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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늙은 여자 - 알래스카 원주민이 들려주는 생존에 대한 이야기
벨마 월리스 지음, 짐 그랜트 그림, 김남주 옮김 / 이봄 / 2018년 4월
평점 :
20210428 뭔가 해보고 죽자고!
알라알라북사랑님이 올린 글 보고 '내게 필요한 책'이라는 느낌이 확 들어 도서관으로 자전거 페달을 밟게 만든 책. 느낌은 정확했다.
여든 개의 여름과 일흔 다섯 개의 여름을 본(아메리카 원주민들의 표현 같다) 늙은 언니들이 어찌나 맘에 쏙 드는지 'ㅈㄴ 멋있어,' 'ㄱ 멋있어' 라고 마구마구 말해주고 싶을 정도다. 알래스카의 윤여정 같은 걸크러쉬 언니들.
고려장을 당하듯 부족민들에게 버림 받기 전의 이 언니들의 모습은 딱 뒷방 노인네들이었다. "끊임없이 여기가 아프다. 저기가 쑤시다고 불평을" 하고 "자신들이 늙고 약하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언제나 지팡이를 짚고 다녔다."(17쪽)
늙어 아무 짝에도 쓸모없다고 여겨져, 아니 그보다 거추장스런 짐짝으로 여겨져 부족민들은 두 여인만 남겨 놓고 떠났다. 그것은 죽음을 선고하는 것이나 진배없었다. 사람은 궁지에 몰리면 생각지도 못한 투지가 솟아오르기도 한다지. 일흔다섯 개의 여름을 본 '사(별이라는 뜻)'는 이대로 주저앉고 싶지 않아, 주저앉을 수 없어 하는 마음이 솟구쳐 여든 개의 여름을 본 '칙디야크(박새라는 뜻)'에게 뜻밖의 다부진 제안을 한다.
"친구야. 어차피 죽을 거라면 뭔가 해보고 죽자고. 가만히 앉아서 죽음을 기다릴 게 아니란 말이야."(29쪽)
그리하여 예전보다 더한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알래스카에서 두 노인의 겨울나기 투쟁이 이어진다. 생존투쟁은 지난날의 기술을 기억해내는 것에서 시작된다. 모닥불 피우기, 작나무를 네 조각으로 잘라 가죽끈과 연결해 눈신발 만들기, 올가미와 토끼 덫 만들기, 다람쥐 사냥하기, 가슴팍에 가죽끈을 묶어 썰매 끌기, 연어 껍질로 말린 물고기 담을 주머니 만들기 등등등. 두 여인은 자신들이 지팡이 없이 여러 마일을 걸을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한다. 그러나 . . . . . .그들의 몸은 노쇠하다. 잠을 자고 난 아침이면 몸뚱이가 천근만근이고 두들겨 맞은 듯 여기저기 쑤시고 결리는 것을 넘어 통증이 뼛속 구석구석 파고든다. 누운 이 자리서 몸을 까딱하지 않고 그만 딱, 눈을 감아 버리고만 싶다. 그러면 딱, 행복할 것만 같다.
그런데 . . . . . . 이제 그만 생의 끈을 놓아도 되겠다 싶은 순간 찾아든 절박한 소피 마려움.
"그녀는(칙디야크) 그 욕구를 무시하려 애썼지만, 방광이 터져나갈 것 같았다. 끙 소리를 내며 그녀는 소변을 참았다. 금방이라도 오줌이 나올 것만 같았다. 겁에 질린 그녀는 튕겨지듯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깜짝 놀라는 친구의 시선을 받으며 버드나무로 다가갔다."(68쪽)
사느냐 죽느냐라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모면하게 만든 것은 위대한 사상도, 중대한 결심도 아닌 고작 생리적 현상이었다. 방광의 묵직함은 팔순 노인의 뻣뻣한 몸뚱이도 벌떡 일으켜 세웠다. 이 장면은 읽는 순간에도, 글로 옮겨 쓰는 순간에도 큭큭거리는 웃음을 불러일으킨다. 이 작품의 최고 명장면!!!
여러 우여곡절 끝에 겨울을 무사히 넘긴 두 늙은 여인은 다시는 맛보지 못할 줄 알았던 인생의 감미로운 순간을 음미한다. 나중에 자신들의 부족민들을 만나 함께 지내게 된 후로도 지나친 도움을 사양하고 "새로 발견한 독립성"(161쪽)을 끝까지 즐기며 산다.
만나면 얼싸안고 싶은 이 늙은 언니들을 보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첫째, 무조건 몸을 움직여야 해. 둘째, 친구를 곁에 두어야 해. 부지런히 수다를 떨어야 해.' 두 언니 덕에 좀 살 것 같다. ^^ 늙어가는 모든 이들에게, 우울이 몰려드는 이들에게 읽기를 권한다.
알래스카 아타바스칸족 토박이인 저자 벨마 월리스가 들려주는 엄마 이야기도 참 따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