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05 #시라는별 46 

부러짐에 대하여 
- 정호승 

나뭇가지가 바람에 뚝뚝 부러지는 것은 
나뭇가지를 물고 가 집을 짓는 새들을 위해서다 
만일 나뭇가지가 부러지지 않고 그대로 나뭇가지로 살아남는다면 
새들이 무엇으로 집을 지을 수 있겠는가 
만일 내가 부러지지 않고 계속 살아남기만을 원한다면 
누가 나를 사랑할 수 있겠는가 

오늘도 거리에 유난히 작고 가는 나뭇가지가 부러져 나뒹구는 것은 
새들로 하여금 그 나뭇가지를 물고 가 집을 집게 하기 위해서다
만일 나뭇가지가 작고 가늘게 부러지지 않고 마냥 크고 굵게만 부러진다면 
어찌 어린 새들이 부리로 그 나뭇가지를 물고 가 
하늘 높이 집을 지을 수 있겠는가
만일 내가 부러지지 않고 계속 살아남기만을 원한다면 
누가 나를 인간의 집을 짓는 데 쓸 수 있겠는가 


2007년에 출간된 정호승 시집 <<포옹>>은 시인의 아홉번 째 시집이다. 시인의 말에서 정호승 시인은 흙으로 사발을 만드는 도공처럼 언어로 ˝시집이라는 사발˝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그릇은 비어 있음으로 그 쓸모를 완성하듯, 시집이라는 사발 또한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에 말로 지은 음식을 채워 그 쓸모를 다하리라.

<부러짐에 대하여>도 그와 비슷하게 빈틈의 유용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꼿꼿하지 말고 유연하기, 고집부리지 말고 고개 숙이기, 욕심부리지 말고 내려놓기. 빡빡하게 굴지 말고 허허실실 웃기. 그렇게 허점이 있어야, 공터가 있어야 내 안에 다른 사람을 들일 수 있는 법이다. 그래야 새들이 작고 가는 나뭇가지로 집을 짓듯 그 사람도 가벼운 나로 ˝인간의 집˝을 지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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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7-05 10:1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늘의 시도 너무 좋네요. 부러짐에 대해, 느슨함에 대해 생각하게 하네요. 사진은 더 예술임~!! 정호승 시인님의 시 너무 좋은거 같아요. 예전에 봄길 이라는 시 좋아했었는데 😊

행복한책읽기 2021-07-05 11:00   좋아요 4 | URL
ㅋ 3월에 봄길 올렸더랬어요^^ 정호승님은 이제 전국민이 시 한 편쯤은 아는 시인이 되신 듯요. ^^

scott 2021-07-05 10:4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 꼿꼿하지 말고 유연하기, 고집부리지 말고 고개 숙이기, 욕심부리지 말고 내려놓기. 빡빡하게 굴지 말고 허허실실 웃기. 그렇게 허점이 있어야, 공터가 있어야 내 안에 다른 사람을 들일 수 있는 법]
오늘의 밑줄 쫘악!✍️
‘진정한 리더‘의 조건과 덕목을 행복한 책읽기님이 집어 주셨네요!
전, 그럼 오늘 하루 부러지게 일해도
걸을때 넘어지지 않귀!( *ฅ́˘ฅ̀*)

행복한책읽기 2021-07-05 11:02   좋아요 5 | URL
윽. 저 덕목을 진즉 깨달았다면 리더가 되어 있었겠죠.^^;; scott님 부러질 만큼 일하심 아니 되옵니다. 님은 북플계 독보적 존재. 몸을 귀히 보살펴주소서~~~~~^^

얄라알라 2021-07-07 18:23   좋아요 2 | URL
오호! 저도 지금 막 복사 붙여넣기 하려던 문구! scott님 밑줄에 묻어갑니다!

mini74 2021-07-05 14:5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새들이 집을 짓게 하기 위해서다.ㅠㅠ 가벼운 나로 인간의 집을 짓는다니 너무 좋은 표현이에요 !!! 우중충한 장마의 시작, 초록나무들로 눈이 다 시원하네요.

행복한책읽기 2021-07-05 21:24   좋아요 2 | URL
그죠. 신록이 짙어지는 7월이 욌어요. 저는 5.6월의 연두빛 초록을 더 좋아하지만 익어가는 초록에도 맘을 줘볼까 합니다. 션한 여름을 만들어 보아요.^^

2021-07-07 18: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7-08 00: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희선 2021-07-10 00: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태풍이 지나가고 나면 나뭇가지가 부러져서 땅에 떨어진 게 생각나기도 하네요 세찬 바람이 아니어도 나뭇가지는 부러지기도 하겠습니다 그건 새한테 집을 지으라고 나눠주는 거였군요 사람도 그러면 좋을 텐데 싶기도 하네요 푸른 나무 시원하게 보입니다


희선

행복한책읽기 2021-07-10 09:43   좋아요 1 | URL
세상 이치가 다 이유가 있고 쓸모가 있고 그런가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