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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네프의 연인들 CE - [할인행사], 완전 무삭제판
레오 까낙스 감독, 줄리엣 비노쉬 외 출연 / 이지컴퍼니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안 들려!
하지만 네가 멋있게 보여!
1. 일단 나같은 사람이야 리뷰라던가 일기라던가 기타 갖가지 것들을 쓰기 때문에 블로그부터 가면 '아 얘는 그냥 잔지식을 뻐기길 좋아하고 이상한 척하는 평범 하수구나(...)' 이런게 뻔히 보인다. 실제로 작품을 읽으면 머릿속에 스쳐지나가는 무언가를 기록하고 싶다는 욕망 반 기록해야 한다는 의무감 반에 사로잡혀 있기도 하고. 물론 미셸은 그림을 그려서 자신이 본 형상을 종이에 가둬놓는다. 처음 남주인공을 볼 땐 그를 모델로 써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혀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안질환으로 인해 눈이 슬슬 멀기 시작하고 '의지할' 남자도 생기자 정말 모든 걸 놓아버리고 다리 위에서 저렇게 춤을 춘다.
미셸은 어쨌던 간에 이기적인 여자다. 자유를 찾으려는 의지가 없다. 애초에 아버지가 대령이었다고 하니 가난한 집의 딸도 아니다. 영화 내용에선 등장하지 않지만 아마도 그녀를 헌신짝처럼 버렸을 줄리앙이라는 남자를 죽이고 싶은 마음으로, 무작정 집을 뛰쳐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너무 좋고 부럽고 동경하는 점 첫번째. 저 여주인공 미셸은 결코 자신의 과거를 다 보여주지 않는다. 자신에게 소중했던 사람들의 이름을 콜렉션마냥 알렉스에게 늘어놓는다. 퐁네프 다리를 떠도는 동안 그녀의 과거는 그녀의 가슴에 끔찍하면서도 아름다웠던 파편으로 남은 것이다. 그 장면만큼은 아름다웠다. 장면만.


호오. 그러고보니 싸이코패스에서 나오는 마츠오카는 이 장면을 흉내낸건가. 상당히 로맨티스트한 아저씨인데?
2. 대체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미셸보다 더 종잡을 수 없는 남주인공 알렉스. 그는 미셸을 잡는 자신도, 미셸과 헤어진 줄리앙도 결코 이해하지 못한다. 일단 미셸이 그에게 이야기를 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는 알렉스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언젠가는 자신의 과거를 전부 말해주겠다고, 그 후에 서로 육체적 관계를 맺자고. 2년 후 알렉스와 다시 만날 때도 그녀는 당장 섹스를 하지 못해서 불행한 남자 두 명과 그 두 명을 비웃는 행복한 남자 (오늘이 그날이랜다...) 한 명 이야기를 하면서 분위기를 조성해놓곤 갑자기 피곤하니 집에 가겠다고 말한다. 으악 그만둬 ㅋㅋㅋㅋㅋㅋ 그건 무슨 희망고문이야?
손도 잡고 키스도 하고 기분 내킬 땐 끌어안아도 주지만 절대 몸도 마음도 완전히 내어주지 않는 미셸에게 알렉스는 애증을 지닌다. 그녀를 그리워하며 쉴새없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바보가 되어버린다. 이전부터 자해를 일삼으며 온 몸을 바쳐 자신을 제대로 쳐다봐줄 사람을 찾던 그는, 미셸이 등장하자 완전히 그녀를 위한 사람이 되어버린다. 거짓말도 하고 사랑도 하고 집착도 한다.

3. 살다보면 한두번쯤 해치거나 죽이고 싶은 사람을 만나게 되기 마련이다. 사이코패스건 아니건 간에 인간은 누구나 살인자가 될 수 있다. 전심전력으로 한다면 이 세상에 하지 못할 일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거리가 멀어지고, 괴로운 감정도 사랑하는 감정도 전부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서, 여러가지 요인 때문에 실천에 옮기지 않았다면 그건 또 그것대로 좋은 일이라고 말하고 싶다. 행할 수 있는 권리를 잘라내면서 얻은 자유.
내가 미셸을 두번째로 동경하게 된 건 그녀가 다시 알렉스를 찾아갔다는 것이다. 알렉스는 자신을 나락에 건져서 다시 더 깊은 나락에 떨어뜨렸던 그녀를 쳐다보며 담담하게 말한다.
"넌 애초에 너무 겁이 많아."
이 말 때문에 그녀를 거절할 줄 알았더만, 전처럼 사랑하진 못 한다길래 그런 줄 알았건만 왠걸. 미셸의 몸을 핥듯이 쳐다보는 그의 시선은 결코 이전과 달라진 게 없었다. 미미하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더러운 현실을 삐딱하게 꼬아서 보는 약간의 유머감각이라 해야 할까. 처음 등장했을 때의 절룩거리는 알렉스는 보는 사람이 짜증날 정도로 진지했다.
알렉스는 미셸을 끌어안고 다리 밑으로 뛰어내렸다. 그리고 배를 집어타고 그녀와 여행을 떠난다.
그들이 집착하지 않고, 추하지 않게 사랑하는 법을 익혔으리라 믿고 싶다.
여행을 가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