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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 해피 와이너리
미시마 유키코 감독, 안도 유코 (Ando Yuko)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15년 9월
평점 :
절판
스크램블 에그로 할까?
아니면 수란으로 할까?
(는 동생 로쿠(쇼타)가 하는 말이니 2000% 누님들을 노린 듯(...) 그리고 전 저격당한 듯?!
널 원한다 인석아 ㅠㅠ 나에게로 오면 키아누 리브스보다 더 사랑해줄텐데 엉엉...)

1. 지휘자로 먹고 살고 싶어서 집을 박차고 나간 어느 남자아이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지휘자로 살면서 점차 돌발성 난청을 겪게 되고, 좌절을 곱씹으며 고향에서 자살을 기도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의 눈앞이 짜잔하고 밝아지고, 그 빛이 눈부셔서 눈을 찌푸리는 찰나 저기 멀리서 아버지가 심은 포도나무가 보인다. 거기에 열린 포도를 먹고 나서 그는 결심한다. 포도농장을 차리겠다고. 고향에서 계속 아버지의 밀밭을 가꾸고 있었고, 내심 형이 자신을 도와주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 같은 동생은 아무 말 않고 묵묵히 밀밭 일도 하면서 철없는 형을 돕는다. 하지만 분위기를 봐선 왠일인지 내다 팔만한 품질의 와인이 나오지 않는 듯하다. 실패가 계속 반복되고 있던 찰나, 이 조용한 밭에 갑자기 어떤 빨간 치마를 입은 여자가 삽 한자루 들고 형제가 있는 밭을 찾아오더니, 대뜸 옆에 있는 황무지를 파헤치기 시작한다. 암모나이트를 찾기 위해 세계 전부를 떠돌아다니고 있다나. 다들 짐작하겠지만 이 고집많은 형 아오와 황야의 여자 에리카가 플래그가 서는 게 이 영화의 주요 내용이다.

2. 어떤 리뷰에서는 이 영화를 '귀농한 사람들이 보면 좋을 영화이고 도시에 있는 자신은 하나도 이해가 가지 않는 번잡한 영화다'라고 소개했더랜다. 글쎄다. 귀농한 사람들도 이 영화를 좋아할지 의문이다. 저렇게 편하게 농사할 리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극중에서 농사짓는 형제들도 나름대로 노력은 하지만, 역시 저것도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지라 생각보다 훨씬 더 치열하다. 나는 일단 포도에 농약을 치는 장면이 안 나오는 데서 좀 코웃음이 난다(...)
게다가 대체 언제적 소재인지 모를 부모와의 갈등 이야기가 관객을 몹시 질리게 한다. 해피->새드->해피로 나아가는 전개도 굉장히 식상하다. 형은 아오라는 이름 때문인지 맨날 파란색 셔츠를 입기를 고집하고, 에리카 또한 아오와 성격이 반대라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인지 계속 빨간색 옷만 입는다. 농사가 반복되는 과정이라는 걸 굳이 강조해서 보여주려는지 주변은 굉장히 조용한데 바람부는 소리만 들리거나, 포도주가 숙성되는 소리만 들리거나 그러기를 한참 반복한다. 팝콘 들고 이 영화를 보러 영화관에 간 사람은 상당히 눈치가 보였을 것이라 예상해본다. 아마 팝콘 우적거리는 소리도 상당히 거슬려보이거나, 혹은 소리가 완전히 뒤덮였을 것이다. 혹은 영화 중반에 지루함을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코를 골며 자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어쨌던 간에 이 영화는 집에서 1~2명이 봐야지, 여러 명이서 복닥거리면서 보기엔 좀 그런 영화다. 만약 옆에 있는 사람이 도저히 못 견디고 잔다면 인내심이 없다고 투덜대지 말고 그냥 다른 영화를 봐라. 끝까지 보지 않아도 상관없는 영화니까. 만약 자신이 졸게 되도 마찬가지다.

3. 그러나 일단 난 이 영화를 끝까지 보았다. 2시간 내내 기다림에 대해서 끈질기게 이야기하는데, 대체 그게 어떻게 마무리되는지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화 끝에 가서야 알게 되었다. 이 영화는 그저 이 영화를 만든 감독 자기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할 뿐이다. 이 사람의 영화는 냉정히 이야기해서 훌륭하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도 굉장히 한정적이며 (에리카의 차림을 보고서도 이거 설마 싶었지만 영화 중반에 머리 산발에 기타를 들고 노래를 부르는 히피 아주머니가 나오는데, 거기서 필이 오는 게 이 감독... 역시 일본 녹색당의 일원이거나 그쪽 사람들과 친한 게 아닌가 짐작해본다.) 자연이 사람을 치유해 줄 수 있다고 집요하게 주장한다. (감독도 자신이 하고 각본도 자신이 썼다.) 하지만 보면서 하품나오는 걸 참았던 '블루드롭'처럼, 난 이런 장르에 걸려드는 덴 천부적인 재주가 있나보다(...) 이전 작품으로 2012년 해피해피 브레드가 있고 또 2013년에 이류소설가 시리얼리스트가 있는데, 왠일인지 그 작품은 망한 듯하다; 그리고 2014년에 나온 게 이 해피해피 와이너리. 우리나라에서 제목을 잘 정했기에 망정이지, 사실 이 영화의 원작은 '포도의 눈물'이라는 굉장히 진부한 이름이다(...) 그래도 난 리틀 포레스트보단 낫다고 하고 싶다. 계속 좋은 영화를 만들려고 하는 감독의 집념이 보였기 때문이다. 일반 일본영화답지 않게 주인공 아오와 여주인공 에리카에게만 제대로 포커스를 맞춰주는 게 신선했고, 거의 영상효과를 넣지 않은 채 어느 한 장소의 배경으로만 영화를 아름답게 만들려고 한 시도가 좋았다. 분명 포도밭에서만 전개되는 이야기인데, 이 각도로 포도밭을 보고 저 각도로 포도밭을 보니 분명 하나하나가 다르게 보인다.
난 세상이나 사람이나 언젠가는 변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분명 우리가 암모나이트처럼 몇 억년을 기다려 줄 수는 없겠지만, 나 자신이 결코 절망하지 않고 올바르게 산다면 분명 그로 인해 조금이라도 변화하는 게 있을 것이다. 일단 내 자신이 먼저 변하기 때문이다. 해골바가지에 담긴 물은 그 사실을 아느냐 모르느냐에 따라 더러운 물이 될 수도 있고 시원한 물이 될 수도 있다. 물론 모든 게 마음에 달린 것만은 아닐 수도 있지만. 이 감독이 언젠가는 자신도 흡족하고 관객도 좋아하는 영화를 쓰고 만들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