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고 그녀와 세번째 만났을 때 어색하지 않았다는 얘기는 아니다. 도무지 '소심하다' 따위의 공통점 갖고 친해질 리 없는 인간사였다. 그런데 왜 자꾸 만났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지만, 세상엔 왜 자꾸 만나는지 모르면서 계속 만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친하지 않았기 때문에, 누구도 먼저 일어나잔 말을 못 해, 친한 이들보다 더 오래 앉아 있을 때도 있었고, 친하지 않았기 때문에 서로 계산을 하겠다고 몸싸움을 한 적도 있었다. 이러한 선물 경쟁 역시 원시부족의 특징 중 하나일터. 우리는 관계의 벽에 구멍을 뚫는 멉 중 가장 미련한 방식을 택했던 건지도 몰랐다.
  그녀를 너댓 번쯤 만났을 즈음, 그녀의 첫번째 책이 나왔다. 『아오이가든』이란 이름의 무서운 책이었다. 피와 내장과 쓰레기가 자주 나오는 단편집이었는데, 이상하게 축축함과 끈적임보다는 설거지가 깨끗하게 된 스테인리스 개수대의 번뜩임이 느껴지는 소설집이었다. 그녀가 말했다. 이제 이 책의 장점을 돌아가며 열 가지씩 말해보자고.
  '……이상한 여자다, 피하자.'
  우리는 책의 표지가 예쁘다는 둥, 사진이 분위기 있고, 문장이 좋다는 둥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고는 별 실없는 소리를 다 붙여 끝내 열 개를 채웠던 기억이 난다. 그녀는 첫 책이 나온 그 난데없는 기분을 어찌할지 몰라 농담이 열 개나 필요했는지도 몰랐다. 한번은 김중혁 선배가 그녀를 '마포 최고의 작가'라고 놀리듯 추켜세운 적이 있다. 우리는 곧 마포에 다른 작가분들이 많이 사신다는 걸 깨닫고(박성원 선배님, 하성란 선배님 등), 사색이 되어 어디가서 그런 얘기 절대 하지 말라는 그녀의 당부에 따라 입을 꿰매야 했다.

  ―  김애란,「작가초상 - 그녀에게 휘파람」,『문학동네 52호 - 2007 가을호』, 283-284쪽

  읽으면서 정말 웃음이 났던 부분이다. 김애란 작가는 귀여운(?) 글쓰기에 일가견이 있다. 이번에 출간된 단편집에 실린「네모난 부재들」을 읽을 때 느꼈던 사실이다. 편혜영 작가의 글을 아직 안 읽었음에도(같이 실려 있던 편혜영 작가의 자전 소설은 읽었지만) 김애란 작가가 쓴 이 작가초상만으로 어떤 사람인지 알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재미있게 읽었다. 그녀의 유일한 약점인 노래를 못한다는 것도 재치있게 폭로하는 모습도 인상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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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ldSoul 2007-12-07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상한 여자다, 피하자. 이 부분 너무 귀여워요. >.<

Hani 2007-12-10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슨 글인지 몰라 한참 읽다가 피와 내장 이야기에 편혜영 작가를 떠올렸는데, 역시 편혜영 작가 이야기였네요. 김애란 작가의 표현들이 더 재미있네요.
 

   
  손민호 기자의 문학터치 <118> 오독(誤讀)을 부르는 이름, 김태용 [중앙일보 - 2007.11.27]   

# 사례 1: 이는, 비견(裨見)에는, 판켄드리야의, ‘白 Albedo’에로의 상승이었기보다는, ‘黑 Nigredo’에로의 하강으로 이해되어지는데, ‘몸의 우주’에로의 귀락(歸落)이 거기 있었던 듯하다. -박상륭의 『소설법』

# 사례 2: 나는 기침하느라 구급차(救急茶)를 부를 틈이 없었던 장애를 극복하고 ‘바라건대 진짜 물을 빨리…….’라는 간곡한 의사를 밝혔다. … (표정에서도 충분히 소리가 연출된다; 음성화될 광의의 몸짓이기도 하다). - 김록의 『악담』

위 두 사례의 공통점은, 해석이 전혀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개인만의 언어(이게 맞는 말인가?)와 문법에 따라 문장이 엮인다. 시에서야 이런 경우를 종종 보지만, 앞선 예는 소설 문장이란 점에서 난감하다.

그렇다면 둘의 의중을 파악해야 한다. 박상륭은, 본인이야 한사코 손사래 치지만, 한국문학이 공인하는 가장 난해한 소설가다. 극소수 평론가만이 그의 소설에 평을 얹는데, 철학적 신념의 차원에서 겨우 해석을 시도한다. 반면 김록은 언어 자체에 대한 예의 다른 감각의 소유자다. 국립국어연구원에서 일한 경력도 있다. 김록 역시 당대 비평이 꺼리는 작가다. 여하튼 이들은, 문학터치가 근자에 읽었던 한국소설 중에서 ‘독해불가’ 도장을 찍었던 두 사례다.

이제 그 사례가 하나 더 늘었다. 김태용(33·사진)의 첫 소설집 『풀밭 위의 돼지』(문학과지성사)는 드러내놓고 오독의 위험을 경고한다. 오죽하면 ‘작가의 말’에 “오독의 과정이 곧 글쓰기라고 말한다면 다시 그대들은 오독을 하고 말 것이다”라고 썼을까. 우선 다음의 구절을 보자.

“아이는 숨이 넘어갈 정도로 웃으며 좋아 미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이를 정말 좋아 미쳐버리게 만들 작정으로 그녀에게 이불을 든 채로 일어나라고 했다. … 아이는 좋아 미치겠다는 표정으로는 설명이 안 될 만큼 좋아 죽겠다고 환호를 냈다.”(49쪽)
영어의 ‘펀(Pun)’이 연상되는 말장난이다. 김록에게서 봤던 동음이의어를 활용한 전술과 유사하다. 그러나 김태용의 수법은 보다 치밀하다. 돼지와의 대화를 굳이 서술한 장면에서 비로소 작가의 의도를 짐작한다.

“대화의 끝에서 나는 말했다. 퀠퀠 퀠퀠 퀠퀠퀠 퀠퀠퀠 퀠퀠퀠퀠(내가 먼저 죽거든 돼지랑 이야기해). 그녀도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퀠.”(42쪽)

작가는, 우리가 의미를 전달하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여기는 언어가 얼마나 불안한 것인가를 시종 묻는다. ‘퀠’이란 정체불명의 의성어만으로도 모든 의사가 소통되는 까닭이 예 있다. 나아가 그는 다음과 비슷한 구절을 수시로 부린다.

“언어의 도움을 빌려 나는 이런저런 외형을 가진 이런저런 인간이다. 라고 말하는 순간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닌 것이다. 다만 언어가 발화되기 이전, 문자화되기 이전의 나만 알아볼 수 있다.”(232쪽)

소설은 매우 전략적이다. 박상륭이나 김록처럼 독자의 접근을 애초부터 차단하지는 않는다. 김태용의 소설은 그나마 줄거리가 요약된다. 하나 다 부질없는 짓이다. 애써 압축했다 해도, 앞뒤 내용이 들어맞지 않는다.

대신 소설을 관통하는 이미지 같은 게 있다. 아비로 상징되는 근원에 대한 부정, 비가 내리지 않는 불모의 땅, 자식을 낳을 수 없는 불임의 남성에게서 찾아낸 ‘아니 불(不)’자다. 하나 이마저도 부질없는 짓이다. 책을 펼치는 순간, 오독은 이미 시작됐으므로.

손민호 기자 
 
   

  올해가 가기 전에 마지막 리뷰로 써야겠다. 리뷰의 과정은 오독의 과정들. 이제는 무미건조하면서 한 편으로는 즐겁다. 김태용 작가는 등단 이후 왕성한 활동으로 여러 문예지에 단편들을 게재하면서 비교적 빠른 시간에 소설집이 나왔다. 첫 등단작은 굉장히 읽기 편하고 재미있는 환상적인 요소가 들어간 단편이었지만, 이후 단편들은 작품의 방향이 바뀐다. 난해한 글들. 어찌 읽을 수 있을지 사뭇 두렵다.
   한 해가 가고 있다. 2007년이 가고 2008년이 오기를 오래전부터 바랐지만, 해 놓은 게 없다는 사실이 섬뜩하다. 내년엔 무얼 이룰 수 있을까. 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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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듀나의 SF소설집 『용의 이』가 북스피어에서 출간되는군요.
12월 넷째 주에 서점에 깔리고 단편 둘, 중편 하나, 경장편 하나의 구성으로 총 400페이지라고 합니다.
듀나의 영화낙서판 게시판에서 듀나님이 "여러 가지"라는 제목 하에 소설의 진행사항을 올리면서 쓰는 걸 본 기억이 있어서 기대가 됩니다. 대부분 영어보다 한자나 한글로 이루어진 단어들만을 사용한 소설이라고 한 것 같던데 어떤 모습일지 기대가 됩니다.

2.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4927194
황금나침반이 영화 개봉을 맞이해서 재출간하는군요. 3권 세트로 표지도 확 바뀌었습니다. 전 개인적으로는 영화 표지가 들어가는 것을 좋아하진 않는 편이에요.

3.
http://www.aladin.co.kr/events/wevent_book_m.aspx?pn=071121_genre
알라딘 판타스틱 2007 장르문학 총결산 현재 순위.
1위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 440명
2위 살인의 해석 247명
3위 시간을 달리는 소녀 151명
4위 테메레르 140명
5위 어둠의 속도 121명
6위 스즈미야 하루히의 분개 118명
7위 죽음을 연구하는 여인 95명

해리포터야 워낙 판매량이 압도적이니 읽은 사람이 많은 터라 1등은 확정된 듯합니다. 살인의 해석도 높네요. 안 읽어봤는데 문득 관심이 생겼어요.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애니메이션을 재미있게 보고 소설도 그냥저냥 읽었지만 3위라면 굉장히 선전했군요. 4위가 테메레르 라는 게 좀 아쉽습니다. 한 2위 정도는 할 줄 알았는데요. 스즈미야 하루히의 분개도 순위가 높네요. 아직은 시간이 남은 만큼 밑에 순위는 꽤 바뀔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몇 표 차이인 작품들이 많네요.

4.
요즘 본 영화들. 『원스』는 참 잘 봤습니다. 인디 영화 중 대박이 터진 경우라 그런지 오래 하네요. 노래가 참 좋아요. 같이 본 친구는 바로 OST를 구입했습니다. OST가 3만 장이 넘게 팔렸다네요. 원더걸스 보다 더 팔렸군요. 원스에 나온 배우이자 가수들의 앨범도 정식으로 나온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세븐데이즈』는 오랜만에 괜찮은 스릴러 영화 한 편을 봤네요. 아무 기대 없이 봐서 더욱 재미있게 본 듯합니다. 박희순 배우의 연기가 좋네요. 굉장히 오랜만에 시원시원한 캐릭터를 만난 것 같아서 좋았습니다. 한없이 어둡고 진지하게 갈 영화에 웃음을 주고 여유를 주었습니다.
『베오울프』는 책을 읽은 관계로 영화를 봤는데 롯데시네마에서 리얼D 영상으로 봐서 좋았지만, 영화 자체에는 큰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책보다 더 재미 없었던듯.

5.
노트북을 하나 장만했습니다. 큰 지출이었죠. 12인치 작은 서브 노트북이에요. 좋네요.
비스타가 깔려 있어서 처음 사용해보는데 아직 낯설군요. 예쁘긴 예뻐요.
그런데 가격을 최대한 낮은 걸로 사다보니 비스타 돌리기는 좀 버겁네요.

하지만 주로 글만 쓸테니 상관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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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7-12-01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트윈픽스님 오랜만이에요. 저도 영화 원스 너무 좋았어요. 음반을 조만간 사야겠다 생각하고 있답니다. ^^

twinpix 2007-12-04 16:33   좋아요 0 | URL
네, 오랜만이에요.^^/ 원스 정말 올해 본 영화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영화 중 하나인 것 같아요. 계속 기억에 남네요.

네꼬 2007-12-04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샀는데, 음반. (좋아요, 좋아!)

트윈픽스님, 저 좀 뜬금없이 왔어요. 잘 지내시죠?
: )

twinpix 2007-12-04 16:34   좋아요 0 | URL
앗, 음반 사셨군요.^^ 노래들 정말 좋죠? 'ㅁ'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지내죠. 네꼬님도 잘 지내세요?^^ 이제 12월인데 올 한해 잘 마무리하시길~^^
 
베오울프
닐 게이먼.케이틀린 R. 키어넌 지음, 김양희 옮김 / 아고라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베오울프 - 고대 영웅 서사시의 현대적 변신! 

  『베오울프』는 고대 영문학의 최고봉이자 유럽 속어로 씌어진 최초의 영웅서사시다. 게르만 족의 민족 영웅 베오울프의 일대기를 그린 서사시이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영문학 작품이다. 6세기 경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 10세기경에 완성된 것으로 보이는 필사본이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문학사적으로도 높이 평가 받고 있는 작품으로 그 상상력과 거대한 스케일로 후일 여러 판타지 소설에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내가 이 서사시의 이름을 알고 있는 까닭은 당연, 『반지의 제왕』 때문이었다. 『반지의 제왕』을 쓴 J.R.R 톨킨에게 큰 영향을 끼친 작품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런 『베오울프』가 원전인 고대 서사시가 아닌, 닐 게이먼과 케이틀린 R.키이넌의 소설로 이번에 출간되었다. 바로 영화 개봉과 맞물려서 말이다. 즉, 이 소설은 이번에 개봉한 로버트 저멕키스가 감독한 영화의 소설화인 셈. 그러나 보통 영화가 완성된 뒤 시나리오와 영화를 참고하여 쓰이는 소설들과는 달리 닐 게이먼이 영화 시나리오와 소설 작업에 동시에 참여했다고 한다.(소설은 주로 케이틀린 R.키어넌이 쓰고 닐 게이먼은 영화 각색에 주로 참여했다고 한다.) 

고대 서사시 『베오울프』가 톨킨에게 끼친 영향은?
 

  고전 『베오울프』는 톨킨에게 큰 영향을 끼친 작품이다. 1930년대 당시 평론가들은 『베오울프』를 문학으로 여기지 않고 역사적인 문헌으로 여겼으나 톨킨은 이에 반박했다. 톨킨은 『베오울프』에 대한 최초의 문학적 접근을 시도한 학자였다. 


  사실 <베오울프>에는 두 가지 전통이 절묘하게 결합돼 있다. 하나는 전통적인 앵글로 색슨 문화라 할 수도 있는 전설적인 영웅을 그리는 게르만 전통이며, 다른 하나는 나중에 앵글로 색슨 문화에 유입된 기독교 전통이다. 괴물은 앵글로 섹슨적 전설의 일부인 동시에, 기독교인의 눈으로 본 악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렌델과 그 어미는 성경에서 최초의 살인자로 기록된 카인의 후예라 할 수 있다. 두 괴물은 사탄의 대리인이기도 하다. 하지만 용은 "악의와 탐욕과 파괴(영웅의 삶에서 사악한 면)가 인격화된 모습이며, 선과 악을 구분하지 않는 행운의 무차별적인 잔혹성(모든 삶의 사악한 면)이 인격화된 모습이기도 하다"(<괴물들과 평론가들>, 알렌 앤 언윈, 1983, p.17)
 
  달리 말하면, <베오울프>는 <실마릴리온>과 <반지의 제왕>의 핵심 주제를 탐구한 문학 작품이다. 1930년대에 <베오울프>가 문학 평론가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졌든 간에 톨킨에게는 그것이 그의 세계관, 즉 그가 1914년부터 1973년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끊임없이 쓰고자 했던 세상을 반영하는 문학작품이었다. 요컨대 <베오울프>에 대한 그의 평론을 통해서 우리는 톨킨의 창의적인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다. ― 『30분에 읽는 톨킨』, 앤드류 블레이크, 랜덤하우스코리아, 94-95쪽

  톨킨은 『베오울프』를 연구하며 논문을 작성하기도 한다. 톨킨은 작품 전문을 외우고 다닐 정도로 광적인 팬이었다고 하며, 직접 번역을 하기도 했다. 또한, 베오울프와 그렌델의 관계를 모티브로 하여 『반지의 제왕』의 절대 악과 맞서는 인물 관계를 설정하는 등 『베오울프』의 여러 요소를 자신의 작품에 차용했다. 톨킨은 『베오울프』를 "암흑의 힘과 싸워야 하는 인간의 운명을 깊이 있게 묘사한 걸작."이라고 평하였다.

  고전 『베오울프』를 새롭게 해석한 닐 게이먼과 케이틀린 R.키어넌의 장편 소설 『베오울프』

  이렇듯 후대 판타지 소설에 큰 영향을 끼친 고전 『베오울프』는 고대 영웅 서사시이기 때문에 단순한 구조로 쓰여 있다. 괴물 그렌델이 쳐들어와 엉망이 된 왕국에 영웅 베오울프가 나타나 그렌델의 팔을 뽑아버리며 죽인다. 밤새 잠든 사이 그의 어미가 복수를 하자, 소굴을 찾아가 역시 복수를 한다. 50년 뒤 용이 나타나고 늙은 베오울프는 위글라프의 도움을 받아 거대한 용을 죽이고 치명적인 상처를 입는다. 죽어가면서 그는 위글라프에게 왕위를 물려준다. 용감하며 도덕적이고 자기 희생적인 면이 보이는 영웅의 모습을 그대로 그리고 있는 서사시이다.


  이 시는 운율·문체·주제 면에서 예로부터 내려오는 게르만족의 서사시 전통에 속한다. 베오울프가 괴물의 팔을 잡아뜯는 것이라든지 늪 속으로 내려가는 것 등 많은 사건들이 민담에 나오는 낯익은 소재들이다. 이 작품에서 추구하는 윤리적 가치는 분명히 족장과 부족에게 충성하고 적에게 복수하라는 게르만족의 계명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정신이 배어 있어서 아이슬란드의 사가(saga)나 〈에다 Edda〉에 실린 노래들에서 보이는 것 같은 잔혹한 숙명은 나타나지 않는다. 베오울프 자신도 다른 게르만족 영웅이나 〈일리아스〉의 영웅들보다 더 이타적(利他的)으로 보인다. 그가 치른 3번의 싸움이 동료 인간과의 피비린내 나는 복수극을 불러일으키는 싸움이 아니라 전인류와 문명 자체의 적인 사악한 괴물을 상대로 한 것이라는 사실은 중요하다. 많은 비평가들은 이 시가 그리스도교적 우화이며, 베오울프는 악과 어둠에 맞서 싸우는 선과 빛의 투사라고 보았다. 그의 희생적인 죽음은 비극이라기보다 선한 영웅에게 걸맞는 최후로 보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베오울프〉가 낙관적인 작품이라는 뜻은 아니다. 영국의 비평가 J. R. R. 톨킨은 이 시가 주는 전체적인 인상이 서사시라기보다는 서정적인 애가(哀歌)에 가깝다고 주장한다. 덴마크를 무대로 한 비교적 행복한 앞부분조차도 당대의 청중들에게는 쉽게 이해되었을 불길한 암시로 가득 차 있다. 따라서 그렌델이 죽은 뒤 흐로트가르 왕은 앞날에 대해 낙관적으로 말하지만, 독자는 앞으로 그의 가문이 멸망하고 헤오로트가 불타버리는 것으로 끝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후반부에서 사건 전개는 느리고 음울하며, 베오울프가 젊었을 때의 장면들이 그의 마지막 전투와 대비되어 침울하게 다시 그려진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인간이 직면하는 운명(wyrd)이 그에게도 다가오자 분위기는 점점 더 어두워진다. ― 엠파스 백과사전 中


  위에 백과사전의 내용을 읽어보면 원전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대충 파악이 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현대에 와서 새롭게 재해석한 장편소설 『베오울프』는 과연 어떻게 달라졌을까? 

  전체 뼈대는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면서 새로운 구성들이 곳곳에 엿보이는 작품이다. 닐 게이먼과 케이틀린 R. 키어넌이 멋지게 고전을 비틀었기 때문에 또 다른 작품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든다. 우선 관계가 복잡해졌다. 원전에서는 단순히 악과 맞서는 영웅의 대립 구도였지만, 소설에서는 달라졌다. 선악의 이분법적인 구도를 넘어선 것이다. 이 점이 이 소설을 더욱 풍부한 해석으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여지를 준다. 또한 고전 『베오울프』는 그리스도교적 우화로 해석된다면,(톨킨 역시 그렇게 주장했다) 닐 게이먼의 『베오울프』는 기독교와 고대 종교의 대립으로 그렸다. 1부에서는 기독교가 막 태동하는 암시를 주었고 2부에서는 이미 기독교가 많이 전파된 상황을 그린 것이다. 그 상황에서 고대 종교의 신봉자였던 베오울프의 고뇌를 그리면서 기독교를 믿는 왕비와의 대립이 흥미롭게 그려진다. 이렇게 전체적으로 몇 가지 변화로 인해 갈등 관계가 늘어나고 이야기 거리가 풍성해졌다. 그리고 영우 베오울프의 면모를 살피는 것이 아니라 서사시에서 소설로 변하면서 인간 베오울프를 그린다는 점 역시 주목할 점이다.


  베오울프는 뒤돌아서서 모피옷을 여미며 하늘과 맞닿아 있는 광대한 회녹색 바다를 바라보았다. 혹한의 바람이 피부 구석구석을 물어뜯었지만 도리어 청결한 느낌이 들었다. 아까 해변에서의 일들과 자신의 언행들, 그리고 이제껏 자신이 행했던 잔인한 일들 때문인지 그는 청결해지고 싶다는 강한 욕구를 느꼈다.
 
  ‘어쩌면 이것이 바로 많은 사람들이 오딘과 그의 형제들을 떠나, 살해된 로마인의 그리스도와 그의 이름 없는 아버지를 섬기게 된 이유인지도 모르겠다’고 그는 생각했다. ‘자신들이 택한 선택과 결과로부터 죄 사함을 받고, 다시 자유롭고 순결하고 깨끗해질 수 있다는 약속에 끌렸겠지.’  ― 『베오울프』, 닐 게이먼 · 케이틀린 R. 키어넌, 아고라, 256-267쪽 

   소설의 재미는 이뿐만이 아니다. 소설에서만 느낄 수 있는 문장력은 뛰어난 몰입감을 선사한다. 이야기 자체가 어둡고 지루하고 예상되는 것들이어서 사실 전체적인 흡인력이 뛰어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문장들이 워낙 세련되고 깨끗하게 적혀 있어서 계속 읽게 되는 것이다. 정말 화려한 표현들, 뛰어난 입담, 예리한 묘사, 재치 있는 대사들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다. 글을 읽는 재미 때문에라도 책을 끝까지 읽게 된다. 한 마디로 텍스트를 읽는 재미가 살아있다. 

  마지막으로, 보기 전에 읽어라!


  번역도 깔끔하게 잘 되어 있어서 읽는데 큰 무리가 없었다. 오탈자나 이상한 점은 거의 눈에 보이지 않았다. 약간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인터넷에서 다른 분들도 지적한 사항인데 주석이 책 뒤편에 있지 않고 각주로 달렸다면 더 보기 편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책 마지막 페이지에 용어 해설로 모아져 있긴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일일이 뒤페이지를 펼치면서 찾아 읽기는 너무 불편하다. 대부분 북유럽 신화를 모르는 상황에서 책을 자연스럽게 읽어나가기 위해서는 괄호로 처리하거나 각주로 처리하는 것이 훨씬 보기 좋았을 것이다. 이 점은 약간 안타깝게 생각되었다. 그리고 출판사가 이번 영화 때문에 이 소설을 번역한 것이라 한정적으로 끝난다면 모르겠지만, 혹시 앞으로도 장르 소설들을 번역해 나갈 것이라면 다른 출판사처럼 브랜드를 하나 정하는 게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반지의 제왕』을 재미있게 읽은 톨킨의 팬이라면 톨킨에게 큰 영향을 미친 원전 『베오울프』가 닐 게이먼과 케이틀린 R.키어넌에 의해서 어떻게 현대적 판타지로 변신했는지 한 번 감상해 보는 것도 좋으리라. 그 외에도 외국 판타지를 읽기 즐겨하는 독자라면 필히 한 번 읽어볼만한 작품이다. 
   그리고 이번에 영화로만 접한 독자가 있다면 같이 나온 소설을 한 번쯤 읽어보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평을 보니, 영화를 보고 실망해서 소설을 찾은 사람도 보이는 만큼, 좀더 다양한 내용과 묘사, 내면을 그린 것은 소설이기 때문이다. 그런 인상적인 묘사들은 책을 통해서 읽을 수밖에 없다. 

  덮고 있던 모피를 걷어내며 그는 또 한 번 울부짖었다. 어머니가 거기 있다면 그 짐승 같은 절규 속에 얼버무려지고 헝클어진 말들을 알아들을 것이다. 어머니는 슬픔과 절망의 소리를 알아차릴 것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똑같은 정도로 안도하는 아들의 마음속 소리도 들을 것이다. 그가 곧 시끄러운 바보들의 생명을 으스러뜨리고 쥐어짜고 산산조각 낼 것이기 때문에, 그들이 그의 입속에서 달콤한 맛을 낼 것이기 때문에, 그가 일을 마치고 나면 밤은 다시 조용해질 것이고 오래된 숲과 늪지대, 해안에서 들려오는 편안한 소리들만이 남을 것이기 때문에, 동굴에서 부드럽게 떨어지는 물소리와 어머니의 못 속에 사는 하얀 뱀장어들이 첨벙거리는 소리만이 남을 것이기 때문에 안도하는 아들의 마음을 알게 될 것이다. 
  ― 『베오울프』, 닐 게이먼 · 케이틀린 R. 키어넌, 아고라, 208쪽

 

  P.S 영화와 소설의 차이점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은 아래의 링크를 참고해 주세요. 

  링크 : http://www.joysf.com/zboard/zboard.php?id=WORLD_GAC&no=7567
             - 『JOY SF 클럽』 사이트에 야구아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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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7-11-18 1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정말 재미있게 봤는데요, 주석이 뒷편에 몰아져있던 건 유감이었어요. 귀찮아서 보다 말다 했다는.
그리고 이 베오울프는 단순 판타지라기 보기에는 훨씬 더 진한 감정을 선사하더군요. 아버지와 아들, 서로 끊을 수 없는 관계이며 그러나 원수가 되어버리는. 세상에, 먹먹해져버렸달까요. 좋았어요.

twinpix 2007-11-18 17:45   좋아요 0 | URL
저도 주석은 처음에 찾아보려다가 그냥 포기했어요. 'ㅁ';;; 하핫. 나중에 북유럽 신화에 대해서 따로 책을 찾아 읽고 싶다는 생각은 들더라고요.
소설로 바뀌면서 확실히 멋져졌어요. 씁쓸하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하고 그랬달까요. 진하게 인상에 남는 엔딩. 다만, 전 미리 인터넷에서 내용들을 좀 알고 읽은 감이 있어서 아쉬웠던 기억이.^^~ 그래도 읽을 가치가 있는 판타지 소설이었죠.^^ 어서 빨리 아이맥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싶은 생각이에요. 아이맥스에서 봐야 제대로라고 해서 말이죠. 음.

스테판 2007-11-19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호오~ 닐 게이먼의 소설도 있군요^^ 영화 때문에 원전 "베오울프"를 읽었는데, 영화의 바탕이 된 소설도 보고 싶네요.(신간이라 아직 학교 도서관에는 없군요-_-a)

영화 보시려면 꼭 IMAX DMR 3D로 보세요^^

twinpix 2007-11-19 13:16   좋아요 0 | URL
영화와 고전을 비교해서 읽으시면 재미있으실 거예요.^^ 읽어볼만 합니다.^^~~ 영화는 보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시간이나 사람이 될지 아직 모르겠어요. 하핫^^ 그래도 일단 보면 IMAX로 꼭 보려고요.^^~~
 
당신도 해리 포터를 쓸 수 있다 - 판타지와 SF 창작을 위한 모든 것
올슨 스콧 카드 지음, 송경아 옮김 / 북하우스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당신도 해리 포터를 쓸 수 있다?

 

  제목이 특이하죠? 왠지 내용이 삼류일 거라고 생각되진 않나요? 사실 제목만 봤을 때는 혹시 또 별 내용도 없는 것에 ‘해리 포터’라는 말만 붙이면 잘 팔릴 거라고 생각한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사실 『해리와 몬스터』 같은 책을 상기하듯 ‘해리포터’ 열풍에 맞춰 출간된 책들이 상당히 많았죠. 그 중에 영양가 없는 책들도 많았고요. 하지만 제가 이 책을 구입하게 된 계기는 일단, 역자의 이름 때문이었습니다. 『제인에어 납치사건』을 비롯한 여러 재미있는 장르 소설을 번역한 소설가 송경아님이 옮긴 책이었던 것입니다. 적어도 책값이 아까울 정도는 아니겠다고 판단한 것이죠. 

  책을 받고 보니 의문이 풀렸습니다. 원제는 『How to write Science Fiction & Fantasy』였습니다. 국내에 번역 출간되면서 『당신도 해리 포터를 쓸 수 있다』로 바뀐 것입니다. 사실 협소한 장르 시장에서 그것도 소설이 아닌 작법 책이 출간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죠. 저조한 판매량이 예상되니까요. 궁여지책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만한 제목을 붙여 나온 것 같습니다. 사실 해리포터가 출간되기 몇 년 전에 출간된 책이지만요. 그럼 제목을 바꾼 게 성공했을까요? 현재 알라딘의 세일 포인트를 보면 큰 효과를 본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내용은 꽤 좋기에 소개하고자 이렇게 리뷰를 쓰고 있습니다. 

   저자 오슨 스콧 카드는 1986년 『엔더의 게임Ender's Game』으로, 1987년에는 『사자의 대변인Speaker for the Dead』으로 권위 있는 과학소설상인 휴고 상과 네뷸러 상을 2년 연속 동시 수상한 유일한 작가입니다. 

  작법 책은 어디까지나 글쓰기의 획기적인 전환점을 제시해주지는 않습니다. 가끔 그런 비책이 있을 걸, 기대하고 구입하는 독자들도 많지만, 대개의 작법 책들은 그 작가의 노하우를 공개하는 선입니다. 그것을 얼마나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지는 개인에 따라 다르겠죠. 이 책은 어떤 사람이 보면 좋을까요? 작가는 서문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작가는 어떤 독자가 자기 책을 읽게 될지 절대로 알지 못하지만, 나는 당신에 대해 몇 가지 가설을 세웠다. 당신은 아마 사변소설(speculative fiction) 장르에서 아직 성공한 작가가 아닐 것이다. 성공한 작가라면 굳이 작법 책을 읽을 필요가 없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당신은 SF(Sceince Fiction)와 판타지를 쓰는 것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 분야가 이익을 내기 ‘쉬울’ 것이라고(만약 그런 망상을 품고 있다면, 당장 포기해라!)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라, 당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SF와 판타지 독자에게 가장 잘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p.9) 

  전체적으로 쉽게 읽히고 재미있습니다. 따분하게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작가의 경험들이 잘 녹아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는 인물 성격 묘사나 시점 같은 일반적인 글쓰기 방법들은 생략되어 있습니다. 사변소설, 즉 SF와 판타지 소설을 쓸 때 작가가 경험한 방법들을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1장의 제목은 “무한한 경계”입니다. SF란 무엇인가? 그리고 판타지란 무엇인가? 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에세이로 적혀 있습니다. 굉장히 재미있게 읽은 부분이었습니다. 역자 후기에서도 말하듯이 평소에 번역 SF와 판타지를 읽는 독자라면 아는 작가들이나 들어본 작가들의 이름들이 나열되는 부분들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습니다. 또 정의 내리기 어려운 SF에 대한 다양한 정의 내리는 방법들도 재미있었고 유명한 정의인 SF작가가 쓴 것이 SF 소설이다, 라는 식의 정의를 읽을 수도 있었죠. “SF의 의미 없는 정의 과잉에 질린 데이먼 나이트는 한때 이렇게 말했다. “SF는 내가 SF라고 말하면서 가리키는 것이다.” 얼핏 틀린 말 같지만 사실은 유일하게 완벽한 정의이다.”(p.31) 

  1장은 나열되는 작가의 이름마다 주석이 잔뜩 달려 있는데 본문보다 이 주석에 더 눈이 가기도 했습니다.  

  2장은 세계 창조라는 제목을 달고 있습니다. 작가가 쓴 『엔더의 게임』을 어떤 식으로 구상했는지 부분부터 밝히고 있죠. 그 외에 자신이 쓴 판타지 소설을 구상하게 된 배경. 그리고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서 생각해야 할 것들을 차례대로 적고 있습니다.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세계를 구상하고 그 세계의 규칙을 만드는 것에 대한 설명들이 나옵니다. SF라면 우주선의 작동원리나 시간이동에 대한 설정. 판타지라면 마법 규칙을 설정합니다. 그 외에 역사, 언어, 풍경 등에 대한 끊임없는 사고와 정리가 필요한 것을 예를 들며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위해서는 조사 역시 중요하죠. 그렇기에 2장의 마지막 부분이 가장 인상적이라 여기에 옮겨 적어 봅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벌어지게 될 낯선 환경을 창조하려면 우선 자신이 생활하고 있는 친숙한 환경부터 먼저 이해해야 한다. 주변을 조사하고 이해하기 전에는 복잡하고 믿을 만한 상상의 세계를 만들어 낼 수 없을 것이다. 
  사실 사변소설의 가장 큰 가치 중 하나는, 낯선 상상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이 종종 독자들이 현실 세계를 새로운 눈으로 들여다보도록 돕고, 발견하지 못했을 것들을 발견하도록 하는 가장 훌륭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사변소설은 현실 세계로부터의 도피가 아니고, 사변소설 창작은 아무것도 조사하지 않고 문학적 경력을 쌓는 길이 아니다! 사변소설은 오히려 현실의 눈으로 보는 것보다 현실 세계를 더 잘 들여다볼 수 있는 렌즈를 제공한다. 
  다른 말로 하자면, 당신은 아무리 많이 알아도 부족한 것이다.(p.118) 

  3장은 이야기 구축입니다. 한 가지 상황을 제시하고 역할을 바꿔주면서 이야기를 어떻게 구축하는지 보여줍니다. 주동인물과 초점인물 등 각 인물의 비중과 역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그 다음에는 MICE의 몫을 설명합니다. 바로 환경(Milieu), 착상(Idea), 인물(Character), 사건(Event) 등을 말하는 것이죠.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지, 어떤 것이 어떤 것을 지배할 것인지 그런 것을 생각하고 써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4장은 잘쓰기입니다. 독자의 흥미를 끌고, 이름을 짓고, 어법을 정하는 등 실제적인 글쓰기 방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설명을 어떻게 하면 적절히 잘 할 수 있을지, 작가가 경험한 노하우들이 짧게나마 정리되어 있습니다. 

  5장의 제목은 글쓰기 생활과 사업입니다. 사실 이건 국가가 다르기 때문에 우리의 실정과는 맞지 않습니다. 그래도 외국에서는 이런 통로가 있고 이러한 노력들을 하는구나, 에세이처럼 읽게 되더군요. 출판 상황은 우리 현실과 달라서 도움이 되는 것들은 아니지만 그 대신 인생을 살면서 글쓰기와 어떻게 균형을 맞춰야 하는지 작가가 해주는 조언은 참고할만합니다. 직업을 함부로 그만두지 말고, 돈 관리를 하고, 몸을 돌보고, 의존성을 경계하고, 참을성을 가지고, 지름길을 찾으려 들지 말고, 경쟁하거나 비교하지 마라 등 작가가 조언하는 내용들은 다 새겨 들을만한 좋은 내용이 많았습니다.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결코 『해리포터』 시리즈나 『반지의 제왕』을 쓸 수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SF나 판타지 소설을 쓰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막막한 습작생들에게 이 책은 확실히 좋은 조언자가 되어줄 것입니다. 다른 작법책들과 마찬가지로 조언들과 노하우로 이루어져 있고 이런 것들도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 잊힐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글을 쓴 사람은 이미 습득한 사실을 다시 확인해 볼 수 있을 테고, 처음 글쓰기를 시작하는 사람에게는 글 쓰는데 도전을 하게 해줄 것입니다. 그것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그 동안 많은 작법책들이 나왔지만, 이렇게 장르소설 작법책은 처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꼭 장르소설이 아니더라도 글쓰기 전반에 도움이 되는 내용도 많이 있고요. 이 책을 읽는다면, 당신도 글쓰기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훗날 수많은 이들이 읽을 책을 쓰게 될지도 모릅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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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Haruki 2009-07-06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충실한 리뷰 잘 봤습니다.
글쓰시는 솜씨가 여느 평론가 못지 않네요..
이 책을 읽고 작법이 향상되어서 그런 건가요? ^^;;

twinpix 2009-07-11 00:26   좋아요 0 | URL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과찬이십니다.^^ 그냥 리뷰를 많이 쓰다 보니 조금 능숙해진 것뿐이겠죠.
참고로 이 책은 문장 같은 건 나오지 않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