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라이브! School idol diary 2 - ~소노다 우미~, L Novel
키미노 사쿠라코 지음, 원성민 옮김, 무로타 유헤이 외 그림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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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뒤로 돌아서면ㅡ지금까지 지나왔던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아키하바라의 빌딩들이 시야에 들어옵니다.
그곳을 나와서 커다란 도로를 몇 개 건너고, 이렇게 돌아온 저희의 마을에서 바라보니......
그곳은 마치 주위의 어둠 속에서 떠오른 커다랗고 눈부신 섬처럼 느껴졌습니다.
두 곳으로 나뉜...... 피안과 차안.
가슴이 먹먹해져 오고.
습하고 서늘한 바람이 선뜩 불어와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갑니다.
"꽤 많이...... 변했구나."
어느새 곁으로 다가와 저처럼 아키하바라의 눈부신 빌딩 숲을 바라보고 있던 호노카가, 혼잣말하듯 툭 내뱉었습니다.

 

  

일단 우미는 알면 알수록 매력적인 캐릭터다. 

 

 각본가부터 이 캐릭터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 러브라이브의 기본적인 골격이 마을과 마을에 위치한 학교에 대한 사랑을 기초로 하는 만큼, 옛날부터 마을의 전통을 지켜왔던 그녀의 위치는 범상치 않다. 어머니가 일본의 전통 춤을 배우고 있고, 아버지는 일본 검도에 정통한 분인 만큼, 모든 스포츠와 도예에 만능인 그녀는 상당히 완고하고 도도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런 만큼 그녀의 인기는 수직하강하기 딱 좋았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데릴 사위로 장가갔었다는데, 남자의 자존심을 아직도 고집하는 고지식한 파오후 남자들 사이에서 솔직히 우미에게 장가가겠다는 인간이 어디 있겠는가.

오타쿠 계열에서 부잣집 도도한 아가씨를 보는 시선은 조금 복잡하다. 집안에서 교육을 잘 받아서 순결은 잘 보전하고 있을 것 같지만, 교육을 받은 만큼 모든 남자들이 자신들의 레벨에서 가르치기 딱 좋은 백치미와는 억만년 거리가 멀어진다. 그러나 소노다 우미의 경우 점점 첨단 도시로 변해가는 옆 마을 아키하바라가 자신의 마을까지 점령할까봐 걱정하는 그런 안타까운 시선으로 세상을 보아야 하는 캐릭터이기 때문에, 그녀의 철벽같은 도도함을 무너뜨리기가 보통 까다로운 게 아니다. 똑똑해야 호노카의 그림자던 뭐던 될 수 있으니까. 그래서 각본가가 택한 방법은 성우계에서 제법 관록이 있는 미모링을 우미 성우로 채택하는 것이었다.

 

그 다음으로 풍부한 표정을 그려넣었는데, 언뜻 보면 단순해보이지만 이게 각본가 쥿키의 신의 한 수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때문에 소노다 우미를 놀리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녀의 오묘한 표정을 캡쳐해서 올려대기 시작했고, 결국 그녀의 3D같은 면모를 좋아하는 미묘한 팬층이 만들어졌다. 그렇게 마이너틱한 유명세가 붙으면서 여성들이 뮤즈 팀원 중에서도 유달리 튀는 우미를 좋아하기 시작하고, 러브라이브 팬층 자체가 단순히 아이돌로서의 면모만을 좋아하는 것만이 아니라 뮤즈의 다른 점들도 의식하기 시작하는 등 다양성을 띄게 되었다.

 

 

그리고 우미의 매력을 알려면 애니 자체에서 끝내지 말아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TVA와 달리 드라마 CD에서는 영상편지 끝에 키스를 날리는 의외성을 보이며, 장난기도 풍부하다. 그리고 스쿨 아이돌 다이어리에서 호노카를 사모하는 듯한 돌직구들은 확실히 그녀의 독백에서만 나올 법한 것들이다. 이걸 입밖으로 꺼낸다면 호노카-코토리-우미 삼각관계를 깰 수 있을 텐데. (호노카와 니코를 제외한) 러브라이브 팀원들도 왠지 우미에게 러브콜을 마구 날리는 기세여서 심상치 않았다. 특히 마키가 자기와 사귀어 달라는 등 엄청나게 달라붙었는데, 아니 니코는 어쩌고 여기서 그러시나요...?

 

팬층에서는 우미와 코토리를 맺어주는 경우도 있지만 그러기엔 스쿨 아이돌 다이어리에서 우미의 호노카에 대한 공세가 너무 강하다. 일단 몇 글귀만 뽑아보자.

준비운동을 하던 중이라 린과 서로 등을 맞댄 채 팔을 엮고 있던 호노카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늘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느껴지는, 동그랗고 커다란 호노카의 눈.

 

호노카가 없는 뮤즈는 역시 어딘가 부족해 보이거든요. 마치 레몬 조각이 들어있지 않은 콜라처럼. 겨자를 뿌리지 않은 우무묵처럼. 팥이 빠진 녹차 팥빙수처럼ㅡ무언가 허전한 느낌이 드는 거예요.

 

마음 속의 모든 것을 차지하고 마는 순수한 동경심. 그것은 자신의 의지로 컨트롤 할 수 없는 감정이니까요.
제게도 그런 기억이 있습니다.
매우 눈부시고도 매우 소중한 사람. 반짝반짝 빛나는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자신은 결코 그렇게 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게 되는 동경하는 사람이 있고- 설령 그 대상과 성별이 같더라도, 그런 것과는 관계없이 그저 순수한 마음으로 상대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지요.
다만 저 같은 경우에는 그 상대가 극히 가까운 곳에 있으며, 이따금 그 마음이 저를 극심한 혼란의 도가니에 밀어 넣기도 할 뿐.......

 

태어나기 전, 어머니의 배 속에 있던 시절부터 쭈욱 소꿉친구인 저와 호노카.
분명 이대로 어른이 되어서도.
아줌마가 되어서도.
할머니가 되어서도.
저희 두 사람은 지금처럼....... 같은 장소에서 함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제까지라도.......

 나중에 코토리 버전에서 상세히 쓸 생각이지만 호노카의 친구는 우미 말고도 코토리가 있다. 아무래도 의식적으로 코토리를 언급하기 피하는 이유는 질투가 나서가 아닐까? 자신이 먼저 호노카와 친했는데 코토리가 끼어들었고 심지어 그녀는 여성스러운 면모가 충만하니까.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고 본다. 우미가 부끄럼을 타기 때문에 호노카에게 자신의 애정을 어필하지 못하는 소극적인 성격이라면, 코토리는 결정적인 순간에 용기가 없어서 호노카에게 어필하지 못하는 성격이다. 어찌보면 상당히 우유부단한 성격인데, 그에 비해 우미는 호노카에게 한결같은 마음을 품고 있어서 나는 그 점이 마음에 든다. 호노카와 코토리가 죽을 때까지 친구가 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는데 확실히 호노카와 우미는 죽을 때까지 친구가 되는 것도 가능할 것 같다. 호노카 어머니와 친한 우미 어머니가 적극적으로 밀어주는 것도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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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북쪽
마르셀 서루 지음, 조영학 옮김, 무라카미 하루키 후기 / 사월의책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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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들은 우리와 다릅니다. 땅 한 뼘을 내주면 한 평을 가져갑니다. 우리가 땀을 흘려 모아놓은 먹거리를 내주면 등 뒤에서 바보들이라며 비웃을 뿐입니다. 예, 저자들도 보답이야 하겠죠. 여러분들은 제 아버지와 똑같은 선물을 받게 될 겁니다. 바로 사방 2미터짜리 무덤 말입니다."

 

  

전형적인 디스토피아 세계의 소련에서 혼자 살고 있는 메이크피스는 얼어 죽더라도 책을 불태우는 게 제일 싫은 사람이다. 어느 날 한 사람이 책을 불태우려 하는 걸 발견하고 총으로 쏘았지만, 곧 자신이 실수했다는 걸 알고 자책감에 집으로 데려간다.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상당히 어렸던 데다 그가 가지고 있던 무기라곤 녹슬어빠진 칼밖에 없던 것이다. 무엇보다 그'녀'는 임신하고 있었다.

 

 주인공이 세상 험한 일 다 겪은 지혜로운 여성인지라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는 데 상당히 경계를 한다. (얼마나 조심했으면 빌 에반스가 죽은 이야기는 쏙 빠졌을까... 랄까 작가님 소설 써가다가 중도에 설정 빼먹은 건 아니죠? 그렇다고 말해줘?!) 회상 장면은 공간도 시간 개념도 완전히 무시했기 때문에 소설 내용을 잘 읽으려면 머리를 많이 굴려야 한다. 일단 비유를 이해하지 못하고, 세상 사는데 눈치 빠른 사람이 아니라면 대체 주인공이 뭔 소릴 하는지 하나도 모를테니 읽지 말길 추천한다. 반대로 말하자면 사람들이 자신을 비꼬는 말을 하고 있는지, 액면 그대로 말하고 있는지 심중을 파악하는 훈련은 아주 잘 된다. 이 소설에서는 유달리 "저 새끼는 도대체 어떻게 저 판국에서 살아남은 거야?" 라고 말할 만한 사람이 전무하다. 다시 고쳐 말하자면, 전부 죽인다. 내가 디스토피아 소설 정말 좋아하긴 하는데, 정말 이 소설은 주인공 너무 빡세게 굴린다. 얼굴에 염산 끼얹고 애를 두 번이나 사산시키는데 하물며 친구까지 없어...

 

  

나는 굉장한 사람이고, 생존력이 높아. 그런 사람들은 물론 어디에나 있다며 말하고 있지만 은근 자신이 힘센 남자들 패거리에 끼어있다고 자랑하는 것도 사실이었다. 누군가가 이런 특이한 나를 발견하고 데려가주길 바란다는 건 희망이 아니라 어찌보면 자만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걸 단지 신데렐라 콤플렉스라 할 수 있을까? 어쩌면 주인공은 포기했을 수 있다. 일단 고향집에 돌아가지만 마을은 커녕 가정도 만들지 못했고 말이다. 그렇게 힘들게 사회에 편승하려 노력했는데 할머니가 되도록 늙었는데도 이웃 간 최소한의 물물교환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전부이다. 아무튼 소설이 다 끝날 때까지 메이크피스는 아직도 소련 땅 내부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사실 메이크피스의 결정적인 실수는 쓸데없는 희망을 품기 이전의 문제이다. 평생 그녀는 종교를 맹신하는 아버지가 선한가 악한가에 너무 집착했다. 사드라던가 하는 민감한 사안이 세상의 이슈가 될 때는 그에 대한 많은 의견을 들어봐야 하고, 최소한 찬성과 반대 둘 다 의견을 들어봐야 한다. 그러나 그녀는 '책을 읽어봤자 머리만 아프다'라고 한다. 대부분의 술자리에서는 핵발전소라던가 정치 의견같은 주제가 금물인데, 그걸 금물이라고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사람들 머릿속엔 분명 99.9% 맹신적으로 믿는 어떤 사상이 있다. 결국 메이크피스는 죽는 날까지 책을 땔감으로 쓰지 않으리라. 하지만 이 소설의 처음부터 그녀가 책을 읽는 장면은 어디에도 없었다는 걸 명심하자.

 결론을 내리자면 나는 이 책이 마음에 들었다. 방사능과 탄저균이 마구 뒤섞인 디스토피아는 좀 억지가 아닐까 싶기도 했지만 둘 다 현실에 존재하는 무기인지라 지적할 수가 없다. 아니, 오히려 요즘 판타지 소설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는 잔인한 설정을 마음껏 보여주었다. 이 책을 아주 좋아한다는 무라카미 하루키는 역시 예상대로 변태였나. (?) 또한 여자는 무기를 만든들, 힘이 센들, 숫자가 많아진들 결코 남자에게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설정도 마음에 들었다. 요즘 페미니즘 한번 유행한다고 남자들의 세상이 전복될 것처럼 떠들썩한데, 나는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전쟁을 일으키고 싶어 과격분자들을 찾아가(어쩌면 그들이 지속적으로 협박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지만) 자신의 집안에 소동을 일으켜달라고 부탁했던 메이크피스의 아버지처럼, 오히려 함정의 느낌이 다분하다고 생각한다. 어쨌던 세상에 문자와 책이 없어지면 머리보다는 근육이 좋은 사람이 유리하다. 얼마나 간단한가. 전쟁이 일어나면 남성들이 여자를 지키고(혹은 약탈하고) 힘을 마음껏 과시할 수 있다. 본능으로 힘내보시라. 나는 세상이 그렇게 되지 않도록 힘내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해야할 일 다 잊어버리고 책에 푹 빠진 건 정말로 오랜만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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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인간 - 제155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무라타 사야카 지음, 김석희 옮김 / 살림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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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중반인데 왜 아직도 아르바이트를 하는가. 왜 한 번도 연애를 해본 적이 없는가. 성행위 경험이 있는지 없는지까지 태연히 물어봅니다. '창녀와 관계한 건 포함시키지 말고요' 하는 말까지 웃으면서 태연히 하죠, 그놈들은. 나는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고 있지 않은데, 단지 소수파라는 이유만으로 다들 내 인생을 간단히 강간해버려요."

 

 

  

참고로 주인공은 이 분처럼 모에하지 않습니다. 손가락과 팔에 털이 많은 타입이라고 하죠. 잠깐 동거했던 남자도 이 여자와 같이 살면서도 몸을 건드리는 것조차 싫어하고요. 이 소설의 그런 점도 마음에 듭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왜 내 현재의 모습과 주인공의 모습이 겹쳐보이는 걸까, 하고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정말 편의점에서 근무한다는 근본적인 점만 빼고는, 이 점원은 나와 많이 닮았다. 성적인 욕망이 극도로 떨어지는 것도 그렇고, 아기를 보면 귀엽다고는 생각하지만 정작 내가 아이를 낳아서 기를 생각은 없다. 한번 사회에 도태된 적이 있는 내가 내 유전자를 뿌려서 내가 이전에 겪은 일과 똑같은 짓을 당하게 하는 건 온당치 못하다고 생각한다. 주인공과의 차이점이라면, 나는 일단 '남'과 내 집을 같이 쓰는 데에 대한 거부감이 심해서 애초에 결혼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 동거 따위는 죽었음 죽었지 절대 하지 않을 거라고 오래 전부터 다짐했었다. 또한 내가 자식을 낳지 않는 이유가 근본적으로 내 탓이라기보다는 남과 조금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심하게 굴고 도태시키는 사회 때문이라 생각하는 점이다. 옛날엔 자급자족이라도 할 수 있었지, 지금은 몸을 망가뜨리고 부서지게 해서 서서히 죽이고 있지 않은가. 이 작가는 자신을 '크레이지' 사야카라고 부르고 있다는데, 4기 죠죠의 스탠드 크레이지 다이아몬드를 베낀 느낌과 더불어 작위성이 너무 강하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나도 '세상에서 도저히 써먹을 데가 없는 소설', 특히 범죄소설을 매우 좋아한다는 데서 어딘가 정상적이지 못한 주인공과 비슷한 점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처음에는 그렇게 범죄소설에 깊이 빠져 있는 것도 아니었다. 티비에서 빨강머리 앤 애니메이션을 보고 너무나 감명을 받아 빨강머리 앤을 따라하려 했던 게 시작이었다. 물론 그 시도는 교무실에 불려갈 정도의 문제가 되어 처참하게 실패했고 '앤은 어딘가 이상하다' 따위의 구절이 아주 많다는 사실을 발견한 건 20대 중반이 되고 나서부터다. 그러고보면 내가 좋아하는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라는 소설 속 인물 제제도 도가 넘도록 심한 장난꾸러기라서 어른들에게 '혼이 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금 직장에 취직하기까지 수많은 직장에서 쫓겨나는 생활을 했는데, 그 중 한명에게는 쓸데없는 소설 좀 그만 읽고 세상에서 존경받는 인물이 쓴 자서전이라거나 자기계발서를 많이 읽으라는 말을 들었다. 그 병원에는 현재 근무하지 않지만 자신이 존경하는 간호사 중 한 명이 열심히 자기계발서를 읽고 암기한 뒤 그녀에게 열심히 그 구절들을 알려주었다는 것이다. 나는 울면서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그녀는 당신과 세상 사람들에게 마음에 드는 사람으로 인식받기 위해, 안도받기 위해 얼마나 노력한 것일까." 그러나 현재 그들은 만나지 않고 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그러나 지금 당장 편의점에 직원이 없으면 편의점이 운영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사실 편의점에서 가장 많이 구박을 받는 이들은 야간파트가 아닐까 한다. 야간 편의점은 술에 절은 인간들이 많이 찾기 때문에 보통 뭔가 사정이 있는 사람들이 야간 알바를 뛴다. 그래서 같은 점원이라도 주간보다 더욱 차별을 받는다. 그리고 이 소설의 폭은 사실상 편의점에 한정된 것도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소설을 보면서 편의점 알바가 불쌍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알바의 이점은 일을 그만두고 싶을 때 일단 사무직보다는 더 편하게 그만둘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육체노동자가 아닌 사람들도 육체가 아프면 끝장이 나 버린다. 편의점에서 암컷 취급을 당하는 후루카와가 고로케를 튀기다가 손에 입은 화상보다도 그걸 더 견디지 못하는 데서 그 암시는 뚜렷해진다.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곧장 육체적인 문제로 직결된다. 내 또래도 공무원이 되었었지만, 현재 스트레스로 인해 피부와 근육이 썩는 질병에 걸려 아무 일도 못하고 집에서 쉬고 있다. 그런 병이 항상 그렇듯, 나을 가망이 없어보인다 한다.

 사람들이 대학을 다녀야 하는 이유는, 그 곳은 회사와 기업을 떠나 중립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을 잠시나마 지닐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물론, 기업이 세운 대학은 예외다.) 나는 대학교가 딱 그 정도의 가치만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학교의 그런 가치가 점점 사라져가고, 취업을 위한 도구로만 여겨지고 있는 지금은 수많은 '편의점 인간'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해봐야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알바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살려면 어떤 대기업을 먼저 무너뜨리고 어떤 형태로 주도권을 잡을 것인가. 편의점 인간의 목소리를 내는 대통령감은 누구이며, 어떤 정책을 통과시켜서 편의점 인간들이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만들 것인가. 위선적인 인간들이 더 이상 우리를 깔보지 않기 위해선 어떤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해야 하는가. 그렇다. 편의점 인간들이 이상한 게 아니다. 우리들이 대다수인 건 확실하니 뭉치고 영향력을 발휘한다면 우리들이 '이쪽'이고 이상한 건 '저쪽'이다. 권력을 잡을 궁리를 해야 한다. (대체 어떻게 해야 그들이 "서점 직원으로 일하지 말고 덕질하는 돈을 줄여서 저축을 해 서점을 세워보지 그러세요?"라고 질문할 때 "그럼 니가 세워보세요." 이상의 대답을 해줄 수 있을까? 후루카와나 사야카는 삽으로 머리를 때린다는 답을 내렸지만 그 전에 그 인간들이 그런 말을 할 엄두도 못 내게, 내 앞에서 그런 말을 못 하도록 최소한 속으로만 이야기하고 닥칠 수 있게 하는 방법은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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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귀 1
오노 후유미 지음, 추지나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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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마사오가 자랑하는 데 흥미를 안 보여줘서 그래."
"이사 온 사람을 봤다는 얘기를 왜 황송하게 들어야 하는데?"
"사람을 사귄다는 게 다 그렇지. 흥미가 없더라도 있는 척을 해 줘야 도리지. 너, 그러다가 사회 나가서 고생한다."
"고생도 내가 하니까 내버려 둬. 그래서? 자랑하는 데 같이 동조해 주지 않는다고 상대를 노려보고 나가는 놈은 고생 안 하냐?"

 

  

죽으려고 하지 않았다는 게 특이했다. 손목을 긋는 정도로는 죽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세이신 스님은 충동적으로 손목을 그었다. 후계자로 굳이 삼지 않으려고 했던 시골의 절에서는 급히 그를 소환했다. 그는 그렇게 젊은 나이에 소토바라는 마을의 작은주지가 되었다. 자신의 충동을 이겨내기 위해서인지 그는 자꾸만 암울한 내용의 소설을 쓴다. 동네 사람들의 눈에 뜨이고 싶지 않은데, 그들의 시선은 조심스럽게 그를 쫓아다닌다. 작은주지스님은 외동인데 결혼은 언제할까? 저런 섬세하고 까다로운 성격에 결혼해도 잘 살 수 있을까? 저렇게 심약해서야 우리 마을을 다스릴 수 있을까?

 반면 도시의 현대의학의 지식을 갖추고 있는 세련되고 불량스런 그 마을의 의사 선생은 마을 안에서 승승장구하는 중이다. 토시오의 어머니는 그 때문에 명예를 더욱더 갈구하는 타입이 되었지만 그런 부모가 지긋지긋한 토시오는 오히려 아버지가 썼던 응접실을 밀어버린다. 아내하고도 멀리 떨어져서 사는데 정말로 괜찮은 걸까? 하지만 그런 질문을 마을 사람들이 생각해 버리기도 전에 밀어낼 만큼 토시오는 단호한 성격을 지녔다. 그러나 아무리 그들이 강하다고 해도 등 뒤에서 속닥거리는 노인들의 입담만큼은 도저히 당해낼 수가 없다. 늙은 세대를 밀어내고 젊은 세대가 나아가야 그 마을이 살아남는데 말이다. 그런 소문에 일일히 상대해주기도 피곤한데 무시하기엔 너무 분하고 짜증이 난다. 그 상태에서 만만치 않은 부호가 이사를 온다.

 

  

시골 토박이들은 생활 패턴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곧잘 외지인의 존재에 두려움을 느낀다.

 그러나 성폭행이 항상 사탕 달라고 꼬시는 외지인 남자에 의해 이뤄지는 건 아니듯이, 내부의 문제를 외지 탓으로 돌리는 것들이 많다. 하지만 이번 외지인은 시귀다. 시골 사람들이 무섭고 소문으로 이지메를 시키며 몇몇 사람을 못살게 군다고는 하지만 힘이 어느 정도 빠진 노인들일 뿐이다. 사실 난 자꾸 시귀를 응원하게 된다. 힘내라 시귀. 시골을 뒤흔들어라 시귀. 그들의 소행이라 추측할 수 있는 돌림병같은 죽음은 좀 잔혹하지만. 필시 프롤로그에서 불타는 마을을 빠져나온 관도 그 시귀 중 가장 어린 여자아이일 가능성이 높다. 관이 소토바 식이 아닌 외부에서 온 데다 (소토바의 관은 창문이 달려있지 않은데 프롤로그의 관은 창문에 솔까지 달려 있었다.) 어쨌던 차 트렁크에 들어갈 수 있으니 말이다.

 

  

5권이 완결같고 1권당 500장이 넘어가는 양인데다가 요새 유행답게 핑크핑크하고 귀엽지 않은 소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유려한 문체라서 별 문제없이 스르륵 읽어나갈 수 있었다.

 게다가 공포소설에 시골 사회의 생태계와 그 문제점을 전부 담아내려 하는 게 상당히 독특했다. 마성의 아이에서는 이지메를 다뤘다고 들었는데 시대에 따라 유행하는 이슈를 담아내는 게 이 작가의 특성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뱀파이어물은 그닥 좋아하지 않는데 전개가 워낙 현실적이다보니 거부감이 없다. 가급적 빨리 다음 2권을 보고 싶다.

 

  

여담으로 메구미가 죽을 때 어른들이 슬퍼하는 장면에서 자꾸 세월호 유가족들이 떠올랐다.

 '우리 아이들이...' 같은 발언이 나올 때마다 많은 청소년 운동권 사람들이 불만을 표출했었다. 누구나 죽는데 왜 우리의 죽음은 더 슬퍼하느냐고, 그렇게 따지는 듯한 느낌이 처음엔 들었었다. 하지만 시골의 인간들은 오지랖이 지나쳐 귀찮아 죽겠다는 나츠노의 의견과 죽음은 누구에게나 순서없이 찾아오니 무서운 거라는 시귀의 말을 듣고나서 어렴풋이 그 청소년 운동가들이 하려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은 죽음에서조차 차별받는다는 느낌이 있는 것이다. 메구미는 아마 죽어서까지도 청소년도 소토바 마을도 아무것도 벗어나지 못한 채 시귀가 되리라. 세월호 관련 시를 항상 읽고 있는데 어른들은 아이들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한국으로 다시는 돌아오지 말고 훨훨 날아가라' 라고 반말을 한다. 어쩌면 내가 나이가 지긋해질 즈음엔 우리 후손들 다수가 이 사실을 지적하고 비웃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 당시엔 아이들의 인권 침해가 사후에서조차 이렇게 심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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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4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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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보세요?" 하고 물었다. 그는 그녀를 깨우지 말고 다시 재워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그녀의 생각 속에서 새로운 꿈의 씨앗을 낳게 할 만한 단어로 대답하려고 애썼다.
"별을 보고 있어." 하고 말했다.
"거짓말 하지 마세요, 당신은 별을 보고 있지 않아요. 당신은 땅바닥을 보고 있어요."
"비행기에 타고 있으니 별이 우리 아래에 있지."
"아, 그런가요?" 하고 테레사가 말했다.

 

 

 일단 이 책은 전부 무겁다. 가벼움이 대체 어디 있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아무래도 가벼움을 자유연애에서 찾는 것 같은데 나는 왜 목숨걸고 여자를 찾는 토마스가 목줄 묶인 개처럼 보이냐. 차라리 아내 따로 여학생 애인 따로 둔 프란츠가 훨씬 자유로워 보이는 건 기분 탓인가.

 사비나라는 여성 빼면 대체로 마음대로 집어치우고 집을 나설 수가 없는 상류층 이야기라서 분위기가 무거운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정작 그 사비나도 우울증에 걸려서 벗어날 수가 없다. 내 생각으로는 아내 테레사가 겁나 마음대로 휘두르는 토마스를 정말로 사랑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님 마음 속 깊은 곳으론 그들의 심각한 사랑이 부러워서 그런 애정을 애인 프란츠에게서 찾으려 했는지도. 아무튼 운동권의 그 복잡한 사랑 이야기 생각나고 재밌다. 토마스는 여자랑 섹스를 하면서 그녀에게서 백만분의 일을 차지하고 있는 자아를 발견한다고 한데, 아무래도 그 이론이 운동권 마초들을 대변하는 듯하다. 생물심리학을 보자. 씨를 광활하게 뿌리려는 게 수컷이라 함으로서 토마스의 이론이 완벽한 개소리라는 게 입증된다. 생각해보면 과학의 발전도 어느 정도 세상에 도움이 된다. 지가 절제를 못해서 테레사가 저렇게 고통을 받는 걸 보고, 그로 인해 죄책감을 느낀다면 아예 무성애자로 사는 게 나을텐데. 결국 테레사의 호기심으로 인해 사건이 커지면서 소설의 재미도 더욱 커진다.

 자유연애 자체로 보면 진짜 여자가 손해보기 딱 좋은 듯. 이 소설에서도 관계의 결실(혹은 현실과 연관된 귀찮은 존재)이라 볼 수 있는 애는 등장도 안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연애를 하면 다 여자가 책임을 져야 하고, 안 하면 여자가 혼자 정절을 지켜야 하고 아무튼 다 여자가 불리하지 않은가. 남자들은 좋은 여자 잡았으면 한눈 팔지 마라... 반대도 마찬가지고.

 그렇다고 급진 페미니즘으로 가면 어떻게 되느냐? 테레사가 된다. 일단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좋아하는 남자를 닮기 위해 바람을 폈다지만, 결과는 미러링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남성에 대한 질투와 분노로 인해 마초들이 주장하는 '성적 이분법'은 남게 되는 것이다. 거울에 비춰서 좌우를 반대로 바꿔도 일단 대상은 같기 때문에. 그런데 여자는 선천적이던 후천적이던간에 남자와는 다르기 때문에 남자가 바람필 때 느끼는 그 감정을 겪을 수 없다. 이 책은 피해자중심주의에 빠진 급진 페미니즘의 치명적인 단점에 대해 다루고 있다. 토마스가 바람을 피는 이유에 대해 온갖 변명을 하듯이 그녀도 온갖 변명을 하지만, 그녀가 바라는 것은 결국 결혼의 붕괴와 죽음이었다. 급진 페미니즘 또한 그렇다고 난 생각한다. 그들이 펼치는 시위도 '검은 시위'이지 않은가. 물론 지금 젠더라는 개념이 나왔지만 이 책에선 시대가 시대니만큼 아직 미숙하고.

 

  

많이 힘들지만, 절대 용서하지 못할 사람은 없다.

 

 개와 인간의 사랑이 인간과 인간의 사랑보다 더 위대하다 생각된다면, 심지어 살인자라고 할지라도 용서못할 건 없다고 생각된다. 법의 심판을 얌전히 받는다는 가정 하에. 하얀 거짓말은 여전히 말도 안 되는 단어라고 생각한다. 그건 마치 투표를 아예 안 하고 침묵하는 게 자신의 소신에 대한 표현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세상에는 그냥 가만히 넘어가도 될만한 것들이 산적해있다. 우리는 정치에 대해선 침묵하면서, 왜 남이 나에게 저지른 부당한 일에 대해선 침묵하지 못하는가. 역겨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해는 하지만 나는 특히 남성이 여성을 성추행한 후 여성이 그것을 SNS같은 데다가 퍼뜨리는 경우를 그닥 좋아하진 않는다. 나도 한때 누군가의 추문을 그런 식으로 퍼뜨린 적이 있지만, 그래봤자 상대방은 나를 더 싫어하게 될 뿐이며 나는 미묘한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다. 해결법은 사실 간단하다. 그냥 상대방의 키치가 나와 맞지 않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나와 키치가 맞다고 생각되는, 혹은 착각되어지는 사람을 찾아나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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