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01 #시라는별 45 

바닥 
- 박성우 

괜찮아, 바닥을 보여줘도 괜찮아 
나도 그대에게 바닥을 보여줄게, 악수 
우리 그렇게 
서로의 바닥을 위로하고 위로받았던가 
그대의 바닥과 나의 바닥, 손바닥 

괜찮아, 처음엔 다 서툴고 떨려 
처음이 아니어서 능숙해도 괜찮아 
그대와 나는 그렇게 
서로의 바닥을 핥았던가 
아, 달콤한 바닥이여, 혓바닥 

괜찮아, 냄새가 나면 좀 어때 
그대 바닥을 내밀어봐, 
냄새나는 바닥을 내가 닦아줄게 
그대와 내가 마주앉아 씻어주던 바닥, 발다닥 

그래, 우리 몸에 세 개의 바닥이 있지 
손바닥과 혓바닥과 발바닥, 
이 세 바닥을 죄 보여주고 감쌀 수 있다면 
그건 사랑이겠지, 
언젠가 바닥을 쳐도 좋을 사랑이겠지 


박성우 시인의 <<자두나무 정류장>>은 가문 날의 단비처럼 읽히는 시집이다. 메마른 땅에 방울방울 떨어져 푸석해진 흙들을 촉촉히 적셔주는 단비 같다. 시인은 시를 쓰기 위해 멀리, 에둘러 가지 않는다. 자신이 발 딛고 사는 세상의 이모저모만 이야기할 뿐이다. 그 세상은 시인의 고향이자 시골 내음 풀풀 풍기는 전북 정읍이다. 그 세상 속 주인공들은 노루, 고라니, 닭, 소, 딱따구리, 오리알, 누에, 물까치, 이팝나무, 자두나무, 감나무, 해바라기, 참깨, 마늘밭, 살구나무, 목단꽃, 애호박, 풀과 소똥 같은 자연과 한천댁, 청동댁, 구복리댁, 윗집할매, 늙은 작부, 청암양반 같은 동네 사람들이다. 이 풍경을 그려내는 시인의 시선은 따스하고 정감 있다.

<바닥>은 이 시집의 첫 시다. 읽자마자 아, 이런 ‘괜찮아‘는 정말 괜찮아 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닥을 보일 수 있는 사이는 흔하지 않다. 대개는 가족일 터이고, 이따금 친구일 터이다. 때론 그 반대일 수도 있겠다. ˝바닥을 죄 보여주˝게 하는 것은 ˝사랑˝, ˝언젠가 바닥을 쳐도 좋을 사랑˝이라고 시인은 말한다. 그러나 마음 바닥을 여과 장치 없이 드러내게 하는 것은 분노인 것 같다. 손바닥과 혓바닥과 발바닥이야 ˝보여주고 감쌀 수˝ 있겠다만, 마음 바닥은 어디까지 보여야 할까. 얼마나 감쌀 수 있을까.

내가 요즘 산책할 때 눈여겨보는 바닥은 땅바닥이다. 7월. 빛은 더욱 강렬해지고 그림자는 더욱 짙어지는 계절. 빛과 그림자의 어울림이 도드라지는 계절. 빛과 그림자가 바닥을 쳐서 사랑의 무늬를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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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7-01 07:3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괜찮아라는 말은 언제나 위로가 되는 좋은 말 같아요. 7월 시작의 시로 너무 좋아요 😊

행복한책읽기 2021-07-01 10:33   좋아요 4 | URL
그래서 7월 첫시로 올렸어요. 새파랑님 지맘 들여다보신 듯. 우리 7월도 즐겁게 신 나게 읽고 써요~~~~^^

독서괭 2021-07-01 10:4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시 정말 좋은데요! 안 그래도 해체주의적(?) 시에 지치신 폴스타프님이 이 시집 좋다 하셔서 담아뒀는데^^ 땅바닥 사진도 멋집니다.

행복한책읽기 2021-07-01 14:42   좋아요 4 | URL
ㅋ 지두 폴스타프님 리뷰 보고 냉큼 주문했답니다. 마음이 훈훈해지는 시집이네요^^

청아 2021-07-01 10:4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 사진이 눈에 확 들어왔어요~♡ 걷기좋은 흙바닥
나무들이 뿌리박은 생의 바닥
언젠가 바닥을 쳐도 좋을 사랑이라니!! 오우 쎈데요?😊

행복한책읽기 2021-07-01 14:44   좋아요 4 | URL
<나무들이 뿌리 박은 생의 바닥> 캬!!! 미미님 속엔 시성이 가득하군요.^^

라로 2021-07-01 12:49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길가를 수놓는 것은 발바닥의 몫”이라는 오은 작가의 싯구도 생각나게 하는 시네요. 좋은시 잘 읽었어요. 올리신 사진도 글과 어울려 멋지고요. ^^

행복한책읽기 2021-07-01 14:47   좋아요 5 | URL
크아~~~~ 오은 시인이 저런 멋진 시구를. 게다가 라로님은 기억을. 놀라워요. 오은 시집 읽은 적 없사와 냉큼 검색 들어감다. 고마워요~~~~^^

scott 2021-07-01 17:0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7월 첫날의 시작은 행복한 책읽기님이 읽어주시는 시 구절로 합니다.
[우리 몸에 세 개의 바닥이 있지
손바닥과 혓바닥과 발바닥,
이 세 바닥을 죄 보여주고 감쌀 수 있다면
그건 사랑이겠지,
언젠가 바닥을 쳐도 좋을 사랑이겠지 ]
행복한 책읽기님의 사진
땅바닥!
흙먼지가 일어나도 거센 비바람에 휩쓸려도
땅속에 박힌 단단한 돌멩이 처럼!
견디기, 버티기
행복한 책읽기님
7월 건강하고 행복하게!٩( ᐛ )و



행복한책읽기 2021-07-02 11:35   좋아요 3 | URL
견디기. 버티기. 건강하기. 행복하기. 네네 네네네!!!^^ scott 님 응원 힘 듬뿍 받음요^^

붕붕툐툐 2021-07-02 11:4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우와~ 시 넘 따뜻하다!! 손바닥으로 하이파이브 한 번 해용!🙏
7월의 좋은시 넘 감사해요~😍

행복한책읽기 2021-07-02 11:36   좋아요 3 | URL
🙏🙏🙏 하이파이브 세번. 툐툐님과 저는 바닥을 친 사이. 우헤헤. 7월에도 즐독해요~~^^

붕붕툐툐 2021-07-02 22:23   좋아요 1 | URL
😍😍😍😍😍

mini74 2021-07-02 15:0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림자들도 색을 가지는 것 같아요. 자세히 보면 다 다른 색들. 시가 위로를 사진이 시원함을 주네요 *^^*

행복한책읽기 2021-07-02 16:23   좋아요 2 | URL
역쉬. 그림 좋아하는 미니님은 그림자 색도 다 다르다는 걸 단박에 알아채시네요. 시간대별 빛과 그림자 관찰도 산책의 묘미 중 하니더라구요. 위로와 시원함을 드릴 수 있어 기쁩니다^^

초딩 2021-07-03 01: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런 괜찮아 정말 괜찮아에 저도 큰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