 대기중이던 경찰에게 넘겼다.


끝없이 졸음이 쏟아졌다. 깡패처럼 생긴 경비들에게 끌려가 경찰에게 넘겨지는 연행 방식에 화가나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사측을 상대로 책임자를 처벌하고 해고자들의 출입을 보장하라는 요구로 단식을 하면서도 마음은 편했다. 더 이상 조합원들의 걱정스런 눈빛이 나를 보고 있지 않았고, 앞이 보이지 않는 지회 투쟁계획을 제출해야 한다는 숙제가 어깨에서 내려왔다.
어쩌면 그렇게도 잠이 오던지.


그러던 어느날 면회온 조합원이 이해남 지회장이 위독해졌다고 말했다.
“이해남 동지가 어디 아파? 다쳤어요?”
“아니, 아직도 모르고 있었어요? 부지회장 연행되던 다음날인가 분신했쟎아. 대구에서.”
그동안 면회오던 조합원들이 걱정할까봐 일부러 나에게는 말을 하고 있지 않았던 것을 미루어 짐작하게된 그 조합원은 당황했다.
“나는 당연히 알 줄알았지. 부지회장도 너무 오래 굶지 말라고. 걱정스러워서.”

비가 내렸다.
면회를 끝내고 돌아와 앉은 독방에서, 그래도 꾸벅꾸벅 졸며 내가 미쳤구나, 생각했다.


정직하게 쏘는 눈빛이 맑은 이해남동지, 아산공장 천막으로 연대방문을 와서 수배되어 있는 나와 악수하고 헤어지며 힘주어 잡던 손이 마지막이었다. 깜박깜박 꿈결에 그눈빛이 나를 보고 웃고, 그 손길이 내 손안에 여전히 따듯했다. 강하고 굳센 사람이 왜 스스로에게 불을 지르는 방법으로 생을 마감하려고 마음먹었을까.

나는 뭐하고 있는걸까. 자본의 질서에 길들여져 살 수 없어 싸움을 하는 동지에게 함께 씩씩하게 싸우면 우리가 이긴다고, 그동안 우리 힘내서 함께 하자고 위로하고 격려하지 못하고, 외롭고 무거운 절망에 끝내 죽음에 이르도록 방치한 우리는 뭘하고 있는 걸까.


참 나쁘다. 내가 이런 마음인데 옆에서 함께 투쟁했던 조합원들과 간부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라고 그런 방식으로 분신을 해. 함께 투쟁하며 더불어 나눈 그 시간과 기억들을 어떻게 감당하고 살라고 분신을 해.  


그러고 죽으면 차가운 땅속에서 이해남 지회장, 동지는 마음이 편할 것 같아. 그러는게 아니지. 그러는게 아니지. 안그래도 노동자로 살아 서러운 동지들에게 할짓이 아니지. 원망스러웠다.


다시는 내동지를 죽음에 이르도록 방치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그 가을과 겨울을 우리는 ‘열사국면’이라고 불렀다. 많은 동지들이 살 수 없어 차라리 죽었다. 


  

 

 

 

 

 

    윤동수 / 삶이 보이는창

 

5년이 흐르고 얼마전 이현중, 이해남 평전이 ‘당신은 나의 영혼’이라는 제목, ‘오, 놀라워라! 우리가 인간이라니!’라는 부재를 달고 나왔다. 이해남의 이야기일 뿐 아니라, 변한 것 없는 세상에 아직 노동자로 삶을 살아내고 있는 조합원들의 이야기로 나는 읽었다.


세원테크 조합원들이 담담하고 진솔하게 그때를 말하는 것이 소박한 문체, 날것 그대로 씌여져 낯익다. 현장의 쇳소리, 냄새, 식당의 반찬, 땟국물에 절어 서로를 바라보던 눈빛까지. 돌아보니 인간이 아닌듯했던 시절, 어떻게 일하고 어떤 심정으로 웃고, 울며 결의하고 투쟁했었는지 생생하게 증언하는 조합원들의 말을 최대한 존중하며 작가는 썼다.


그렇게 서로 동지임을 자랑스러워하면서 힘차게 투쟁했던 동지들을 읽으며 지금, 여전히 막다른 길로 몰려 가파른 싸움을 결의해야 하는 동지들에게 모범이되고 위로가 되는 책이길 바란다. 책자체가 소중한 증언이고 기록일 뿐 아니라, 아직도 끝나지 않고 진행중인 세원테크 조합원들의 삶이 이 땅위에 있기 때문이다.


당시 막 고등학교 졸업하고 세원테크에 입사해 투쟁을 했던 조합원 유철우는 며칠전 동희오토 정문에 있던 비정규직 집회에 연대하러 참가했다가 연행되어 구속되었다. 이제는 스물여섯 더 이상 어리지 않고 젊은 철우를 유치장으로 면회갔더니 생각지도 못한 당부를 거듭한다. 


“누나, 사람들보고 알라딘에 꼭 가입해서 ‘당신은 나의 영혼’ 책에 리뷰달라고 말해줘요.”


단지 집회에 참석한것 뿐인데 연행되어 세원테크 투쟁했을때의 기록을 근거로 전과자라며 ‘특수공무방해’라는 무시무시한 죄의 혐의를 받고 구속된 철우가 유치장 너머로 걱정하지 말라며 순한 눈매로 웃는다.


오, 놀라워라! 우리가 인간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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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식이는 현대자동차 아산공자에서 일하는 잘나가는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엔진공장에서 생산된 엔진을 의장라인에서 차에 장착할수있게 서브작업을 해주는 일을 했다.  

엔진서브라인은 의장공장의 가장 앞쪽에 전원 비정규직으로만 구성되어 있었고 기식이는 그 라인의 키퍼였다. 보통 사내하청업체들은 사장 밑에 소장, 반장, 조장, 키퍼 이런식의 관리체계를 운영하니까 가장 말단 관리자였던 셈이다.

지금도 가끔 소주한잔 할때면 기식이는 현대자동차가 중국 현지공장을 만들어 라인을 깔고 시운전을 할때 몇 달동안 중국에 가서 중국 노동자들에게 일을 가르쳐주며 관리자비슷한 일을 했었다며 자랑을 한다. 중국의 음식과 추위와 우리보다 훨씬 뒤떨어진 산업화 풍경보다는 주로 자기가 현대자동차의 그 많은 노동자들중에 뽑혀서 중국으로 파견될 정도로 성실하고 일을 잘했다는 것을 뿌듯해하며 자랑한다.

자랑할만 하다. 불량이 나면 큰일 나는 줄알고 멀리서 보고도 달려가 어떻게든 고쳐야 하고, 자기일을 손빠르게 할뿐 아니라 라인 속도에 못따라오는 사람 일까지도 하고, 그러다가 화나면 주변의 노동자들을 다그치며 일좀 잘하라고 성질 내고, 그런 날은 소주도 사고, 원청 관리자들이라도 일을 대충하는 것을 보면 못참고 한마디해서 듣는 극성스럽다는 평가를 자랑스러워 했던 노동자. 그런가하면 중국에 파견되어 일을 하고 온 뒤에는 현대자동차에서 주는 임금을 중간에서 하청사장이 몰래 떼먹으려는걸 며칠을 사장실로 쫓아가 “내돈 아직 입금 안됐어요?” 보채서 기어코 받아냈던 기식이.

“왜냐면, 차는 엔진이 생명이거든 그런데 엔진에 이상이 있어봐. 잘못하면 사람이 다친다니까. 그리고 일은 열심히 해야 재밌어요. 그래도 내돈은 떼먹으면 안되지. 그건 엄연히 내가 중국가서 고생한 돈인데, 받아야 할 임금이 더 있는걸 내가 계산 못할 줄 알고 글쎄 그걸 안주고 입닥을라고 그러더라니까. 그돈 주면서 사장 표정이 얼마나 웃기던지. 똥씹은 표정이더라고. 내, 참 지 돈 주는거야? 현대자동차에서 나한테 주는 돈인데”

노동조합이 만들어진후 한동안 기식이는 지회에 가입하지 않았었다. 초기 가입서를 썼던 조합원들이 탈퇴를 시작하는 시기 지회에 가입했고, 가입하면서는 엔진서브라인의 다른 노동자들과 함께 집단적으로 가입해서 열심히 활동했다. 가장 앞에서 가장 힘차게 투쟁했던 기식이는 가끔 눈물에 대해 말한다.

“우리가 한꺼번에 지회에 가입하고 나니까 엔진서브장이 난리가 났었어요. 업체 사장, 정규직 관리자들이 일없이 와서 힐끗거리고, 소장은 와서 삿대질하고 욕하면서 지회조끼 벗으라그러고, 그런데 내가 제일 화가 났던게 뭔지 알아요? 2만원이예요. 2만원.”

지회를 탈퇴하지 않으면 너만 다친다는 면담을 수차례하고 금속노조 조끼를 입고 일하면 징계하겠다는 말에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내가 조끼 벗길 원하면 우리 지회장한테 가서 지침을 철회하라고 말해라. 나는 조합원이기 때문에 지회장이 시키는 대로만 한다.’ 그렇게 대답하고 나와서 다음 타임에는 엔진서브라인의 전체 조합원들이 금속노조 조끼를 벗기는 커녕 붉은 머리띠까지 두르고 일을 하는 바람에 원하청 회사 관리자들의 기를 질리게 했던 기식이가 눈물에 대해 말한다.

“하루는 회사에서 부르더라고요. 그래서 또 뭔 면담을 하자고 하나. 머리띠 사건 이후에 한동안 아무도 귀챦게 안했었는데 이번에는 또 무슨 소리를 하나 가봤죠. 그랬더니 글쎄 나보고 다른 조합원들이랑 같이 지회만 탈퇴해주면 조장시켜주고 2만원 더준데요.”

아무 대답을 못하고 사장 얼굴만 쳐다보다가 나왔단다. 
  
“하여튼 일이 끝나고 혼자 술을 왕창 먹었어요. 술을 먹고 집에 가서 마누라 얼굴을 봤는데 눈물이 막 나와요. 마누라 끌어안고 울었어요. 내가 2만원짜리다. 내가 2만원짜리야. 이말만 계속 하면서 울었어요.”

5년이 흐른후, 지금 동희오토에는 3만원짜리 노동자들이 있다. 어쩌면 그렇게 똑같을까. 조장 대우해준다고 3만원씩 더받는 키퍼들. 노동조합 활동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주변의 다른 동료들도 노동조합 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사장과 약속을 한 키퍼들이 그 댓가로 받는 몸값이 3만원이다.

작년 한해 880억의 매출을 올린 기아자동차 모닝을 만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영혼의 값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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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전 동희오토 해복투 최진일 사무국장은 조용히 모자를 눌러쓰고 침착하게 집을 나섰다. 작업복을 입은채 출근하는 조합원들 틈에 섞여 아직 어두운 공장으로 몰래 들어간 후 화장실에서 4시간을 숨어 있었다.

점심시간, 조합원들이 밥먹고 나오는 시간에 맞추어 라인으로 들어가기 위해 4시간 동안 춥고 냄새나는 화장실에 쪼그려 앉아 무슨생각을 했을까. 시계를 몇 번이나 보다 깜빡 선잠이든 꿈결에, 어쩌면 동희오토 하청노동자 수백명이 조끼를 입고 붉은머리띠를 두른채 화장실 앞으로 달려와 문을 벌컥 열며,
“최진일 거기서 뭐해. 우리 모두 싸우고 있는데, 겨우 화장실에서 이렇게 졸고 있을거야?”
뜨거운 손잡고 일으켜주는 꿈이라도 꾸었을까?

4시간을 기다려 12시 50분쯤, 밥먹고 난 조합원들이 늘 쉬는 불꺼진 라인의 한쪽, 불과 80일전까지 함께 일하고 함께 쉬던 기계냄새 익숙한 어두움 뚫고 통로를 걸어가는 발걸음 밑에 심장은 얼마나 뛰었을까.

딱 15분이지만 라인에서 반갑게 만난 조합원들과 인사하고 얘기하니 배불렀다. 당연하게도경비들과 정규직, 비정규직 관리자들이 호들갑을 떨며 출동을 했고 라인에서 몸싸움이 붙었다. 그리고 10분쯤 후 의장공장 밖으로 끌려나왔다.

의장공장 앞에서 정문까지 한참을 걸어 나오는 길, 힘으로 안되는줄 알면서도 허리를 부등켜 안고, 발목을 잡고 경비 팔뚝을 잡고 멱살을 잡고 서로서로 한덩어리로 뭉쳐 라인 빈공간으로 휩쓸려 넘어지며 지켜주려 애쓰던 조합원들의 손길이 옷깃을 잡지는 않았을까. 그래서 자꾸만 정문 아닌 공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돌려 나오며 어쩌면 가슴이 시리지 않았을까. 

최진일 사무국장이 숨어서라도 기를 쓰고 들어간 라인은 ‘대왕기업’이라는 하청업체다. 얼마전 대왕기업에서는 어용노조 위원장을 끌어내리고 새로운 집행부를 선출하는 선거가 있었다. 그 선거에서 유영애씨는 사측이 밀어주던 상대편 후보를 두배로 따돌리고 54표를 얻어 당선 되었다. 54표라는 숫자는 대왕기업에서 회사쪽 관리자편과 과거 어용노조 집행부를 했던 사람들을 제외하면 이주노동자까지를 포함하는 현장의 모든 노동자들이 유영애를 지지했다는 것을 뜻한다.

바로 다음날 유영애 위원장은 회사로부터 공문을 받았다.
1. 항상 베풀어주신 호의에 감사드리오며 귀 노동조합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2. 본인의 건강상의 이유로 대왕기업을 더 이상 운영하기 어려워 2008년 12월 31일부로 폐업코져 통보하오니 업무참조 바랍니다.

동희오토에 있는 9개의 한국노총 소속 어용 기업별 노조중에 처음으로 민주집행부가 당선되었다는 기쁨도 잠시, 유영애위원장은 간부를 인선하고 내년 사업을 계획하기도 전에 숨가쁜 폐업투쟁을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다.

당장 눈앞으로 닥친 상황은 가파른데 현장에서 조합원들이 서로를 확인하고 자신감을 얻는 사업을 하려하면 어김없이 동희오토 정규직관리자, 경비들에게 막혀 쉽지않았고 결국 최진일 사무국장은 직접 현장으로 들어가기로 마음먹었다.

시간은 정직하다. 살아보니 감옥에서 징역을 사는 침묵의 시간도, 찬바람부는 국회앞 타워크레인에 조합원을 올려보내고 답답한 가슴에 불길이 활활 타오르던 시간도, 공장정문 앞에서 출입이 막혀 13시간을 공장만 노려보며 서있던 시간도 그냥 그렇게 흘러만 가는것은 아니더라.

조합원들을 라인에서 만나고 싶어서 화장실에서 쪼그려 기다린 4시간은 40일도 되고 400일도 되고 4000일도 될 수있다. 그 멀미나는 시간동안 아무렴 4시간처럼 쉼없이 긴장할수는 없다. 그래서도 안된다. 다만, 그렇게 만난 조합원들이 몰려온 경비에 맞서 함께 싸워주던 손길을 잊지말기를. 그 손길을 알기 위해 화장실에 쪼그려 기다린 4시간의 기다림을 잊지 말기를.

절망의 공장은 동희오토만이 아니다. 전국의 노동자들에게 깊이를 가늠할수 없는 늪처럼 구조조정이 다가오고 있다. 어떻게 해야 우리가 이기는 싸움을 할지 누구하나 시원하게 말하지 못하고 있는 이때, 비록 지금은 위축되어 있다해도 조합원들을 믿고 숨죽여 기다린 4시간,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시간을 우리는 희망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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