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과의 춤 2 얼음과 불의 노래 5
조지 R. R. 마틴 지음, 서계인 옮김 / 은행나무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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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책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죽기 전에 천 번의 인생을 산답니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단 한 번의 인생만 사는 거고요.

 

 

  

브랜이 점점 성장해간다.

아니 성장해간다고 할까 점점 세상의 각박함을 알면서 자신이 정상적인 생활을 살 수 없다는 걸 깨닫고

거진 삶을 포기한다고 할까 ㅠㅠ

 

 아무튼 왕좌의 게임, 즉 얼음과 불의 노래는 자비가 없다. 여자고 남자고 아이고 어른이고 가릴 것 없이 주인공처럼 등장하는 인물은 전부 다 불구로 만들어버린다. 브랜은 두 다리가 잘렸으니 당연히 밖에 나다니지도 못한 채 스킨체인저 기술 외엔 거의 아무것도 못하는 상태고, 아리아(애니메이션 아니다. 말상 아리아다.)는 스타크 가문을 몰락시킨 모든 가문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기술을 배우려고 수행에 들어간다. 즉 자신의 두 눈을 멀게 만들어버린다;;; 자이메는 오른쪽 팔을 잃어버려서 그쪽을 전부 금으로 만들었는데, 오토메일이 만들어진 시대가 아니라서 그냥 금팔을 질질 끌고 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전쟁 속에선 사람의 육체가 아무렇지 않게 희생당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 그랬을까? 이러다 혹시 대너리스도 어딘가 불구로 만들어버리는 게 아닌지 불안함이 앞서는데... 나중에 두 번 더 배신당한다고 점쟁이가 예언했으니 말이다.

 

 

  

발라 모르굴리스. 발라 도하에리스.

인간은 누구나 죽기 마련이다. 인간은 누구나 신을 섬겨야 한다. 

 

 마치 이데올로기처럼 이 소설 속에선 어떤 종교를 믿느냐에 따라서 파가 갈린다. 신의 위력이 점점 위축되고 있는 현대에서 이렇게까지 종교를 강조하는 작품은 이젠 얼음과 불의 노래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아이들, 장애인, 난쟁이 등 각종 기형적인 사람들이 등장하지만 그 중 가장 망가지고 천대받고 비웃음받는 사람이 현재 리크라는 가명으로 살아가는 '그 인물'이라는 사실은 어찌보면 굉장히 아이러니하다. 실상 그는 이 소설상 가장 비열한 악한으로 등장해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스스로 망가뜨린, 자신이 그렇게 잘 알고 있는 고장 안을 떠돌면서 착잡해한다. 그리고 그는 그 추억 속에서, 리크가 아닌 자기 자신이 되어 죽고 싶어한다. 손가락 껍질이 벗겨져 차라리 잘라달라고 애원하는 그 고통 속에서도 인간은 결국 자기 정체성을 잃고 싶지 않은 것인가. 어찌보면 굉장한 인간 긍정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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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리색에 흐려진 일상 3 - AK Novel
다테 야스시 지음, 하구미 옮김, 에렛토 그림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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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 혼자서 할 필요는 없어. 널 위해 움직이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 또한 엄연한 네 힘이야.

 

 

  

아마도 작가는 이 소설을 길게 끌 생각은 없었던 모양이지만,

내 생각에 이 소설을 좀 더 길게 끌고 싶었더라면, 스이에 좀 더 초점을 맞춰줬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스이가 메인으로 나오는 3탄에서 일러스트나 캐릭터 굿즈 비슷한 게 쏟아져나온 걸 보면 알 수 있다.

 

 루리가 워낙 시선을 확 끄는 강렬한 끼를 갖춘 캐릭터라면, 스이는 다부진 아가씨 캐릭터이다. 미인이 도리어 연애를 못 한다고 했던가, 그녀는 그런 집안배경 때문에 연애도 못할 뿐더러 친구도 없다. 1권에서는 그나마 유일한 친구였던 루리와 대립한 적도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요괴 퇴치 계열에서 두각이 드러나는 것도 아니다. 확실히 그 집안 가문을 뛰어넘는 최고의 실력자지만 유귀 6마리를 한꺼번에 부릴 수 있는 루리같은 괴물까지는 아니다. 그것 때문에 카리스마가 없다고 평가받는지, 집안 내부에서도 스이를 우두머리로 삼는 것에 대해 찬반이 갈리는 상황이었다. 그 어중간함이 은근한 매력을 풍긴다고 해야 할까. 그림에서도 보다시피 학교 활동을 위해 네코미미 메이드 복장을 입기도 하는 여고생다운 측면도 있어서(사진에선 루리도 메이드복을 입는 것으로 나오지만 본편에서는 학예회 처음부터 끝까지 교복을 입는다.) 여러가지로 인기폭발이랄까. 물론 G컵인 것도 한몫할 것이다.

 

 

  

음양사 내용이라서 요괴를 퇴치하는 장면도 확실히 나온다.

 

 반전은 2권에서 잔뜩 준 힘을 빼려고 생각 외로 수수했다. 하지만 이 책의 매력은 도리어 그 수수함에 있다고 생각한다. 확실히 작가가 내용을 축소시켜서라도 자신의 역량 이상으로 나가지 않고 끝마무리를 잘 하는 편이다.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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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루리색에 흐려진 일상 2 루리색에 흐려진 일상 2
다테 야스시 지음, 하구미 옮김, 에렛토 그림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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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를 위협하는 건 대게 노력하는 인간이다.

 

 

아무래도 요즘 애니화되지 않는 라이트노벨은 완전히 사장이 되는 것인지,

자쿠로의 모습이 그다지 나오지 않아서 안타까웠다. 쩝. 그래도 그림만 놓고 보면 상당한 미소녀인데.

<오빠지만 사랑만 있으면 상관없잖아>에서 비슷한 캐릭을 찾아서 올려본다.

 

 1권에서 두명이 출연했는데, 2권에서도 새로운 캐릭터가 나온다는 설정은 좀 갑작스러운 게 아닐까 생각했다. 난 현실에서와 마찬가지로, 가상현실인 소설에서도 사람 수가 적은 걸 매우 선호한다(...) 게다가 루리와 스이가 만담을 하면서 수위가 좀 있는 섹드립도 주도하고 있는 마당에 섹드립 캐릭터를 더 추가하다니. 그러나 생각해보면 뭔가 새로운 사건을 일으키기 위해, 그리고 작가가 생각하고 있는 악한 천재(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다. 이렇게 말해봤자 반전은 상당히 뻔해서 범인을 금방 간파하겠지만.)를 노력파 자쿠로와 대비시키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던 게 아닐까 싶다.

 확실히 노력하는 천재는 천재도 노력파도 이길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은 천재가 '노력'할 때의 의미이다. 자신의 머리와 힘만 믿고 오랜 시간동안 능력을 키우지 않으면 금방 노력파에게 지게 된다. 노력파들은 일단 집중력이 상당히 높은 편이며, 독한 데가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찌 보면 이길 때까지 자신의 능력을 숨기고 기회를 노리는 무서운 사람들이다. 그 힘을 보여서 천재를 이길 때 그들은 '노력하는 천재'로 업그레이드 되기 때문에. 거짓말을 싫어하는 나도 그들의 '전략'상 거짓말은 상당히 높게 쳐주는 편이다.

 예능상에도 연애상에도 공통되는 중요한 것들이 있다. 바로 가진 능력과 타이밍이다. 선천적으로 지니고 있던 배워서 후천적으로 지녔던 예능은 말솜씨가 있어야 진행된다. 연애에서 필요한 건 당연히 자본이죠 (...) 다들 속으론 인정하잖아? 그 다음으로 타이밍. 인간 관계에서도 그러하지만 너무 느려서도 안 되고 너무 빨라서도 안 된다. 약속 장소에 늦게 도착하면 당연히 비매너로 낙인 찍히지만, 빨리 도착하면 빠른대로 설레발치는 거밖에 더 됨? 그래서 저는 항상 여러분이 질리지 않게 10분쯤 약속에 늦게 도착하죠 찡긋. (?!)

 

  

섹드립 캐릭터가 나와서 소개하는 2015년 7월 방영 예정작. 내가 제일 기대하는 프로그램이다.

섹드립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따분한 세계!

주인공이 신은 스타킹이 별로지만.

호기심 때문에 신어봤었는데 뻑하면 내려감. 허벅지가 끼다 못해 아픔. 결론적으로 왜 존재하지 모르는 스타킹.

팬티스타킹이 최고에요 여러분. (응?)

 

 아무튼 자쿠로가 등장하는 이유가 스토리 전개랑 섹드립 말고도 하나 더 있는데, 3권에서는 그걸 설명하려고 한다.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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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 펭귄클래식 59
윌리엄 S. 버로스 지음, 조동섭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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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르는 사람과 이야기를 하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리에게 경계심을 품지 않았던가. 그런데 무슨 영문인지 리가 친숙하게 여겨졌다. 리의 말에는 그 말 자체보다 훨씬 많은 의미가 담겨 있는 듯했다. 리는 앨러턴에게 다른 때 다른 곳에서 서로 친했던 시기가 있었음을 암시하는 단어나 감탄사를 특별히 강조했다. 리는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너는' 내 말뜻 알잖아? '너도' 생각나지?"

 

 그 뒤 리는 매일 5시 십아호이에서 앨러턴을 만났다. 앨러턴은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과 친하게 지내는 데 익숙했고, 리와의 만남을 기대했다. 앨러턴은 리처럼 대화하는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때로 리가 나타나면 다른 모든 것은 깜깜해지는 듯, 리에게 중압감을 느끼곤 했다. 리를 너무 자주 만나고 있다고 생각했다,
 앨러턴은 구속을 싫어했다. 그래서 사랑에 빠진 적도, 절친한 친구를 사귄 적도 없었다. 이제 그는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리는 나에게서 뭘 바라는 걸까?' 리가 퀴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퀴어라면 어느 정도 분명하게 여성스러운 면이 있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국 앨러턴은 리가 자신을 관객으로 여긴다고 결론지었다.

 

1. 들어가며

 윌리엄 S. 버로스의 초기작품은 <정키><퀴어>, 두 작품으로 요약할 수 있다. 둘 다 윌리엄의 자전소설이지만, 윌리엄은 그 중 <정키>로 인해 문단계에서 떠오르기 시작했다. 작품 중 동성애에 대한 노골적인 비유가 담겨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퀴어 이론 자체가 세워진지 2015년도 현재에서 20년도 채 안 된 상황이다. 그래서 <퀴어>30년간 출간이 되지 않았다가 1985년이 되어서야 출간되었으며, 그로 인해 아직도 이 작품에 대한 제대로 된 분석이 미흡하다. 그는 지우고 싶어도 지울 수 없는 기억을 적어도 담담히 서술하기 위해 작가의 길을 택했다고 <퀴어>의 프롤로그에서 서술하고 있으며, 그 주요 키워드가 동성애임은 소설의 주 내용과 제목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게다가 그는 이성애자인지 동성애자인지 둘 중 하나를 정해야 하는 그 시대의 정체성 문제에도 의문을 던지고 진지하게 성찰했다. 이는 탈정체성을 주장하는 현재 퀴어 이론의 흐름의 단초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이 글은 윌리엄이 <퀴어>라는 작품에서 퀴어를 어떻게 들여다보았으며, 더불어 사회 비판에 어떤 방식으로 퀴어적인 시각을 도입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1) 정의

퀴어

 윌리엄 S. 버로스는 1950년대 미국의 경제적 풍요 속에서 개개인이 거대한 사회조직의 한 부속품으로 전락하는 데 대항하여, 기성 세대의 주류 가치관에 의문을 제기하고 사회의 획일성을 거부하는 비트 세대였다. 이 관점에서 볼 때 퀴어라는 단어는 정상적이 아닌 이상한 것을 일컬을 때 쓰는 말이기도 하다. 실제로 인권운동이 크게 벌어지기 전, 동성애자를 이상하다고 생각한 이성애자들이 그들을 부를 때의 비속어로 썼다. 하지만 현재는 동성애자와 기타 성소수자 모두를 일컫는 포괄적인 용어로 쓰인다. 개중에는 남자와 여자라는 성 정체성을 초월하는 개념으로 쓰이기도 한다.

분열병

 현재는 조현병이라고 불리지만, 작중에서는 분열병이라는 단어에 내포되어 있는 부정적 의미가 그대로 쓰인다. 사고 체계와 감정 반응의 전반적인 장애로 인해 균형적인 사고를 하지 못한다. <퀴어>에서 비유되는 증상 중엔 지나친 긴장감, 기이한 행동이 있다. 보통 환자가 광범위하게 많으며 사회활동에 복귀하기 힘든 만성 환자들의 비중도 많다.

약물중독

 보통 갈망과 금단 증상이 있는 addiction과 인체에 유해한 약물로 인한 신체적 손상이 있는 intoxication이 있으며, 그 모두를 포괄하는 중독이 있다. 작중에서는 주로 addiction 상태를 다루고 있다. 의존성은 몰입과 갈구의 단계, 만취와 중독의 단계, 금단 증세의 세 단계가 있는데, 작중에서는 주인공과 주인공의 상대 모두가 금단 증세를 보인다. 중독은 금단 증상이 사라져도 약물에 대한 집착을 보이기 때문에, 결국 계속 약물을 쓰게 된다. 작중에서는 식물성 환각제가 주로 언급되지만 모르핀이나 기타 의약품도 등장한다.

 

 

 

2. 중독자와 투명인간, 그리고 만남.

 <퀴어>는 크리스토퍼 이셔우드의 작품 <싱글맨>과 함께 퀴어 문학의 양대 산맥을 이루는 작품이다. 둘 다 50~60년대 쓰여진 작품인데, 자유주의 운동이 한창이지만 아직까지 동성애자들에 대한 핍박이 만연했던 시대이다. 이 소설에서뿐만이 아니라 현재에서도 성소수자들은 투명인간 취급을 받는다. 분명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사람 취급을 받는 것이다. 성소수자 인권운동의 고전적인 슬로건은 'We are everywhere.' (우리는 어디에나 있습니다.)이다.

 이성애자가 주류인 사회에서는 재생산을 최고의 가치로 친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도 결혼을 하지 않는 사람은 병리적인 것으로 취급한다. 주인공 리는 퀴어로서 이런 극단적인 이분법적 사고관에 분노한다. 한 예로, 멕시코 마초를 '똥싸개'라고 욕함으로서 극단적인 이성애적 사고관에 대한 거부감을 표시하는 것을 들 수 있다.

 그런 반사회적 퀴어로 자신을 정의하는 리는 술집을 전전하며 자신과 마찬가지로 퀴어인 미소년들과 가벼운 데이트를 즐기지만, 그 관계는 결코 통상에서 이야기하는 연애를 포함하여 그 이상의 단계로 나아가진 못한다. 즉 잡담을 던지는 것 외의 자기 발전의 기미가 없으며, 미소년들도 그의 말에서 무언가 의미를 발견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커뮤니케이션의 단절과 동성간의 헌신, '중독성'이 없는 데서 리와 소년들 사이엔 한계가 있다. 그가 소설에서 거론하는 중독이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있는 그대로의 타인을 만나는 것을 상징한다. 혹은 적어도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낼 수 있을만하다고 타인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을 상징한다. 이에 대한 예시는 리와 앨러턴이 의미 있는 만남을 가졌던 장면에서 찾아볼 수 있다.

 

리는 고상한 구세계 인사법으로 고개 숙여 절하려고 앨러턴 앞에 섰다. 그러나 대신 벌거벗은 욕망에서 나온, 불행한 육신에 대한 고통과 증오로 뒤틀린 추파가 흘러나왔으며, 그와 동시에, 놀랄 만큼 그 시각과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토막 나고 절망적인, 다정한 아이의 미소처럼 애정과 신뢰를 담은 미소가 이중으로 흘러나왔다.

 

 그러나 한편으로 리는 인간이 결코 사회적 시선으로부터 도피할 수 없음을 직감하고 있다. 범죄가 난무하는 멕시코에서 그는 항상 돈과 권총을 지니고 경계의 시선을 늦추지 않은 채 살아가고 있다. 그는 그 두려움을 앨러턴에게도 그대로 가지고 있다. 그는 자신이 퀴어이고, 앨러턴을 좋아한다고 솔직하게 고백하다가 거절당하거나 무시당할까봐 극적인 상황을 피한다. 아래에 있는 리의 발언은 그가 필사적으로 동성애자에 대한 멸시의 발언을 함으로서 퀴어에서 먼 자신을 연기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이와 더불어 그는 앨러턴에게 자신을 동정해줄 것을 호소한다.

 

"저주야. 몇 세대에 걸쳐서 우리 집안에 계속되고 있지. 리 가문 사람들은 늘 변태들이었어. '나는 동성애자다.' 그 치명적인 말이 내 어질어질한 머리에 낙인을 찍었을 때 느꼈던 공포는 절대 못 잊어. 말로 다 할 수 없을 공포였어. 내 분비샘의 림프가, 그러니까 림프샘이, 얼어붙었지. 볼티모어 나이트클럽에서 짙은 화장을 하고 히죽히죽 웃던 여장 남자들을 본 적이 있는데 그 사람들이 떠올랐어. 내가 그런 인간 이하의 괴물이라니,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가벼운 뇌진탕을 일으킨 사람처럼 멍한 상태에서 거리로 나갔지."

 

 앨러턴은 리의 연기하는 듯한 말투를 지켜보면서, 그 말에 흥미를 가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그에게 중압감을 느끼기도 한다. 장 콕토의 연극 <오르페우스>를 보고 나누는 리와 앨러턴의 대화에서 볼 수 있듯이, 둘의 사고방식엔 명백히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콕토에서 재밌는 건 신화를 현대적인 상황에서 살아 있게 만드는 능력이야."

"실화일 수는 없을까요?" 앨러턴이 말했다.

 

 마초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퀴어도 아닌 '평범한' 인간 앨러턴은 미군 대학에서 린치에도 가해자로서 합류한 적이 있다. 구속을 싫어하기 때문에 사랑에 빠지거나 매우 친한 친구를 사귄 적도 없다. 그는 리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지만, 몸도 마음도 어느 정도 거리를 두려 애쓴다.

 

어두운 극장에서 리는 자기 몸이 앨러턴을 향해 기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상대의 몸에 들어가고 싶은, 그의 폐로 숨을 쉬고, 그의 눈으로 보고, 그의 내장과 생식기의 느낌을 익히고 싶은, 맹목적인 벌레 같은 허기로 팽팽해진, 아메바 같은 원형질의 투사. 앨러턴이 앉은 자세를 바꾸었다. 리는 날카롭게 쑤시는 아픔을, 영혼이 삐거나 탈골된 기분을 느꼈다. 눈이 아렸다. 안경을 벗고 감은 눈을 손으로 문질렀다.

 

 리는 자신의 본래적 자기를 서서히 드러내려 하지만, 앨러턴은 그를 병자 취급하며 피하려 한다. 이는 리에게 또 다른 상처를 준다. 특히 육체적 접촉이 거부되었을 때 느낀 정신적 상처를 그는 육체적 상처처럼 생생히 표현한다. 그는 자신이 '퀴어가 아니라는' 한 동성애자의 말을 인정하는 자세를 취하며, 자신이 정신분열자라고 말한다. 이전에 자신을 동성애자라고 정의했던 때에 비해서 자기비하가 더욱 격화되었지만, 그는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은유적인 비유를 멈추지도 않고, 자신의 '뮤즈'인 앨러턴을 포기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이 긴장은 리와 앨러턴이 남미로 여행을 떠나면서 더욱 격화된다.

 

 

 

3. 야헤와 큐라레, 그리고 이별.

 주인공 리를 상징하는 정신분열증은 그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앨러턴에게서 자신이 바라는 것과 똑같은 강도의 사랑을 얻지 못하는 데서 오는 그의 단절감을 상징한다. 심리학적인 시각에서 볼 때, 분열병 친화자는 과도한 엄밀성을 추구해 두뇌회로상의 완전 미분을 추구하려 하면 상대의 초기 움직임에 휘둘려 완전히 인지 불능의 상태가 된다. 더군다나 증세 초기에 달한 사람들은 불안 증세를 보일 때 상대에 대한 완벽한 예측을 하려는 시도를 보인다. 즉 상대의 미세한 움직임에도 지나치게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처럼 점점 속도가 붙어가는 '출력'(수신)에 비해 '입력'(발신)이 지지부진하다. 리의 은유는 점점 한계에 봉착하기 시작하며, 앨러턴 간의 대화는 점점 단조로워지기 시작한다. 리는 노골적으로 앨러턴에게 중독된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는 첫째로 리와 앨러턴이 마약에 관련되어 금단 증세를 겪는 장면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리가 먼저 심각한 건강 악화를 보이고, 그 둘은 약국을 찾아 돌아다니지만 리의 수중에 돈이 충분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가차없이 무시당한다. 그들이 마약이라는 금기와 터부를 깼기 때문이다. 둘째로 리가 앨러턴을 만난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멕시코에서 동성애자인 자신을 동정해 줄 것을 호소했던 것처럼, 그는 남미에서도 또 다른 비유를 사용해 앨러턴에게 호소한다.

 

"정말이야, . 너는 불공평하게 이용한 적 없어? 나는 중독자가 아닌데 옆에서 누가 금단증상을 겪고 있는 상황이나 마찬가지야. 그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는 거야. '정말 아파? 네가 왜 네 역겨운 몸 상태에 대해서 나한테 이야기하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아파도 최소한이라도 체면이 있으면 혼자 견뎌야지. 네가 재채기하고 하품하고 토하는 걸 옆에서 보는 게 얼마나 역겨운지 네 스스로도 알아야 해. 내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가면 안 되는 거야? 넌 네가 얼마나 비위에 거슬리는지, 또 얼마나 혐오스러운지 전혀 모르고 있어. 자존심도 없어?'"

 

 리는 이렇게 명백히 앨러턴에 대한 욕망을 앓고 있지만, 그것을 사랑이라고 명확하게 표현하지 못한다. 리의 대화에서뿐만이 아니라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이라는 단어는 등장하지 않는다. 리는 프롤로그에서 앨러턴을 자신의 뮤즈, 즉 자신의 영감을 불어넣어주는 신화 속 여신으로 표현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앨러턴을 유령같은 존재라고 말한다.

 이 양가적인 감정을 없애고 앨러턴을 완전히 독점하기 위해 리는 텔레파시를 쓰려고 한다. 자신의 명령을 주입해서 그의 의도가 상대의 의도가 되는 것이다. 텔레파시를 쓰기 위해선 야헤라는 풀이 필요하다. 그는 이성애자만 사회에서 인정받는 현실을 통제하고 싶어한다. 전복적 유토피아를 건설하기를 꿈꾸는 것이다. 리는 투명인간에서 벗어나 자신이 스스로 수신자가 되고 싶어한다. 물론 상대는 앨러턴이다.

 

"물론 자신이 명령을 내리는 사람이어야 멋진 그림이 되지. 자동 복종. 합성 인공 정신분열증. 명령하기 위한 대량 생산품. 그게 러시아의 꿈이야. 미국도 그리 별다르지 않고. 두 나라 관료들이 바라는 건 똑같아. 통제지. 초자아, 즉 통제 기관은 광포해졌고 치료가 불가능하지."

 

 그러나 이는 동시에 앨러턴에 대한 애정을 끊고 싶은 리의 절망감을 상징하기도 한다. 야헤를 찾아다니던 그들은 야헤와 발음이 비슷한 아야와스카라는 풀이 있으며, 코터라는 사람이 그 풀을 지니고 있다는 소문을 입수한다. 아야와스카는 환각제 작용을 하는데, 인디언들에게는 주술에 쓰인다. 여기서 샤먼이 등장하고, 다시 정신분열증에 대한 암시가 등장한다. 샤머니즘은 분열병 친화자가 분열병자가 되는 걸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인디언들은 가능성이 있어보이는 아이가 사춘기가 되면 샤먼 학교에 들어가게 하는데, 교과목 중에 환각 능력을 가르치기도 한다. 그렇게 샤먼이 되면 병을 치료받은 사람이 샤먼이 되어 병을 치료할 수도 있다. 맛은 역하지만 적어도 금단현상은 없다. 이렇게 볼 때 리가 만일 아야와스카를 손에 넣을 수 있다면, 마약 중독도 앨러턴에 관한 그의 중독도 모두 치유되는 효과를 얻는다. 리는 앨러턴도 마찬가지로 치유하여, 또 다시 그와 순수한 세계에서 다시 만나고 싶어한다.

 하지만 코터는 리와 앨러턴이 배반한 파트너 질의 앞잡이가 아닌지 의심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그에게서 불신을 받는다. 또한 그는 백인 주술사이긴 하지만, 남미 인디언의 화살촉에서 큐라레를 구해서 약재로 만드는 데 온통 정신이 팔려있다. 큐라레는 사냥을 할 때 쓰는 마취제, 즉 독이다. 리와 앨러턴의 여정은 그 쪽에서 막히고 만다. 동시에 그들의 관계는 그 곳에서 꼼짝없이 마비된 것이다. 에필로그는 그들의 여정이 끝난 이후를 그리고 있는데, 리는 잠시 여행을 하다 멕시코로 돌아오고 그 사이 앨러턴은 어딘가로 사라져버린다. 어떤 장교 부부의 가이드가 되었다는 소문만 돌 뿐이었다.

 

 

 

 

 

4. 결론

 윌리엄 버로스는 소설에서 일어난 사건 이후로 아내 조앤과 결혼했지만, 그 결혼생활도 19519월 그녀를 실수로 쏘아죽임으로서 막을 내리게 된다. 그는 그 사건을 계기로 하여 이 글을 쓸 결심을 하게 되었다고 이 소설의 프롤로그에서 밝히고 있다. 그는 그 사건으로 인해 마음에 상처를 입었으며, 이 상실감은 앨러턴을 잃은 기억을 그의 뇌리에 상기시켰다. 비록 전자는 돌이킬 수 없는 사별이고 후자는 대상의 생사도 모르는 일방적 이별이지만, 둘 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경험임에는 틀림없다. 그래서 연애와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씀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의 분위기는 무거울 수밖에 없다. 이 소설의 참 주제는 상실과 실패였기 때문이다.

 윌리엄 버로스는 앨러턴이란 대상 자체가 아닌 자기 자신의 마음을 제 3자의 입장에서 들여다보면서 글을 쓰고 있다. 그는 자신이 그동안 앨러턴에게 들려준 이야기가 앨러턴에겐 불편할 수 있었다고 인정한다. 앨러턴과 리가 같이 살거나 여행하는 곳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가 묘사하는 곳은 멕시코이던 남미던 매우 불결하고 사람들은 끊임없이 리에게 경계심을 가지거나 혹은 돈을 요구한다. 그는 전반적으로 앨러턴의 마음을 얻는 데 실패한다.

 리는 작중에서 정신과 의사에 의해 자신의 어머니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하는 어떤 사람의 고백을 비웃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신이 정신과에서 받은 동성애자라는 낙인을 두려워한다. 인생에서의 거듭되는 실패로 인해 자신의 마음 속에서 더욱 거세게 날뛰는 악령을 두려워한다.

 

그리고 정말이지, 심리학의 개념은 악령이라는 실체가 만들어낸 것일지도 모른다. 숙주를 사로잡고 있는 악령에게는, 자신이 그 숙주와 구별되는 별개의 침략적 생물체로 보이는 것이 가장 위험한 일이기 때문이다.

 

 에필로그에서 앨러턴이 리를 떠나 소리없이 사라진 이후로 리는 계산적으로 사람을 대하기 시작한다. 연기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숨기듯이 드러내지도 않는다.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는 데 최대한 신경을 쓴다. 상업적으로 접근하는 타인에게는 모질고 차갑게 군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멕시코를 돌아다니며 앨러턴을 찾는다. 또한 사진기를 들고 다니며 촬영을 하기 시작한다. 대상이 정해져 있진 않지만, 멋진 몸매의 남자도 사진에 담는다. 그는 마음을 닫은 채 자신이 퀴어인 걸 세상에 내보이지 않지만, 외면하지도 않는다.

 그는 꿈에 윌리라는 자신의 아들이 울고 있는 모습을 본다. 죄수복과 같은 옷을 입고 사람들의 멸시를 받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들, 즉 자신의 분신을 끌어안는다. 자신과 자신의 안에 있는 어린아이를 받아들인 채, 꿈에서 깨어난 그는 돈을 원동력으로 삼아 손아귀에 움켜쥔 채 계속 움직인다. 그는 이성애자들의 세상에서 성 소수자인 자신을 '스스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 그 무언가를 계속 찾는다. 자신의 불행에 대해서 냉소적으로 비웃지만, 결코 삶의 의지와 희망은 놓지 않는다. 윌리엄은 자신과 앨러턴의 이야기를 소설로 씀으로서, 그의 모습과 생각과 동작 하나하나를 사진처럼 묘사하여 텍스트에 담는다. 그는 소설을 쓰면서 마음아파하지만, 퀴어로서의 자신을 완성시키고 앨러턴을 가슴에 품는다.

 최근 심리학 학계에선 분열병이 사람마다 천차만별로 다르며, 어느 사람에게나 분열병 증세 비슷한 현상을 느끼는 순간이 있을 수 있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윌리엄은 퀴어를 분열병과 동일시한다. 여기서 아이러니하게도 자기 긍정이 희미하게 나타나기 시작한다. 사회학에서는 동성애 기질이 거의 모든 사람에게 어느 정도 섞여있으며, 그 정도는 천차만별로 다르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윌리엄 버로스는 앨러턴과 본래적 모습으로 만나는 데 실패했다. 자신이 원하는 사람과 같이 샤머니즘에 귀의하여 온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전복적 유토피아를 건설하지 못했다. 그가 완성한 소설은 매우 공격적인 문체로 쓰여져 있지만, 사회를 변화시키지는 못했다. 그러나 윌리엄은 자신의 정체성이 어느 쪽인지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이미 그는 정체성을 초월하여, 끊임없이 없애려 노력해도 제거에 실패한 자신의 악령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이런 모습은 마약을 끊으려 노력하지만 결국엔 끊지 못한 윌리엄 버로스의 소설 <정키>에서도 드러나 있다. 그리고 그의 자기인정은 최근에 와서야 문학계의 인정을 받고 있다. 사회의 주류인 이성애자들에게도 보답받지 못하는 사랑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독자들은 <퀴어>를 읽으면서 그의 노골적인 사회 풍자와 경멸에 불쾌해하지만, 그의 사랑 이야기엔 일정 정도의 공감을 드러내며 작중의 리와 같이 슬퍼하기도 하고, 그를 불쌍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게다가 리를 쫓아낸 미국은 이제 그를 알게 모르게 속박했던 초강대국으로서의 힘을 잃었다. 그의 기록은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법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만들며, 날카롭지만 새로운 시선을 부여해준다. 비록 리는 소설 속에서조차 자신의 이상적인 세계를 만들지 못했지만, 그와 세계의 싸움은 적어도 현재진행형으로 끝난다.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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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새장 속의 왈츠 - 거짓말쟁이 신부의 비밀
니가나 지음, 이기선 옮김, 스오 유미 그림 / 앨리스노블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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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 원하신다는 말씀이시군요, 여왕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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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앨리스노블 TL은 성인 여성층을 노린 라이트노벨만을 선정하여 출판하는 출판사이다. 처음에는 할리퀸 소설의 아류 정도로만 생각했는데(이렇게 얘기하고 예시를 찾아보려고 했는데 할리퀸 소설에 대한 리뷰가 하나도 없어서 충격먹었다. 생각해보니 할리퀸 소설은 나도 중고등학생 시절 때 잠깐 푹 빠진 장르라서 그런 듯하다. 일단 읽을 예정인 할리퀸 책 두 권이 있으므로 결국엔 리뷰하겠지만, 일단 대표적인 추천작으로 '라이언의 딸'을 꼽겠다. 다시 말하지만 영화가 아니라 로레타 체이스라는 사람이 쓴 로맨스 소설이다. 로레타 체이스는 이 작품 말고도 라이언의 딸 후속작인 '밤의 포로', 제목으로도 내용을 얼추 알 수 있는 '미녀와 야수', 비어 말로리라는 초개성적인 망나니가 나오는 '마지막 스캔들'같은 주옥같은 작품들을 썼다. 여기서 짐작하시겠지만, 이 작가는 제로스에서 실루엣이 그려진 본인의 이상형을 구체적으로 완성시키는 역할을 했다.), 수위가 생각보다 훨씬 높았다. 정말 괜히 19금 표제를 단 게 아닌 듯하다. 일단 여자가 '~해요'라는 문체를 쓰고 남자가 '~하오'라는 문체를 쓰는 신영출판사 전용 번역체(...)가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일러스트가 나오는 게 장점인 듯하다. '꿀'같은 단어는 할리퀸에서도 자주 나오는 단어이지만, 남성향의 소설에서 나올 법한 'X봉'이라는 단어를 등장시킨 건 새로웠다. 원문(일본어)으로는 어떻게 나왔을지 궁금하다. 아무튼 나에겐 상당히 신선한 번역이었다.

 

 하지만 할리퀸과 내용상에선 별 차이가 없는 게 아쉬웠다. 아니, 라이언의 딸과 비교하면 도리어 '당당한 여성'의 기준이 약해진 것처럼 보인다. 일단 이 책에서 여주는 자신을 외모를 시기하는 여성에게 한 마디 하는 등 도도한 모습을 보이지만, 결국 아버지의 말에 따라 자신의 의도가 아닌 정략결혼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양상을 보인다. 결혼식 직전에 도망가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그 전엔 자신이 짝사랑하는 남성(알폰스)에게 그야말로 '조교당하는' 모습을 보인다. 염탐수위를 높이려면 당연한 양상이겠지만... 게다가 결혼 전에 알폰스을 보러 가는데, 그 목적이 남성이 자신을 미워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남성을 미워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참, 무슨 자신감인지 ㅋㅋㅋ 니가나 작가 아닌 다른 작가는 어떤 글을 썼을지 궁금했는데, 검색해본 결과 현재 여성향 성인 라이트노벨 계열에서는 아무래도 이 분이 주름을 잡으시는 듯하다. 게다가 이런 장르가 생겨난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하니, 다른 작가들도 아직까지는 어느 정도 니가나 작가를 따라서 글을 썼을 것이라 생각한다. 사실 할리퀸에서도 납치나 감금같은 요소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긴 하지만. 아무래도 내가 좋아하는 '신선한' 내용이 나오려면 어느 정도 기다려야 하지 않나 생각된다. 일단 이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굉장히 본능에 충실한 소설이므로, 그런 목적(?!)으로 본다면 왠만한 기준치를 달성하고도 남을 소설이라 평가하겠다.

 

 또 여담이지만 신영출판사는 이 앨리스노블 등의 라이트노벨과는 달리 아직도 건재하며, 계속 자신들의 전용 번역체를 쓰고 있음을 알리는 바이다. 최근 나온 소설 중 추천작으로 레베카 윈터스의 '사막에서의 하룻밤'이 있다.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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