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트 : 일반판 (2disc)
부지영 감독, 염정아 외 출연 / 에이스미디어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가볍게 좀 위험한 드립을 치자면 이 영화의 명장면 카트라이더(...)는 마지막에 나온다.

 사실 몇몇 마트들이 이것 때문에 저 은색 카트를 내구성 좀 더 약한 플라스틱 카트로 만들었다 카더라(...)

 

 영화의 반응은 상당히 싱거운 편이다. 난 처음에 인터스텔라라는 영화가 흥행해서 그런가 싶었는데, 영화를 보니 확 피부에 와닿았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절대 상업영화가 될 수 없었음을. 그 이유를 한 문장으로 설명하자면, 이 영화는 우리나라가 원하는 현실도피성 이야기를 절대 그려내지 않기 때문이다. 거의 애니메이션 계의 우로부치 겐급 각본이라고 할 수 있겠다. 회사는 절대 표면으로 나타나지 않고 비웃음과 여성노동자들이 상처받을 만한 말만 골라 하면서 노동조합 사람들을 감방으로 정규직으로 차례차례 보내버리는데, 노동자들은 너무 순박해빠져서 저항하지도 못하고 때리면 맞고 끌어가면 끌려가기만 한다. 영화 막판에 카트 끌고 경찰들과 물대포의 포위를 뚫는 장면도 어딘가 석연치 않다. 설령 그들이 영화 속에서 마트를 뚫고 달려나간들, 마트 기물을 몇 개 부순들, 실상 그들의 가난한 일생에는 별반 변하는 게 없음을 영화 맨 마지막의 자막이 명확히 암시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책에서 읽은 기억이 있다. 어떤 미국의 대학교에서 한 '멸종' 위기에 있는 인디언이 강당에 섰다. 그는 백인이 아메리카 땅을 '발견'하기 전에 자신과 자신의 조상이 어떻게 살았었는지, 백인들이 어떻게 그들을 멸종 위기에까지 몰아넣었는지, 자신의 부족 문화가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매우 차분하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이에 강의실에 있던 학생들은 연민을 느껴 그와 그의 부족들을 구해낼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 물어보았다. 그는 아무 방법이 없다고 했다. 별별 해결책을 다 제안해도 인디언이 거절하자 그 학생들은 되려 분노하기 시작하고, 이번엔 그 인디언이 왜 그런 '불편한' 이야기를 자신들에게 했는지 물어보았다. 그는 끝까지 담담하게 말했다고 한다. 자신은 동정을 구걸하거나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선 게 아니라고. 그저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홈에버 노동조합 사람들은 결국 자신들의 복직을 포기하고, 노조에 가입하지 않았는데 강제해고된 사람들을 모두 복직시키는데 성공한다. 그들도 처음에 해고되었을 땐 복직하여 인간대접을 받으며 일하고 싶다는 의욕과 희망을 가지고 노조에 가입했을 것이다. 그러나 역경을 겪으며 그들의 마음은 멸종 위기에 있는 인디언과도 같은 마음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대게 서브컬쳐들은 지지 않는 마음과 의욕, 사랑만 있으면 모두 이루어질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진보된' 기업들은 언뜻 보면 따뜻해보이는 바람으로 그 촉촉한 감정을 싸그리 말라붙게 만든다. 그 과정은 영화에서 인물들의 행동과 표정에 세심하게 표현되어 있으니 참고하길 바란다. 이 영화에서는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저 지금까지 있어왔던 사실들을 쭉 나열한다.

 

 

 최근 우리나라 사회의 불합리한 시스템과 맞서 싸우는 영화가 많이 상영되고 있다. 근데 각색된 영화던 다큐멘터리이던 꼭 등장하는 게 무엇인지 아는가? 바로 투쟁하는 주인공의 '가족들'이다. 그들은 카메라 앞에서 서로 얼싸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서로서로를 위로한다. 하지만 사람의 일생이 꼭 그렇게 잘되리라는 법은 없다. 아니, 오히려 슬슬 가족이 덫이 되는 장면이 카트의 명장면이다. 제일 먼저 홈에버의 노조 개념을 주장하던 문정희 역의 '싱글맘'은 아이를 노조 천막으로 데리고 나오다가 그 아이마저 잃어버릴 뻔하자 변심한다. 길게 말은 하지 않지만, 다른 회사에서도 정규직 노조를 만들려던 경험이 있었던데다 이혼까지 겹쳐 힘든 여정을 겪은 듯하다. 염정아가 맡은 '두 아이의 엄마'는 그나마 카트에서 정상적인 가족을 구축하고 있다. 그러나 그녀의 아버지는 건축일로 집에 멀리 떨어진 상황이라 그녀가 해고당하고 노조에 가입한 일을 일체 모르고 있다. 고등학생 아이가 걱정하고 있는 엄마를 안심시키려고 '내가 아버지에게 이야기해보겠다'라는 말을 꺼내지만, 그 아버지가 자신의 아내를 이해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일체 나오지 않는다. 

 

 여담이지만, 이 고등학생 아이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어머니가 노조를 하는 이유를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고 사회의 쓴맛에 대해서 알게 되는 장면이 또 하나의 재미다. 편의점 점주가 약속한 알바비를 쌩까먹기 위해 푼돈을 주고 일부러 큰소리를 치면서 남자아이를 내쫓는데, 연기가 압권이었다(...). 평소에 버럭하는 성격이 있는 그도 점주가 쌍욕을 하면서 눈을 뒤집고 덤벼들자 공포심을 느꼈는지 한 마디도 못하고 물러나온다. 그래서 같이 알바하던 여친이 편의점에 돌멩이 던져서 깨뜨리는데 점주가 미친듯이 달려들어서 남자주인공을 유리파편에 내팽개치고 막 치는 거임. 레알 사회의 쓴맛이 거의 내여귀 동인지 200일 전쟁 수준이었음;;; 그 때부터 남자주인공이 여자친구를 보호하기 위해 경찰서 간 처음부터 끝까지 지가 했다고 거짓말 했는데 레알 꼬맹이로만 보이던 것이 남자로 보이면서 개씁쓸해짐... ㅠㅠ 거짓말하면서 어른이 되는 거냐...

 

 혹시 아르바이트하는 곳에서 임금 제대로 못 받고 내쫓긴 분이 있다면 청년유니온에 연락해보시길. 거기서 노무사도 연결해주고 왠만한 일은 무료로 처리해준다.

 

 

 

이전에 일베를 들어갔을 땐 자신들을 '저임금으로 부려먹을 수 있는 저렴한 인력'이라 자랑했던 인간들이 일부 있었는데, 지금은 그들마저 일베에서 축소되고 말았다. 일베하는 사람들 중 부자들이 자신의 비싼 스포츠카나 시계를 사진으로 찍어서 인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수치심 느낄 필요가 없다. 이 영화를 느끼면서 거리감을 느낄 이유도 없다. 아무리 이런 영화들이 씁쓸하더라도 사람들은 결국 어쩔 수 없이 봐야 할 것이다. 앞으로 이런 일이 또 다시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고, 물건 값은 오르고 있고, 최저임금은 거의 제자리 수준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가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다보니 꿈을 꾸는 일도 줄어들 것이고, 결국 영화를 포함한 서브컬쳐는 싫던 좋던 점점 실용주의 계열로 갈 것이라 본다. 기술로 꿈을 만들 수는 있겠지만, 그 꿈을 소비할 자원을 얻는 덴 한계가 있다. 수치심 따위 좀 벗어던지자. 현실을 먼저 인식해야 판타지도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