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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비나무의 노래 - 아름다운 울림을 위한 마음 조율 ㅣ 가문비나무의 노래
마틴 슐레스케 지음, 유영미 옮김, 도나타 벤더스 사진 / 니케북스 / 2014년 7월
평점 :
어두운
산중에서 살아남기 위해 위쪽 가지들은 빛을 향해 위로 뻗어 오르고, 빛이 닿지 않는 아래쪽 가지들은 떨어져 나가지요. 바이올린 만들기에 딱 좋은
'가지 없는 목재'가 바로 이렇게 만들어집니다. 수목 한계선 바로 아래의 척박한 환경은 가문비나무가 생존하는 데는 고난이지만, 울림에는
축복입니다.
독일인 바이올린 제작자이자 이 책의 작가, 마틴 슐레스케가 생각하는 좋은 삶은 자기의 행복보다는
남의 필요에 관심을 기울이는 삶이다. 이웃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헤아려보라는 것이다. 이런 삶을 살기란 결코 쉽지 않다. 훌륭한
생각은 북극에 가까운 지대에 살수록 나오는 법일까? 슐레스케가 사는 곳보다 더 고위도에 있는 스코틀랜드에서는 로버트 오언이 개인의 행복은 개인이
속한 공동체의 행복을 늘리는 행동으로만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마틴 슐레스케의 생각보다 더 윗길이다.
이러한 삶보다는 못한
수준의 삶으로, "책임을 다하는 삶"이라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위험의 외주화, 오염의 외부화라는 악덕을 회피하고 제국적 생활양식을 벗어나는
삶으로, 세계의 생태적 원순환 질서에 자신의 삶을 맞추고 세계 어느 곳이든, 자신이 가할 수 있는 해를 최소화하려는 삶이다. 지구의 생태적
원리에 어긋남이 없고, 칸트식 도덕 원칙에 비추어 부끄러움이 없는 삶이다. 물론 이것도 실천하기 쉬운 삶의 양식은 아니다.
그리고 이 두 층위의
삶의 아래로 내려가면, 우리가 그토록 앙망하고, 우리가 그토록 편안해하는 삶, 소확행님이 등장하신다. 자신의 행복이 타인의, 타자의 고통을
얼마나, 어떻게 야기했는지에 관심을 두지 않는 자의, 그야말로 소소한 또는 꾀죄죄한 행복 말이다. 소확행의 본질은, 이러한 전체의 구조(삼층,
사층, 오층의 구조)를 보려 하지 않음이다. 이러한 전체의 실상에 눈을 굳건히 감겠다는 것이다. 앎보다는 무지가 행복에 가까울 것이라는 본능에
기대겠다는 것이다.
책 이야기를 나누다가
요즘의 젊은 독자들은 책을 오브제 또는 굿즈로 구입하는 성향이 커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탕진잼이라는 신조어를 접하며 이 새로운 세대를 어떻게
이해할까 고민이 더 깊어졌다. 공동선이라는 이념이 실종된 시대, 각자도생의 방편으로 굿즈를 소비하며 또 가차없이 내다버리는 시대... 평생
벌어봐야 집도 못 살 텐데 그냥 소소하게 즐기며 살련다가 인생철학으로 둔갑한 세태를 보며 우리 기성 세대가 정말 끔찍한 잘못을 저질렀구나 다시
절망한다. 나이 들수록 소소한 게 좋더라구 ㅠㅠ
독서모임으로 인해 읽게
된 책이다. 중간쯤 읽고나니 얼추 마음에 들어서 이 후속편이라는 책도 구입했다. 주로 내용은 바이올린을 켜기 좋은 나무에 대한 소개와 훌륭한
바이올린을 만들 때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들, 그리고 바이올린을 만드는 장인으로서 화자가 예술가들과 대화를 하며 느꼈던 점들(칭찬만 하고
있진 않아서 웃겼다 ㅋㅋ)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 이후로는 자신의
영적 신념과 관련한 짤막한 글들을 일기처럼 소개하고 있는데, 솔직히 이 부분이 영 지루해서 말이다(...) 어려운 용어를 써도 좋으니 바이올린과
자신의 직업에 대해 좀 더 소개했으면 좋았겠다 싶었다. 그건 2권에서 다루려나?
때로
신은 우리를 '묻는 사람', '구하는 사람', '듣는 사람'으로 남게 하고자 우리에게서 모습을 감춥니다.
성격 나쁘신 거 같은데(...) 일단 화자는 예수님이 한 사람 한 사람의 청원을 들어주신다는
입장이다. 스포는 자제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모든 사람들의 기도를 들어주시지는 않는지에 대해서도 자신의 의견을 밝히고 있다. 즉슨
청이 소명에 맞아야 한다는데, 이것도 지극히 화자다운 의견이었다고 해야 할까.
요점은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 뭐 그런 얘기이다. 다만 니가 까마귀일지도 모르니 자신을 잘 알라는 말을 간접적으로 제시한다. 그리고 후반에는 아무리
악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도 대놓고 내치지 말라는데, 나도 이 얘기엔 찬성한다. 나도 옛날엔 나와 의견이 다른 걸 떠나 사회적으로 옳지 못한 일을
하면서도 그게 틀린 거란 걸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화 많이 내고 살았는데, 시간이 지나니 이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 틀리다고
지적하더라. 사회적인 운동에는 참여하는 게 좋지만, 틀린 짓을 하는 사람하고 쌈박질해봤자 그닥 좋은 건 없는 듯하다. 사실 쌈박질하는 것도 다
어울려 다니려고 하는 짓이다. 그냥 만나지 않는 게 제일 좋지. 그런데 이 작가는 또 위에서 말한 것처럼 공동체를 중시하기 때문에 니 진리만
고집해서 사람을 내치는 게 아닌지 잘 살펴보라고 후반부엔 그런다. 어렵다 어려워..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 로렌츠는 그리던 그림을 북북 찢어 버렸습니다. 선이 삐뚤빼뚤하고 전혀 평행하지 않았거든요. 아들은 스케치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나는 로렌츠가 또다시 그림을 찢어 버릴까 봐, 이렇게 말해 주었습니다.
"로렌츠, 넌 지금
작도를 하는 게 아니란다. 컴퓨터로 그리면 아주 똑바른 선을 그을 수 있겠지. 하지만 그건 스케치가 아니라 작도야. 네 스케치에서 선이 얼마나
곧은지는 중요하지 않아. 그림을 그리는 동안 네 스케치가 어떤 모습이 되어 가는지 유심히 보렴. 네가 그은 선들이 어떤 작품으로 탄생할지
기대하면서 말이야."
한국에서는 약소국을 초승달에 비유하고 강대국은 보름달이라 하며, 초승달은 곧 차오르고 보름달은 곧
줄어드니 약소국도 성장 중이라 이야기했다는 설화가 있다. 그게 꼭 국가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일까? 개인에게도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완벽주의이며 설사 그걸 관철할 수 있다 하더라도 앞날은 현재보다 점점 비뚤어질 뿐이다. 그러고보니 성장소설이나 만화에서도 이런 소재가 자주
등장하곤 하던데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