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03 #시라는별 33 

제 길
- 김상순 

요새 아아들은 똑똑하고 말도 잘 듣제? 

흐흐. 아아들이야 언제나 그렇지요 뭐. 

니는 아이들이 말 안 들어도 넘 아아들을 니 맘대로 할라고 하지 마라이. 

내 맘대로 안 하요. 그게 내 맘대로 되는 일도 아니고요. 

내 말 함 들어봐라. 나도 들은 이야기다만. 

무슨 이야기를 하실라꼬? 

예전에 책만 피면 조불고(졸고) 깨면 항칠하는 (낙서하는) 아아가 있더란다. 선생이 불러내서 궁디를 때리고 벌을 안 세웠겠나. 그 아아가 눈물을 뚝뚝 흘리는데, 자세히 보니 손꾸락으로 눈물을 찍어서 그림을 그리더란다. 산도 그리고, 새도 그리고.

요새도 그런 아아들이 있소. 벌 세우기도 겁나요. 

그래서 선생이 썽이 나서 멀캤단다. 에라이 망할 넘아, 니는 그림이나 그리서 묵고 살아라! 그카니, 세상에! 그 아아가 울음을 뚝 그치고 헤죽 웃음서, 예! 카더란다.

흐흐. 그래서 그 아아는 우찌 됐는고요? 

그건 내사 모르지. 모르긴 해도 글로 벌어먹고 살아겠나? 꿩 새끼 제 길 간다고, 제 길이 다 있는 긴데. 

그게 뭔 말이오? 

모르는 것도 많다. 꿩 새끼를 데려다 닭장에서 키워 봐라. 틈만 나면 산으로 내빼지. 그게 닭장에서 살겠나? 죽지. 본디부터 다른 넘인데. 


어미 김상순의 입말을 옮겨 쓴 홍정욱은 초등학교 교사이다. 저자 소개에 따르면 홍정욱은 틈만 나면 아이들과 산과 들과 강을 다니고 방학이면 전국의 강을 따라 걷는다고 한다.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집 <<꼭꼭 씹으면 뭐든지 달다>>를 비롯해 몇 권의 책을 쓴 작가이기도 하다. 이 분 책은 몽땅 읽고 싶어졌다.

1937년생 김상순은 이런 역사를 지닌 분이다. ˝학교 문턱은 넘어 보지도 못하고, 스무 살에 아무것도 없는 남편에게 시집 와 홀시아버지를 모시고, 아이 다섯을 낳아 키웠고, 둘째딸을 사고로 잃고, 63년을 함께 산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고 평생을 흙과 더불어 살았다.˝

그런데 학교 문턱조차 넘지 못했다는 김상순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너무나 재밌고 무쟈게 웃긴다. 특히 김상순이 들려주는 스포츠 중계는 캐스터들이 수업료 들고 가서 김상순에게 한 수 배워 오라고 하고 싶을 만큼 찰지게 생생하다.글자화된 입말들이 강물처럼 넘실거리고 경상도 사투리가 야물딱지게 구수해 자꾸만 소리 내 읽게 된다. 내 고향말이이서 입에 착착 감긴다.

김상순은 ˝우리 겉은 뒷글도 배우지 못한 늙은이 말이 어디 쓸데가 있다고?˝ ˝다 늙은 우리 이야기를 어디다 쓰겠노?˝라고 말했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그 어디에서도 씨잘데기 없는 말을 발견하지 못했다. 김상순의 이야기는 평생을 흙과 더불어 산 자의 해학과 혜안으로 넘쳐난다. 삶의 지혜라는 모종을 땅에 심어 기르고 거둔 듯하다. 배움의 눈과 맘을 지닌 자에게는 세상 모든 곳이 학교다.

교사 아들에게 넘의 자식 니 맘대로 할려고 들지 말라면서, 그 까닭을 김상순은 기가 막힌 비유를 들어 설명한다. 

˝꿩 새끼를 닭장에서 키워 봐라. 틈만 나면 산으로 내빼지. 그게 닭장에서 살겠나? 죽지. 본디부터 다른 넘인데.˝ 

아동심리학자들과 상담사들이 흔히 말하는 ‘자존감 상실‘보다 훨씬 강력하고 훨씬 설득력 있는 한마디. ˝죽지.˝ 아이들을 죽이지 않고 잘 살게 하는 길은 꿩 새끼는 꿩 새끼로, 닭 새끼는 닭 새끼로 자라게 해주는 것이다.

˝오월은 푸르고 어린이는 자란다. 나무처럼 자란다. 숲을 이루게 해주자.˝(<<어린이라는 세계>> 247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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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5-03 07:5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왠지 진주 사투리? 아닌가요? 제 친구가 이런 말투 쓰던데 ㅎㅎ 뀡 새끼에 비유한 어머니의 통찰력에 감탄합니다^^

행복한책읽기 2021-05-03 23:03   좋아요 3 | URL
경남 함안이래요. 저자는 현재 부산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있구요. 친구분이 경상도 남자면 좀 무뚝뚝할 텐데 그런가요? 어머님 통찰력 진짜 감탄스럽죠. 어머님도 선조들께 배워 체득한 지혜였을 텐데, 그 지혜수 받아 마시며 자란 저자의 심성도 헤아릴 만한더라구요.^^

scott 2021-05-03 11:0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 행복한 책읽기님
아드님 그림??
역동성이 느껴지는데요
꼬리에 별표까지!
오월은 신록처럼 푸릇푸릇한
어린이들 처럼
우리모두 건강하게!!

행복한책읽기 2021-05-03 23:05   좋아요 3 | URL
역동성!!! scott님 역시 예리하십니다. 이 친구 그림의 가장 큰 특징이 바로 저 ‘역동성‘이거든요. 마구 꿈틀거리지요. ㅋㅋ 이 친구는 제 눈물 꾹꾹 찍어 그림 그리는 경지까진 이르지 못했구요. 공룡과 포켓몬 그리는 걸 무지 좋아한답니다.^^

청아 2021-05-03 11:3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삶의 지혜라는 모종~♡ 으아~😆오늘 왜들 이렇게 명언을 쏟으시는지 👍👍
마지막 포켓몬?그림 넘여워요!!ㅋㅋ

행복한책읽기 2021-05-03 23:07   좋아요 3 | URL
ㅎㅎㅎ 저 명언 남긴 거예요. 저도 저 글을 써놓고는 어라, 내가 왜 이리 멋진 문장을 생각해낸 거지 했습니다요. 미미님이 이런 제 맘 들여다본 것처럼 알아봐 주셔 아, 기분 좋습니다.^^ 포켓몬 이뿌지요. 멋있는 그림은 더 많아요^^

붕붕툐툐 2021-05-03 20:5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어머, 너무 지혜로우신 어른이세요~
<꼭꼭 씹으면 뭐든지 달다> 저도 읽어보고 싶네요. 이런 어머니께 교육을 받은 자녀의 글은 어떤지 궁금!!

행복한책읽기 2021-05-03 23:11   좋아요 3 | URL
그죠. 말 지혜와 해학으로 똘똘 뭉친 어르신 같아요. 그 고생 하시고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느긋함을 저도 갖고 싶어요. <꼭꼭 씹으면>은 책은 툐툐님과 같이 읽는 것으루.^^
 

20210430 나는 느린학습자의 엄마입니다 1

알라딘 서재를 기웃거리고부터 가장 의아했던 것이 '페이퍼'라는 것이었다. 100자평은 말 그대로 100자평이고, 리뷰는 100자평을 100배쯤 늘인 독자평인 건 알겠는데, 페이퍼? 이것은 무엇인가? 내가 알아챈 한 가지는 페이퍼는 리뷰와 달린 여러 권의 책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알라딘 페이퍼의 세계는 놀라웠다. 책 읽고 글 쓰는 호모페이퍼들. 누구는 삶과 책을 잇는 생활 글쓰기의 달인이고, 누구는 AI인가 의심스러울 정도의 지적풀을 가진 달인이고, 누구는 지구상의 온갖 책을 섭렵해 강의를 하는 달인이고, 누구는 통통 튀면서도 수려하기 짝이 없는 문장력을 가진 달인이고, 누구는 세계문학 접수를 실천해 나가는 달인이고 등등등. 사실 친구 신청을 하지 않고 있는 달인들도 많다. 그들의 서재를 기웃거리면 넘 비교돼서 자꾸 주눅이 든다. 넌 이 나이 되도록 뭐했니? 책 좋다고 그렇게 떠들고 다녔으면서 아는 게 뭐니? 그런 맘이 드는 것이 아닌가. 꺼이~~~~ 

그러다 슬그머니 고개를 쳐든 생각 하나. 나는 이런 페이퍼를 써볼까. 어차피 한 번은 정리를 해야 하는 일이었으니, 그 정리를 알라딘 서재에다 해봐?

나는 좀 특별한 아이를 키운다. '특별하다'는 건 똑똑하다는 그런 의미가 아니고 평균적인 아이들과는 좀 다르다는 뜻이다. 학계에서는 우리집 어린이 같은 아이를 '경계선 지능' 이나 '느린 학습자'라고 명명한다. 우리집 어린이가 또래보다 발달이 느리고 주의력 결핍에 충동적이며 과잉행동을 보인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남자아이들은 어릴 때 대개들 그러하고 크면서 좋아진다는 말을 나는 믿었다. 그러나 과잉행동은 나이가 들수록 줄어들었지만 주의력 결핍이나 기억력과 인지력은 나아지지 않았다.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이 어린이가 초등학교 1학년 들어 지능검사를 비롯한 각종 검사를 받아본 후였다. 

나에게 독서는 뭐니뭐니해도 '유희'다. 즐겁지 않다면 책을 읽을 이유가 그닥 없었다. 그러나 아이 문제는 좀 달랐다. 나는 머릿속의 세계가 나와는 너무나 다른 이 아이를 이해해야 했고, 이해하고 싶었다. 책은 내 아이에 대한 이해를 도운 길잡이들 중 하나이다. 그런 책들을 이 페이퍼에 담으려 한다.


도리스 레싱의 <<다섯째 아이>>는 잘 쓴 소설이지만 아주 불편한 글이다. 작가의 의도는 우리가 구축한 행복이란 것이 모래성처럼 얼마나 허망하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려 했던 것 같다. 행복으로 가는 길을 방해하는 문학적 장치로 '다섯째 아이'를 착안한 듯한데, 나는 이 소설을 읽는 동안 계속 등장하는 "비정상"이라는 말에 온몸이 떨렸다. 무엇보다 "비정상"이라는 그 아이를 바라보는 어른들의 시선이 너무 무섭고 화나고 안타까웠다. 내가 아는 한, 다섯째 아이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폭발적인 에너지를 가졌지만 그 에너지를 조절할 인지력은 가지지 못한 아이이다. 그러니까 바람직한 도움이 필요할 뿐인 장애 아이를 괴물로 취급한 것. 행복 댐에 구멍이 뚫린 것은 아이 때문이 아니라 그 태도 때문이었다. 태어나는 아이들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장애를 가진 것이 불편의 요소이긴 하나 죄악은 아니다. 그리고 불편함은 장애인보다 비장애인이 더 크게 느낀다. 왜냐하면 무엇이 어떠해야 한다는 신념을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불행은 거기서 시작된다. 아이가 다른가. 그러면 다르게 대하라. 같기를 바라지 마라. 
















올해 초 온 가족이 <<포레스트 검프>를 보았다. 무려 26년 전 개봉작. 범상치 않은 아들과 살다 보니 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 아이들과 어른들이 바보라고 놀릴 때면 포레스트가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하는 말. "엄마 말이, 바보는 지능이 좀 낮은 것뿐이래요." 포레스트의 IQ는 75다. 헐. 우리집 어린이보다 높다니. 아무튼 우리집 어린이는 포레스트와 비슷한데 겉모습만으로는 이 어린이가 더 똘똘해 보인다. 포레스트는 용감하고 현명한 엄마가 있어, 달리기를 잘해, 운동 신경이 좋아, 운명의 신이 늘 붙어다녀 억만장자가 된다. 이렇게 부러울 수가. 

​"여보, 우리 아들도 억만장자가 될 수 있을까?"(아들이 들었다)

"엄마, 뭐가? 뭐가 되라고?" 

"으응. 억만장자." 

"뭐? 엉망장자? 날더러 엉망장자가 되라고?" 

"아니아니, 엉망장자가 아니고 억만장자. 따라해봐. 억  만   장  자." 

"아하! 엉  망  장  장!"(깨갱) 














내 아들과 비슷한 성향의 아이를 키우는 동생이 "언니, 우리 아이들은 이 부류에 드는 것 같아"라면서 내게 권해준 책이었다. 경계선 지능 아이들을 오랫동안 관찰하고 연구해온 저자는 이런 아이들에 대한 정의와 발달적 특성, 인지력 향상 및 학습지도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정말로 고마운 책이다. 경계선 지능에 드는 아이들의 비율의 의외로 높다. 대략 13~14%이다. 

경계선 지능은 미국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편린(DSM-IV)에서 "경계선 지적 기능(Borderline Intellectual Function: BIF)"으로 분류한 것으로 통상 경계선 지능으로 줄여서 부르고 있다. DSM-IV는 "경계선 지능"을 표준화 지능검사를 실시하여 IQ 70~85 사이에 속하는 아동들로 정의하였다. 실제로는 IQ 70~79 사이의 지능을 나타내는 경우를 경계선 지적 수준이라고 해석한다(K-WISC 3 지침서, p187)(16쪽)​

저자는 5년 뒤 연구 성과를 더 많이 담은 또 한 권의 책을 출간한다. <<경계선 지능과 부모>>에서 저자는 경계선 지능 아이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이들은 교육이 필요한 아이들이다. 배움이 느려 누구나 쉽게 가르칠 순 없지만 자극을 줘서 잠재능력을 발휘하도록 도와야 하는 아이들이다. 따라서 특별한 교육이 필요하다. . . . . . . 경계선 지능을 가진 아이들은 분명 장애는 아닐지라도 방임하거나 매우 나쁜 환경에 노출되면 지적 장애가 될 가능성이 더 높다.(26쪽) 
















이 두 권의 책은 일선 교사들(초등학교, 중학교)이 글을 읽을 줄 모르는 학생들, 글자는 읽어도 의미를 모르는 학생들을 찾아내 그들에게 적합한 특별 교육을 기록한 학교 현장 탐사 보고서이다. 학교 속 문맹자들을 유형별로 구체적으로 기록해 놓았다. 이 두 선생님의 문제 의식과 탐구 정신과 실천 의지는 감탄과 감사를 절로 불러일으킨다. 두 교사는 그림책 읽기를 통해 아이들의 문맹 탈출을 시도하는데, 효과 만점이다. 나는 이 두 권의 책을 연달아 읽고 우리집 어린이가 받고 있던 구몬 학습을 때려치웠다. 1년을 배웠는데도 한글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 이 두 선생님이 학생들을 가르친 방법을 우리집 어린이에게 적용해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아이와 그림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 오랜 작업 끝에 이 어린이는 드디어 2학년 말쯤 한글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5학년이 된 이 어린이는 책을 좋아하며 소리 내지 않고 속으로 읽기가 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 물론 문해력의 길은 여전히 멀다. 

"읽고 쓰기를 가르치는 것은 공교육의 영역이다. 글자를 모르는 아이의 한글 교육은 부모와 가정이 아니라 학교와 교사의 역할이다. 국가 교육과정에 한글은 초등학교 1학년 과정에서 가르치도록 명시하고 있다. 부모는 국가와 학교, 그리고 교사를 믿고 자녀를 학교에 보낸다. 만약 학교가, 교사가 이러한 믿음을 저버리고 아이가 한글을 익히지 못한 상태를 방치한다면 이는 약속위반이요, 공교육의 붕괴를 뜻한다."(<<읽고 쓰지 못하는 아이들>> 11쪽) 









홍인재 선생님과 엄훈 선생님이 제시한 문제 해결 방안을 내가 아이에게 적용한 첫 번째 책이다. 나는 초등학교 2학년 아들과 이 책을 한 달 동안 읽었다. 이 책은 일단 이야기가 재미있다. 아이들은 똥 얘기라면 사족을 못 쓴다. 게다가 복수극이다. 통변의 통쾌함을 가져다준다. 이 책에는 여러 동물이 등장하고 그들이 누는 똥의 생김새와 똥 누는 소리는 저마다 다르다. 모양과 색깔과 소리에 대한 인지를 끌어낼 수 있다. 그런데 이 얇은 동화책을 한 달 동안이나 읽었다고? 그렇다. 처음에 내용을 읽어 주며 같이 웃는다. 독서는 유희가 우선이니까. 두 번째 읽을 때는 차례와 상관없이 등장 동물들을 불러낸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경계선 지능을 가진 아이들은 스스로 기억하는 능력이 모자라 이 작업을 거치지 않으면 읽어준 것을 대부분 까먹기 때문이다. 다음 번엔 등장한 차례대로 동물들을 소환한다. 순서 개념을 넣어 주기 위해서다. 여러 번 읽어 주어야 순서대로 말한다. 다음에는 동물마다의 똥 모양을 이야기한다. 그 다음에는 똥 누는 소리를 이야기한다. 이것 역시 기억하기까지 오래 걸린다. 다음에는 범인이 누구인지, 그 범인의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묻는다. 복수를 끝냈을 때 두더지가 뭐라고 말했는지, 왜 그렇게 말했을지 이야기해 본다. 그리고 마지막 하일라이트. 이 책의 내용으로 일인극을 펼쳐 보인다. 이것은 우리집 어린이가 연기하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5학년이 된 이 어린이는 지금도 공룡 흉내 내기를 엄청 좋아하고 엄청 잘한다. 그리하여 이 어린이는 지금도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를 달달달 외우신다. 

To be continued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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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4-30 15:1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별 열 개 주고 싶은 페이퍼입니다. 짝짝짝

행복한책읽기 2021-05-01 09:23   좋아요 3 | URL
와. 별이 열 개!!! 리뷰 달인 잠자냥님이 주는 별이니 냉큼 받겠습니다요. 어깨가 으쓱해집니다^^

새파랑 2021-04-30 15:1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도 🌟 10개요. 알라딘에 달인이 많다는데 완전 공감합니다. ‘다섯째 아이‘ 진짜 잘쓴 책인데 불편하다는 ㅜㅜ 저도 독서는 ‘유희‘라고 생각합니다^^

행복한책읽기 2021-05-01 09:25   좋아요 2 | URL
별 열개 추가!!!! 와. 별이 쏟아지는 날도 있다니. 어깨 더 으쓱. 새파랑님 덕에 도리스 레싱 입문했어요. 리뷰가 어찌나 궁금증을 유발하던지. 감사^^

scott 2021-04-30 15:5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세상의 속도에 맞출 필요가 없습니다.
행복한 책읽기님의 속도에 맞춰 아이가 읽고 학습 해나가는 모습 진심으로 감동적이네요.
잠재적 능력이 많은 아이 건강하게 천천히 아이의 속도에 맞춰 배워나가는것
행복한 책읽기님 홧팅!!

별폭탄은 이런 포스팅에 쓰려고 아껴두었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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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편도 기대해용 ~*

행복한책읽기 2021-05-01 09:28   좋아요 3 | URL
아. 여긴 별폭탄. 이런 폭탄은 황홀하고 달콤하구만유. 별사탕 눈이 내리는 듯해요. 아름다워요. scott님 맘 같아요. 감사감사^^

청아 2021-04-30 16:2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누가 내머리에 똥쌋어>찜해요~♡요즘 동화가 조금씩 끌리네요? 책읽기님 시 적 감수성만 풍부하신게 아니라 아이와 함께 성장하고 계신 멋진 엄마! 연기는 같이해야 맛인데 책읽기님도 잘하실 듯한 느낌적인 느낌!😆

행복한책읽기 2021-05-01 09:30   좋아요 3 | URL
ㅎㅎㅎ 지가요. 자칭타칭 리액션여왕이어유. 아이가 책을 읽거나 연기할 때 호응을 끝내주게 해줍니다. 그럼 아이가 신나서 더욱 합지요. 문제는 제 에너지가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진다는 ㅡㅡ <누가 내머리>는 정말정말 재밌어요^^

2021-04-30 17: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행복한책읽기 2021-05-01 09:34   좋아요 3 | URL
ㅋㅋㅋ 짐작의 달인 북사랑님. 님은 달리기의 달인^^ 선배님이 그렇게 하신이유 저는 충분히 알 것 같아요.당사자가 아니면 보지 못하는 것이 있거든요. 어려운 걸음인데 존경스럽네요. 마주일기. ㅋㅋ 이참에 북사랑님도 일기장 꺼내보세요. 애들은 힘들고 신선하고 그렇네요.

붕붕툐툐 2021-04-30 22:4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엉망장장이라니 이렇게 귀여운 어린이를 봤나~~ 포레스트 검프는 극장에서 3번 본 유일한 영화고요, <학교 속의 문맹자들>은 제가 읽은 책이네요~
투비컨티뉴가 이렇게 기다려질 수가 없네요. 행복한 책읽기님은 이 페이퍼 시리즈로 자녀 교육 달인 찜입니다!!!🙆

행복한책읽기 2021-05-01 09:37   좋아요 2 | URL
역쉬. 샘이시라 엄훈 샘 책을 읽으셨네요. 저 이 책 읽고 넘 고마워서 질문도 있고 해서 엄훈 샘께 이멜도 보냈어요. 친절히 답장도 주셨다는.^^ 툐툐님. 저도 달인에 등극하게 되는건가요? 끌어올려주시는 건가요? ㅋㅋ

라파엘 2021-05-01 10: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정말 소중한 페이퍼를 작성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교육학을 연구하는 입장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네요. ˝평균의 종말˝이라는 책이 떠오르기도 하고요... 자녀분이 훌륭한 양육자를 만나게 되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이 페이퍼 시리즈는 잘 읽어보아야겠어요 ^^

행복한책읽기 2021-05-02 12:31   좋아요 1 | URL
아. 라파엘님은 교육학을 연구하시는군요. 저는 아이 덕에 새로운 세계를 접했고 알아가고 있어요. 이 아이가 절 만난것도 다행이지만(자뻑맘^^) 저도 이 아이를 만나 감사해요. <평균의 종말> 찾아볼게요. 라파엘님께 도움 받을 일도 생기겠어요^^

han22598 2021-05-01 10: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행복한님도 숨겨진 페이퍼의 달인이셨네요.^^ 써주신 글 나눠주셔서 감사해요. 우리는 모두다 특별한 한사람 한사람이 아닐까요?. 행복한님 아이도 특별한 사람이고, 행복한님도 특별한 사람이고......다음 .이야기 기다릴게요 ^^

행복한책읽기 2021-05-02 12:33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요. 모두 다 특별한 한 사람 한 사람. 한님처럼 생각하는 사람들만 있음 제 아이 같은 아이들이 무던히 살거구만유 ㅋ

희선 2021-05-03 02: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고 쓰기를 가르치는 건 공교육의 영역이고 한글은 초등학교 1학년 과정에서 가르치도록 국가 교육과정에 쓰여 있다는데, 현실은 그것과 다른 듯합니다 요새는 학교에 가기 전부터 부모가 아이를 가르쳐야 한다고 하기도 하더군요 하나도 모르면 부모가 집에서 뭐 했나 하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아주 잘 아는 건 아니어도 조금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을지...

사람마다 다른데 학교 교육은 거기에 잘 맞지 않기도 하죠 그걸 나쁘다 말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선생님이 한사람 한사람한테 다 마음 쓰기 어렵기도 하니... 지금은 아이가 얼마 되지 않는 것 같던데, 아이한테 조금은 맞춰주면 좋겠네요


희선

행복한책읽기 2021-05-04 00:40   좋아요 1 | URL
맞아요. 이상과 현실은 달라요. 그래도 저 두 선생님들처럼 열성적으로 가르치는 교사들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학급 인원 수는 제가 학교 다닐 때보다 3분의 1로 줄었지만 저는 더 줄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쪽이에요. 교사들 업무를 줄이고 학생들과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을 많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답니다.^^

scott 2021-05-07 15: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행복한 책읽기님 이달의 당선작 추카~
저의 별빛 가루가 마법 가루 였음 ^ㅅ^

행복한책읽기 2021-05-07 16:10   좋아요 1 | URL
아니. scott님한테는 이달의 당선작들 미리 보내주기라도 하나요? 어쩜 이리도 소식이 빠르심? 감솨감솨. 요 페이퍼는 진심 당선되고 싶었어요.^^

새파랑 2021-05-07 16: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직접보진 못했지만 스콧님 알람 따라서) 당선 축하드려요~!!

행복한책읽기 2021-05-07 16:11   좋아요 2 | URL
지금은 몰겠는데, 새파랑님도 분명 당선되셨을 듯. 고마워요~~~~^^

잠자냥 2021-05-07 16: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제가 별 열 개 주고 싶은 페이퍼라고 했는데 역시 당선되셨군요. 축하합니다.

행복한책읽기 2021-05-07 16:16   좋아요 2 | URL
잠자냥님 별 열 개를 알라딘 관계자들이 보고 당선시켜준 듯합니다. 고마워요~~~^^

초딩 2021-05-08 18:4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행복한 책읽기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만세 만세~ ㅎㅎㅎ

행복한책읽기 2021-05-10 10:58   좋아요 1 | URL
축하 댓글 감사해요. 다들 생업에 바쁘실 텐데, 바지런히 댓글까지. 이번엔 당선금 올라 좋더라구요. 더더더 주면 좋겠다는. ㅋㅋ

얄라알라 2021-05-08 23: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제가 4월에 읽었던 많은 좋은 페이퍼 중에서도 또렷하게 기억하는 행복한 책읽기님의 페이퍼, 당선 진심으로 축하드리고 덩달아 기쁩니다!!^^

행복한책읽기 2021-05-10 11:00   좋아요 1 | URL
또렷하게 기억하는! 캬. 이것은 저를 으샤으샤 시켜주는 댓글이군요. 덩달아 기뻐해주셔 고맙습니다. 저도 덩달아 더 기분 좋아졌어요. 기운 받아 언능 2편 써야 하는디 ^^;;;
 

20210429 #시라는별 32

무말랭이 
- 김상순 

똑 눈 온 거 겉제? 
달밤에 살짝 나와서 보면 
누가 디라서 뿌려 놓은 눈이라. 
달밤에는 냄새도 희미해져서 
누가 봐도 소복소복 눈이라. 

허, 엄마가 시를 읊소. 

시가 뭐꼬? 

엄마가 방금 읊은, 그런 게 시요. 

내사 그런 건 모르고. 
소복소복 눈이 쌓이모 
너그가 강생이메로 구불다가 
낯이 빨개가 방에 들오면 
눈에 묻어 온 산 냄새가 
온 방에 퍼지디라. 

엄마 진짜 잘한다. 

그러면 이 시 좀 갖고 가라이. 
짐치매로 치대서 삭혀서 묵든지 
더 말리서 물 낋일 때 넣어 무라. 


다리서 : 바람에 날려 알곡을 가려서 
강생이메로 : 강아지처럼 
짐치매로 : 김치처럼 


어미 김상순이 입으로 내뱉는 말들은 아들 홍정욱에게 언제나 시로 들렸다. 어미가 툭툭 뱉어내는 시어들 속에는 어미가 살아오는 동안 ˝생짜배기로 몸에 익힌 세상 이치˝와 어미 ˝몸속에 통째로 녹아든 삶의 골짝골짝˝(8쪽)이 깃들어 있었다. 어미만큼은 아니지만 아들도 살아보니 무어라 콕 집어 말할 수 없는 쓸쓸함과 서러움이 매운 고추 삼킨 마냥 입천장을 얼얼하게 데우는 날이 무시로 찾아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 날이면 슬쩍슬쩍 펼쳐 보고 싶어, 그런 날이면 그냥 안겨 보고 싶어 어미의 말들을 받아적기 시작했다.

어미 얼굴 한 번 더 보고 옮겨 쓰고, 어미 소리 한 번 더 듣고 옮겨 쓰기를 거듭하는 아들을 보고 늙은 어미가 말한다. 

˝너만 듣고 말지, 말 같지도 않을 것을 어디다 알린다 말이고? 참 별일을 다 한다. 남사스럽게 . . . . . . 
내가 살면서 배운 거는 이것뿐이다. / 어디 가서 말하지 마라. 숭본다.˝(150쪽) 

김상순이 구술하고 홍정욱이 옮겨 쓴 <<살아 보니 그런 대로 괜찮다>>는 이렇게 해서 탄생했다. 남들이 숭본다(흉본다)며 아서라, 말어라 라고 한 어미의 말조차 아들 홍정욱은 그대로 받아썼다. 이 아들은 불효자일까. 그런데 책을 읽어 보니 내가 김상순의 자식이었어도 어미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의 가락들을 잡아다 오선지에 옮겨 그리고 싶겠더라. 구수하고 쫀득하고 재미지고 살가웁다.

안도현 시인은 안도현의 문장들 <<고백>> 5부 ‘시적인 순간‘에 대해 이런 문장을 썼다. 

˝시에서 묘사에 충실해야 하는 이유는 대상의 현상을 생생하게 그리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그 묘사의 생생함이 대상의 본질에 이르는 관문이기
때문이다. 묘사를 통해 대상과 시적 화자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게 된다.˝(201)

김상순은 묘사, 대상, 현상, 시적 화자 등등의 어려운 말들은 아마도 모를 것이다. 그러나 소복이 쌓여 있는 무말랭이들이 달빛을 만나면 누군가 밤사이 뿌려 놓고 간 눈가루가 되고, 눈 쌓인 벌판을 마구 뒹굴던 아이들이 방에 들어오면 ˝눈에 묻어 온 산 냄새가˝ 온 방에 퍼진다고 하는 표현이 묘사가 아니고 무엇일까. ‘무말랭이‘와 ‘눈‘이라는 대상의 본질에 다가가는 생생한 묘사가 아니고 무엇일까. ​

김상순의 시들은 삭혀 묵고, 끓여 묵기 참 좋다. 온몸 구석구석이 시큰해지고 따스해진다. 


홍정욱 작가가 딸이라 내멋대로 착각했네요. 수정했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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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4-29 11: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짐치매로 치대서 삭혀서 묵든지
더 말리서 물 낋일 때 넣어 무라.
.....................
눈에 묻어 온 산 냄새]
묘사에 감탄!
풍경이 그려지고 사물의 형상이 시야에 들어오고
향기가 느껴지는
4월 마지막 목요일시!
읽고 또 읽어요🐸

행복한책읽기 2021-04-29 12:57   좋아요 3 | URL
그죠. 이런 분들의 말씀 들으면 책에서 배우는 것보다 삶에서 배운 것들이 진짜다 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읽고 또 읽으려구요. 이 분 시는 소리 내 읽었을 때 그 맛이 더 진해지네요.^^

새파랑 2021-04-29 12:0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 엄청 구수한 느낌의 시네요. 어머니 시인 너무 감각적임. ‘눈에 묻어 온 산 냄새‘라니~!!

행복한책읽기 2021-04-29 12:59   좋아요 3 | URL
배운 감각이 아니고 삶이 준 감각이겠죠. 김치 익듯 몸에 밴 감각 같아요. 절대 배울 수 없는데, 배우고 싶은 감각^^

희선 2021-05-03 01: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머니 말을 받아 적은 시 이정록 시인도 썼더군요(《어머니 학교》 그 책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그런 사람 더 있을 거예요 김용택 시인도 어머니 말씀을 많이 적었던 것 같습니다 산문으로 본 듯합니다 김용택 부인이 시어머니 말씀을 적었다던가 시인은 어머니가 만드는 걸까요


희선

행복한책읽기 2021-05-04 00:44   좋아요 0 | URL
오호. <어머니 학교> 냉큼 검색하겠슴요. 희선님도 누르면 나오는 자판기처럼 연상 작용으로 책들이 툭툭 튀어나오네요. 시인은 . . . 어머니 덕을 보는 듯합니다.^^
 
두 늙은 여자 - 알래스카 원주민이 들려주는 생존에 대한 이야기
벨마 월리스 지음, 짐 그랜트 그림, 김남주 옮김 / 이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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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28 뭔가 해보고 죽자고! 

알라알라북사랑님이 올린 글 보고 '내게 필요한 책'이라는 느낌이 확 들어 도서관으로 자전거 페달을 밟게 만든 책. 느낌은 정확했다.
여든 개의 여름과 일흔 다섯 개의 여름을 본(아메리카 원주민들의 표현 같다) 늙은 언니들이 어찌나 맘에 쏙 드는지 'ㅈㄴ 멋있어,' 'ㄱ 멋있어' 라고 마구마구 말해주고 싶을 정도다. 알래스카의 윤여정 같은 걸크러쉬 언니들. 
고려장을 당하듯 부족민들에게 버림 받기 전의 이 언니들의 모습은 딱 뒷방 노인네들이었다. "끊임없이 여기가 아프다. 저기가 쑤시다고 불평을" 하고 "자신들이 늙고 약하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언제나 지팡이를 짚고 다녔다."(17쪽) 
늙어 아무 짝에도 쓸모없다고 여겨져, 아니 그보다 거추장스런 짐짝으로 여겨져 부족민들은 두 여인만 남겨 놓고 떠났다. 그것은 죽음을 선고하는 것이나 진배없었다. 사람은 궁지에 몰리면 생각지도 못한 투지가 솟아오르기도 한다지. 일흔다섯 개의 여름을 본 '사(별이라는 뜻)'는 이대로 주저앉고 싶지 않아, 주저앉을 수 없어 하는 마음이 솟구쳐 여든 개의 여름을 본 '칙디야크(박새라는 뜻)'에게 뜻밖의 다부진 제안을 한다.
"친구야. 어차피 죽을 거라면 뭔가 해보고 죽자고. 가만히 앉아서 죽음을 기다릴 게 아니란 말이야."(29쪽) 
그리하여 예전보다 더한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알래스카에서 두 노인의 겨울나기 투쟁이 이어진다. 생존투쟁은 지난날의 기술을 기억해내는 것에서 시작된다. 모닥불 피우기, 작나무를 네 조각으로 잘라 가죽끈과 연결해 눈신발 만들기, 올가미와 토끼 덫 만들기, 다람쥐 사냥하기, 가슴팍에 가죽끈을 묶어 썰매 끌기, 연어 껍질로 말린 물고기 담을 주머니 만들기 등등등. 두 여인은 자신들이 지팡이 없이 여러 마일을 걸을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한다. 그러나 . . . . . .그들의 몸은 노쇠하다. 잠을 자고 난 아침이면 몸뚱이가 천근만근이고 두들겨 맞은 듯 여기저기 쑤시고 결리는 것을 넘어 통증이 뼛속 구석구석 파고든다. 누운 이 자리서 몸을 까딱하지 않고 그만 딱, 눈을 감아 버리고만 싶다. 그러면 딱, 행복할 것만 같다. 
그런데 . . . . . . 이제 그만 생의 끈을 놓아도 되겠다 싶은 순간 찾아든 절박한 소피 마려움.  
"그녀는(칙디야크) 그 욕구를 무시하려 애썼지만, 방광이 터져나갈 것 같았다. 끙 소리를 내며 그녀는 소변을 참았다. 금방이라도 오줌이 나올 것만 같았다. 겁에 질린 그녀는 튕겨지듯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깜짝 놀라는 친구의 시선을 받으며 버드나무로 다가갔다."(68쪽)
사느냐 죽느냐라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모면하게 만든 것은 위대한 사상도, 중대한 결심도 아닌 고작 생리적 현상이었다. 방광의 묵직함은 팔순 노인의 뻣뻣한 몸뚱이도 벌떡 일으켜 세웠다. 이 장면은 읽는 순간에도, 글로 옮겨 쓰는 순간에도 큭큭거리는 웃음을 불러일으킨다. 이 작품의 최고 명장면!!! 
여러 우여곡절 끝에 겨울을 무사히 넘긴 두 늙은 여인은 다시는 맛보지 못할 줄 알았던 인생의 감미로운 순간을 음미한다. 나중에 자신들의 부족민들을 만나 함께 지내게 된 후로도 지나친 도움을 사양하고 "새로 발견한 독립성"(161쪽)을 끝까지 즐기며 산다.  
만나면 얼싸안고 싶은 이 늙은 언니들을 보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첫째, 무조건 몸을 움직여야 해. 둘째, 친구를 곁에 두어야 해. 부지런히 수다를 떨어야 해.' 두 언니 덕에 좀 살 것 같다. ^^  늙어가는 모든 이들에게, 우울이 몰려드는 이들에게 읽기를 권한다. 


알래스카 아타바스칸족 토박이인 저자 벨마 월리스가 들려주는 엄마 이야기도 참 따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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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4-28 11:2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친구야. 어차피 죽을 거라면 뭔가 해보고 죽자고. 가만히 앉아서 죽음을 기다릴 게 아니란 말이야]
오늘의 밑줄 쫘악~५✍⋆*
사느냐 죽느냐라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모면하게 만든 것은 위대한 사상도, 중대한 결심도 아닌 ㅎㅎㅎ
SO피 마렵소 ㅎㅎㅎ
우와 이책 매력적임
알래스카의 두여인의 생존!생로 불사의 스토리
이런책 발굴하신 북사랑님도 멋지고
재치 만점 행복한 책읽기님
리뷰도 재미 만점!!

행복한책읽기 2021-04-28 13:21   좋아요 2 | URL
네. 이 늙은 언니들 넘 멋져서 감동이었어요. 현대판 고려장 당하기 전까지 열나 움직여!!! 그렇게 말해주는 것 같았어요^^ 아 근데 pc로 썼더니, 북플에서 문단 나누기가 전혀 안 되어 있군요. 꺼이~~~~

얄라알라 2021-05-01 00: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행복한 책읽기 님께서 올려주신 이 멋진 리뷰를 5월에 읽다니요! (그래봤자 이틀 지각)

˝알래스카의 윤여정˝ 키야!!! 카피라이터하셨음, 최고연봉 받으실듯.

콕, 딱, 집어 표현해주셨네요

만족스럽게 읽으셨다니, 괜히 뿌듯합니다. 감사합니다.

행복한책읽기 2021-05-02 12:59   좋아요 0 | URL
이런!! 이 멋진 댓글을 이제야 발견하다니 ㅋ 지두 이틀 지각. ㅋㅋ 두 언니들 느무느무 좋았어요. 저자가 쓴 원주민 이야기 더 읽고프던데 번역된 책이 이것뿐이더라고요. 아쉽아쉽. 숨어 있는 책들 계속 공유해주세용~~~^^

2021-05-01 00: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행복한책읽기 2021-05-02 13:05   좋아요 3 | URL
저는 이 언니들의 생존투쟁을 보고 아무리 풍족해도 봉양받는 삶을 거부해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할일 없을 때 투덜이 할머니들이었잖아요. 자신들이 고생고생해 모은 넉넉한 식량을 부족민들에게 나눠줄 때 이 언니들의 당당한 모습이 얼마나 짜릿하던지. 중요한건 물질이었어!!! 라고 결론내리게 되었다는^^;;; 저희 엄니가 일을 딱 놓은 그 순간부터 급속도로 늙기 시작했거든요. 그래서 저는 일의 귀함을 알아요. 저는 이 언니들처럼 때로 힘들게, 때로 즐겁게 일하다 죽을라구요 ㅋㅋ

얄라알라 2021-05-02 13: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가 올 초, 방태산 화타라는 분이 쓰신 건강 에세이 5권 읽고 배운 걸 한 줄로 요약하라면, ˝걸을 힘 있다면 걷고 일해라.˝였어요^^ 행복한 책읽기님의 댓글보니 새삼, 그말이 정녕 맞는가벼.^^ 이런 생각 드네요^^
 
어제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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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어제>>를 몇 시간만에 다 읽었다. 이로써 한국에 출간된 이 작가의 책은 다 읽은 셈.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이 워낙 강렬해 이후 세 작품에선 큰 감흥을 못 느꼈다. 순서를 달리 읽었다면 느낌이 달랐을까. 아무튼, 크리스토프는 자신의 첫 작품을 능가하는 작품을 쓰지 못하는 것에 자괴감은 느끼지 않았을까.

<<어제>>를 읽으면서 왠지 그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 지망생이자 공장노동자인 주인공 토비아스 호르바츠가 내게는 작가의 분신처럼 보였다. 나이를 아무리 먹어도 사춘기 소년 같고 답답하기만 한 호르바츠가 대체 어떤 답을 찾을지 궁금해하며 읽었는데, 마지막 문장에서, 아! 하는 탄식이 터져 나왔다. 

"어제는 내내 무척 아름다웠다. 숲속의 음악, 내 머리칼 사이와 너의 내민 두 손 속의 바람, 그리고 태양이 있었기 때문에." 

소설에 들어가기 전 문장이다. 지나간 시간들은 왜 아름다워 보일까. <<어제>>에 묘사된 오늘은 전혀, 조금도, 눈꼽만치도 아름답지 않다. 인생이 너~~~~무 구질구질해 보인다. 망명자들의 삶이 다 그러했을까만, 어쨌든 읽는 내내 고구마를 삼키는 마냥 목이 멨다. 꺽꺽. 

이 책에서 내게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들은 이것이었다.

베리는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죽었음이 판명되었다. / 로베르는 욕조에서 동맥을 끊고 죽었다. / 알베르는 "너희는 내 똥이나 먹어라"라고 우리말로 적은 쪽지를 남기고 목매달아 죽었다. / 마그다는 감자와 당근 껍질을 까고 나서 바닥에 앉아 가스벨브를 열고 오븐에 머리를 밀어넣은 채 죽었다. (60-61쪽) 

이들의 죽음은 과연 자살 시도의 결과였을까. 그보다는 "저는 다만 쉬고 싶었을 뿐입니다."(17쪽) 라는 주인공의 말처럼, 더는 이 삶을 지속하고 싶지 않은 피곤함 그리고 무력감의 결과 같았다. 

헝가리 혁명의 여파를 피해 스물한 살의 나이로 갓난아이를 안고 국경을 넘은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2011년 스위스 뇌샤텔의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 그의 나이 76세였다. 


이제 나에게는 희망이라곤 거의 없다. 전에는 그것을 찾아서 끊임없이 이동했다. 나는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엇을? 나도 몰랐다. 그러나 인생은 있는 그대로의 것, 어쩌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인생은 무언가 의미 있는 것이어야 했고 나는 그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찾아다녔다. / 나는 이제 기다릴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방안에서 의자에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 바깥세상에는 그럴듯한 어떤 인생이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내 인생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다. - P41

저녁에 공장을 나서면 장을 보고 저녁 먹을 시간밖에 없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공장에 나오려면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가끔 내가 일을 하기 위해 사는 것인지 살기 위해 일을 하는 것인지 자문한다. - P47

할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무엇이든 해보려고 시도했다. 무력감이 감정 중에 제일 무서운 것이다. -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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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4-27 12:5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와 신기하네요 저는 방금 ‘문맹‘ 리뷰 썼는데 ㅎㅎ 전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 만큼은 아니어도 ‘어제‘도 나름 좋았었어요, 근데 ‘거짓말‘이 워낙 엄청나서 ^^ 책읽기님의 기분이 뭔지 알거 같아요~

행복한책읽기 2021-04-28 09:42   좋아요 3 | URL
ㅋ 맞아요. 거의 같은 시간대에 리뷰를 올린 듯했죠. 저도 <어제> 나쁘지 않아요. 근데 요즘 좀 우울 모드라 책을 읽는 동안 주인공이랑 같이 다운돼 미치는 줄 알았슴요.^^;;;

청아 2021-04-27 13:0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도 강렬함에 있어선 <존재의 세가지..>가 최고인듯. 각 작품 어떤 순서로 쓰였는지 찾아봐야 겠어요.🤔

행복한책읽기 2021-04-28 09:43   좋아요 3 | URL
그럼 지는 미미님이 찾아봐 주는 순서 낼름 받아먹기만 하면 되는 겁니까. ㅎㅎㅎ

초딩 2021-04-27 20:1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존재의 세가지
그것을 넘을 작품을 쓸 필요도 없을 만큼
그 책은 충분히 강렬한 것 같습니다 ㅎㅎ
어제는 그래도 보고는 싶네요 :-)

행복한책읽기 2021-04-28 09:45   좋아요 3 | URL
초딩님. 우문현답이심요. ‘뛰어넘을 작품을 쓸 필요도 없을 만큼 충분히 강렬하다‘에 오른손 번쩍!! ^^ 크리스토프 작품은 국내 출간된 게 몇 권 없으니 무조건 다 읽는 걸루다 ^^

붕붕툐툐 2021-04-27 22:3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냥 기대를 놓고 읽어야겠어요. 그럴만큼 충분히 매력적인 작가잖아요~😉

행복한책읽기 2021-04-28 09:49   좋아요 3 | URL
맞아요 맞아요. 충분히 매력적인 작가에요. 저는 이분이 그 많은 일 겪고도 저 나이까지 살아내신 것에 감탄했어요. 어쩌면 어린아이 같기만 한 문체를 고수한 것은, 늦게 배운 외국어로 쓰는 탓도 있겠지만 마주하기 힘든 사건들과 거리 두기를 하고 싶어서이기도 했겠단 생각이 들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