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트 : 일반판 (2disc)
부지영 감독, 염정아 외 출연 / 에이스미디어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가볍게 좀 위험한 드립을 치자면 이 영화의 명장면 카트라이더(...)는 마지막에 나온다.

 사실 몇몇 마트들이 이것 때문에 저 은색 카트를 내구성 좀 더 약한 플라스틱 카트로 만들었다 카더라(...)

 

 영화의 반응은 상당히 싱거운 편이다. 난 처음에 인터스텔라라는 영화가 흥행해서 그런가 싶었는데, 영화를 보니 확 피부에 와닿았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절대 상업영화가 될 수 없었음을. 그 이유를 한 문장으로 설명하자면, 이 영화는 우리나라가 원하는 현실도피성 이야기를 절대 그려내지 않기 때문이다. 거의 애니메이션 계의 우로부치 겐급 각본이라고 할 수 있겠다. 회사는 절대 표면으로 나타나지 않고 비웃음과 여성노동자들이 상처받을 만한 말만 골라 하면서 노동조합 사람들을 감방으로 정규직으로 차례차례 보내버리는데, 노동자들은 너무 순박해빠져서 저항하지도 못하고 때리면 맞고 끌어가면 끌려가기만 한다. 영화 막판에 카트 끌고 경찰들과 물대포의 포위를 뚫는 장면도 어딘가 석연치 않다. 설령 그들이 영화 속에서 마트를 뚫고 달려나간들, 마트 기물을 몇 개 부순들, 실상 그들의 가난한 일생에는 별반 변하는 게 없음을 영화 맨 마지막의 자막이 명확히 암시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책에서 읽은 기억이 있다. 어떤 미국의 대학교에서 한 '멸종' 위기에 있는 인디언이 강당에 섰다. 그는 백인이 아메리카 땅을 '발견'하기 전에 자신과 자신의 조상이 어떻게 살았었는지, 백인들이 어떻게 그들을 멸종 위기에까지 몰아넣었는지, 자신의 부족 문화가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매우 차분하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이에 강의실에 있던 학생들은 연민을 느껴 그와 그의 부족들을 구해낼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 물어보았다. 그는 아무 방법이 없다고 했다. 별별 해결책을 다 제안해도 인디언이 거절하자 그 학생들은 되려 분노하기 시작하고, 이번엔 그 인디언이 왜 그런 '불편한' 이야기를 자신들에게 했는지 물어보았다. 그는 끝까지 담담하게 말했다고 한다. 자신은 동정을 구걸하거나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선 게 아니라고. 그저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홈에버 노동조합 사람들은 결국 자신들의 복직을 포기하고, 노조에 가입하지 않았는데 강제해고된 사람들을 모두 복직시키는데 성공한다. 그들도 처음에 해고되었을 땐 복직하여 인간대접을 받으며 일하고 싶다는 의욕과 희망을 가지고 노조에 가입했을 것이다. 그러나 역경을 겪으며 그들의 마음은 멸종 위기에 있는 인디언과도 같은 마음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대게 서브컬쳐들은 지지 않는 마음과 의욕, 사랑만 있으면 모두 이루어질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진보된' 기업들은 언뜻 보면 따뜻해보이는 바람으로 그 촉촉한 감정을 싸그리 말라붙게 만든다. 그 과정은 영화에서 인물들의 행동과 표정에 세심하게 표현되어 있으니 참고하길 바란다. 이 영화에서는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저 지금까지 있어왔던 사실들을 쭉 나열한다.

 

 

 최근 우리나라 사회의 불합리한 시스템과 맞서 싸우는 영화가 많이 상영되고 있다. 근데 각색된 영화던 다큐멘터리이던 꼭 등장하는 게 무엇인지 아는가? 바로 투쟁하는 주인공의 '가족들'이다. 그들은 카메라 앞에서 서로 얼싸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서로서로를 위로한다. 하지만 사람의 일생이 꼭 그렇게 잘되리라는 법은 없다. 아니, 오히려 슬슬 가족이 덫이 되는 장면이 카트의 명장면이다. 제일 먼저 홈에버의 노조 개념을 주장하던 문정희 역의 '싱글맘'은 아이를 노조 천막으로 데리고 나오다가 그 아이마저 잃어버릴 뻔하자 변심한다. 길게 말은 하지 않지만, 다른 회사에서도 정규직 노조를 만들려던 경험이 있었던데다 이혼까지 겹쳐 힘든 여정을 겪은 듯하다. 염정아가 맡은 '두 아이의 엄마'는 그나마 카트에서 정상적인 가족을 구축하고 있다. 그러나 그녀의 아버지는 건축일로 집에 멀리 떨어진 상황이라 그녀가 해고당하고 노조에 가입한 일을 일체 모르고 있다. 고등학생 아이가 걱정하고 있는 엄마를 안심시키려고 '내가 아버지에게 이야기해보겠다'라는 말을 꺼내지만, 그 아버지가 자신의 아내를 이해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일체 나오지 않는다. 

 

 여담이지만, 이 고등학생 아이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어머니가 노조를 하는 이유를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고 사회의 쓴맛에 대해서 알게 되는 장면이 또 하나의 재미다. 편의점 점주가 약속한 알바비를 쌩까먹기 위해 푼돈을 주고 일부러 큰소리를 치면서 남자아이를 내쫓는데, 연기가 압권이었다(...). 평소에 버럭하는 성격이 있는 그도 점주가 쌍욕을 하면서 눈을 뒤집고 덤벼들자 공포심을 느꼈는지 한 마디도 못하고 물러나온다. 그래서 같이 알바하던 여친이 편의점에 돌멩이 던져서 깨뜨리는데 점주가 미친듯이 달려들어서 남자주인공을 유리파편에 내팽개치고 막 치는 거임. 레알 사회의 쓴맛이 거의 내여귀 동인지 200일 전쟁 수준이었음;;; 그 때부터 남자주인공이 여자친구를 보호하기 위해 경찰서 간 처음부터 끝까지 지가 했다고 거짓말 했는데 레알 꼬맹이로만 보이던 것이 남자로 보이면서 개씁쓸해짐... ㅠㅠ 거짓말하면서 어른이 되는 거냐...

 

 혹시 아르바이트하는 곳에서 임금 제대로 못 받고 내쫓긴 분이 있다면 청년유니온에 연락해보시길. 거기서 노무사도 연결해주고 왠만한 일은 무료로 처리해준다.

 

 

 

이전에 일베를 들어갔을 땐 자신들을 '저임금으로 부려먹을 수 있는 저렴한 인력'이라 자랑했던 인간들이 일부 있었는데, 지금은 그들마저 일베에서 축소되고 말았다. 일베하는 사람들 중 부자들이 자신의 비싼 스포츠카나 시계를 사진으로 찍어서 인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수치심 느낄 필요가 없다. 이 영화를 느끼면서 거리감을 느낄 이유도 없다. 아무리 이런 영화들이 씁쓸하더라도 사람들은 결국 어쩔 수 없이 봐야 할 것이다. 앞으로 이런 일이 또 다시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고, 물건 값은 오르고 있고, 최저임금은 거의 제자리 수준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가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다보니 꿈을 꾸는 일도 줄어들 것이고, 결국 영화를 포함한 서브컬쳐는 싫던 좋던 점점 실용주의 계열로 갈 것이라 본다. 기술로 꿈을 만들 수는 있겠지만, 그 꿈을 소비할 자원을 얻는 덴 한계가 있다. 수치심 따위 좀 벗어던지자. 현실을 먼저 인식해야 판타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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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마와리와 나의 7일
히라마츠 에미코 감독, 나카타니 미키 외 출연 / 하은미디어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1. 이 영화는 히마와리라는 유기견의 이야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새끼 때부터 몸이 병약했던 히마와리는 자신의 형제들에게 밀쳐져서 젖도 못 먹고 꼼짝없이 죽을 위기에 처해서, 주인 할아버지 할머니가 유달리 손을 많이 썼다. 그런 탓인지 형제들은 차례대로 분양되지만 히마와리는 할아버지 할머니 옆에 남는다. 그나마 히마와리의 어머니도 덩치 큰 사냥개에게 물려죽어, 주인들은 정말 열심히 그녀를 키운다. 하지만 결국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할아버지는 요양소에 맡겨지는데, 히마와리는 할아버지를 찾으러 집에서 도망치지만 그 넓은 일본 열도에서 찾을 수 있을리가 없다. 결국 이전에 살던 집도 헐리고 히마와리는 떠돌이 들개 신세로 전락한다. 수컷 떠돌이 개를 만나 강아지도 세 마리나 낳게 되지만, 할아버지 할머니가 없는 이 세상은 히마와리에게 너무나 각박하고 차갑다. 결국 마지막 희망인 농가로 내려오지만 거기에서도 '논밭을 못 쓰게 만드는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다. 결국 주민들은 보건소에 들개를 잡아달라고 신고하기에 이른다.

 

 

2. 보건소 직원인 주인공도 이 각박하고 차가운 세상에 적응이 안 되는 건 마찬가지이다. 일하던 동물원이 문을 닫은지 8년이 되었고, 아내가 교통사고로 사망한지는 5년이 지났다. 하지만 아직도 그는 하고 싶은 일도, 같이 살고 싶은 사람도 잃어버렸다는 데 완전히 적응이 되진 못한다. '보건소에 온지 일주일이 지난 개들을 죽여야 하는' 자신의 일에 분노를 느끼지만 그나마 그게 동물을 가까이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직업이라는 데 한없이 무기력해진다. 유기견을 맡아 기를 수 있는 집을 최대한 열심히 찾아보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개의 수명을 일주일 더 늘렸다가 들키면 보건소 소장에게 꾸짖음을 당하니, 스트레스는 쌓일대로 쌓인다.

 

 

3. 몇몇 배우들이 대사를 국어책 읽듯이 읊조려서 그렇지 주인공의 연기는 상당히 좋았다. 동물과 관련된 직종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이 공감할 수 있는 질문을 정확히 던지고 있었다. 또한 연기 속에서 그 주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기색이 드러났다. 어찌보면 이 영화는 개를 만난 인간이 성장하는 내용을 담으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히마와리는 동물을 사랑하는 주인공에게도 상당히 어려운 주제였다. 히마와리는 새끼를 보호하는 어미로서 철저히 자신을 강하게 어필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게다가 어린 시절 인간에게서 겪었던 박해때문에 인간에게 마음을 열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추운 철창 우리에 새끼들과 같이 갖혀있어야 했다. 결국 한파 속에서 새끼 한 마리를 잃자 남은 새끼들이라도 지켜야겠다는 그녀의 절박함은 더해졌다.

 

 다행히 히마와리가 새끼들을 워낙에 잘 키운 탓에 그들은 일주일 내에 상당히 기운차고 통통하게 자란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은 새끼들만 데려가려 하고 히마와리는 데려가려 하지 않는다. 보건소 소장이 난폭한 들개를 죽이지 않은 것도 모자라 처분 기간을 늦춘 것에 굉장히 화를 냈고, 히마와리가 사람을 물지 않는다는 확실한 보증이 있어야 보건소에서 내보낼 수 있다고 엄포를 놓았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너무나 속상해서 국회의원이 있는 앞에서 소장에게 화를 내지만, 히마와리가 사람을 물지 않는다고는 말하지 못한다. 자신과 다른 인간들의 어리숙함 때문에 히마와리가 화를 내고 있다는 걸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일은 없다. 그는 히마와리가 처분되기 전 며칠간 히마와리와 함께 자고 함께 밥을 먹으며 그녀에게 계속 말을 건다.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빈다. 과연 히마와리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온정을 기억하고 그와 다른 인간들을 용서할 수 있을까?

 

 

4. 국회의원은 히마와리가 죽기 직전에 그를 찾아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서 가장 돋보이는 건 히마와리뿐이다. 아까도 말했지만 인간배우들은 죄다 국어책 읽듯이 연기했고, 히마와리는 마취하지 않았는데도 비틀비틀거리며 혼신의 힘을 다해 약에 취한 연기를 했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인간보다 개를 더 돋보이게 하는 데 성공했다.

 

 내 말투에서 봐도 알 수 있듯이, 사실 이 영화는 그렇게 해서 히마와리를 주인공으로 만들려고 했던 게 아니다. 처음에 히마와리의 탄생과 성장과정을 다 보여줘서, 인간들이 말하는 떠돌이 들개가 사실 태어날 때부터 들개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이다. 이는 잭 런던의 '야성의 부름'에 힘입어 이미 입증된 바 있다. 그러나 야성의 부름에서 주인공 개 벅은 자신 속에 숨어 있는 야성을 일깨워 늑대의 무리 속에 섞여들어가는 데 성공한다. 히마와리도 결국 생존에 성공하지만, 이 녀석은 짖지도 않고 물지도 않는 '온순한 개'가 되어 인간에게 복종하는 길을 택한다. 어느 쪽이 더 행복한지에 대해서 우리 인간은 함부로 재단할 수 없다. 각각 얻는 게 있고 잃는 게 있기 때문이다. 벅이 안락하게 먹고 살 수 있는 길을 버리고 사냥꾼의 총 앞에 마주서는 위험을 무릅쓰게 되었다면, 히마와리는 새끼들의 목숨을 보장받고 새끼들과 떨어지지 않기 위해 주인공을 새 주인으로 '인정해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들개들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 한다. 일단 개들의 대다수는 사냥견이 아닌 이상에야 자연의 생태계에서 가장 취약할 수밖에 없는 종족들이다. 그 개들이 멀쩡히 살아가려면, 인간과의 동거가 절실하게 요구된다. 인간에게 사랑을 받으며 살아야 한다. 오랜 세월동안 사람들이 인공적으로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런고로 여러가지 사정으로 길을 잃었거나 버려진 개들은 인생의 낙오자가 된다. 그들은 보호소의 차가운 창살 아래서 떨면서 기나긴 일주일을 보낸다.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카메라는 최대한 몸을 낮추어 히마와리의 얼굴을 정면에서 담는다. 변화하는 히마와리의 표정을 실시간으로 담기 위해서다. 히마와리와 나의 7일이 히트를 친 이유는 단지 카메라의 낮은 시선 그 하나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는 일본영화답게 참 쓸데없는 대사가 너무 많이 나온다. 그러나 히마와리는 그보다 더 많은 말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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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씬 시티: 극장판 + 확장판 (2disc)
쿠엔틴 타란티노 외 감독, 브루스 윌리스 외 출연 / 인포(INFO)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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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만화 씬 시티는 폭력과 섹스를 잘 조화시켜 느와르의 극한을 달림으로서 딱히 인간의 내장이라던가 기타 고어 장치를 시시콜콜 늘어놓지 않고서도 말초적인 흥분을 제공할 수 있음을 입증해보였다. 그리고 영화 씬 시티가 원작을 200% 살린 영화로서 단연 돋보이는 이유는 색감이 매우 훌륭하기 때문이다. 난 씬 시티 원작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씬 시티가 만화같다고 인식했다. 흑백 대비가 심각할 정도인 이 만화를 감독이 어떻게 해결을 했는지 아는가? 아예 흑백 영화로 만든 것이다! 그러면서도 피의 빨간색과 금발머리라던가 강렬한 인상을 주는 색을 중간에 등장시키는 과감함을 보였다. 아예 인물을 실루엣으로 만들어버리고 그림처럼 표현한 장면도 있다. 고어와 스릴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상당히 '아름다운'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은 씬 시티 1탄을 예술영화 취급한다. 난 그걸 너무나 안타까워하는 씬시티 팬 중 한 명이다. 일단 사람들이 가장 불편해했던 게 엔딩크레딧이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그것만 없으면 스토리가 강물처럼 줄줄 흘러가는 지라 스토리가 금방 모여 옴니버스 구성을 이룬다. 그러나 1탄이 상영되었던 2005년은 블루레이라던가 감독판이 대중들에게 생소하게 들렸던 때인지라, 그렇게 이 영화는 난해한 영화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2탄은 그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가한 듯하다. 일단 팜므파탈로 등장하는 에바 그린 포스터가 그렇다. 왠만하면 선정성은 눈감아주는 미국에서조차 가슴골이 너무 적나라하게 보인다고 포스터가 금지당했다(...)

 

 

또한 만화에서의 이미지를 과감히 버리고 철저히 팜므파탈 스타일을 강조했다. 사실 만화에서 보이는 에바는 단발머리에, 두꺼운 화장만 아니면 항시 침착한 얼굴이라 부잣집 마나님같이 보이는 인상인데 말이다. 아무튼 영화의 에바 그린도 이쁘므로 나쁘지 않다. (응?)

 
 아무튼 씬 시티 인물들 중에서도 이 여자가 워낙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다보니 (심지어 연기까지 잘함.) 2탄의 중심은 그녀의 이야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녀는 수많은 남자들을 수렁에 빠뜨려 명성을 얻어가던 중 부잣집 남자를 틀어쥐었지만, 갑자기 시장님과 경찰들이 바 뒷구석에서 포커치기 바쁘고 폭력이 난무하는 씬 시티에서 '남자 없이' 살아가기를 원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옛 애인 중 하나였던 드와이트와 그 친구를 이용하여 부잣집 남자마저 살해하고, 매력적인 과부로 이미지를 바꾼다. 그러나 드와이트와 그 친구를 제거하는 데 실패하여 자신을 보호해 줄 사람으로 또다시 어느 풋내기 남형사를 지목한다. 남자로 남자를 막으려는 그녀의 작전은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2. 자칭 로맨티스트인 나쁜 남자(...) 드와이트와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인상인 마브의 활약이 너무나 눈부신 나머지 가려질 뻔한 캐릭터가 있다. 바로 마법같은 손놀림으로 사람을 온통 홀리며, 겁대가리도 없는 겜블러 조니이다. 그 유명한 조셉 고든 레빗을 이 작품으로 인해 보게 되다니 영광이다. 다친 연기를 상당히 잘 해서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이 철렁했다. 씬 시티 시장에게 겜블러로서 한 번 우승하고 나서 왼손이 완전히 꺾여버리는데, 왼손을 적당히 부들부들 떨면서 절대로 사용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신체 건장한 남자 배우가 부상당한 모습을 오랫동안 보여줘야 하는 건 쉽지 않은데, 특히 할리우드 배우같은 경우는 더하다. 어딘가에선 반드시 멀쩡한 모습을 보이게 된다. (이전에 토르 역할을 맡았던 배우가 예수 역할을 했던 영화에서도 그랬고.) 그러나 이 배우는 정말 길 잃은 새끼새마냥 보여 보는 사람에게 연민을 자아내게 한다. 씬 시티 시장이 인정하지 않는 아들에다가, 어머니가 마음 여린 창녀라는 캐릭터 설정도 그렇다. 결국 시장에 의해 제거당하지만 포커로 시장에게 항거하려는 그의 아이디어는 상당히 기발했다. 사실 씬 시티에서 더 등장하지 않는다는 게 상당히 아쉬울 정도다. 널 잊지 않으마 ㅠㅠ

 3. 한가지 맘에 안 드는 건 씬시티 1탄에서 죽은 하티건이 왜 유령으로 다시 등장해서 낸시 곁에서 맴도냐는 거다;;; 시장이 거울에서 하티건을 보고 멍 때리는 장면에서는 무슨 공포영화 보는 줄? 씬 시티에 한 번 들어간 사람은 귀신이 되서도 못 벗어난다는 거냐? 어차피 스토리 상의 내용이 맘에 안 드는 것 뿐이지 영화는 상관없으므로 점수에 반영하진 않았다. 아무래도 드와이트가 우유부단한데다 천하의 바람둥이라서 이 녀석이 중심인물이 되면 스토리가 개판이 되기 때문인가. 아무튼 하티건은 유령이라 낸시가 알콜중독에 걸려도, 방황을 해도 전혀 손을 쓸 수 없는 입장이 되었다. 게다가 복수심에 불탄 낸시는 사람까지 죽이고 말았다. 앞으로 스토리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영화로 끝까지 지켜보고 싶지만, 씬 시티가 9년걸려 2탄을 낸지라 그 다음 시리즈를 영화로 방영하려면 또 몇 년이 걸릴지 알 수 없다;;; 게다가 2탄이 흥해야 그 다음 영화들도 계속 낼 수 있을텐데 이런 흥행이라면 금방 적자가 될 판이다. (이걸 보러 영화관에 갔더니 관객이 나 혼자밖에 없더라.)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니 아무래도 원작 만화책을 사야만 할 것 같다. 마침 인터파크에서 1~7권 묶음으로 30% 세일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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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 라이즈 비니스 - 할인행사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 해리슨 포드 외 출연 / 20세기폭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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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영화는 모든 것을 다 보여주지는 않는다. 처음에는 반전이 설정되어서 그랬으려니 생각했지만 여자주인공이 과거에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는 끝까지 나오지 않는다. 그냥 연회에서 술을 많이 마셨다던가, 크리스탈 잔을 깨뜨렸다던가, 그대로 시속 60마일로 차를 몰다 들이받았다던가 하는 것들이 대화 속에서 암시될 뿐이다. 난 이 영화가 끝까지 이 여주인공의 시점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여주인공의 흑역사는 공개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어쨌던 이 여자는 신경이 약간 불안정하다는 걸 관객들은 직시해야 한다. 1인칭 시점은 소설이던 영화던 언제나 눈속임과 거짓말이 존재한다. 심지어 욕실 바닥에 놓여진 수건에까지도 의심의 시선을 던져야 한다.

 
 이 이야기를 하려면 일단 스포일러부터 질러야한다. 그러므로 이 영화를 볼 사람은 이후의 내용을 읽지 않으면 된다.

 

 2. 평화로워 보이는 가정의 밑바닥에는 무엇이 묻혀 있는가. 교수인 남편의 정부다. 그녀는 하룻밤의 정사로 인해 자신의 자리를 잃지 않으려는 교수에 의해 살해당해 호수 바닥에 묻혀 있었다. 그녀가 연약한 여대생이었다는 설정은 단지 우연히 짜맞춰진 게 아닐 것이다. 이미 자본주의는 그런 식으로 사람을 착취한다. 사람의 행복을 좌우하는 조건이 자원이고, 그 자원이 제한되어 있는 이상 우리는 누군가를 깔아뭉갠 뒤 그 위에 집을 지어 살아야 그 기득권 내에 들어갈 수가 있다. 교수의 아내로서 거의 매일 열리는 연회 속에서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야 할지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 여자주인공은 처음엔 유령의 정체에 대해 헛다리를 짚는다. 그러나 똑똑한 남자보다 훨씬 더 위험한 게 바로 오지랖 넓은 여자다. 그녀는 결국 이성의 세계에서는, 자신의 편견으로선 극복할 수 없는 것에 도전하기 위해 무의식의 세계로 빠져든다. 다행히 그녀의 옆엔 그녀와 같이 오지랖이 넓은, 하지만 똑똑한 친구가 있었다. 그녀는 유령에게 대화를 해보라 조언한다.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어보라는 것이다. 여자주인공은 이에 용기를 내서 남편 정부의 어머니가 살고 있는 집에까지 갔다오기도 한다.

 

3. 그러나 결국 그들은 교류할 수 없는 존재였다. 유령퇴치에만 골몰하기 시작하는 남편을 희생양으로 바치고 사건이 종결되었기에 망정이다. 근본적으로 철이 없는 이 교수의 아내는 남편이 베일을 벗기 직전까지도 유령의 메시지를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이 유령이 남편과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공포감과 남편이 자신 몰래 바람을 폈다는 사실에 분노하여 표류하고 있을 뿐이었다. 자물쇠가 고장난 문을 포함하여 영화의 모든 장치들이 그녀에게 도망치라 설득하지만 그녀는 마치 날개가 부러진 새처럼 집에 머물 뿐이다. 처음부터 교수 부인이 아니라 교수만을 노리고 있던 유령이 차라리 그녀보다 더 현명하다 할 수 있겠다. 창문과 문에 대한 묘사도 그렇고, 물과 무의식을 연결시킨 것도 그렇고, 감독은 이 영화가 페미니즘 영화의 틀 안에 들기를 바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예술영화나 인디영화가 점점 발달하여 관객들의 입맛이 고급으로 진화함으로 인해 이 영화는 더욱더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4. 그러나 나는 한 번쯤 볼 만한 영화라 추천해주고 싶다. 28주후처럼 무시무시한 속도로 뛰어다니고, 급기야는 스티븐 킹의 셀처럼 전파까지 사용하는 좀비들이 나타나고 있는 시대이다. 단지 나타남으로서 사람들에게 불쾌감과 혼란감을 주는 유령은 드물다. 괜히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는 영화가 아니다. 한 번 감상함으로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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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헤이즐 : 극장판 & 확장판
조쉬 분 감독, 쉐일린 우들리 외 출연 / 20세기폭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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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모든 로맨스들이 그렇듯이 여자들이 꿈꾸는 상황임에는 틀림없다.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시니컬하다는 소리를 듣고, 심지어 우울증이라는 진단까지 받은 10대 시절에 매우 보수적인 부모님에게 잔소리만 듣고 거의 닭장에 갇혀 살다시피 하지만 왠지 자신을 이해해주고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는 남자가 나를 지긋이 바라보고 있다. 같이 영화보자고 꼬셔서 집에 가보니 (영화보자면서 왜 집에 초대하는 거냐.) 운동선수여서 집에 트로피가 절절 넘쳐흐름. 게다가 지하에 아들만의 아지트를 꾸리고 대형 TV와 게임을 잔뜩 수집해 넣어줄 정도의 돈을 갖고계신 남친 부모님. 초 럭키★
 다만 둘 다 암 환자이며, 남자주인공은 다리를 잃었고, 특히 여자주인공이 거의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만 빼면 말이다.

 

하루하루를 살아가기가 무척 힘든 그들은 각각 소망이 있었다. 우연히도 둘 다 '자신이 죽은 후 세상이 어떻게 되는지 알고싶다'와 근접했다. 여자주인공이 특별히 좋아했던 소설인 '거대한 고통'을 읽고 그들은 각자 그 소망을 이야기한다. 헤이즐은 자신이 죽은 후 남은 사람들이 별 문제없이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어찌보면 매우 10대 같은 소망이었다. 보통 그 나이때쯤이면 세상이 다 자기 중심이고, 자신이 없어지면 전부 무너지는 줄 아니까 말이다. 그녀는 그 소망이자 걱정을 마음에 품었기에 담담히 세상을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거스 쪽은, 잘 몰라도 뭔가 세상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여자친구가 매우 좋아하는 '거대한 고통'을 읽고 그녀와 암스테르담으로 향한다. 죽기 전 소원을 한가지 비는 회사?에 기꺼이 소원장을 던진 것이다. 흠모하던 작가를 만나게 되서 너무나 좋아하지만 반면 미묘하게 죄책감을 느끼는 헤이즐에게 '그 정돈 아무것도 아냐'라고 허세를 부리는 거스가 꽤 천진난만하고 귀여웠다.

 

 

 

그러나 그는 죽어가면서 자신이 허세를 부렸다는 것을 인정한다. 죽어가는 10대 암 환자들이 죽기 전 좋아하는 작가를 찾아가서 소설의 결말을 물어본다. 대단한 일이 아닌가! 그렇지만 소설가는 0과 1 사이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간격이 있다는 수수께끼같은 말과 함께 딱 잘라 거절한다. 소설가의 말처럼 1권만 쓰려다 꼼짝없이 속편만 9권을 쓰게 된 몽고메리처럼 되고 싶지 않다는 뜻도 물론 있을 것이다. 결국 그들은 주인공의 죽음보다 남겨진 자들의 '거대한 고통'에 집착하는 작가에게 지쳐 작가의 집을 뛰쳐나온다. 헤이즐과 거스는 그 작가를 만난 일보다도 작가의 비서와 함께 간 안네 프랑크의 은신처가 더 대단했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은 조금 버겁다 생각해도 쉽게쉽게 오르는 길이, 폐에 물이 반 정도 차 있는 헤이즐에게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간 골고타 언덕이나 아무 등산장비 없이 음식만 잔뜩 들어있는 베낭을 부여잡고 걷는 에베레스트 등정길과 같은 것이라 생각되었다. 죽음의 문턱에 있는 거스는 그녀를 누구보다 많이 이해하고 챙겨주지만, 또한 그녀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서 수만가지 생각을 하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는 그녀가 고생하는 덕택에 자신이 성장하고 있음을 인정하면서, 자신이 그녀는 커녕 자신 하나조차 챙길 수 없음을 한탄한다. 그리고 고통스럽게 죽는다.


 그리고 남자친구의 장례식에 그 몹쓸 술주정뱅이 작가가 참석한다. 세상에. 난 짜증나서 눈물이 터졌다. 그녀도 그랬나보다. 차 안에서 끈질기게 그녀를 찾아다니는 작가에게 모진 말을 하면서 쫓아낸다. 작가는 그녀에게 한 종이를 건네주고 돌아선다. 헤이즐은 그 글을 읽고 한 번 더 울음을 터뜨리고는, 편한 표정을 짓는다. 그제서야 그녀는, 인생의 진리를 발견했던 것일까. 그녀는 별을 보며 문득 오쇼 라즈니쉬의 철학을 직접 겪은 것일까.

 

 

사자 한 마리가 쫓아와서 도망갔더니 절벽이 있다. 그 절벽 밑에 사자 두 마리가 으르렁거린다. 그대로 땅 위에 남자니 사자 한 마리가 맘에 걸려서 절벽을 반쯤 기어내려가 나무를 손에 쥐었는데 새가 자꾸만 손을 쪼고 있고 점점 힘이 빠져간다. 그러다 문득 나무에 벌집이 달려있음을 발견하고 그는 거기 맺혀있는 꿀을 맛본다. 이야기는 거기서 끝이다. 잘은 몰라도 8살 딸을 잃고 장수하며 일생동안 방황하는 늙은 소설가의 긴 주절부리보다, 꽃다운 나이에 총각딱지를 막 떼고 한 사람을 '영원히' 사랑하면서 죽을 수 있는 소년의 짧은 글이 아마 훨씬 더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사람의 일생은 여행이고 길건 짧건 그건 다 부질없다. 꿀이 핵심포인트다. 그러니 솔로들이여 연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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