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헤이즐 : 극장판 & 확장판
조쉬 분 감독, 쉐일린 우들리 외 출연 / 20세기폭스 / 2014년 11월
평점 :
품절


 

일단 모든 로맨스들이 그렇듯이 여자들이 꿈꾸는 상황임에는 틀림없다.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시니컬하다는 소리를 듣고, 심지어 우울증이라는 진단까지 받은 10대 시절에 매우 보수적인 부모님에게 잔소리만 듣고 거의 닭장에 갇혀 살다시피 하지만 왠지 자신을 이해해주고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는 남자가 나를 지긋이 바라보고 있다. 같이 영화보자고 꼬셔서 집에 가보니 (영화보자면서 왜 집에 초대하는 거냐.) 운동선수여서 집에 트로피가 절절 넘쳐흐름. 게다가 지하에 아들만의 아지트를 꾸리고 대형 TV와 게임을 잔뜩 수집해 넣어줄 정도의 돈을 갖고계신 남친 부모님. 초 럭키★
 다만 둘 다 암 환자이며, 남자주인공은 다리를 잃었고, 특히 여자주인공이 거의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만 빼면 말이다.

 

하루하루를 살아가기가 무척 힘든 그들은 각각 소망이 있었다. 우연히도 둘 다 '자신이 죽은 후 세상이 어떻게 되는지 알고싶다'와 근접했다. 여자주인공이 특별히 좋아했던 소설인 '거대한 고통'을 읽고 그들은 각자 그 소망을 이야기한다. 헤이즐은 자신이 죽은 후 남은 사람들이 별 문제없이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어찌보면 매우 10대 같은 소망이었다. 보통 그 나이때쯤이면 세상이 다 자기 중심이고, 자신이 없어지면 전부 무너지는 줄 아니까 말이다. 그녀는 그 소망이자 걱정을 마음에 품었기에 담담히 세상을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거스 쪽은, 잘 몰라도 뭔가 세상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여자친구가 매우 좋아하는 '거대한 고통'을 읽고 그녀와 암스테르담으로 향한다. 죽기 전 소원을 한가지 비는 회사?에 기꺼이 소원장을 던진 것이다. 흠모하던 작가를 만나게 되서 너무나 좋아하지만 반면 미묘하게 죄책감을 느끼는 헤이즐에게 '그 정돈 아무것도 아냐'라고 허세를 부리는 거스가 꽤 천진난만하고 귀여웠다.

 

 

 

그러나 그는 죽어가면서 자신이 허세를 부렸다는 것을 인정한다. 죽어가는 10대 암 환자들이 죽기 전 좋아하는 작가를 찾아가서 소설의 결말을 물어본다. 대단한 일이 아닌가! 그렇지만 소설가는 0과 1 사이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간격이 있다는 수수께끼같은 말과 함께 딱 잘라 거절한다. 소설가의 말처럼 1권만 쓰려다 꼼짝없이 속편만 9권을 쓰게 된 몽고메리처럼 되고 싶지 않다는 뜻도 물론 있을 것이다. 결국 그들은 주인공의 죽음보다 남겨진 자들의 '거대한 고통'에 집착하는 작가에게 지쳐 작가의 집을 뛰쳐나온다. 헤이즐과 거스는 그 작가를 만난 일보다도 작가의 비서와 함께 간 안네 프랑크의 은신처가 더 대단했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은 조금 버겁다 생각해도 쉽게쉽게 오르는 길이, 폐에 물이 반 정도 차 있는 헤이즐에게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간 골고타 언덕이나 아무 등산장비 없이 음식만 잔뜩 들어있는 베낭을 부여잡고 걷는 에베레스트 등정길과 같은 것이라 생각되었다. 죽음의 문턱에 있는 거스는 그녀를 누구보다 많이 이해하고 챙겨주지만, 또한 그녀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서 수만가지 생각을 하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는 그녀가 고생하는 덕택에 자신이 성장하고 있음을 인정하면서, 자신이 그녀는 커녕 자신 하나조차 챙길 수 없음을 한탄한다. 그리고 고통스럽게 죽는다.


 그리고 남자친구의 장례식에 그 몹쓸 술주정뱅이 작가가 참석한다. 세상에. 난 짜증나서 눈물이 터졌다. 그녀도 그랬나보다. 차 안에서 끈질기게 그녀를 찾아다니는 작가에게 모진 말을 하면서 쫓아낸다. 작가는 그녀에게 한 종이를 건네주고 돌아선다. 헤이즐은 그 글을 읽고 한 번 더 울음을 터뜨리고는, 편한 표정을 짓는다. 그제서야 그녀는, 인생의 진리를 발견했던 것일까. 그녀는 별을 보며 문득 오쇼 라즈니쉬의 철학을 직접 겪은 것일까.

 

 

사자 한 마리가 쫓아와서 도망갔더니 절벽이 있다. 그 절벽 밑에 사자 두 마리가 으르렁거린다. 그대로 땅 위에 남자니 사자 한 마리가 맘에 걸려서 절벽을 반쯤 기어내려가 나무를 손에 쥐었는데 새가 자꾸만 손을 쪼고 있고 점점 힘이 빠져간다. 그러다 문득 나무에 벌집이 달려있음을 발견하고 그는 거기 맺혀있는 꿀을 맛본다. 이야기는 거기서 끝이다. 잘은 몰라도 8살 딸을 잃고 장수하며 일생동안 방황하는 늙은 소설가의 긴 주절부리보다, 꽃다운 나이에 총각딱지를 막 떼고 한 사람을 '영원히' 사랑하면서 죽을 수 있는 소년의 짧은 글이 아마 훨씬 더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사람의 일생은 여행이고 길건 짧건 그건 다 부질없다. 꿀이 핵심포인트다. 그러니 솔로들이여 연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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