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삶을 상상하라 - 자유 시장과 복지 국가 사이에서
토니 주트 지음, 김일년 옮김 / 플래닛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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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점점 좁아지는 것처럼 느끼는 방 속, 시시각각 찾아드는 공포 속에서 그는 입으로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었다. 그의 제자들이 그의 말을 글로 옮겨 적었고, 그의 아내와 자식들은 그의 병 수발을 들어 이론이 완성될 때까지 그가 오래 살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리고 그의 강의를 들은 사람들은 책으로 편찬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이 책은 말 그대로 ’만인에 의해’ 만들어진 ’만인을 위한’ 책이다. 그는 자신이 그토록 강조하는 공동체의 덕을 톡톡히 보았다. 솔직히 말해서 토니 주트가 누군지도 모르고 살았던 나는, 이 책을 접함으로서 그가 미국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위대한 사상가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쩌면 그 분도 루 게릭이라는 병을 얻고 나서 좀 더 진솔하게 말할 힘을 얻게 되었을지도 모르지. 그림 한 점 안 실린 이 책에서 그의 단어는 위트가 있고, 시니컬하고, 지극히 반어적이다. 미국인의 필체치고는 매우 이례적이라고 생각되었다. 그의 책이 전부 이런 식인지 아니면 이 책에서만 새롭게 표현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신선하다고 생각했다.
 ’더 나은 삶을 상상하라’라는 제목으로 인해 우리는 미래를 그저 막연히 공상하는 저자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이다. 그의 책은 처음부터 2차세계대전이 지나고 뉴딜정책이 시행되고 사회주의가 실패하고 그 이후의 사회를 지루할 정도로 길게 늘어놓고 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원제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Ill fares the land’. 나의 서툰 해석에 의하면 ’병이 대륙을 망치고 있다.’ 즉 ’병들어가고 있는 나라’ 라는 해석이 딱 어울리리라 생각한다. 즉 그는 미래보단 과거의 일에 근거하여 복지사회주의가 2차세계대전 후의 나라를 얼마나 구해낼 수 있었는지에 대해, 그리고 앞으로의 위기를 사회민주주의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이겨낼 수 있는지에 기술하고 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사회민주주의는 이상적인 미래도 제시하지 않고 이상적인 과거도 제시하지 않지만, 우리가 손에 쥘 수 있는 대안들 중엔 이보다 나은 대안이 없다고 한다. 뭐랄까 이젠 파괴될대로 파괴되서 더 이상 대안을 만들 수 없다는 소리같아서 씁쓸하기도 하고. 좌파가 '과거'를 지키고 자유주의자들이 '혁명'을 주도한다는 소리는 매우 아이러니하게 들렸다. 그 것에 대해서 더 설명을 붙였더라면 좋았을텐데.
 가장 큰 교훈. 우리나라 신자유주의만 자기들 꼴리는 대로 하는 줄 알았는데 미국이나 영국에서도 상황은 똑같다고 한다. 원래 신자유주의 자체가 1~2% 부자들 배때기 채울려고 만든 정책이었나 보다. 쓰레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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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식으로부터 로망스로 인문 예술 총서 24
제시 웨스턴 지음, 정덕애 옮김 / 문학과지성사 / 198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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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여태까지 성배와 롱기누스의 창과 현자의 돌이 따로따로 놀았던 학계의 이론을 하나로 재정립시켜놓아 논문계에 일대혁명을 일으킨 책이다. 라고 하지만 뭐 지금은 성배가 발견되었다고 해도 별 감흥이 없는 시대이다보니 현대 독자들이 이 책을 읽어봤자 그닥 흥분되진 않겠지 ㅋ 아무튼 사후세계가 있다고, 그리고 아직도 비밀리에 그 세계에 산 채로 들어가려고 도전하는 인간들이 있다고 솔직히 밝히는 것만은 신선했다. 보통 문학가들은 선입견과 자존심이 있어서 잘 밝히지 않는 이야기들이니까. 황금가지가 세계의 모든 제식에 비슷한 점이 있다는 사실을 밝힌 책이라면, 이 책은 그 요점을 영국의 아더 왕과 성배이야기에 적용시켜 놓았다. 이야기의 흐름은 꽤나 괜찮았다. 영국인 특유의 ’내 말이 맞았지?’ 식의 으스대는 글을 제외한다면. 아더 왕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필히 보라고 말하고 싶다. 사실 내가 간신히 빌려놓은 ’파르치발’이 성배이야기에 있어서 아무 영양가없는 책이었다고 하니 좀 씁쓸하긴 했지. 퍼시발 성장이야기가 재미있다 하니 어차피 볼 거지만. 아무튼 테니슨이라던가 예센바흐 같은 이름들을 이 책에서 보니 얼마나 반갑던지. 내가 논문거리로 삼을 엘리어트는 당연히 안 반가웠을리가 없고요. 뭐 결국 이 책의 결론은 ’퍼시발이 아니라 가웨인이 먼치킨이에요’라는 것? 사실 아더 왕 이야기 읽었을 때도 나에겐 가웨인 외의 기사들은 별볼일 없었어 ㅋ 퍼시발이랑 란슬롯 뭔가요 그거 먹는 거? 난 온리 가웨인 팬. 
 P.S 인터파크 이거 안 되겠네... 맨날 품절된 책은 소개를 안 시켜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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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 한 포기 다치지 않기를
클로드 안쉰 토마스 지음, 황학구 옮김 / 정신세계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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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제목도 특이했지만 무엇보다도 스님의 다부지고 강인해 보이는 인상이 시선을 끌었다. 사실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제목은 너무나 따스하고 아련한 느낌을 가져다주는데, 스님의 눈빛이 너무나 선뜩해보였기 때문이었다. 말 그대로 ’사람 하나 죽인 듯한’ 눈빛이었다고나 할까. 그는 미국 펜실베니아에서 태어나 18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자발적으로 베트남 전쟁에 참가했다고 한다. 그러나 전쟁의 휴우증이 너무나 깊어서 복귀한 후에 상당한 방황을 겪었고, 결국 스님이 되어 전 세계의 폭력을 막는 일을 택했다고 한다. 그렇다. 그는 반전 운동이 아니라 모든 폭력을 종식시키기 위한 운동을 하고 있었다. 자신의 쓰라린 경험을 숨김없이 드러냈지만, 그 고통을 과장하지도 않았다. 그는 가정에서 벌어지는 폭력도 일종의 전쟁이라고 하면서, 모두가 자신만의 베트남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의 폭 넓고 야심찬 이상이 나에게 깊은 감동을 가져다주었다. 본인도 역시 아픈 과거가 있다. 누구나 다른 사람들은 아무리 사소하게 느껴지더라도 자신에겐 매우 심각하게 여겨지는 과거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이 저서에서 모든 사람들이 마음을 열고 자신의 상처를 다른 사람과 같이 나눈다면 아픔이 줄어들 것이라 이야기한다. 그는 강연에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다른 베트남 참전 병사들과 그에 대한 감정을 교류하며, 마침내 베트남 사람들과 아들과의 교류에도 성공한다. 상세히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아마 클로드 안쉰은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으리라 생각한다. 그가 세계를 횡단하면서 만나고 소통한 사람들 이야기에 특히 관심을 기울여서 읽었다. 모두가 처음에는 상처를 지닌 그를 거부했다. 이 점에 매우 중요한 의미가 들어 있다고 본인은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전쟁국가이다. 대게 남자들은 가기 싫어서 몸부림을 치면서, 일부 남자들은 꿋꿋하게 걸으면서, 더러는 기대에 차서 입대한다. 군대에 갔다온 후, 그들 모두 ’여자들이 듣기 싫어하는’ 군대이야기에 유달리 몰입하게 된다. 그리고 모두 거짓말을 한다. "남자는 군대에 갔다오는 게 좋아. 군대에 갔다와야 남자가 되지." 그리고 신체적 결함 혹은 종교적인 사정으로 군대에 가지 못하거나 가지 않는 사람들을 따돌린다. 자세히 둘러보면, 군대에 가지 않은 사람보다 군대에 갔다온 사람들이 더 전쟁을 두려워하고, 그 두려움을 숨기려 다양한 태도를 취하는 목격할 수 있다. 특히 허풍을 떠벌리는 타입들은 전쟁을 멈추기 위해 전쟁을 해야 한다고 하며, 남한의 대통령이 죽기 전에 북한의 지도자를 죽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클로드 안쉰은 한국에 왔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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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어디에 있든 너와 함께할 거야 내인생의책 그림책 12
낸시 틸먼 글.그림, 신현림 옮김 / 내인생의책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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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씁쓸한 이야기부터 시작하도록 하자. 난 언제나 부정적인 이야기를 먼저 꺼낸 다음에 희망적인 이야기로 마무리하는 걸 좋아하니까. 아이들에게 그림을 보여주면서 한창 읽고 있는데 어떤 아이가 요란스럽게 킥킥거린다. 그 이유를 물어보니 "코끼리는 바다에 살지 않아요." 라고 대답한다.  "물 좋아하는 코끼리는 바다에서 살 수도 있지." 라고 말했더니 "아니에요. 코끼리는 동물원을 더 좋아해요."라고 벅벅 우긴다. 왠지 슬퍼지는 순간이었다. 저렇게 이쁘고 똑똑한 아이들이 철창 안에서 쇠약해지고 병들어가는 동물들밖에 볼 수 없다니. (서울X드 구석엔 동물병원이 있다. 에버랜드는 철조망이 없는 대신 동물이나 새들이 도망가지 못하게 신체 부위 어딘가를 잘라놓는다.) 그림에서나마 자연 속에서 마음껏 춤추는 동물들을 보여주자. 아이들과 같이 마음껏 춤출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자. 요즘엔 돈이 없으면 살아있는 동물을 구경할 수조차 없을 지경이니. 
 언뜻 보면 팝아트같이 생긴 그림이다. 하지만 보면 볼수록 눈이 편해지고 마음이 편해진다. 더불어 감동마저 먹게 한다. 봄여름가을겨울이 온통 뒤섞인 자연의 한복판에서 자연과 벗삼아 놀고 있는 모습이 정겨워보이기까지 하다.
 글은 또 어떤가. 마치 자기 자식에게 말하듯 정성과 사랑이 가득히 담긴 글이 쓰여져 있다. 신현림 시인이 예상대로 잘 번역하셨다는 생각이 든다. 글을 가만히 소리내어 읽으면 마치 소곤소곤 귓가에 속삭이듯이 간지럽게 뜻이 다가온다. 하도 간단하다보니 언급하면 스포일러가 될 듯 ㅋ 말 그대로 아이가 어디에 있던 무엇이 되던 함께 하고 사랑하겠다는 멩세이다. 이 책을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이 그림책에서 더욱 빛이 날 것이다. 목소리가 어떻든 상관없이 저절로 달콤해질 것이다. 그러므로 목소리가 이상해서 고민하는 사람에게도 추천(?)  
 저자 프로필을 보았을 때 오 세상에 ㅋㅋㅋ 깜짝 놀랐다. 기린하고 딥키스하는 사진이 바로 정면에 떡하니 찍혀져 있다니. 동물을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제인 구달이 생각나는 순간이랄까. 그러나 침팬지와 같이 살면서 인간세상과 차단된 생활을 했던 제인 구달의 저서보다는 동물과 인간이 같이 소통하는 이 책이 내게는 더 마음에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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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시간에 영어 공부하기 - 명화를 감상하며 영어도 배운다
박우찬 지음 / 21세기북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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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란을 보고 ’설마’했지만 정말 사전을 방불케 했다. 한 단어를 가지고 어원과 어원의 의미, 그리고 발음기호까지 잊지 않고 붙여놓았다. 꼼꼼하다고 해야 할지 무섭다고 해야 할지... 영어사전으로 공부한 사람들의 특징, 어원을 철저히 파헤치는 것. 책을 펼쳐보다가 이 분 보통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소개란을 봤다. 영어로 독서하는 걸 너무 좋아해서 공부까지 게을리 할 정도라고 써놓았다. 헐 게다가 써놓은 주요 저서는 왜 이렇게 많아요. 한 보따리잖아? 역시 보통이 아니었다. 그 분은 한 마디로 이런 사람이었구나, 싶었다. (어떤 사람인지는 제목을 참조하시길.) 정말 제대로 영어공부한 사람을 찾기 힘든 요즘, 대단한 인물을 만난 것이다. 토익? 토익강의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라. 토익은 영어공부가 아니라 시험공부다. 물론 제대로 영어공부를 하면 토익이야 가볍게 패스할 수 있지만, 저자의 말대로 요즘 사람들에겐 그럴만한 시간과 용기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 영어를 좋아한다고 자부하는 나도 제대로 시작하지 못하고 있는 영역이니까. 음... 생각해볼수록 참으로 부럽기도 하고 질투나기도 하고. 아무튼 이 책은 예술용어도 배울 수 있지만, 영어도 본격적으로 배울 수 있는 책이다. 영문과 학생으로서 추천하겠다. 그러나 단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너무 어렵게 쓰여졌다고나 할까. 말투를 보면 청소년들을 겨냥하고 쓰여진 것 같은데, 미술에 흥미가 없는 사람이 그저 명화 감상할 목적으로 이 책을 읽는다면 금방 질릴 듯하다. 아무리 어려운 예술적 용어들을 간단히 해설하려고 노력한 티가 팍팍 난다지만 사진도 작고 설명은 많고 어려워보이는 영어단어들까지 있으니까. 요즘 아이들이 그만큼 조숙하니 괜찮으려나? 아무튼 모르는 예술단어들을 알게 된 게 무엇보다 반갑고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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