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로스 7
이치구로 노보루 감독, 이지마 마리 외 출연 / 매니아 엔터테인먼트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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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느! 노래는 하트야!

 

 

린 민메이가 젠트라디와 인간 간의 전투를 노래로 종식시킨 지 50년 후.

그러나 지구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마크로스 7 기체 내 인간들로선 음악의 효과가 완전히 피부에 와닿지 않는 시대.

1화는 록밴드 파이어 봄버 팀의 밀레느의 첫 영입 기념 콘서트에서부터 시작된다. 

 

 설정으로 봐선 처음부터 남자보컬 바사라의 맘에 들어 여성보컬로 들여온 듯하다. 그러나 사실 이 녀석은 탈가정 소녀;;; 그것도 막시밀리언 함장과 미리아 시장의 딸이다. 아빠와 엄마가 각각 함대와 도시를 거느리고 있는 만큼 엄청난 집안에서 자라고 있는데도 가출을 감내할 만한 사정은 무엇인가... 사람들이 물어봐도 밀레느는 입을 꼭 다물고 있고 상황을 보아하면 엄마와 아빠가 언론 앞에서건 사적 공간에서건 만나기만 하면 충돌하는 게 원인인 듯;;; 어머니는 음악으로 인해 감화를 받은 젠트라디 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밀레느가 록커가 되는 건 반대한다. 그러나 일부러 엄마의 마음에 안 드는 짓만 하는 14살 철부지 딸의 억지에 반은 져준다. 그러나 조건을 다는데, 감린이라는 군인과 맞선을 보라는 것.

 밀레느도 감린을 만나는 게 싫지는 않다. 그러나 이 감린이 굉장히 고지식한 청년이라는 데서 문제가 생긴다. 일단 사사건건 우주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바사라를 딴따라라고 하면서 비웃는데 어찌 '내가 이 밴드에서 베이스 겸 보컬을 하는데'라고 떡하니 말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나름 정숙한 요조숙녀인 마냥 연기하지만 문제는 그 연기가 굉장히 어수룩하다는 데 있다. 결국 밴드 멤버들에게도 맞선 상대에게도 자신을 속이게 되는 밀레느. 처음엔 어머니의 양육에 좀 문제가 있는 거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여러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하게 했고, 자유를 미끼로 해서 딸을 속박하려 했으니까. 그러나 생각해보면 그녀도 나름 계획이 있던 게 아닌가 여겨진다. 첫째로 거짓말을 옵션으로 추가한 건 밀레느 자신이 선택했고, 둘째로 감린이 생각보다 너무 괜찮은 남자였다.

 

 

 

노래로 산을 움직이겠다는 남자 바사라. 

 

 이제 마크로스 시리즈, 아니 마크로스 7을 마지막으로 노래하는 파일럿은 나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도 그럴것이 이 녀석은 시티7에서 전투경보가 떨어지면 배틀로이드를 끌고 우주에 나타나지만 '절대 전투를 하지 않는다'. 처음에 나타나서 뭔가를 발사하긴 하지만 그건 총알이 아니라 스피커다. 일단 소리가 충분히 들리도록 환경을 조성한 뒤에 기타로 변신시킨 조종키를 잡고 이 녀석이 뭘 하는가 하면 '노래한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군인정신이 충만한 감린이 처음에 이 녀석을 보고 욕을 퍼부으면서 당장 부수기 전에 내려오라 협박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사람이 죽어가는 전쟁터에서 노래를 부르다니 제정신인가?

 뭐 이 녀석이 제정신인가는 둘째치고(...) 변명을 좀 하자면 바사라는 사실 목표가 있어서 노래를 부른다. 바로 모든 사람들이 내 노래를 듣도록 만들고 싶다는 목표. 이것도 이 녀석에 관해서 변호가 안 되는군 젠장. 아무튼 이 녀석의 노래 어딘가에 아니마 스피리치아라는 게 있어서 프로토데빌이라 불리는 적군들은 이 노래를 들으면 괴로워하며 도망을 간다. 게다가 이 녀석의 기체 조종 실력이 꽤 신박해서 적군이 총알을 퍼부어도 막 이리저리 로봇을 움직여서 피한다. (탄막게임?) 노래하면서 화가 나서 총도 쏜 적이 있다. 그러고보면 총을 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 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공연장에서 밀레느를 밀친 깡패들에게 주먹을 쓰고 나서 후회하는 걸 보면 그냥 평화주의자가 아닌가 싶다.

 

 

이렇게 특이한 스토리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이 애니메이션이 흥한 이유는

워낙에 좋은 록음악과 개성있는 캐릭터, 그리고 그들만이 지닌 각자의 고민이 해결되가는 스토리때문일 것이다.

 

 계속 우주전투에 등장하여 적을 노래로 격퇴하다보니(...) 이에 흥한 군인들이 속속들이 나서기 시작했다. 일단 민메이의 팬이자 군의관인 치바가 사운드부스터라거나 사운드의 에너지에 색깔을 입혀 눈으로 파악할 수 있는 신박한 기구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육안에 확실히 보여서 그런지, 그 광선을 보는 사람들이 환호성을 올리고 그것에 맞은 적군은 비명을 더 크게 지른다(...) 그러나 파이어 봄버가 민간인들로 구성되다 보니 확실히 통제될 수 있는 군용밴드를 만들고 싶었던 장교는 재밍버즈라는 밴드를 만든다. 그러나 워낙 바사라같은 천재가 나기 힘들다보니 군의 시도는 계속 난관에 부딪친다. 파이어 봄버는 유명해진만큼 그들을 향한 질투와 스캔들에 둘러싸인다.

 

 

바사라는 바사라대로의 고민이 있다. 프로토데빌들이 전혀 자신의 노래를 들으려하지 않을 뿐더러, 노래를 들으면 고통스러워하거나 도망간다는 점.

바사라가 가장 난감해한 적이 바로 시빌이다.

 

 그러나 마크로스 시리즈가 늘 그렇듯이 강력한 프로토데빌인 시빌도 그의 노래실력에 감탄한다. 여러번 지구로 쳐들어와서 스피리치아를 빼먹고 바사라를 말 그대로 반죽음에 처할 뻔하게 한 적도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자신이 여행한 은하도 구경시켜주는 등 소통을 시도한다. 결국 마지막엔 모두와 함께 바사라의 노래까지 부른다. (역시 노래는 노래방에서 모두와 같이 불러야 가사도 귀에 쏙쏙 들어오고 재밌다?!)

 바사라와 마찬가지로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지, 결국 마크로스 7을 떠나버린다. 하지만 참 아까운 캐릭터다. 패션감각과 함께(...) 비중을 좀 살렸어도 좋았을텐데. 아무래도 감독은 은근슬쩍 바사라와 시빌 간의 로맨스까지 노린 듯하다. 그녀가 힘을 잃고 마크로스 7 변두리 숲 속에 봉인되었을 때 바사라가 매번 기타를 들고가서 노래한 걸 보면, 바사라도 그녀에게 마음이 없었던 건 아닌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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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사 애장판 10
우루시바라 유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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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속 풍경을 마치 그림처럼 그려놓았다. 아 참 그림이지 이거.

 

 만화책에서도 그렇게 진행되는지는 모르겠는데, 1기와 달리 2기에서는 시작과 끝(스페셜)이 매우 절묘하게 맞아들어간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같은 이야기랄까. 둘 다 광주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되는데, 첫 시작은 우연히 광주와 비슷한 맛의 술을 만든 양조장 가문이야기이고 끝 마무리는 특별한 벌레를 잡아죽이기 위해 광주로 인공벌레를 만든 충사가문 이야기이다. 뒤의 이야기는 나중에 자세히 하겠다. 1기에서처럼 벌레를 중심으로 에피소드를 이어나가지만, 조금 다른 느낌이 든다. 1기에서 벌레에 대한 소개 그리고 벌레가 일으킨 초자연현상에 말려드는 개인 혹은 마을이야기를 펼쳐나갔다면, 2기에서는 벌레를 이용하려는 인간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충사 1기에서도 나왔듯이 벌레는 보통 인간세계에 큰 해는 끼치지 않는다는 설정이다.

그리고 1기에선 초자연현상을 무서워하는 인간의 경솔함으로 인해 사건이 터지거나

혹은 벌레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그 현상 자체를 이용하는 인간들이 등장했다.

그러나 이번엔 다르다.

 

 SF에선 사악한 과학자들이 자신의 영리를 위해 과학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듯이 충사의 세계에서도 간혹 충사 자신의 사정으로 인해 벌레를 이용하는 충사가 있나보다. 사실 사악한 주교가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종교의 힘을 사용한다거나, 아까 말한 과학자가 등장한다거나 하는 스토리는 흔해빠졌다. 그러나 그것이 충사의 세계로 옮겨질 땐 약간 특이한 형태로 변화된다. 바로 가문의 형태로 대대로 내려오는 것이다. 예를 들어 6화 '꽃에 취하다'에서는 한 정원사 가문이 나오는데, 벚나무에서 벌레를 먹은 아이를 발견하고 나서부턴 약사 가문으로 바뀌어버린다. 그것도 모잘라 그 가문 모든 남자들이 그 여자아이 하나에게 미쳐서, 그녀의 생명을 좀 더 오래 이어나가게 하기 위해 약을 찾아 먼 고장에서 온 소녀들의 머리를 잘라 여자아이에게 접붙이기까지 한다;;;

 사실 공포 장르에서 가문은 꽤 오래 전부터 써먹은 소재이다. 에드가 앨런 포의 <어셔 가의 몰락>은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알 듯하다. 그리고 러브크래프트는 폐쇄된 마을이라던가 가문의 비밀을 상당히 좋아하는 공포소설작가였다. 하지만 러브크래프트가 에드가 앨런 포보다 더 SF적이고, 사람들은 그 이유가 러브크래프트가 만든 크툴루 신화에 있다고 보통 생각한다. 하지만 그가 쓴 작품 <벽 속의 쥐>를 보고나서, 초자연현상을 대대로 이용하는 가문이 있다는 설정이 공포를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대대로 저주받은 가문이 하나둘씩 처절한 죽음을 당하는 광경이 사람들에게 연민어린 공포를 준다면, 반대로 그걸 비밀의 서로 만들어 봉인해두고 어떤 순간에 그걸 적을 향해 풀어놓는 가문이란... 흠;;; '저게 인간이냐?'라는 생각과 함께 혐오감을 유발한다.

 자연계에서 가장 약한 계층인 벌레가 일으키면 아름다운 초자연현상. 그것을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일으킬 경우 어떻게 되는지 충사에서는 담담히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 가문의 희생자인 쿠마도.

 

 충사에서 사실 1화 이상 연속으로 등장하는 캐릭터는 아주 드물다. 심지어 충사 1기 분위기를 장악해버린 누이도 한 번 얼굴을 비추고 이후 계속 목소리로만 등장하는 판에 이 녀석은 특별편으로, 그것도 2화정도 되는 분량으로 등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팬아트는 커녕 캡쳐로나마 검색창에 등장하지 못하는 슬픈 캐릭터이다(...) 이유는 궁극적으로 그가 미나이 가문의 충사이기 때문. 그는 본래 벌레를 볼 수 없는 몸이었지만, 가문에서 혼을 강제로 빼내 광주로 만든 벌레를 삼키게 만든 이후로 능력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말 그대로 '혼이 없는 상태'인지라 벌레에 씌인 사람처럼 말도 별로 없고 감정표현도 매우 적다. 게다가 그에게 사랑 비슷한 기운을 몰고 온 여자가 탄유라는 게 문제인데... 1기에 의해 생성된 끈끈한 깅코탄유 팬들에 의해 묻히게 될 듯. 하지만 난 이렇게 무뚝뚝한 캐릭터 상당히 맘에 드는데 엉엉 ㅠㅠ 혹시 충사의 쿠마도를 찾는 분이라면 발로 찍은 캡쳐가 여기 있습니다 쿨럭...

 새로운 캐릭터가 나와도 전혀 부담이 가지 않는 전개였다. 다음에 나올 충사 속장 후반도 기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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カラコレ DRAMAtical Murder BOX商品 1BOX=8個入り、全8種+特典1種 (おもちゃ&ホビ-)
ム-ビック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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밍크! 죽지 말고 살아.

1. 사실을 밝히자면 난 리뷰를 기분에 따라서 쓰는데,

지금은 상당히 심하게 우울한 기분에 처해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애니의 평가에 영향을 주진 않는다.

 

 하지만 리뷰의 분량에는 영향을 끼치리라고 본다. 먹고 살 현실에서의 일이 위기에 몰리다보니 애니를 봐도 집중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이 애니의 내용 중에서 그나마 재미있다고 보는 게 반전밖에 없기 때문에(아무리 BL물이었다지만 액션씬에 좀 신경을 써주던가, 최소한 작붕이라도 없었으면 좋았을 것을...) 스포일러하는 것도 상당히 난감하다. 그러므로 일단 리뷰는 짧게 쓰겠다.

 

 

2. 이 애니는 아오바라는 캐릭터를 중심으로 하여 스토리가 진행된다.

그러나 영웅(?)은 따로 있다.

아오바는 딱히 그 영웅을 찾을 생각을 하진 않지만, 우연히 그 영웅을 발견하게 된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매우 다채롭다. 아픔과 분노에 사로잡혀 자신의 주변과 자신마저 망가뜨린 코우자쿠, 반대로 다른 사람과 자신의 아픔도 느끼지 못하는 노이즈 등. 여기서 특이한 설정은 기계도 사람처럼 영혼이 있고, 사람과 함께 공존한다는 것이다. 이건 앞으로의 스포일러를 향해 나아가는 좋은 힌트가 된다. 아오바는 사람의 무의식을 자신의 말로 통제할 수 있고, 인간의 의식 속으로 들어가 그의 맨 얼굴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힘이 있는데, 이 때 인간하고처럼 기계하고도 대화를 나눈다.

 

 

3. 밍크는 인디언의 분위기가 강하다.

부족이 거의 몰살당하다시피하고 삶의 의욕마저 잃게 된 그는 토우에 재벌이 세운 섬을 파괴하고 자신도 죽을 결심을 한다.

그러나 사람과 기계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아오바를 보고 그는 다시 삶의 의욕을 찾는다.

 

 남성과 여성을 떠나서 이성을 되찾고 이 애니의 결말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아무튼 이 애니는 여러가지에서 부족하지만 메시지는 의외로 강력하다. 게다가 아까 말했다시피 배경은 디스토피아인데, 과학에 대해 또 무한대로 긍정적이다. 그렇다고 딱히 엘리트층이나 과학자같은 지식인들이 양심적이어야 한다는 주제도 아니다. 단지 이 애니를 보다보면 그런 생각은 든다. 모든 사람들이 '왜?'라는 질문을 던지고 소통을 하면서 상처를 지워나갈 수 있다면 시원스럽고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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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G 레드 데이터 걸 1 - 최초의 사자, Novel Engine
오기와라 노리코 지음, 이하윤 옮김, 키시다 메루 그림 / 영상출판미디어(주)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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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 이 애니메이션은 원작소설이 있다. 그것도 5권에서 짤려서 최근 나온 6권의 내용은 짤려나갔다고 한다. 그래서 아쉽게도 이즈미코가 미유키를 좋아하는 자신을 자각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클라이막스를 깔끔하게 내려놓았으니 제법 깔끔한 결말이라고 볼 수 있겠다. 직접 소설을 보진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원작에 꽤 충실한 편이라고 한다. 

 주제는 자신을 평범한 여자애들처럼 취급해 주길 바라는 이즈미코의 성장과 사랑 이야기이다. 그녀는 히메가미로서 엄청난 신력을 지니고 있으며, 그것 때문에 어머니도 제대로 만날 수 없고 신사에 갖혀 살다시피 한다. 그래서 신사에서 가장 가까운 학교까지 운전기사가 차로 바래다줘야 한다;;; 다행히 친구들은 제대로 사귀고 있는 모양이지만, 간혹 심기가 뒤틀려진 애들이 그녀를 괴롭히는가 보다. 게다가 자신의 능력에 대해선 아직 백지상태인지라, 와미야같은 지박령에게 매혹당하는 등 적당히 힘 있는 것들에게 이리저리 시달린다. 

 

 2. 이 녀석이 와미야. 본체는 지박령 까마귀였지만, 이즈미코의 운동(춤)에 종속당하여 그녀를 매혹시켜 신사에 붙잡아두려고 하며 자신도 인간의 모습으로 변한다. 그래도 이즈미코 옆에 남자가 따라다니는 걸 질투하지 않나, 그 이후로도 그녀를 졸졸 따라다니는 걸 보면 이즈미코를 몰래 짝사랑하는 것 같다. 미유키가 이즈미코에게 '와미야가 인간화한 얼굴이 네 취향 아니냐'라고 했을 때 이즈미코가 반박 못하는 장면이 있다. 그런 걸 봐선 일부러 모습을 인간화한 것도 은근 이즈미코에게 먹히길 바랬던 게 아닌지... 나중엔 미유키랑 친해져(자신은 미유키가 철저히 무능이라 불쌍해서 봐줬다고 주장하지만) 그에게 능력을 빌려주기도 한다.

 아무튼 이즈미코를 사당에서 벗어나 도쿄라는 넓은 세계로 눈을 돌리게 해 준 첫번째 계기가 와미야의 해방이다. 이즈미코하고 같이 얼굴을 나란히 놓고 보면 어쩐지 옛 남친 혹은 학창시절 첫 사랑같은 분위기가 흐르지 않는가? 그 묘한 집착에서 벗어남으로서 이즈미코는 해방의 전환기를 맞는다.

 

3. 그 계기가 된 게 미유키. 

 포즈는 멋있게 보이지만 사실 쥐뿔도 능력이 없다. 지나치게 현실적인 성격 때문에 어릴 적엔 초현실적인 능력을 가진 이즈미코를 많이 괴롭혔다. 이즈미코의 말에 의하면 자신의 소심한 성격은 미유키가 원인이라고 함. 그 정도면 심각하지 않나 싶을 정도다;;; 쿨하지만 냉정한 성격이라, 아마 이즈미코가 자신을 변화시키려 결심하고 그것을 행동에 옮기지 않았더라면 경호는 커녕 학교를 같이 다니는 것도 거부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딱 부러지는 성격이라고 할까. 마유라가 약혼자인 척 해줄 것을 부탁하지만 이즈미코를 좋아하기 때문에 안 된다고 거절해도 될 걸 '아무리 그 방법이 효과적이라 하더라도 거짓은 가까운 사람들을 상처입히니까 안 돼.'라고 말하는 모습을 볼 땐 솔직히 감동받음. 

 기본적으로 이즈미코에게 거리를 두고 1화에서 완전히 이미지를 망친 이유는 아버지 때문인 듯하다. 비상식적일 정도로 이즈미코와 미유키를 차별한다고 할까. 이즈미코를 딸 이상으로 감싸주고 미유키는 방치하거나 혹은 괴롭히는 모습을 보이는 등. 이즈미코 앞에서 대놓고 무능하다 까발리고 하찮은 놈 취급하기 때문에 이 셋이 만나면 이즈미코는 골치아프다는 듯한 표정을 짓지만, 소심한 성격이라 만류하질 못한다. 위기 상황에서도 미유키가 '내가 필요하다고 말해. 말하지 않으면 몰라.'라고 끈질기게 말한 이유는 그 셋의 관계를 확실히 정리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이미 그 때는 이즈미코가 소심한 성격을 벗어던지고 분노의 폭발을 막 표출한 이후였으니 그녀가 속내를 털어놓기도 쉬웠을 거라 계산한 게 아닐까. 원작의 얘기지만 이즈미코가 자신을 좋아하는 낌새를 눈치채자마자 고백을 하려 분위기를 잡질 않나 여러모로 무서운 놈이긴 하다;;; 작정만 했으면 타카야나기처럼 여자들 여럿 울리지 않았을까.

 

 4. 이 놈이 타카야나기인데 얼굴은 제로스처럼 생겼으면서 성격은 극도로 비뚤어진 야비한 성격의 인물이다. 겁도 완전 많음;;; 그런데 음양사에 천부적인 기질이 있는지 세계유산을 가리는 학원제에선 모든 학생들에게 주술을 거는 등 제법 선수를 잘 쳤다. 운없게도 그 자리에 히메가미가 있었을 뿐(...) 이 녀석도 히메가미를 장애물이라 인식했는지 강력한 매혹을 써서 학원제가 끝날 때까지 자기네 편으로 잡아두려고 했지만 그게 오히려 더 분노를 사게 되었다. 그래서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강제로 개로 변신하게 되는 수모를 당한다. 악역은 악역인데 좀 많이 모자라다고 할까. 최종보스라 보기엔 살짝 아쉬운 점이 있다. 아마 이 스토리 자체의 유일한 단점이 이 녀석일 것이다. 매혹을 쓰려면 주술을 쓰는 본인도 좀 더 매혹적인 캐릭터였어야 하지 않았나?

 아무튼 오랫만에 매우 풋풋한 러브스토리를 봐서 흡족하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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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여애반다라 문학과지성 시인선 421
이성복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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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지 중에서

2
때로 수컷 뚝지가 쫓아내도, 쫓아내도 떠나지 않는 암컷 뚝지를 기어코 밀어내는데, 그것이 왜 그렇게 안 떠나려고 버둥거렸는지는, 혼자서 풀이 죽어 떠나가다가 느닷없이 나타난 대왕문어의 밥이 된 다음에야 알 수 있다 갈가리 찢긴 암컷의 아랫도리엔 미처 다 쏟아내지 못한 알들이 무더기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바보야, 그러면 그렇다고 말이라도 할 거지, 바보야

3
또 어느 때는 수컷 뚝지가 눈 껌벅거리며 쉬임 없이 지느러미 놀려 가지런한 알들에게 산소를 불어넣어 줄 때, 제 짝을 못 구한 암컷 뚝지가 두리번거리며 찾아와 연애 한번 하자고, 한 번만 하자고 졸라대지만, 수컷은 관심이 없다 아예 쳐다도 보지 않는 수컷은 막무가내로 암컷을 밀어내지만, 그것이 왜 그토록 집요하게 치근덕거렸던가는 그 또한 대왕문어의 밥이 되어 뱃가죽 터지고 사지가 너덜거려야 알 수 있다 아무도, 아무도 애무해주지 않아 쏟아보지도 못한 알들이 무더기무더기 깊은 바다를 떠다니고 있었다

 

멍텅구리는 원래 뚝지를 뜻하는 말이다. 옛날에 자연에 관련된 글을 굉장히 많이 읽었는데 민물고기에 관한 글 중 가장 많이 나오는 게 뚝지였다. 누구 보기에 찔리라고 이 시를 인상깊은 구절 메인으로 올린다. 그런데 마침 평론가 분도 뚝지가 메인시 같다고 한다. 같은 생각을 한다는 점이 기뻐서 이 분 평론글은 끝까지 봤다.

 

이별 없는 세대 시리즈는 뭔가 고독을 즐긴다는 세대들을 일컫는 듯한데 맞나 모르겠다. 아무튼 시인 본인은 굉장히 꼰대란 생각이 드는데 또 이렇게 시로 솔로인 젊은이들의 느낌만 상상해서 적어주니 그럭저럭 읽을 만하다. 아 나이드신 분들은 비혼을 이렇게 생각하는구나하는 감으로 보면 좋을 듯하다.

그래도 다른 남성 시인들과는 다르게 여성들과 인간으로서 이야기를 나누려는 게 상당히 드러나지만, 그나마도 아내와 아내의 4자매들을 다방과 술집의 카운터 여성과 대비시키는 느낌이 난다. 그래도 뭐 동시를 지으면서 자신의 시집에선 다방 레지들과 놀아나는 남성 시인 누구누구와는 달리 상당한 진보를 보이지만 말이다. 이 시집은 팟캐스트에서 상당히 좋은 시집이라고 여러번 이름이 나 있다. 그러나 이런 글들이 나온다면... 페미니즘이 문학의 사조로 떠오르고 있는 만큼 좀 더 자신의 면모를 돌아보며 생각한 뒤 시를 쓰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이 시 이후엔 그랬던 자신이 부끄럽다고 시인은 기술한다.

나는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 책을 읽는다는 말을 들어왔다. 그래서 계속 그렇게 생각해왔었다. 나는 사회성이 좋지 않았고 그래서 계속 책을 읽으며 현실로 도피했다고. 그런데 지금은 잘 모르겠다. 몸이 남들보다 더 잘 아프긴 했지만 사회성이 남들보다 확연하게 떨어지지도 도망가지도 않았던 듯하다. 다만 남들이 오락으로 책을 읽기 시작할 때 나는 너무 진지하게 책을 읽은 것이다. 지금은 뭐랄까, 너무 오락에 빠진 나머지 신나서 사람들이 귀중품인 것 아닌 것 가리지 않고 마구 허공으로 던져대는 느낌이다. 차창의 문을 열고 쓰레기를 던지는 것도 문제지만 똑같이 차창의 문을 열고 강아지를 차도에 던지는 걸 보고 나는 뭔가 한참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것도 대부분 젊은이들이다. 나중에 자신들도 똑같이 그렇게 버림받을 수 있다는 걸 그들은 아직 모를 것이다.

 

또한 조각에서 1이란 시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 단순히 여혐이라고 주장하기엔 깊은 의미가 있었다. 마치 밭은 무처럼 억척스럽고 무식한 여성의 자식이 한 마사지걸을 죽였어도 세상 사람들은 그 소리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내용이다. 이는 마치 가네코 미스즈의 참새의 어머니를 보는 느낌이다. 이 시의 전에 있는 시도 엄마오리의 새끼를 까치가 잡아서 자신의 새끼에게 주는 내용이라서 설득력이 있을 듯하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섞이는 대목이라 볼 수 있는데, 나는 이게 페미니즘을 넘어 세상 사는 이야기에 심도를 더했다고 본다. 잘못 쓰게 되면 시인의 개인적인 주장이 실려 전반적인 내용을 심각하게 망치게 되는데, 그렇게 되지 않은 데서 시인의 연륜이 느껴진다. 어머니들이 보통 그런 것이라 본다. 내 가족 내 새끼를 위한다는 맹목적인 사랑이 결국 남의 새끼를 죽인다는 무서운 생각으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가네코 미스즈의 시도 훌륭하지만, 어머니 둘과 새끼 둘이라는 이슈에서 무관심한 사회로 뻗어나갔단 점에서 이 시는 더더욱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청도시편 2

길 따라 귀두처럼 솟은 망주석 사이로
초로의 유방처럼 꺼져가는 키위빛 무덤들
어디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았는지......
이박사 메들리는 여기서도 끝날 줄을 모른다
길 옆 붉은 칸나는 지나가는 덤프트럭과
레미콘 행렬에 일일이 인사하느라 바쁘고
망혼처럼 떠도는 복숭아 꽃잎, 꽃잎 사이로
우리 업소는 시집 안 간 암퇘지만 고수합니다,
펄럭이는 플래카드 따라 들어가면, 갑자기
너는 고수할 것이 없다 앙앙 깨물고 싶은
식욕은 어느 식육식당 육고기에도 없는 것이다 

 

 

이 청도시편이란 시도 마찬가지이다. 왜 하필 시집 안 간 암퇘지만 고수하는가. 시집 가도 임신 안 한 암퇘지는 안 된단 말인가. 처녀를 고집하는 이런 사회에 대해서 당장 분노하고 싶은 마음이 치솟지만, 키위빛 무덤이란 표현에 또 마음이 산뜻해지는 것이다. 어떻게 그런 표현을 쓸 수 있을까. 이상한 소리로 들릴까봐 조마조마한 마음을 지니지 않고 있는대로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 그가 두렵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시의 초행을 읽었을 때, 별안간 놀라고야 말았다.
'귀두'와 '유방'이라는 단어. 아무 생각없이 갑자기 툭 던져져버린 외설적인 느낌.
'이방인'을 내놓은 알베르 까뮈든, '기사단장 죽이기'를 써낸 무라카미 하루키든, 그런 세기의 대문호들도 외설적인 내용을 가미하긴 하지만, 어쨌든 그건 대놓고 하지는 않거나 설령 대놓고 해도 앞의 내용을 봤을 때는 의미있는 것이니...보통 이렇게 첫 문장부터 대뜸 나오진 않는다. 사람들에게 "아니 비유를 해도 왜 저런식으로??"라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니.
또한 도살이란 것은 생명을 뺏는 행위이지만, 보통의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행위라 볼 수도 있겠다. 고기먹으면서 으허허헝 돼지야 미안해 그러면서 이미 젓가락은 입속에 있게 되니..
그렇게, 처녀만이 고집되어서 그저 정육점에 '상품화'되어 죽임 당하는' 개돼지'들. 그런데 그걸 아는 어느 누군가가 씹어서 자신의 목에 넘길 수 있을까. 복숭아 꽃잎은 그걸 왜 알면서도 그저 망혼처럼 지나가기만 할까. 무덤들은 왜 꺼져가기만 하는지. 칸나는, 어찌보면 자신을 괴롭히는 덤프트럭과 레미콘에 애써 웃으면서 인사한다. 매연이 몸에 안 좋다는걸 몰라서 그러진 않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첫 문장에서부터 치고 들어오는, 그 외설적인 '시어'들을 화자가 왜 처음부터 넣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정선

내 혼은 사북에서 졸고
몸은 황지에서 놀고 있으니
동면 서면 흩어진 들까마귀들아
숨겨둔 외발 가마에 내 혼 태워 오너라

내 혼은 사북에서 잠자고
몸은 황지에서 물장구치고 있으니
아우라지 강물의 피리 새끼들아
깻묵같이 흩어진 내 몸 건져 오너라


너무 교과서에서 나올법한 시지만 그런 만큼 자꾸 눈에 밟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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