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마와리와 나의 7일
히라마츠 에미코 감독, 나카타니 미키 외 출연 / 하은미디어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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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 영화는 히마와리라는 유기견의 이야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새끼 때부터 몸이 병약했던 히마와리는 자신의 형제들에게 밀쳐져서 젖도 못 먹고 꼼짝없이 죽을 위기에 처해서, 주인 할아버지 할머니가 유달리 손을 많이 썼다. 그런 탓인지 형제들은 차례대로 분양되지만 히마와리는 할아버지 할머니 옆에 남는다. 그나마 히마와리의 어머니도 덩치 큰 사냥개에게 물려죽어, 주인들은 정말 열심히 그녀를 키운다. 하지만 결국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할아버지는 요양소에 맡겨지는데, 히마와리는 할아버지를 찾으러 집에서 도망치지만 그 넓은 일본 열도에서 찾을 수 있을리가 없다. 결국 이전에 살던 집도 헐리고 히마와리는 떠돌이 들개 신세로 전락한다. 수컷 떠돌이 개를 만나 강아지도 세 마리나 낳게 되지만, 할아버지 할머니가 없는 이 세상은 히마와리에게 너무나 각박하고 차갑다. 결국 마지막 희망인 농가로 내려오지만 거기에서도 '논밭을 못 쓰게 만드는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다. 결국 주민들은 보건소에 들개를 잡아달라고 신고하기에 이른다.

 

 

2. 보건소 직원인 주인공도 이 각박하고 차가운 세상에 적응이 안 되는 건 마찬가지이다. 일하던 동물원이 문을 닫은지 8년이 되었고, 아내가 교통사고로 사망한지는 5년이 지났다. 하지만 아직도 그는 하고 싶은 일도, 같이 살고 싶은 사람도 잃어버렸다는 데 완전히 적응이 되진 못한다. '보건소에 온지 일주일이 지난 개들을 죽여야 하는' 자신의 일에 분노를 느끼지만 그나마 그게 동물을 가까이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직업이라는 데 한없이 무기력해진다. 유기견을 맡아 기를 수 있는 집을 최대한 열심히 찾아보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개의 수명을 일주일 더 늘렸다가 들키면 보건소 소장에게 꾸짖음을 당하니, 스트레스는 쌓일대로 쌓인다.

 

 

3. 몇몇 배우들이 대사를 국어책 읽듯이 읊조려서 그렇지 주인공의 연기는 상당히 좋았다. 동물과 관련된 직종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이 공감할 수 있는 질문을 정확히 던지고 있었다. 또한 연기 속에서 그 주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기색이 드러났다. 어찌보면 이 영화는 개를 만난 인간이 성장하는 내용을 담으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히마와리는 동물을 사랑하는 주인공에게도 상당히 어려운 주제였다. 히마와리는 새끼를 보호하는 어미로서 철저히 자신을 강하게 어필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게다가 어린 시절 인간에게서 겪었던 박해때문에 인간에게 마음을 열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추운 철창 우리에 새끼들과 같이 갖혀있어야 했다. 결국 한파 속에서 새끼 한 마리를 잃자 남은 새끼들이라도 지켜야겠다는 그녀의 절박함은 더해졌다.

 

 다행히 히마와리가 새끼들을 워낙에 잘 키운 탓에 그들은 일주일 내에 상당히 기운차고 통통하게 자란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은 새끼들만 데려가려 하고 히마와리는 데려가려 하지 않는다. 보건소 소장이 난폭한 들개를 죽이지 않은 것도 모자라 처분 기간을 늦춘 것에 굉장히 화를 냈고, 히마와리가 사람을 물지 않는다는 확실한 보증이 있어야 보건소에서 내보낼 수 있다고 엄포를 놓았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너무나 속상해서 국회의원이 있는 앞에서 소장에게 화를 내지만, 히마와리가 사람을 물지 않는다고는 말하지 못한다. 자신과 다른 인간들의 어리숙함 때문에 히마와리가 화를 내고 있다는 걸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일은 없다. 그는 히마와리가 처분되기 전 며칠간 히마와리와 함께 자고 함께 밥을 먹으며 그녀에게 계속 말을 건다.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빈다. 과연 히마와리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온정을 기억하고 그와 다른 인간들을 용서할 수 있을까?

 

 

4. 국회의원은 히마와리가 죽기 직전에 그를 찾아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서 가장 돋보이는 건 히마와리뿐이다. 아까도 말했지만 인간배우들은 죄다 국어책 읽듯이 연기했고, 히마와리는 마취하지 않았는데도 비틀비틀거리며 혼신의 힘을 다해 약에 취한 연기를 했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인간보다 개를 더 돋보이게 하는 데 성공했다.

 

 내 말투에서 봐도 알 수 있듯이, 사실 이 영화는 그렇게 해서 히마와리를 주인공으로 만들려고 했던 게 아니다. 처음에 히마와리의 탄생과 성장과정을 다 보여줘서, 인간들이 말하는 떠돌이 들개가 사실 태어날 때부터 들개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이다. 이는 잭 런던의 '야성의 부름'에 힘입어 이미 입증된 바 있다. 그러나 야성의 부름에서 주인공 개 벅은 자신 속에 숨어 있는 야성을 일깨워 늑대의 무리 속에 섞여들어가는 데 성공한다. 히마와리도 결국 생존에 성공하지만, 이 녀석은 짖지도 않고 물지도 않는 '온순한 개'가 되어 인간에게 복종하는 길을 택한다. 어느 쪽이 더 행복한지에 대해서 우리 인간은 함부로 재단할 수 없다. 각각 얻는 게 있고 잃는 게 있기 때문이다. 벅이 안락하게 먹고 살 수 있는 길을 버리고 사냥꾼의 총 앞에 마주서는 위험을 무릅쓰게 되었다면, 히마와리는 새끼들의 목숨을 보장받고 새끼들과 떨어지지 않기 위해 주인공을 새 주인으로 '인정해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들개들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 한다. 일단 개들의 대다수는 사냥견이 아닌 이상에야 자연의 생태계에서 가장 취약할 수밖에 없는 종족들이다. 그 개들이 멀쩡히 살아가려면, 인간과의 동거가 절실하게 요구된다. 인간에게 사랑을 받으며 살아야 한다. 오랜 세월동안 사람들이 인공적으로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런고로 여러가지 사정으로 길을 잃었거나 버려진 개들은 인생의 낙오자가 된다. 그들은 보호소의 차가운 창살 아래서 떨면서 기나긴 일주일을 보낸다.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카메라는 최대한 몸을 낮추어 히마와리의 얼굴을 정면에서 담는다. 변화하는 히마와리의 표정을 실시간으로 담기 위해서다. 히마와리와 나의 7일이 히트를 친 이유는 단지 카메라의 낮은 시선 그 하나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는 일본영화답게 참 쓸데없는 대사가 너무 많이 나온다. 그러나 히마와리는 그보다 더 많은 말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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