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고 그녀와 세번째 만났을 때 어색하지 않았다는 얘기는 아니다. 도무지 '소심하다' 따위의 공통점 갖고 친해질 리 없는 인간사였다. 그런데 왜 자꾸 만났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지만, 세상엔 왜 자꾸 만나는지 모르면서 계속 만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친하지 않았기 때문에, 누구도 먼저 일어나잔 말을 못 해, 친한 이들보다 더 오래 앉아 있을 때도 있었고, 친하지 않았기 때문에 서로 계산을 하겠다고 몸싸움을 한 적도 있었다. 이러한 선물 경쟁 역시 원시부족의 특징 중 하나일터. 우리는 관계의 벽에 구멍을 뚫는 멉 중 가장 미련한 방식을 택했던 건지도 몰랐다.
  그녀를 너댓 번쯤 만났을 즈음, 그녀의 첫번째 책이 나왔다. 『아오이가든』이란 이름의 무서운 책이었다. 피와 내장과 쓰레기가 자주 나오는 단편집이었는데, 이상하게 축축함과 끈적임보다는 설거지가 깨끗하게 된 스테인리스 개수대의 번뜩임이 느껴지는 소설집이었다. 그녀가 말했다. 이제 이 책의 장점을 돌아가며 열 가지씩 말해보자고.
  '……이상한 여자다, 피하자.'
  우리는 책의 표지가 예쁘다는 둥, 사진이 분위기 있고, 문장이 좋다는 둥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고는 별 실없는 소리를 다 붙여 끝내 열 개를 채웠던 기억이 난다. 그녀는 첫 책이 나온 그 난데없는 기분을 어찌할지 몰라 농담이 열 개나 필요했는지도 몰랐다. 한번은 김중혁 선배가 그녀를 '마포 최고의 작가'라고 놀리듯 추켜세운 적이 있다. 우리는 곧 마포에 다른 작가분들이 많이 사신다는 걸 깨닫고(박성원 선배님, 하성란 선배님 등), 사색이 되어 어디가서 그런 얘기 절대 하지 말라는 그녀의 당부에 따라 입을 꿰매야 했다.

  ―  김애란,「작가초상 - 그녀에게 휘파람」,『문학동네 52호 - 2007 가을호』, 283-284쪽

  읽으면서 정말 웃음이 났던 부분이다. 김애란 작가는 귀여운(?) 글쓰기에 일가견이 있다. 이번에 출간된 단편집에 실린「네모난 부재들」을 읽을 때 느꼈던 사실이다. 편혜영 작가의 글을 아직 안 읽었음에도(같이 실려 있던 편혜영 작가의 자전 소설은 읽었지만) 김애란 작가가 쓴 이 작가초상만으로 어떤 사람인지 알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재미있게 읽었다. 그녀의 유일한 약점인 노래를 못한다는 것도 재치있게 폭로하는 모습도 인상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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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ldSoul 2007-12-07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상한 여자다, 피하자. 이 부분 너무 귀여워요. >.<

Hani 2007-12-10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슨 글인지 몰라 한참 읽다가 피와 내장 이야기에 편혜영 작가를 떠올렸는데, 역시 편혜영 작가 이야기였네요. 김애란 작가의 표현들이 더 재미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