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해리 포터를 쓸 수 있다 - 판타지와 SF 창작을 위한 모든 것
올슨 스콧 카드 지음, 송경아 옮김 / 북하우스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당신도 해리 포터를 쓸 수 있다?

 

  제목이 특이하죠? 왠지 내용이 삼류일 거라고 생각되진 않나요? 사실 제목만 봤을 때는 혹시 또 별 내용도 없는 것에 ‘해리 포터’라는 말만 붙이면 잘 팔릴 거라고 생각한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사실 『해리와 몬스터』 같은 책을 상기하듯 ‘해리포터’ 열풍에 맞춰 출간된 책들이 상당히 많았죠. 그 중에 영양가 없는 책들도 많았고요. 하지만 제가 이 책을 구입하게 된 계기는 일단, 역자의 이름 때문이었습니다. 『제인에어 납치사건』을 비롯한 여러 재미있는 장르 소설을 번역한 소설가 송경아님이 옮긴 책이었던 것입니다. 적어도 책값이 아까울 정도는 아니겠다고 판단한 것이죠. 

  책을 받고 보니 의문이 풀렸습니다. 원제는 『How to write Science Fiction & Fantasy』였습니다. 국내에 번역 출간되면서 『당신도 해리 포터를 쓸 수 있다』로 바뀐 것입니다. 사실 협소한 장르 시장에서 그것도 소설이 아닌 작법 책이 출간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죠. 저조한 판매량이 예상되니까요. 궁여지책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만한 제목을 붙여 나온 것 같습니다. 사실 해리포터가 출간되기 몇 년 전에 출간된 책이지만요. 그럼 제목을 바꾼 게 성공했을까요? 현재 알라딘의 세일 포인트를 보면 큰 효과를 본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내용은 꽤 좋기에 소개하고자 이렇게 리뷰를 쓰고 있습니다. 

   저자 오슨 스콧 카드는 1986년 『엔더의 게임Ender's Game』으로, 1987년에는 『사자의 대변인Speaker for the Dead』으로 권위 있는 과학소설상인 휴고 상과 네뷸러 상을 2년 연속 동시 수상한 유일한 작가입니다. 

  작법 책은 어디까지나 글쓰기의 획기적인 전환점을 제시해주지는 않습니다. 가끔 그런 비책이 있을 걸, 기대하고 구입하는 독자들도 많지만, 대개의 작법 책들은 그 작가의 노하우를 공개하는 선입니다. 그것을 얼마나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지는 개인에 따라 다르겠죠. 이 책은 어떤 사람이 보면 좋을까요? 작가는 서문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작가는 어떤 독자가 자기 책을 읽게 될지 절대로 알지 못하지만, 나는 당신에 대해 몇 가지 가설을 세웠다. 당신은 아마 사변소설(speculative fiction) 장르에서 아직 성공한 작가가 아닐 것이다. 성공한 작가라면 굳이 작법 책을 읽을 필요가 없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당신은 SF(Sceince Fiction)와 판타지를 쓰는 것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 분야가 이익을 내기 ‘쉬울’ 것이라고(만약 그런 망상을 품고 있다면, 당장 포기해라!)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라, 당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SF와 판타지 독자에게 가장 잘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p.9) 

  전체적으로 쉽게 읽히고 재미있습니다. 따분하게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작가의 경험들이 잘 녹아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는 인물 성격 묘사나 시점 같은 일반적인 글쓰기 방법들은 생략되어 있습니다. 사변소설, 즉 SF와 판타지 소설을 쓸 때 작가가 경험한 방법들을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1장의 제목은 “무한한 경계”입니다. SF란 무엇인가? 그리고 판타지란 무엇인가? 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에세이로 적혀 있습니다. 굉장히 재미있게 읽은 부분이었습니다. 역자 후기에서도 말하듯이 평소에 번역 SF와 판타지를 읽는 독자라면 아는 작가들이나 들어본 작가들의 이름들이 나열되는 부분들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습니다. 또 정의 내리기 어려운 SF에 대한 다양한 정의 내리는 방법들도 재미있었고 유명한 정의인 SF작가가 쓴 것이 SF 소설이다, 라는 식의 정의를 읽을 수도 있었죠. “SF의 의미 없는 정의 과잉에 질린 데이먼 나이트는 한때 이렇게 말했다. “SF는 내가 SF라고 말하면서 가리키는 것이다.” 얼핏 틀린 말 같지만 사실은 유일하게 완벽한 정의이다.”(p.31) 

  1장은 나열되는 작가의 이름마다 주석이 잔뜩 달려 있는데 본문보다 이 주석에 더 눈이 가기도 했습니다.  

  2장은 세계 창조라는 제목을 달고 있습니다. 작가가 쓴 『엔더의 게임』을 어떤 식으로 구상했는지 부분부터 밝히고 있죠. 그 외에 자신이 쓴 판타지 소설을 구상하게 된 배경. 그리고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서 생각해야 할 것들을 차례대로 적고 있습니다.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세계를 구상하고 그 세계의 규칙을 만드는 것에 대한 설명들이 나옵니다. SF라면 우주선의 작동원리나 시간이동에 대한 설정. 판타지라면 마법 규칙을 설정합니다. 그 외에 역사, 언어, 풍경 등에 대한 끊임없는 사고와 정리가 필요한 것을 예를 들며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위해서는 조사 역시 중요하죠. 그렇기에 2장의 마지막 부분이 가장 인상적이라 여기에 옮겨 적어 봅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벌어지게 될 낯선 환경을 창조하려면 우선 자신이 생활하고 있는 친숙한 환경부터 먼저 이해해야 한다. 주변을 조사하고 이해하기 전에는 복잡하고 믿을 만한 상상의 세계를 만들어 낼 수 없을 것이다. 
  사실 사변소설의 가장 큰 가치 중 하나는, 낯선 상상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이 종종 독자들이 현실 세계를 새로운 눈으로 들여다보도록 돕고, 발견하지 못했을 것들을 발견하도록 하는 가장 훌륭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사변소설은 현실 세계로부터의 도피가 아니고, 사변소설 창작은 아무것도 조사하지 않고 문학적 경력을 쌓는 길이 아니다! 사변소설은 오히려 현실의 눈으로 보는 것보다 현실 세계를 더 잘 들여다볼 수 있는 렌즈를 제공한다. 
  다른 말로 하자면, 당신은 아무리 많이 알아도 부족한 것이다.(p.118) 

  3장은 이야기 구축입니다. 한 가지 상황을 제시하고 역할을 바꿔주면서 이야기를 어떻게 구축하는지 보여줍니다. 주동인물과 초점인물 등 각 인물의 비중과 역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그 다음에는 MICE의 몫을 설명합니다. 바로 환경(Milieu), 착상(Idea), 인물(Character), 사건(Event) 등을 말하는 것이죠.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지, 어떤 것이 어떤 것을 지배할 것인지 그런 것을 생각하고 써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4장은 잘쓰기입니다. 독자의 흥미를 끌고, 이름을 짓고, 어법을 정하는 등 실제적인 글쓰기 방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설명을 어떻게 하면 적절히 잘 할 수 있을지, 작가가 경험한 노하우들이 짧게나마 정리되어 있습니다. 

  5장의 제목은 글쓰기 생활과 사업입니다. 사실 이건 국가가 다르기 때문에 우리의 실정과는 맞지 않습니다. 그래도 외국에서는 이런 통로가 있고 이러한 노력들을 하는구나, 에세이처럼 읽게 되더군요. 출판 상황은 우리 현실과 달라서 도움이 되는 것들은 아니지만 그 대신 인생을 살면서 글쓰기와 어떻게 균형을 맞춰야 하는지 작가가 해주는 조언은 참고할만합니다. 직업을 함부로 그만두지 말고, 돈 관리를 하고, 몸을 돌보고, 의존성을 경계하고, 참을성을 가지고, 지름길을 찾으려 들지 말고, 경쟁하거나 비교하지 마라 등 작가가 조언하는 내용들은 다 새겨 들을만한 좋은 내용이 많았습니다.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결코 『해리포터』 시리즈나 『반지의 제왕』을 쓸 수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SF나 판타지 소설을 쓰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막막한 습작생들에게 이 책은 확실히 좋은 조언자가 되어줄 것입니다. 다른 작법책들과 마찬가지로 조언들과 노하우로 이루어져 있고 이런 것들도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 잊힐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글을 쓴 사람은 이미 습득한 사실을 다시 확인해 볼 수 있을 테고, 처음 글쓰기를 시작하는 사람에게는 글 쓰는데 도전을 하게 해줄 것입니다. 그것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그 동안 많은 작법책들이 나왔지만, 이렇게 장르소설 작법책은 처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꼭 장르소설이 아니더라도 글쓰기 전반에 도움이 되는 내용도 많이 있고요. 이 책을 읽는다면, 당신도 글쓰기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훗날 수많은 이들이 읽을 책을 쓰게 될지도 모릅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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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Haruki 2009-07-06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충실한 리뷰 잘 봤습니다.
글쓰시는 솜씨가 여느 평론가 못지 않네요..
이 책을 읽고 작법이 향상되어서 그런 건가요? ^^;;

twinpix 2009-07-11 00:26   좋아요 0 | URL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과찬이십니다.^^ 그냥 리뷰를 많이 쓰다 보니 조금 능숙해진 것뿐이겠죠.
참고로 이 책은 문장 같은 건 나오지 않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