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해피 브레드
미시마 유키코 지음, 서혜영 옮김 / 블루엘리펀트 / 2012년 11월
평점 :
품절



 1. 영화보면서 애니보면서 음악까지 들으려니 정말 시간이 많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간략하게 한 마디만 하려고 한다. 도심에서 일하는 사람들 누구나 시골로 내려오기를 원하는데, 이 분들은 정말로 그냥 무작정 내려왔다. 손님이 많이 오는 경우도 있지만 드문드문 오는 경우도 있으며, 때로는 날씨가 좋지 않은 때도 등장한다. 하지만 역시 너무나 농촌의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는 게 피부로 느껴진다. 일본을 가보진 않았지만 저 곳의 경제도 사실 우리와 별반 다를 바 없지 않나? 특히 후쿠시마 사건 이후로는. 워낙 대사가 많지 않다보니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도쿄에 올라가기 힘들다는 시골 청년의 푸념은 그냥 푸념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또 대뜸 등장하는 신파적인 이혼가정, 즉 아버지가 딸아이를 혼자 키우는 이야기는 하품이 나올 만큼 지루하다. (살짝 졸았다.) 계속 어머니가 만들어 준 호박수프 타령하고 있길래, 카페 마니에서 직접 메뉴에서도 없는 호박수프를 만들어줬다. 근데 이 기집애는 먹지도 않고 일어서서 학교로 간다. ... 뭐야 이 짱미오같은 설정. 만일 귀여운 여자애가 그 말을 안 했다면 나 그냥 이 영화 꺼버렸다. 니 엄마가 니가 그렇게 클 때까지 호박수프 줄곧 만들었으니 이젠 니가 해먹을 때가 되지 않았니 얘야? 


 2. 아무튼 '빵'이란 이름의 기원이 깜빠뇽이고 깜빠뇽이 동료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걸 여태까지 몰랐던 사람이 있다면 이 영화를 봐도 좋다. 

 프롤로그 부분에 대해서 잠시 설명하겠다. '달과 마니'라는 그림책에 푹 빠진 리에는 가식적인 웃음을 지어야 하는 도심의 생활에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마침 남편 미즈시마가 시골로 내려가자고 해서 훗카이도 츠키우라에서 숙박시설 겸 카페를 오픈한다. 그녀는 그 카페의 이름도 마니라고 지었다. 그런데 웃긴 건 그녀는 남편 미즈시마를 그 때까지는 전혀 마니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니 그럼 왜 결혼했어? 거기서 헛웃음이 나왔지만 일단 그에 대해서 썼다간 또 이 리뷰가 삼천포로 빠질 것 같으니 나중에 다른 데서 쓰기로 한다.

 아무튼 그 카페에 오는 손님들은 몇 되지 않는다. 귀가 더럽게 밝은 유리 공예가 요코 정도가 약간 시골의 암막같은 존재로 등장할 수도 있겠지만(월든에서 저자의 말에 의하면 시골 아낙네들은 자신이 사는 집으로부터 몇 킬로미터 떨어진 외딴 오두막의 침대 밑까지 샅샅이 뒤진다고 한다. 그리고 본인의 경험으로도 그 말은 맞다.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는 존재로구만.), 그녀마저도 깜짝 선물로 카페의 분위기를 밝게 하는 역할을 맡는다. 그 중에 하나였던 훈남 토키오는 카페 마니에서 인연을 만나 직장도 그만두고 도쿄로 상경한다. 아니 뭐 이딴 자식이 다 있어 ㅋㅋㅋ 정말 꿈이 없는 청년이었구만! 분명 해피엔딩인데 어처구니 없다고만 생각되고, 깔 부분만 이곳저곳 발견되는 걸 보면 난 의외로 상당히 세속에 찌든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3. 각자 사연이 있는 사람들이 카페 앞 버스 정류장에서 쭈뼛쭈뼛거리며 서 있다가, 무슨 결심이 섰다는 듯이 돌연 이를 악 물고 카페 마니로 발걸음을 옮긴다. 이들을 위해 카페 마니는 메뉴에도 없는 빵을 만들어주던가, 와인을 제공해주면서 그들을 반긴다. 그러고보니 해피해피 와이너리에서도 빵이 나왔었지. 각본을 쓴 사람이자 감독인 미시마 유키코가 어지간히 빵과 술, 그리고 나란히 서서 행진하는 음악단을 좋아하는 여자인가 보다. 빵 이야기가 한창 나오다가 오키나와 인형 이야기가 튀어나오지 않나, 갑자기 건배는 많이 할수록 행복하다는 이야기가 나오질 않나, 스토리가 뒤죽박죽이다. 이혼가정 에피소드에 대해서 다시 이야기를 꺼내자면, 호박수프를 앞에 두고 침묵하고 있는 부녀 앞에서 아코디언을 켜고 있는 아저씨가 상당히 억지춘향으로 보일 것이다. 보통 카페에 있는 사람들은 시끄럽다고 화를 내겠지. 하지만 여기 나오는 인물들이 워낙 돌발적인 데다가 로맨티스트들이고, 카페도 워낙 찾아오는 사람이 없다는 설정이라, 어쩐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게 된다. 해피해피 와이너리에서도 잠깐 언급했었지만, 정말 여기 나오는 인물들을 보면 녹색당 사람들을 보는 기분이라 미묘하다.


 4. 아무튼 자살하러 고향이자 인적이 드문 츠키우라 마을로 찾아온 노부부 이야기가 굉장히 인상깊었기에 간신히 이 영화에 4점을 줄 수 있었다. 이 부부가 사실 주인공 부부보다 더 연기를 잘 했는데, 평소 빵이 입에 맞지 않았던 할머니가 콩빵을 너무나 맛있게 먹는 장면이 인상깊었다. 와이너리에서도 그러했듯이 이 영화는 효과음이 매우 중요하다. 평소 바삭바삭 소리가 났던 빵이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좀 더 부드러운 소리가 났다고 할까. 상당히 짦은 장면이었지만, 그 장면을 보다보면 '사람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도 계속 변한다'는 말이 피부로 와닿는다. 그러나 그녀도 그녀를 변함없이 지켜보고 사랑해주며, 그녀의 변화를 인정하는 할아버지가 없었더라면 그렇게 멋진 여자가 되지도 못했을 것이다. 리에도 그 노부부를 보고 나서야 미즈시마를 마니로 인정한다. 

 이 영화의 메시지는 이렇다.
 '하고 싶을 때, 하고 싶은 걸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사람이랑 원하는 걸
 동료와 함께 하라.
 그러면 사람은 변할 수 있다.'
 두 시간동안 열변하기엔 굉장히 간단하고 식상한데도 무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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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 해피 와이너리
미시마 유키코 감독, 안도 유코 (Ando Yuko)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15년 9월
평점 :
절판


스크램블 에그로 할까?
아니면 수란으로 할까?
(는 동생 로쿠(쇼타)가 하는 말이니 2000% 누님들을 노린 듯(...) 그리고 전 저격당한 듯?!
널 원한다 인석아 ㅠㅠ 나에게로 오면 키아누 리브스보다 더 사랑해줄텐데 엉엉...)


 1. 지휘자로 먹고 살고 싶어서 집을 박차고 나간 어느 남자아이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지휘자로 살면서 점차 돌발성 난청을 겪게 되고, 좌절을 곱씹으며 고향에서 자살을 기도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의 눈앞이 짜잔하고 밝아지고, 그 빛이 눈부셔서 눈을 찌푸리는 찰나 저기 멀리서 아버지가 심은 포도나무가 보인다. 거기에 열린 포도를 먹고 나서 그는 결심한다. 포도농장을 차리겠다고. 고향에서 계속 아버지의 밀밭을 가꾸고 있었고, 내심 형이 자신을 도와주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 같은 동생은 아무 말 않고 묵묵히 밀밭 일도 하면서 철없는 형을 돕는다. 하지만 분위기를 봐선 왠일인지 내다 팔만한 품질의 와인이 나오지 않는 듯하다. 실패가 계속 반복되고 있던 찰나, 이 조용한 밭에 갑자기 어떤 빨간 치마를 입은 여자가 삽 한자루 들고 형제가 있는 밭을 찾아오더니, 대뜸 옆에 있는 황무지를 파헤치기 시작한다. 암모나이트를 찾기 위해 세계 전부를 떠돌아다니고 있다나. 다들 짐작하겠지만 이 고집많은 형 아오와 황야의 여자 에리카가 플래그가 서는 게 이 영화의 주요 내용이다.  


 


 2. 어떤 리뷰에서는 이 영화를 '귀농한 사람들이 보면 좋을 영화이고 도시에 있는 자신은 하나도 이해가 가지 않는 번잡한 영화다'라고 소개했더랜다. 글쎄다. 귀농한 사람들도 이 영화를 좋아할지 의문이다. 저렇게 편하게 농사할 리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극중에서 농사짓는 형제들도 나름대로 노력은 하지만, 역시 저것도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지라 생각보다 훨씬 더 치열하다. 나는 일단 포도에 농약을 치는 장면이 안 나오는 데서 좀 코웃음이 난다(...)


 게다가 대체 언제적 소재인지 모를 부모와의 갈등 이야기가 관객을 몹시 질리게 한다. 해피->새드->해피로 나아가는 전개도 굉장히 식상하다. 형은 아오라는 이름 때문인지 맨날 파란색 셔츠를 입기를 고집하고, 에리카 또한 아오와 성격이 반대라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인지 계속 빨간색 옷만 입는다. 농사가 반복되는 과정이라는 걸 굳이 강조해서 보여주려는지 주변은 굉장히 조용한데 바람부는 소리만 들리거나, 포도주가 숙성되는 소리만 들리거나 그러기를 한참 반복한다. 팝콘 들고 이 영화를 보러 영화관에 간 사람은 상당히 눈치가 보였을 것이라 예상해본다. 아마 팝콘 우적거리는 소리도 상당히 거슬려보이거나, 혹은 소리가 완전히 뒤덮였을 것이다. 혹은 영화 중반에 지루함을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코를 골며 자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어쨌던 간에 이 영화는 집에서 1~2명이 봐야지, 여러 명이서 복닥거리면서 보기엔 좀 그런 영화다. 만약 옆에 있는 사람이 도저히 못 견디고 잔다면 인내심이 없다고 투덜대지 말고 그냥 다른 영화를 봐라. 끝까지 보지 않아도 상관없는 영화니까. 만약 자신이 졸게 되도 마찬가지다.


 


 3. 그러나 일단 난 이 영화를 끝까지 보았다. 2시간 내내 기다림에 대해서 끈질기게 이야기하는데, 대체 그게 어떻게 마무리되는지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화 끝에 가서야 알게 되었다. 이 영화는 그저 이 영화를 만든 감독 자기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할 뿐이다. 이 사람의 영화는 냉정히 이야기해서 훌륭하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도 굉장히 한정적이며 (에리카의 차림을 보고서도 이거 설마 싶었지만 영화 중반에 머리 산발에 기타를 들고 노래를 부르는 히피 아주머니가 나오는데, 거기서 필이 오는 게 이 감독... 역시 일본 녹색당의 일원이거나 그쪽 사람들과 친한 게 아닌가 짐작해본다.) 자연이 사람을 치유해 줄 수 있다고 집요하게 주장한다. (감독도 자신이 하고 각본도 자신이 썼다.) 하지만 보면서 하품나오는 걸 참았던 '블루드롭'처럼, 난 이런 장르에 걸려드는 덴 천부적인 재주가 있나보다(...) 이전 작품으로 2012년 해피해피 브레드가 있고 또 2013년에 이류소설가 시리얼리스트가 있는데, 왠일인지 그 작품은 망한 듯하다; 그리고 2014년에 나온 게 이 해피해피 와이너리. 우리나라에서 제목을 잘 정했기에 망정이지, 사실 이 영화의 원작은 '포도의 눈물'이라는 굉장히 진부한 이름이다(...) 그래도 난 리틀 포레스트보단 낫다고 하고 싶다. 계속 좋은 영화를 만들려고 하는 감독의 집념이 보였기 때문이다. 일반 일본영화답지 않게 주인공 아오와 여주인공 에리카에게만 제대로 포커스를 맞춰주는 게 신선했고, 거의 영상효과를 넣지 않은 채 어느 한 장소의 배경으로만 영화를 아름답게 만들려고 한 시도가 좋았다. 분명 포도밭에서만 전개되는 이야기인데, 이 각도로 포도밭을 보고 저 각도로 포도밭을 보니 분명 하나하나가 다르게 보인다.


 난 세상이나 사람이나 언젠가는 변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분명 우리가 암모나이트처럼 몇 억년을 기다려 줄 수는 없겠지만, 나 자신이 결코 절망하지 않고 올바르게 산다면 분명 그로 인해 조금이라도 변화하는 게 있을 것이다. 일단 내 자신이 먼저 변하기 때문이다. 해골바가지에 담긴 물은 그 사실을 아느냐 모르느냐에 따라 더러운 물이 될 수도 있고 시원한 물이 될 수도 있다. 물론 모든 게 마음에 달린 것만은 아닐 수도 있지만. 이 감독이 언젠가는 자신도 흡족하고 관객도 좋아하는 영화를 쓰고 만들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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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기생수 파트 1 : 렌티큘러 800장 넘버링 한정판 (2disc)
야마자키 타카시 감독, 아사노 타다노부 외 출연, 소메타니 쇼타 / 더블루(The Blu) / 2016년 10월
평점 :
일시품절


인간의 수가 반이 되면
불태워지는 숲의 수도
반이 되는 걸까?
인간의 수가 백분의 일이 되면
배출되는 독도
백분의 일이 되는 걸까?
지구상의 누군가가
문득 생각했다.
"모든 생물의 미래를 지켜야 해."


 1. 이 영화를 추천하는 이유는 많다. 첫째, 감독이 영원히 일본영화계에서 논란이 될 <영원의 제로>라는 영화를 만든 야마자키 타카시이다. 이 영화도 한 번은 꼭 보시길 추천한다. 이것 말고도 도라에몽 스탠바이미 영화의 감독과 범프 오브 치킨 월폴리스의 감독도 맡았다. 그리고 범프 오브 치킨은 이 영화의 엔딩곡을 맡았다. 범프 오브 치킨이 엔딩곡을 맡았으니 영화를 끝까지 보아도 지루하지 않겠다는 게 두번째 이유다. 셋째, 소메타니 소타가 주인공이다. (이름값을 하는지 최근에 11년 연상의 기쿠치 린코와 결혼했다. 전세계의 누님지온들이여 아픈 배를 잡고 구를지어다.) 넷째, 후카츠 에리 누님을 볼 수 있다. 그것도 타미야 료코로 등장한다. 세상에 천재적인 발상이다. 다섯째, 말이 너무 많은 게 기생수의 유일한 단점인데 영화에서는 영상으로 그걸 잘 표현했다. 솔직히 소타 군이 너무 표정연기를 잘해서 얼굴을 클로즈업시키는 것만으로도 모든 게 표현된다. 모든 사람들이 신이치가 너무 훈남이라고 걱정을 하는데, 이 배우는 단순히 얼굴만 잘생긴 배우가 아니다. 안심하고 보시길 바란다. 여섯째, 고어를 상당히 잘 표현했다. 그 유명한 머리 먹는 장면도 '피 하나 나오지 않으면서도 신속하고 잔인하게' 잘 처리했으며, 민나고로시랑 내장이 흩뿌려지는 것도 가감없이 나온다. 본인은 팝콘을 우적거리면서 봤지만 비위가 안 좋은 사람들에 따라서는 식욕이 급속도로 떨어질 수 있으니(...) 주의하길 바란다.


 2. 문제는 이 영화가 기생수 특유의 유머감각을 다 잘라먹었다는 것. 그리고 핵심이 신이치의 '운명'에 맞춰지다보니 클라이맥스 장면이 신이치의 어머니가 기생수에 씌여서 신이치랑 대결하는 장면과 시마다 히데오가 폭주하는 장면 둘로 나뉜다. 한 학년의 아이들이 전부 몰살당하는 장면이 나오니 후자 쪽이 영상으로는 정말 충격적이긴 하다. 오른쪽이와 어느 정도 동화된 신이치조차 충격받아서 과호흡에 걸릴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이 영화에서 사람들이 정말 주목하는 내용은 신이치 어머니와 관련된 내용일 것이다. 물론 만화에서도 그 쪽이 중요하긴 하다. 훗날 이 장면은 타미야 료코와 그녀의 아이와도 연관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작에서는 기생수 내부의 철학이라던가, 집중을 분산시키고 다른 가치를 추구할 만한 다른 주제들이 정말로 많았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의 핵심은 두 가지이다.


 - 극단적 상황을 통해 인간의 본질을 들여다본다. (이것은 사이코패스 1기에서 쇼코가 실험을 집행했던 근본적인 목적과 동일하다.)

 - 내가 알고 있는 가치관과 세상의 가치관에 차이가 있을 때 당신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3. 모든 인류를 구해야 한다. 라.


 그러나 상대적으로 더 좋은 사람이 있고 덜 좋은 사람은 언제나 있다. 어떤 사회에서도 사랑받는 사람과 아무데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더 가진 사람과 덜 가진 사람의 차이는 항상 존재한다. 모든 인류를 구해야 한다는 것은 언뜻 사회주의와도 연관되어 있다. 사회주의는 절대적인 평등을 추진한다. 그리고 보통 사회주의의 철학은 거기에서 끝나야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는 이론이 금기처럼 은밀히 피어나기 시작했다. '이 모든 인류를 구할 수는 없기에 수를 줄여야 할 필요가 있다.' 물론 생리적인 반감으로 인해 이것을 입밖으로 꺼내는 사람들은 매우 드물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지. 예를 들어 핵전쟁 억제를 위해 인공위성에서 기둥을 떨어뜨리는 '신의 지팡이'가 그런 형태의 무기이다. 15분 내에 지구에 도착하는데다 소형 핵무기급의 위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몇가지 의문점은 있지만 본인은 미래무기 중 제일 실현가능한 무기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 무기가 정말로 핵전쟁 억제를 위해 쓰일까?가 문제이다. 


 약간 옆으로 새어나갔지만 핵심적인 질문은 이것이다. 확실히 인류가 줄어들면 인류가 내뿜는 독도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인간을 살리고 어떤 인간을 죽일 것인가? 기생수에서 료코는 '자신들의 정체가 발각되었는데 기분나빠하는 인간'을 죽이기로 결심한 듯하다. 결국 살리고 죽이는 것은 기생충이 정한다. 그렇다면 기생충의 살인은 선악을 구분할 수 있는가? 물론 가축을 죽일 때 선악을 구분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 가지 더 질문이 있다. 지구 온난화가 생겨나는 주요 이유 중 하나는 소가 배출하는 방귀 때문이다. 그럼 소를 전부 도살하여 멸종시켜버리고 아담 소와 이브 소만 남기면 환경은 지켜지나? 아담 소와 이브 소는 누가 어떻게 정하는가? 가장 우월한 유전자? 아니면 지혜? 통찰력? 도살당할 모든 소들이 '아 저 소들이 남겨지는 게 맞으니 우리는 기꺼이 도살당하는 게 맞아'라고 납득당할만한 궁극적인 기준이 있는가? 추첨으로 뽑힌다면 그 아담 소와 이브 소는 남겨진 후에 잘해나갈 수 있을까? 

 

 아담과 이브로 이야기를 좁혀보자. 당신은 아담 혹은 이브가 될 것이라 생각하는가? 당신은 살 가치가 있는 사람인가?

 만약 그것을 판단한다면 그것은 가슴으로부터인가, 아님 머리로부터인가?


 4. 여기서부터는 넘겨도 됩니다. 더이상 서평이 아니므로.


 


 Q: (SF 캐릭터들을 수집하고 있는) 남자들에게 질문. 당신의 팔에 기생할 생물을 고른다면, SF 괴물을 고르겠습니까, 아니면 초미소녀를 고르겠습니까?! 

 A: ...나는 미도리. 그보다 정상적인 오른팔로 돌아가겠다는 선택지는 없는 거냐.


 


 Q: 당신은 무인도에 떨어졌습니다. 이 두 생물 중 하나랑 같이 살아야 합니다. 누굴 선택하겠습니까? 

 A: .............. 전자. 생선아가씨가 좋지 아가씨생선은 싫엇. 랄까 저 생선 말은 할 수 있는 거냐? 그나저나 정상적인 아가씨랑 산다는 선택지는 없어?

 Q: 엄마와 아이가 길을 가고 있었다. 안개가 낀 깜깜한 밤. 아이는 무서워져서 엄마의 손을 잡았다. 또 한참 걷다가 엄마 쪽을 돌아보았다. 짙은 안개와 암흑. 어머니의 손에서 나오는 온기는 느껴진다. 하지만 엄마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아이는 혼란에 빠진다. 내가 잡은 손은 누구의 손일까? 아까까지는 분명 엄마의 손을 잡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잡고 있는 지금 손의 주인은 누구인가?

 A: '손의 주인'에게 정체를 물어본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물어본다.

 엄마라고 판단되면 그대로 계속 손이 이끄는 길을 간다.

 아니라고 생각하면, 읍참마속이다.

 울면서 벤다.

 그치만 다시 엄마로 돌아와 줄수는 없어?

 Q: 응. 없어.

 A: ............왜?


 이게 2011년 9월 19일 나의 대답.

 그리고 2015년 3월 10일. 

 


 Q: 당신은 지금 가슴에 구멍이 뚫려있지. 

 A: 어떻게 그걸...

 Q: 이건 큰 구멍이야. 

 A: 어떻게 하면 그, 이 구멍을...

 Q: 만나는 거야. 당신의 가슴에 구멍을 뚫은 상대를 다시 한 번 만나는 거야. 만나서 말하고 모든 걸 털어버려. 알겠어? 당신 가슴의 구멍을 막을 수 있는 건 그 상대 뿐이야.

 A: 그 상대는 죽였어.

 

 "심장이 너무 아파서 터질 것 같아."

 "진정해. 네 심장은 부서지지 않아."

 - 영화에서 학생들이 집단 살육된 광경을 보고 쇼크로 과호흡에 걸린 신이치에게 오른쪽이가 해준 말.

 

출처가 어딘지 밝히지 않으면 할리퀸 남녀주인공 대사같을 거라고 형이 그렇게 말했다. 진정해 심장, 니가 나댈때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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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
매튜 본 감독, 콜린 퍼스 외 출연 / 20세기폭스 / 2015년 8월
평점 :
절판



 


 

 1. 겉으로는 007같은 고전적 스파이 영화를 표방하지만 이 킹스맨은 마치 '마이 페어 레이디'같은 줄거리를 지니고 있다. 얼마나 이에 대한 자신감을 지니고 있느냐면, 첫번째 사진에 나오는 이 아저씨가 악당과 대화를 나눌 때 두 번씩이나 007 영화에 대해서 언급한다. 그리고 '마이 페어 레이디' 영화를 언급한 사람은 주인공 에그시이다. 영화에서 영화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이렇게 많이 나오는 건 또 처음이다. 그리고 매트릭스(에그시와 가젤의 대결)에다가 샤이닝(에그시 엄마가 화장실 문 부수는 장면) 패러디까지 아주 대놓고 가져다 붙이니, 실소가 나온다. 액션 처리 수준에 감독이 그 매슈 본인 데서 이미 B급 영화는 아니지만, B급 영화같은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엔 어느 정도 성공했다.


 이 영화의 뻔뻔스러운 요소는 사실 이 두가지 말고도 더 있는데, 스파이명에 영국의 기사 칭호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이게 다 킹스맨의 중심인 아서가 귀족을 편애하기 때문이다'라고 변명하면서 넘어가는 구석이 있다. 의외에도 영화 설정이라고 은근슬쩍 설명하고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스킵하는 장면들이 많은데, 이는 교회씬 이야기에서 다시 언급하겠다.


 


 2. 영화를 많이 본 편은 아니지만, 솔직히 영국 영화는 대체로 그네 국가에서 나오는 음식만큼이나 상당히 따분한 편이라고 생각한다. (프랑스 영화는 메시지를 남기려고 너무 과하게 노력해서 지루하지만, 어찌보면 한결같은 데가 있다.) 하지만 영국배우와 미국이 합작을 하면 이렇게 훌륭한 작품이 나오는 것이다. 겔러해드는 오래되고 고리타분한 것만을 추구하는 아서에게 지긋지긋해진 나머지, 에그시를 데려온다. 그는 슬럼가 환경과 여러가지 사정으로 인해 사람을 쉽게 믿지 못하고 마음의 문을 닫게 되었지만, 겔러해드는 그 '집안 환경'을 바탕으로 킹스맨이 되도록 에그시를 설득한다. 에그시의 아버지도 킹스맨으로, 겔러해드를 지키려 하다가 전사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에그시는 자신의 과거와 현재 배우고 있는 것들을 잘 융합해 나간다. 어찌보면 온고지신의 정신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겔러해드의 유지를 잇겠다고 결심했는지 악당을 저지하는 총으로 우산총을 챙겨가지만, 현대 무기들의 집중공략으로 인해 믿고 있던 우산총이 망가진다. 위기 상황에서 그는 그 다음 무기로 자신이 멋있다고 생각한 라이터 모양 수류탄을 사용한다. 킹스맨의 매너정신을 배우면서 자신의 엄마를 때리는 새 아빠와 정당하게 1대 1로 승부하려 하지만, 반면 물건을 슬쩍하거나 술잔을 바꿔치기하는 '예전 꼼수'도 선보인다. 킹스맨 선발시험을 치를 때 동거동락했던 록시랑 잘 되려는 기색을 보이더니, 스칸디나디아의 공주가 자신의 '뒤를' 준다고 할 땐 또 거침없이 사양하지 않고 받는다 ㅋㅋㅋ 이 녀석 생존비결 제대로 터특했구나.


 


 


 

 3. 두번째 사진 좀 많이 무섭다. 그 아수라장 속에서 저걸 일일히 보고 계산했단 말인가(...)


 '좀비 28 시리즈'(28일 후, 28주 후 등)을 생각나게 하는 교회 씬은 전혀 NG나지 않고 한 컷에 끝냈다고 한다. 다시금 이 배우의 역량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콜린 퍼스라고 하는 영국 배우인데, 50대라고 한다. 뭐... 라고? 그럼 아저씨가 아니라 할아버지잖아? 뱀파이어인가?


 저 교회씬이 왜 그렇게 유명한지에 대해선 그 외에도 내용상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스파이가 '분노해서' 죽이고 있는 대상이 백인우월주의 교회집단이다. 둘째, 스파이가 일방적으로 학살하는 것도 아니다. 백인우월주의 교회집단들이 서로를 죽이고 있다. 셋째, 피가 튀기고 살이 쪼개지는 와중에 흘러나오는 BGM이 웃겨서 보는 관객이 내내 웃음나오게 만든다. 넷째, 분명 백인우월주의 교회집단인데 악당인 흑인이 베포한 무료 유심칩을 받아서 사용하고 있었다. 거기서 어떤 작용이 일어나서 뇌가 뜨거워지니 교회의 온 사람들이 광분해서 다들 저 난리.


 랄까 교회 다니시는 분들은 많이 불편한 영화일 것이다. 어차피 난 사이비 쪽에 속하니 푸흐흡거리면서 봤지만.


 


 


 4. 참고로 이 영화테마에서 빠지면 섭한 게 안경이랑 양복이다. 안경에 대한 언급은 잘 없지만, 에그시가 임무 전 제대로 정장을 차려입을 때 안경을 쓰고 나온다. 이것도 아마 겔러해드의 유지를 잇기 위해 쓰고 나왔다는 영화 설정으로 통할 수 있겠지만, 어쩌면 검은 뿔테 안경남에 대한 애정도를 높이기 위한 설정(모종의 음모)이 아닐까. 아니 그보다 분명 슬럼가에 있을 때 '운동신경도 좋고 시력도 겁나 좋았던' 녀석이 안경을 쓰고 나타난 게 수상하다. 안경을 쓸 때 좀 더 고급스러운 인상을 풍긴다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그리고 실제로 그게 맞기도 했고. 배우가 워낙에 잘생겨서 그런지는 몰라도 상당히 잘 어울렸다. 


 난 영국남자도 좋아하고 양복도 좋아하고 마티니도 좋아한다. 겔러해드는 구두를 정할 때조차 깐깐한데, 에그시가 자신을 호출하는 비밀번호를 '브로그 없는 옥스포드'로 정할 지경이다. 브로그는 남성 구두에서 습기를 없애기 위해 구두에 뚫어놓는 구멍들을 가리키는데, 보통 구두장식처럼 예쁘게 처리하기 때문에 그 목적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좋아하는 구두는 습기가 차지 않도록 애지중지 관리해야 한다. 그러니 진정 양복을 사랑하는 사람은 브로그 있는 구두를 신지 않는다! 그리고 책이던 무엇이던 옥스포드가 최고다! 왜냐면 고전이잖아! 멋있잖아!! 결론은 이런 아저씨하고 같이 양복과 칵테일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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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네프의 연인들 CE - [할인행사], 완전 무삭제판
레오 까낙스 감독, 줄리엣 비노쉬 외 출연 / 이지컴퍼니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안 들려!

하지만 네가 멋있게 보여!

 


 1. 일단 나같은 사람이야 리뷰라던가 일기라던가 기타 갖가지 것들을 쓰기 때문에 블로그부터 가면 '아 얘는 그냥 잔지식을 뻐기길 좋아하고 이상한 척하는 평범 하수구나(...)' 이런게 뻔히 보인다. 실제로 작품을 읽으면 머릿속에 스쳐지나가는 무언가를 기록하고 싶다는 욕망 반 기록해야 한다는 의무감 반에 사로잡혀 있기도 하고. 물론 미셸은 그림을 그려서 자신이 본 형상을 종이에 가둬놓는다. 처음 남주인공을 볼 땐 그를 모델로 써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혀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안질환으로 인해 눈이 슬슬 멀기 시작하고 '의지할' 남자도 생기자 정말 모든 걸 놓아버리고 다리 위에서 저렇게 춤을 춘다. 


 미셸은 어쨌던 간에 이기적인 여자다. 자유를 찾으려는 의지가 없다. 애초에 아버지가 대령이었다고 하니 가난한 집의 딸도 아니다. 영화 내용에선 등장하지 않지만 아마도 그녀를 헌신짝처럼 버렸을 줄리앙이라는 남자를 죽이고 싶은 마음으로, 무작정 집을 뛰쳐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너무 좋고 부럽고 동경하는 점 첫번째. 저 여주인공 미셸은 결코 자신의 과거를 다 보여주지 않는다. 자신에게 소중했던 사람들의 이름을 콜렉션마냥 알렉스에게 늘어놓는다. 퐁네프 다리를 떠도는 동안 그녀의 과거는 그녀의 가슴에 끔찍하면서도 아름다웠던 파편으로 남은 것이다. 그 장면만큼은 아름다웠다. 장면만. 


 


 


호오. 그러고보니 싸이코패스에서 나오는 마츠오카는 이 장면을 흉내낸건가. 상당히 로맨티스트한 아저씨인데?


 2. 대체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미셸보다 더 종잡을 수 없는 남주인공 알렉스. 그는 미셸을 잡는 자신도, 미셸과 헤어진 줄리앙도 결코 이해하지 못한다. 일단 미셸이 그에게 이야기를 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는 알렉스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언젠가는 자신의 과거를 전부 말해주겠다고, 그 후에 서로 육체적 관계를 맺자고. 2년 후 알렉스와 다시 만날 때도 그녀는 당장 섹스를 하지 못해서 불행한 남자 두 명과 그 두 명을 비웃는 행복한 남자 (오늘이 그날이랜다...) 한 명 이야기를 하면서 분위기를 조성해놓곤 갑자기 피곤하니 집에 가겠다고 말한다. 으악 그만둬 ㅋㅋㅋㅋㅋㅋ 그건 무슨 희망고문이야?


 손도 잡고 키스도 하고 기분 내킬 땐 끌어안아도 주지만 절대 몸도 마음도 완전히 내어주지 않는 미셸에게 알렉스는 애증을 지닌다. 그녀를 그리워하며 쉴새없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바보가 되어버린다. 이전부터 자해를 일삼으며 온 몸을 바쳐 자신을 제대로 쳐다봐줄 사람을 찾던 그는, 미셸이 등장하자 완전히 그녀를 위한 사람이 되어버린다. 거짓말도 하고 사랑도 하고 집착도 한다.


 


 3. 살다보면 한두번쯤 해치거나 죽이고 싶은 사람을 만나게 되기 마련이다. 사이코패스건 아니건 간에 인간은 누구나 살인자가 될 수 있다. 전심전력으로 한다면 이 세상에 하지 못할 일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거리가 멀어지고, 괴로운 감정도 사랑하는 감정도 전부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서, 여러가지 요인 때문에 실천에 옮기지 않았다면 그건 또 그것대로 좋은 일이라고 말하고 싶다. 행할 수 있는 권리를 잘라내면서 얻은 자유.


 내가 미셸을 두번째로 동경하게 된 건 그녀가 다시 알렉스를 찾아갔다는 것이다. 알렉스는 자신을 나락에 건져서 다시 더 깊은 나락에 떨어뜨렸던 그녀를 쳐다보며 담담하게 말한다. 


 "넌 애초에 너무 겁이 많아."

 

 이 말 때문에 그녀를 거절할 줄 알았더만, 전처럼 사랑하진 못 한다길래 그런 줄 알았건만 왠걸. 미셸의 몸을 핥듯이 쳐다보는 그의 시선은 결코 이전과 달라진 게 없었다. 미미하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더러운 현실을 삐딱하게 꼬아서 보는 약간의 유머감각이라 해야 할까. 처음 등장했을 때의 절룩거리는 알렉스는 보는 사람이 짜증날 정도로 진지했다.


 알렉스는 미셸을 끌어안고 다리 밑으로 뛰어내렸다. 그리고 배를 집어타고 그녀와 여행을 떠난다. 

 그들이 집착하지 않고, 추하지 않게 사랑하는 법을 익혔으리라 믿고 싶다.

 여행을 가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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