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일러스트와 함께 읽는 세계명작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지음, 하비에르 사발라 그림, 이현우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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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서야 읽었다. 19세기 러시아판 내로남불 단막극을 본 느낌. 체호프를 ‘세계 최고의 단편작가‘라 일컫던데, 이 작품만으론 모르겠다. 다만 문체가 정갈하고 세련되고, 군더더기가 없어 좋다. 달콤함의 내일을 모를 것이 인생임을 말하는 열린 결말이 젤 마음에 든다. 그림은 좀 의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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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7-09 12:0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전 민음사에서 나온 체호프 단편선 완전 애장하는데 ㅋ 이 단편은 읽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 하네요 ㅜㅜ 제목은 완전 낯익어요~!

행복한책읽기 2021-07-10 09:47   좋아요 2 | URL
귀여운 여인이랑 쌍벽을 이루는 단편이더마요. 새파랑님이랑 스캇님 땜에 체홉 질렀어요. 이제야 입문인데, 내용은 둘째치고 문체가 좋네요. 단편의 미덕인 응축된 간결함이 물씬.^^

청아 2021-07-09 12:2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는 군더더기가 많은 편이라 군더더기 없는 거 좋아합니다ㅋㅋㅋ정갈,세련,열린결말이라니 바로 찜~♡ 로쟈님 번역이네요!오!😳

행복한책읽기 2021-07-10 09:53   좋아요 2 | URL
로쟈님 번역도 완전 깔끔해요. 이분이 러시아어 전공자라는 것도 이제야 알았어요. 역자 해설도 알토란 밤 같다는.^^

페넬로페 2021-07-09 14:5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아직까지 체호프를 만나지 못해 많이 부족한 저 입니다~~어서 만나야 할텐데 맘이 급하네요^^^
열린 결말이 많은 의미를 주어 좋지만 독자한테는 어렵기도 한데 행복한책읽기님의 결론은 어떨지 궁금해요^^

행복한책읽기 2021-07-10 09:59   좋아요 2 | URL
ㅎㅎ 지두 이제야 첨 읽었어요. 이 책은 체호프 입문용으로 짱인 듯요. 빨리 읽는 분은 한 시간 안 걸리겠더라구요. 열린 결말은, 제가 좋아하는 결말이에요. 뒷얘기를 독자들에게 떠넘기잖아요. 니들도 생각해봐, 나아가 써봐 라고 작가가 약 올리는 것 같거든요. 체호프의 다른 작품도 그런지 천천히 볼라구요. ^^
 
포옹 창비시선 279
정호승 지음 / 창비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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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08 #시라는별 47 

넘어짐에 대하여 

- 정호승 

나는 넘어질 때마다 꼭 물 위에 넘어진다 

나는 일어설 때마다 꼭 물을 짚고 일어선다

더이상 검은 물속 깊이 빠지지 않기 위하여 

잔잔한 물결 

때로는 거친 삼각파도를 짚고 일어선다 

나는 넘어지지 않으려고 할 때만 꼭 넘어진다 

오히려 넘어지고 있으면 넘어지지 않는다 

넘어져도 좋다고 생각하면 넘어지지 않고 

천천히 제비꽃이 핀 강둑을 걸어간다 

어떤 때는 물을 짚고 일어서다가 

그만 물속에 빠질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아예 물속으로 힘차게 걸어간다 

수련이 손을 뻗으면 수련의 손을 잡고

물고기들이 앞장서면 푸른 물고기의 길을 따라간다 

아직도 넘어질 일과 

일어설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일으켜세우기 위해 나를 넘어뜨리고 

넘어뜨리기 위해 다시 일으켜세운다 할지라도

정호승 시인의 아홉 번째 시집 <<포옹>>에는 총 66편의 시가 수록돼 있다. 정 시인의 시들은 아주 난해하지도, 그렇다고 아주 쉽지만도 않은데, 이 시집은 일단 잘 읽힌다. 모든 시가 마음에 차는 건 아니지만 몇 편에 한 번씩, 혹은 연달아 아, 하는 탄성을 지르게 한다. 

산다는 것은 결국 

낡은 의자 하나 차지하는 일이었을 뿐

작고 낡은 의자에 한 번 앉았다가 

일어나는 일이었을 뿐 (<낡은 의자를 위한 저녁기도> 중) 

정호승 시인은 1950년생이다. 이 시집은 시인의 나이 58세 때 출간되었다. 지천명을 넘어 예순을 바라보는 시기.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많지 않을 때 찾아드는 감정이 있다. 지금껏 무엇을 하고 살았나. 산다고 살았는데 왜 손에 쥔 것이 없나. 그런 마음을 시인은 이렇게 표현한다.

내가 걸어온 길과 걸어가야 할 길이

너덕너덕 누더기가 되어 밤하늘에 걸려 있다 (<다시 자장면을 먹으며> 중)

"누더기" 인생에 남은 것이라곤 "부러진 나무젓가락과 먹다 만 단무지와 낡은 칫솔 하나뿐"이지만, 그럼에도 시인은 "다시 자장면을 먹으며 살아봐야겠다"고 우스갯소리처럼 말한다. 아무렴. 황천길도 식후사(食後事)가 아니겠는가. 

배는 부르나 늙어가는 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늙으면 밥이 똥이 되지 않고 돌이" 되곤 한다. 똥을 못 눠 관장약을 항문 깊숙이 밀어넣어야 하는 늙은 아비를 보며 시인은 늙음의 처량한 현실을 직시한다.

사람이 늙은 뒤에 또다시 늙는다는 것은

밥을 못 먹는 일이 아니라 똥을 못 누는 일이다 (<노부부> 중) 

"똥을 못 누는" 나이가 되도록 살고픈 이가 누가 있을까마는 저승길은 내가 정할 수 있는 길이 아니다. 사는 데까지 살다 갈 생이 그리 길지 않을 때 찾아드는 또 다른 감정은 이런 것이 아닐까.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이 존재하는 일에 감사하는 일일 뿐 

내가 누구의 손을 잡기 위해서는 내 손이 빈손이 되어야 한다 

오늘도 포기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지 말고 무엇을 이루려고 뛰어가지 마라 

아무도 미워하지 않게 되기를 바라지 말고 가끔 저녁에 술이나 한잔해라 (<개에게 인생을 이야기하다> 중) 

움켜쥔 손을 놓기. 환갑을 앞둔 중년의 시인이 얻은 혜안이다. 젊은 날엔 무엇이든 붙잡으려 애를 쓴다. "나를 가방 속에 구겨넣고"서라도 (<가방>) 날마다 출근 도장을 찍고 "남들이 가진 것을 다 가지려" 아등바등한다.(<옥산휴게소>) 그렇게 나를 향해, 오직 나를 위해 쓰이는 손가락을 시인은 어느 순간 가차없이 잘라버리고 하나는 "불국사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 / 또 하나는 땅에 심는다."( <손가락>) 잘린 두 개의 손가락이 썩어 문드러질지, 새로운 생명으로 탄생할지는 알 수 없지만, 잘려서 비게 된 자리에 우리는 나 아닌 다른 것을 들일 수 있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늙어가는 일이기도 하지만, 마음 한 켠에 타인의 자리를 내주는 일이기도 하다. 연민의 자리를 말이다.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는 것이 인생이라면, 넘어지지 않으려 애쓰기보다는 덜 아프게 넘어지는 법을, 넘어지더라도 더 가뿐히 일어서는 법을 체득하는 것이 나으리라. 그러니 넘어질 때는 꺼끌꺼끌한 시멘트 바닥이 아닌 말랑말랑한 "물 위로" 넘어질 것이며, "물을 짚고 일어서다" "물속에 빠질" 것 같으면 물고기처럼 힘차게 물을 차고 나아가면 될 일이다. "아직도 넘어질 일과 / 일어설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이 시인의 말처럼 "큰 축복"이 되려면 시들어갈 일밖에 없는 나와 너를, 장차 뼈만 남게 될 나와 너를, 신석기 시대의 한 부부처럼 꼭 껴안아주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 너와 내가 서로 포옹하고 살아가면 되지 않을까. 삶은 결국 이런 것일 테니. 

사람 사는 일

누구나 마음속에 절 하나 짓는 일 

지은 절 하나 

다시 허물고 마는 일 (<지하철을 탄 비구니>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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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7-08 09:11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구절 좋은데요?! 짓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허물고 말기에‘ 더 절절하고 와닿는 느낌😊

행복한책읽기 2021-07-08 12:13   좋아요 3 | URL
미미님은 마지막 구절 콕! 짓고 허물기를 반복하는 것이 삶인가봐요. ^^

새파랑 2021-07-08 09:1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넘어짐에 대하여> 시 정말 좋네요~!! 넘어지는 것보다는 다시 일어난다는게 중요한게 맞는거 같아요👍

행복한책읽기 2021-07-08 12:16   좋아요 3 | URL
새파랑님은 넘어짐에 콕!! 새파랑님은 닉넴 탓인지 밟혀도 꿋꿋하게 고개 쳐들고 파릇함을 뽐낼 것만 같아요. 북플의 새싹이시더니 어느새 여름숲을 이루심 ㅋ

페넬로페 2021-07-08 10:0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행복한 책읽기님, 요증 시 계속 읽으시네요. 시가 참 좋은데 이상하게 손이 가질 않아요. 한번씩이라도 시를 읽고 마음을 정화시켜야할것 같아요^^

행복한책읽기 2021-07-08 12:19   좋아요 4 | URL
시를 읽는 시간이 좋아요. 작년에 제가 찾은 마음의 안식이었거든요. 글고 얇잖아요. 손에 쥐기 편하다는 ㅋ

얄라알라 2021-07-08 11:0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낡은 의자에 한 번 앉았다 일어나는, 그런 무심한 경지... 제게서 스르륵 빠져나간 의욕, 활기도 무심함의 경지로 끌어올리고 싶네요^^ 이 또한 욕망인가요?^^

행복한책읽기 2021-07-08 12:22   좋아요 5 | URL
아. 그런 욕망이라면야. 바래도 되지 않을까요. 또한 욕망해야 무심핝경지 근처라도 가보지 않을까요. 북사랑님 손잡고 앉았다 일어나드리겠음. 여~~~엉~~~차!!!!^^

scott 2021-07-08 11:4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행복한 책읽기님이 목요일에 읽어주시는 시!
이 시를 읽으며
저는 오늘 하루 제마음 속에 시집을 짓고

절대로 허물지 않을 겁니다.
(*Ü*)ﻌﻌ💓💓💓💓

행복한책읽기 2021-07-08 12:24   좋아요 4 | URL
ㅋ 마음에 절대 허물지 않을 시집을 짓겠다니. scott님은 능히 그러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읽기 무섭게 곧장 글귀들이 허물어지고 만다는 ㅡㅡ^^;;

희선 2021-07-10 00: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설 힘이 있을 때는 괜찮겠습니다 나이를 많이 먹으면 넘어졌다 다시 일어나지 못하기도 한다잖아요 그렇게 넘어져서 병원에 갔다가 그 길로... 거의 그렇게 갈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거 생각하면 슬프기도 하네요 넘어지지 않고 가고 싶기도 합니다


희선

행복한책읽기 2021-07-10 09:42   좋아요 1 | URL
맞아요. 나이 들수록 넘어졌다 일어서기가 점점 힘들어져요. 그래서 넘어지는 거 자체가 무서워지나 봐요. 우리 가능한 넘어지는 횟수를 줄여보고 잘 넘어지는 법도 터득해 가봐요~~^^
 

20210705 #시라는별 46 

부러짐에 대하여 
- 정호승 

나뭇가지가 바람에 뚝뚝 부러지는 것은 
나뭇가지를 물고 가 집을 짓는 새들을 위해서다 
만일 나뭇가지가 부러지지 않고 그대로 나뭇가지로 살아남는다면 
새들이 무엇으로 집을 지을 수 있겠는가 
만일 내가 부러지지 않고 계속 살아남기만을 원한다면 
누가 나를 사랑할 수 있겠는가 

오늘도 거리에 유난히 작고 가는 나뭇가지가 부러져 나뒹구는 것은 
새들로 하여금 그 나뭇가지를 물고 가 집을 집게 하기 위해서다
만일 나뭇가지가 작고 가늘게 부러지지 않고 마냥 크고 굵게만 부러진다면 
어찌 어린 새들이 부리로 그 나뭇가지를 물고 가 
하늘 높이 집을 지을 수 있겠는가
만일 내가 부러지지 않고 계속 살아남기만을 원한다면 
누가 나를 인간의 집을 짓는 데 쓸 수 있겠는가 


2007년에 출간된 정호승 시집 <<포옹>>은 시인의 아홉번 째 시집이다. 시인의 말에서 정호승 시인은 흙으로 사발을 만드는 도공처럼 언어로 ˝시집이라는 사발˝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그릇은 비어 있음으로 그 쓸모를 완성하듯, 시집이라는 사발 또한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에 말로 지은 음식을 채워 그 쓸모를 다하리라.

<부러짐에 대하여>도 그와 비슷하게 빈틈의 유용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꼿꼿하지 말고 유연하기, 고집부리지 말고 고개 숙이기, 욕심부리지 말고 내려놓기. 빡빡하게 굴지 말고 허허실실 웃기. 그렇게 허점이 있어야, 공터가 있어야 내 안에 다른 사람을 들일 수 있는 법이다. 그래야 새들이 작고 가는 나뭇가지로 집을 짓듯 그 사람도 가벼운 나로 ˝인간의 집˝을 지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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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7-05 10:1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늘의 시도 너무 좋네요. 부러짐에 대해, 느슨함에 대해 생각하게 하네요. 사진은 더 예술임~!! 정호승 시인님의 시 너무 좋은거 같아요. 예전에 봄길 이라는 시 좋아했었는데 😊

행복한책읽기 2021-07-05 11:00   좋아요 4 | URL
ㅋ 3월에 봄길 올렸더랬어요^^ 정호승님은 이제 전국민이 시 한 편쯤은 아는 시인이 되신 듯요. ^^

scott 2021-07-05 10:4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 꼿꼿하지 말고 유연하기, 고집부리지 말고 고개 숙이기, 욕심부리지 말고 내려놓기. 빡빡하게 굴지 말고 허허실실 웃기. 그렇게 허점이 있어야, 공터가 있어야 내 안에 다른 사람을 들일 수 있는 법]
오늘의 밑줄 쫘악!✍️
‘진정한 리더‘의 조건과 덕목을 행복한 책읽기님이 집어 주셨네요!
전, 그럼 오늘 하루 부러지게 일해도
걸을때 넘어지지 않귀!( *ฅ́˘ฅ̀*)

행복한책읽기 2021-07-05 11:02   좋아요 5 | URL
윽. 저 덕목을 진즉 깨달았다면 리더가 되어 있었겠죠.^^;; scott님 부러질 만큼 일하심 아니 되옵니다. 님은 북플계 독보적 존재. 몸을 귀히 보살펴주소서~~~~~^^

얄라알라 2021-07-07 18:23   좋아요 2 | URL
오호! 저도 지금 막 복사 붙여넣기 하려던 문구! scott님 밑줄에 묻어갑니다!

mini74 2021-07-05 14:5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새들이 집을 짓게 하기 위해서다.ㅠㅠ 가벼운 나로 인간의 집을 짓는다니 너무 좋은 표현이에요 !!! 우중충한 장마의 시작, 초록나무들로 눈이 다 시원하네요.

행복한책읽기 2021-07-05 21:24   좋아요 2 | URL
그죠. 신록이 짙어지는 7월이 욌어요. 저는 5.6월의 연두빛 초록을 더 좋아하지만 익어가는 초록에도 맘을 줘볼까 합니다. 션한 여름을 만들어 보아요.^^

2021-07-07 18: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7-08 00: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희선 2021-07-10 00: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태풍이 지나가고 나면 나뭇가지가 부러져서 땅에 떨어진 게 생각나기도 하네요 세찬 바람이 아니어도 나뭇가지는 부러지기도 하겠습니다 그건 새한테 집을 지으라고 나눠주는 거였군요 사람도 그러면 좋을 텐데 싶기도 하네요 푸른 나무 시원하게 보입니다


희선

행복한책읽기 2021-07-10 09:43   좋아요 1 | URL
세상 이치가 다 이유가 있고 쓸모가 있고 그런가봐요.^^
 
- 어느 세월호 생존자 이야기
김홍모 지음 / 창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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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몰하는 배에서 사람들을 구조하러 나선 길이 그와 그 가족의 이후 삶을 파괴하는 길이 되지 않게 하려면 국가가, 사회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질문하게 만든 책. 몹시 아프지만 외면하지 말아야 할 생존자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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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01 #시라는별 45 

바닥 
- 박성우 

괜찮아, 바닥을 보여줘도 괜찮아 
나도 그대에게 바닥을 보여줄게, 악수 
우리 그렇게 
서로의 바닥을 위로하고 위로받았던가 
그대의 바닥과 나의 바닥, 손바닥 

괜찮아, 처음엔 다 서툴고 떨려 
처음이 아니어서 능숙해도 괜찮아 
그대와 나는 그렇게 
서로의 바닥을 핥았던가 
아, 달콤한 바닥이여, 혓바닥 

괜찮아, 냄새가 나면 좀 어때 
그대 바닥을 내밀어봐, 
냄새나는 바닥을 내가 닦아줄게 
그대와 내가 마주앉아 씻어주던 바닥, 발다닥 

그래, 우리 몸에 세 개의 바닥이 있지 
손바닥과 혓바닥과 발바닥, 
이 세 바닥을 죄 보여주고 감쌀 수 있다면 
그건 사랑이겠지, 
언젠가 바닥을 쳐도 좋을 사랑이겠지 


박성우 시인의 <<자두나무 정류장>>은 가문 날의 단비처럼 읽히는 시집이다. 메마른 땅에 방울방울 떨어져 푸석해진 흙들을 촉촉히 적셔주는 단비 같다. 시인은 시를 쓰기 위해 멀리, 에둘러 가지 않는다. 자신이 발 딛고 사는 세상의 이모저모만 이야기할 뿐이다. 그 세상은 시인의 고향이자 시골 내음 풀풀 풍기는 전북 정읍이다. 그 세상 속 주인공들은 노루, 고라니, 닭, 소, 딱따구리, 오리알, 누에, 물까치, 이팝나무, 자두나무, 감나무, 해바라기, 참깨, 마늘밭, 살구나무, 목단꽃, 애호박, 풀과 소똥 같은 자연과 한천댁, 청동댁, 구복리댁, 윗집할매, 늙은 작부, 청암양반 같은 동네 사람들이다. 이 풍경을 그려내는 시인의 시선은 따스하고 정감 있다.

<바닥>은 이 시집의 첫 시다. 읽자마자 아, 이런 ‘괜찮아‘는 정말 괜찮아 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닥을 보일 수 있는 사이는 흔하지 않다. 대개는 가족일 터이고, 이따금 친구일 터이다. 때론 그 반대일 수도 있겠다. ˝바닥을 죄 보여주˝게 하는 것은 ˝사랑˝, ˝언젠가 바닥을 쳐도 좋을 사랑˝이라고 시인은 말한다. 그러나 마음 바닥을 여과 장치 없이 드러내게 하는 것은 분노인 것 같다. 손바닥과 혓바닥과 발바닥이야 ˝보여주고 감쌀 수˝ 있겠다만, 마음 바닥은 어디까지 보여야 할까. 얼마나 감쌀 수 있을까.

내가 요즘 산책할 때 눈여겨보는 바닥은 땅바닥이다. 7월. 빛은 더욱 강렬해지고 그림자는 더욱 짙어지는 계절. 빛과 그림자의 어울림이 도드라지는 계절. 빛과 그림자가 바닥을 쳐서 사랑의 무늬를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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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7-01 07:3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괜찮아라는 말은 언제나 위로가 되는 좋은 말 같아요. 7월 시작의 시로 너무 좋아요 😊

행복한책읽기 2021-07-01 10:33   좋아요 4 | URL
그래서 7월 첫시로 올렸어요. 새파랑님 지맘 들여다보신 듯. 우리 7월도 즐겁게 신 나게 읽고 써요~~~~^^

독서괭 2021-07-01 10:4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시 정말 좋은데요! 안 그래도 해체주의적(?) 시에 지치신 폴스타프님이 이 시집 좋다 하셔서 담아뒀는데^^ 땅바닥 사진도 멋집니다.

행복한책읽기 2021-07-01 14:42   좋아요 4 | URL
ㅋ 지두 폴스타프님 리뷰 보고 냉큼 주문했답니다. 마음이 훈훈해지는 시집이네요^^

청아 2021-07-01 10:4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 사진이 눈에 확 들어왔어요~♡ 걷기좋은 흙바닥
나무들이 뿌리박은 생의 바닥
언젠가 바닥을 쳐도 좋을 사랑이라니!! 오우 쎈데요?😊

행복한책읽기 2021-07-01 14:44   좋아요 4 | URL
<나무들이 뿌리 박은 생의 바닥> 캬!!! 미미님 속엔 시성이 가득하군요.^^

라로 2021-07-01 12:49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길가를 수놓는 것은 발바닥의 몫”이라는 오은 작가의 싯구도 생각나게 하는 시네요. 좋은시 잘 읽었어요. 올리신 사진도 글과 어울려 멋지고요. ^^

행복한책읽기 2021-07-01 14:47   좋아요 5 | URL
크아~~~~ 오은 시인이 저런 멋진 시구를. 게다가 라로님은 기억을. 놀라워요. 오은 시집 읽은 적 없사와 냉큼 검색 들어감다. 고마워요~~~~^^

scott 2021-07-01 17:0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7월 첫날의 시작은 행복한 책읽기님이 읽어주시는 시 구절로 합니다.
[우리 몸에 세 개의 바닥이 있지
손바닥과 혓바닥과 발바닥,
이 세 바닥을 죄 보여주고 감쌀 수 있다면
그건 사랑이겠지,
언젠가 바닥을 쳐도 좋을 사랑이겠지 ]
행복한 책읽기님의 사진
땅바닥!
흙먼지가 일어나도 거센 비바람에 휩쓸려도
땅속에 박힌 단단한 돌멩이 처럼!
견디기, 버티기
행복한 책읽기님
7월 건강하고 행복하게!٩( ᐛ )و



행복한책읽기 2021-07-02 11:35   좋아요 3 | URL
견디기. 버티기. 건강하기. 행복하기. 네네 네네네!!!^^ scott 님 응원 힘 듬뿍 받음요^^

붕붕툐툐 2021-07-02 11:4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우와~ 시 넘 따뜻하다!! 손바닥으로 하이파이브 한 번 해용!🙏
7월의 좋은시 넘 감사해요~😍

행복한책읽기 2021-07-02 11:36   좋아요 3 | URL
🙏🙏🙏 하이파이브 세번. 툐툐님과 저는 바닥을 친 사이. 우헤헤. 7월에도 즐독해요~~^^

붕붕툐툐 2021-07-02 22:23   좋아요 1 | URL
😍😍😍😍😍

mini74 2021-07-02 15:0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림자들도 색을 가지는 것 같아요. 자세히 보면 다 다른 색들. 시가 위로를 사진이 시원함을 주네요 *^^*

행복한책읽기 2021-07-02 16:23   좋아요 2 | URL
역쉬. 그림 좋아하는 미니님은 그림자 색도 다 다르다는 걸 단박에 알아채시네요. 시간대별 빛과 그림자 관찰도 산책의 묘미 중 하니더라구요. 위로와 시원함을 드릴 수 있어 기쁩니다^^

초딩 2021-07-03 01: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런 괜찮아 정말 괜찮아에 저도 큰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