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 물건을 정리하다가, 문득 내가 내 의지로 내 지갑을 순수히 열며 처음 샀던 것들이 어떤 건지 궁금해졌다. 기억 나는 것도 있고 기억이 나지 않는 것도 있지만, 점점 모든 것이 디지털화 되어 감에 따라 이런 거도 이제는 추억을 지나 망각이 될 듯. 지금 이 순간 정리하는 것도 괜찮을 듯 해서 한 번 나열해본다.




   처음으로 구매한 책. 이 때가 아마 1988년? 국민학교 5학년 때 인 것으로 기억한다. 이미연과 허석(지금은 의리의 김보성으로 개명했지만!)이 주연한 영화보다는 이 책이 훨씬 더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워낙에 많이 읽어서 인지, 첫 부분에 나오는 "냉장고에서 갓 꺼낸 상큼한 오이맛"이라는 구절이 아예 뇌리에 박힌 희한한 소설. 작가 임정진은 후에 『있잖아요 비밀이예요』라는 소설로 이연타석 홈런을 날렸다. 하지만 90년에 발표한 『인생이 뭐 객관식 시험인가요』이후로는 이전에 보여줬던 참신함을 넘어서지 못해 아쉬워했던 기억이 있다.




   아마도 처음 구매한 잡지가 아닐까 싶다. 1995년 5월부터 2003년 7월까지 99권을 발간한 『키노』는 내게 영화에 대한 '태도'를 가르쳐준 유의미한 잡지가 아니었나 싶다. 이제는 그 누구도 이렇게 교조적으로 독자를 가르치려 하지 않지만, 배움을 구할 때 제 때 맞추어 나타났던 스승과도 같은 잡지가 아니었나 싶다. '읽고 버리는 잡지가 아니라, 모여서 그것이 역사가 되는 잡지를 만들고 싶었다'던 『키노』편집부의 바람은, 적어도 나는 지키고 있으니, 그래도 괜찮은 한살이 였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1986년, 국민학교 3학년, 일요일 대지극장에서 홀로 영화를 봤다. <영환도사>라는 제목으로 개봉을 했었는데, 이 영화가 <강시선생> 시리즈 중 두 번째 작품인 <강시가족>이라는 것은 '아주 오랜 후에야' 알게 되었다. 지금 본다면 어떤 감상일지 잘 모르겠으나, 이 때에는 아주 재미있게 봤었던 기억이 있다. 당시 극장 안 매너도 굉장히 좋았었는데, '굉장한 장면' - 그러니까, 깜짝 놀래키거나, 혹은 경탄할만한 놀라움을 안겨준 장면들 - 이 나올 때는 탄성을 내고 박수를 쳤던 기억이 있다. 요즘은 다들 스마트폰을 쳐다보느라 영화가 그러거나 말거나지만, 당시에는 그런 낭만도 존재했던 것 같다. 아쉽게도(혹은 당연히) 표는 간직하고 있지 않다.




   처음으로 샀던 비디오 테이프다. 당시 비디오 테이프는 가격이 쎄서 정품으로는 몇 편 가지고 있지 않았다. (대부분은 빌려 보기 마련이다.) 메탈리카 5집의 제작 과정과 이후 투어 기록, 그리고 뮤직 비디오가 수록된 이 비디오는, 아직 케이블 TV도 개국하지 않아 뮤직 비디오를 보려면 대학로나 신촌에 있는 MTV카페를 가던가, 아니면 KBS에서 토요일 오후에 방영하는 <지구촌 영상음악>에서 틀어주던 뮤비를 볼 수 밖에 없었던 나에게 단비와도 같았다.




   비디오 테이프와 더불어 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VCD. 당시 VCD는 삼성과 LG가 양분했었는데, 콘텐츠의 질로는 LG의 승리였다. 삼성은 출시된 비디오를 그대로 VCD에 떠서 판매하는 양아치 짓을 했다면, LG는 원본을 그대로 담고 새 자막을 입혀 출시를 했었다. 아쉬운 점이라면, 비디오 테이프보다 더 화질이 떨어지고, 담을 수 있는 용량이 적어, 최소 두 번에서 세 번 CD를 교체해 줘야 한다는 불편함이랄까? 결국 이 자리는 DVD가 대체했지만, 그래도 비디오와 DVD를 연결해주는 VCD의 고마움을 잊지는 못한다.




   크쥐시도프 키에슬롭스키 감독의 <삼색 시리즈>가 처음 산 DVD인 것 같다. <블루>를 워낙에 좋아해서 비디오 테이프를 복사해 간직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훌륭한 차세대 매체로 좋아하는 영화를 간직할 수 있다는 사실이 고마울 따름이었다. 물론 비디오 테이프와 별 다름 없는 화질과, 그 때와 똑같은 오류로 점철된 자막이 날 절망케 했지만, DVD로 인해 비로소 영화는 추억하고 기억하는 것에서 소장하는 것으로 바뀌지 않았나 싶다. 서가에 꽂힌 책들처럼,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의 목록을 바라보는 모습은 영화를 보는 것 만큼의 기쁨이다.




   아마도 1989년? 처음 샀던 카세트 테이프다. 정말 단순히, 얼굴이 잘생겼다는 이유로(?) 산 앨범이다. 이 사람이 스페인 출신이라는 것은 얼마 전 검색으로 알았으며, 이 앨범이 그나마 히트를 쳐서 우리나라에도 들어온 것으로 안다. 지금은 테이프가 늘어져 제대로 된 감상을 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꽤 나름 여러번 들었던 것 같다.




   처음 산 LP. 마이클 볼튼의 앨범을 처음 샀는지, 김현식 6집을 처음 샀는지 기억이 좀 가물가물하다. 이 앨범은 1991년 봄에 처음 턴테이블에 올린 기억이 있고, 김현식의 앨범은 봄과 여름 사이로 기억을 해서 이 앨범으로 골랐다. LP의 사이즈야 말로 음악의 예술성을 시각화하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하지 않았을가 생각한다. 카세트 테이프나 CD로는 표현될 수 없는 그 거대함, 그리고 턴테이블에 판을 올려 놓고 조심스레 바늘을 내려놓는, 그 모든 음악을 듣는 행위를 하나의 의식으로 만들었던 그런 모습들.




   그리고 1993년, 처음으로 산 CD. 80분에 가까운 열 다섯 곡을 한 장에 채워 놓는 것이 바로 CD의 미덕이 아니었을까? 이제는 음악을 '진열'할 거의 마지막 저장소가 된 CD. 아마도 음악이 '목록의 나열'이 아닌, '앨범'으로써 음악가가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을 때까지, CD는 계속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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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4-12-08 22: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미아리 대지극장! 저도 알아요~ㅎㅎ
작은아버지집이 그 근처에 있었어요. 저는 그 극장에서 혼자 <태양은 가득히>를 보았던
기억이 가물거리네요.^^
그나저나, 초등학교 3학년이 혼자 영화를 보았다니! 오우~~
마이클 볼튼의 음악도 열심히 들었던 추억이 있는데...지금은..잘 생각이 안 나네요..ㅠㅠ (이게 다 과도한 음주의 부작용이 아닌가 하는...)


Tomek님! 추억돋는 멋진 페이퍼! 감사드립니다~
편안하고 좋은 밤 되세요~*^^*

Tomek 2014-12-09 11:31   좋아요 0 | URL
대지, 명화, 화양, 홍콩영화의 성지였었죠. 이후에 UIP직배영화도 간간히 상영하고... 무엇보다도 A와B 사이의 영화들을 볼 수 있었다는 사실이 좋았어요.

그나저나 <태양은 가득히>라면 제가 가늠할 수 있는 세월이 아니네요. ^^

고맙습니다. :)

무무키 2020-05-31 0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데이빗 라임! 이라니 30년 만에 처음 그 이름을 듣는 것 같네요. 보통 추억의 팝 가수들도 여러 경로를 통해 이름을 다시 되새기는 일이 있는데 데이빗 라임! 이라니요. 재미있어서 댓글 달아요.
 

   어제, 11월 26일, 안산 세월호 합동분향소에 다녀왔다. 


   2014년에 부모가 된 것은 벅찬 기쁨보다는 무거운 부채가 더 컸기에, 여유가 생기는 대로 바로 분향소에 가기로 마음을 먹었더랬다. 쌍둥이들이 태어난지 100일이 거의 되어 감에 따라 육아에 어느 정도 익숙함이 생겼기도 하거니와, 마침 장모님이 집에 오신 김에 (잘 부탁드린다며 말씀드리고) 바로 안산으로 향했다. 1시간 30분 가량 지하철을 타고 초지역에 내려 합동분향소가 위치한 화랑유원지로 걸어갔다. 날은 맑고 포근했지만, 계절을 이기지 못한 은행잎들은 악취를 풍기며 뒹굴고 있었다. 분향소에 다가갈수록 도로를 수놓은 세월호 관련 현수막들은 각자의 아픈 사연과 이웃들의 위로가 담긴 말을 짧은 문장으로 절절히 담아내고 있었다. 조문객들을 많이 볼 수는 없었지만, 대신 수많은 의경들이 분향소 주변을 돌아다니고 있어서 그렇게 적막한 느낌이 들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분향소.


   세월호 사건이 터지고 나서, 고통과 아픔이 어느 정도 무뎌진 후에 남은 것은 정치적 구호나 경제적 논쟁 같은 실체 없는 허상에 관한 것들이었다. 무언가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가는 것 같지만, 여전히 세월호는 진도 앞바다에 잠겨 있으며, 여전히 아홉 명의 실종자가 바다에 남아 있는 상황이다. 이렇다보니 세월호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에 대해 "지겹다"거나, 심지어 "유행에 뒤떨어진" 일이라 생각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나도 어느 정도는 이런 생각에 물들어간 것 같기도 했다.


   분향소에서는, 그러나, 이런 모든 논쟁들이 정말로 어처구니 없는 것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수많은 영정사진 밑에는 아이들의 엄마, 아빠, 형, 누나, 동생, 친구, 애인들의 편지들이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어서 돌아와 예전처럼 티격태격 놀자는 동생의 편지도 있었고, 자신이 그동안 모질게 군 것에 대해 미안해하며 눈물에 글자가 번진 누나의 편지도 있었다. 수학여행을 떠나서 아직까지 집에 돌아오지 않는 거라 생각하는 엄마의 편지도 있었고, 아직 바다에 있어 춥겠지만 기다릴테니 천천히 올라오시라는 아들의 편지도 있었다.


   세월호를 잊지 말자고 한다. 무엇을 잊지 말아야 하나? 아마도 세월호는 삶이라는 것이 아닐까? 거창한 정치구호나 치졸한 세금협박이 아닌, 그래도 여전히 삶을 견디어내는 우리 이웃들의 삶 말이다. 


   거리의 현수막 중 하나는 이렇게 외쳤다. "지겹다고 말하지 마세요. 자식 일이 지겹습니까?" 분향소에 있는 편지엔 이런 글귀가 있었다. "언니, 사람들은 무섭게 제자리로 돌아갔어.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너무 야속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어." 고작 한 번 분향소에 들러 조문을 했다는 이유로 이 모든 부채를 탕감했다고 감히 말할 수는 없겠다. 그저 너무도 앳된 아마도 아이들의 중학교 졸업사진에나 실렸을 증명사진이 영정사진으로 올려져 있는 기막힌 현실을 직시하면서, 잊지 않고 잊지 않고 잊지 않으며 살아갈 것이라고 말하는 것 밖에는.





   그리고 저녁. 결혼을 며칠 앞둔 친구를 만났다. 하필 결혼식과 아이들 100일이 겹쳐서 부득이하게 결혼식에 참석 못하게 돼 미리 축의금을 전달하며 덕담 비스무리한 것이라도 전하려고 했던 것이었는데


   무례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흥분했던 그의 말을 복기하자면, 내 결혼식에 왜 못오느냐. 그날이 아이들 100일이 정확하냐. 아무리 바쁜 일이 있더라도 시간을 짜내 결혼식에는 와서 단 5분이라도 있는 한이 있더라도 얼굴 보고 축하한다고 하고 그 자리에서 축의금을 내는 게 예의 아니냐. 왜 이런 개인적인 자리를 만들어 축의금을 주는지 모르겠다. 이럴거면 전화로 계좌번호를 물어봐서 이체하는 게 옳은 것 아니냐. 이건 예의가 아니다.


   뭐 이런 얘기였는데, 처음엔 농담인줄 알았는데 갈수록 얼굴에 핏대를 세우며 비난과 힐난의 언어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고 진짜로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니, 결혼식에 시간을 짜낼 수 없어서 오늘 무리하게 짜내 얼굴이라도 마주하며 미리 축하한다는 말을 전한 게 그렇게 무례한 행동이었나. 아직도 모르겠다. 그렇게 예의를 찾을 거면 왜 본인은 결혼 일주일 전에 카톡으로 모발일 청첩장 하나 보내며 결혼식에 오라고 했는지. 이건 예의 바른 것이고 내 행동은 무례한 것인지.


   어쩌면 그날 지독한 야근과 잔업으로 지쳐있다 숨어 있던 짜증이 돌출돼서 그랬을 수도 있겠다. 아니면 학사 졸업 후 근 10년 만에 박사학위를 따 그동안 숨겨왔던 자부심을 드러냈을 수도 있겠지. 집에서 육아나 하는 백수 주제에 감히 바쁘고 피곤한 박사님을 따로 불러내 결혼식에 못온다는 통보를 하는 것에 대해 괘씸죄를 적용했을 수도 있겠고. 그도 아니면 일면식도 없는 세월호 분향소에는 시간을 짜내 가면서, 왜 자신의 결혼식에는 그정도 성의를 보이지 않느냐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참 오래된 친구라 생각했는데, 내가 그동안 그를 참으로 표피적으로 만나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의 세월들이 서로 착각속에 빠진 시간들이었다는 것이란 생각이 들자 인생 자체가 허무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도 이제사 알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친구라는 이름으로, 가족이란 이름으로 예의를 짓이겨가며 행하는 폭력에 그동안 얼마나 진저리치며 살아왔던가. 결국 이렇게 되는 것도 인생이겠지. 김훈 선생이 말하길, 인간관계는 강과 같다고 했다. 강이 한 번 물길이 틀어지면 다시 만날 수 없듯이, 인간관계 또한 그와 같다고 했다. 물길을 되돌리려는 노력이 허망한 것처럼, 인간관계 역시 마찬가지라고 했다. 한 번 틀어지면 그대로 흘러가게 놔두는 것이 이치다. 


   안그래도 생선회 밑에 깔리는 무보다 얇은 게 내 인간관계인데, 어제부로 또 한 명을 정리하게 됐다. 한 친구는 이런 내 모습을 보고 "나중에 나이들어서 친구 없으면 고생한다"며 있을 때 친구들 잘 대하라는 말을 했는데, 친구가 무슨 보험도 아닐뿐더러, 이런 무례한 녀석들을 보험이라고 믿느니 매주 로또를 긁는 게 더 확률이 높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뜬금없지만, 연수 형 말이 맞았다. 글은 쓰는 것 자체로 위로가 된다는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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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28 07: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1-28 08: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1-28 08: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Tomek 2014-11-28 08:24   좋아요 0 | URL
위로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달걀부인님 덕분에 정말로 많이 풀렸어요.
아이들 예쁜 짓 보는 재미로 살고있어요. ^^

stella.K 2014-11-28 12: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햐~! 김훈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군요.
그렇지 않아도 틀어진 인간관계로 인해 저도 적잖이 신경 쓰였는데
김훈 선생이 그런 말을 했다니 은근 위로가 되네요.
전에 무슨 예능 프로를 보니까 나이가 들면 들수록
같이 앉아서 밥만 먹어도 좋다고 했다던데 그러기엔 토멕님이나
저나 아직은 젊은가 봐요.ㅋ

쌍둥이를 두셨군요. 이제 백일이라니 막 예뻐지면서 힘들어 지시겠습니다.
힘내시고, 튼튼한 아빠 되십시오.^^

Tomek 2014-11-28 15:52   좋아요 0 | URL
제가 오해했던 것도 있을테고, 그가 오해했던 것도 있었겠죠. 이젠 지난 일이니 깔끔하게 리셋해야죠. ^^

고맙습니다.

순오기 2014-11-29 03: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쌍둥이 아버지가 되셨군요~ 축하합니다!
예의를 차리지 않는 자가 예의를 말할 자격이 있을까요?
모바일 청첩장을 보낸 사람이 적반하장도 유분수군요.ㅠ
저는 그런 청첩을 보내면 결혼식에도 안 갑니다.ㅋㅋ

Tomek 2014-11-29 06:50   좋아요 0 | URL
각자의 사정이 있어서 그런 반응을 보였겠죠. ^^

고맙습니다.
 



   아이들이 태어난 지 만 20일이 흘렀는데, 솔직히 아직까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저 밤마다 영아산통 때문에 1시간 가량 비명을 지르듯이 울어댈 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고 그저 끌어안고 미안하다는 말밖에 중얼거릴 수 밖에 없는, 염치없고 무력한 내가 아비가 될 수 있는 자격이 있을런지... 


   결국 인생은 스스로가 감내해나가야 한다는 것을 이 어린 아이들이 온몸으로 겪고 있는 셈인데, 그게 그렇게 안쓰러울 수 없다. 이게 부모된 사람의 마음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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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4-09-15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을 보니 쌍둥이신가봐요.아이들이 태어난것을 축하드려요^^

Tomek 2014-09-15 11:46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

둥이들 때문에 하루 하루가 전쟁이예요. ㅠㅠ
 

새 가족들을 맞이할 준비가 얼추 끝나간다. 


맘에 들어할 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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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4-08-18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곧 아가들이 태어나는군요. 축하드립니다. 아내분께서 뭘 저리 정성들여 만들고 계실까요? 침대도 정말 예뻐요.

Tomek 2014-08-19 09:27   좋아요 0 | URL
촛점책 만들고 있어요. 침대에 죽 늘어놓으면 아가들 눈 발달에 좋다고 해서... 물론 아내님께서 만드시는 중이고 저는 구경만 하고 있습니다...

얼추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끝이 아니네요. 준비할 게... >,.<

고맙습니다. :)
 




제30회 - 마구간으로 달아나 필마를 만나고 도관을 찾아가 이인異人을 만나다



p.326

“여시아문 일시불재사위국 기수급고독원 여대비구중 천이백오십인구 이시 세존 식시 착의지발 입사위대성걸식 어기성중 차제걸이...”

“수보리 여여소설 여래 선호념제보살 선부촉제보살 여...”


일시불재사위국 → 일시 불 재사위국 (一時 佛 在舍衛國)

입사위대성걸식 → 입 사위대성 걸식 (入 舍衛大城 乞食)

선호념제보살 선부촉제보살 → 선호념 제보살 선부촉 제보살 (善護念 諸菩薩 善付囑 諸菩薩)


   진왕 이세민의 명으로 축귀(逐鬼)를 위해 승려들이 암송하는 것은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密經, Vajracchedikā Prajñāpāramitā Sūtra)』으로 우리에게는 『금강경』으로 알려져 있다. ‘금강’은 산스크리트어 바즈라체디카(Vajracchedikā)를 뜻으로 풀어 해석한 것으로 ‘바즈라(Vajra)와 같이 강한 힘으로 절단하는 것’ 이라는 뜻이고, ‘반야바라밀’은 산스크리트어 프라즈냐파라미타(Prajñāpāramitā)를 음역한 것으로 ‘깨달음으로 이끄는 지혜’를 가리킨다. 즉, ‘금강반야바라밀경’은 ‘마음속의 분별, 집착, 번뇌 등을 부숴버려 깨달음으로 이끄는 강력한 지혜의 경’라는 뜻이다. 축귀하는데 더할 나위 없는 선택이다.

   『금강경』은 약 6천 단어 정도의 길이로 대체로 짧은 편이며, 석가모니와 수보리존자의 문답으로 구성되어 있다. 『요원전』에 언급된 것은 「법회인유분(法會因由分)」과 「선현기청분(善現起請分)」 부분으로 내용은 다음과 같다.


會因由分 第一

如是我聞 一時 佛 在舍衛國 祇樹給孤獨園 與大比丘衆 千二百五十人俱 爾時 世尊 食時 着衣持鉢 入 舍衛大城 乞食 於其城中 次第乞已 還至本處 飯食訖 收衣鉢 洗足已 敷座而坐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한때에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 급고독원에 계시어 아울러 대비구중 천이백오십 인과 같이 하시더니, 이때에 세존님께서 공양 드실 때에 가시를 수하시고 발우를 가지시고 사위대성에 들어가시어, 그 성중에서 차례로 걸식을 마치시고 본처로 돌아오시고는, 공양을 마치시고 가사와 발우를 거두시고 발 씻기를 마치시고 자리를 펴시고 앉으시었다.


善現起請分 第二

時 長老須菩提 在 大衆中 卽從座起 偏袒右肩 右膝着地 合掌恭敬 而白佛言 希有世尊 如來 善護念 諸菩薩 善付囑 諸菩薩 世尊 善男子 善女人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應云何住 云何降伏其心 佛言 善哉善哉 須菩提 如汝所說 如來 善護念 諸菩薩 善付囑 諸菩薩 汝今諦請 當爲汝說 善男子 善女人 發 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應如是住 如是降伏其心 唯然 世尊 願樂欲聞

그때 장로 수보리가 대중 속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에 옷을 걷어 올리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꿇고 합장하여 공경을 표시하면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참으로 위대한 일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보살들을 잘 호념(護念)하시고 모든 보살들에게 불법을 잘 부촉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어진 남자(善男子)와 어진 여인(善女人)으로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향한 마음을 일으킨 이는 어떻게 행동하며 어떻게 그 마음을 실천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좋도다. 수보리여, 그대가 말한 것처럼 여래는 모든 보살들을 잘 호염하고 부촉한다. 내가 그대를 위해서 말하노니 잘 들으라. 어진 남자와 여인으로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향해 마음을 일으킨 사람은 마땅히 이렇게 행동하며 이렇게 그 마음을 실천해야 한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즐거이 듣고자 원합니다.”


   쓸데없이 더 부연하자면,「선현기청분」에 나오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는 말은 『금강경』 전체에 걸쳐 자주 등장하는 단어인데, 이는 산스크리트어 ‘아누타라사먁삼보디(anuttara-samyak-sambodhi)’를 음차한 것으로 ‘위없이 올바른 깨달음으로 향하는 마음’을 뜻한다. 석가모니는 『금강경』에서, ‘이러한 마음을 내기 위해서는 겉모습이나 현상 및 관념의 덧없음을 알아 이들에 현혹되지 않은 채로 올바르게 관찰해서 깨달음을 향하는 순수한 마음을 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p.332

“이시 무진의보살 즉종좌기 편단우견 합장향불 이작시...”


p.334

“즉시 관기음성 개득해탈 약유지시관세음보살명자 설입대화 화불능소 유시...”


   현장이 암송하는 것은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Saddharma Puṇḍarīka Sūtra)』 (제7권)의 제25품(品)인 「관세음보살보문품(觀世音菩薩普門品)」이다. 『요원전』 6회에서 처음 등장했던 현장이 처음으로 외웠던 불경도 바로 이 「관세음보살보문품」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 때는 억울하게 죽은 원혼들의 해탈을 위해 독경했다면, 지금은 지용부인과 홍해아를 피할 수 있도록 자신의 안위를 위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외우고 있다는 것이다. 이 「관세음보살보문품」으로 현장은 손오공을 만났고, 손오공은 자신을 괴롭히던 망령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요원전』에서 인용한 「관세음보살보문품」의 원문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爾時 無盡意菩薩 卽從座起 偏袒右肩 合掌向佛 而作是言 世尊 觀世音菩薩 以何因緣 名觀世音

그 때 무진의보살(無盡意菩薩)이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벗어 드러내고 부처님을 향하여 합장하고 여쭈시되 “세존이시여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은 무슨 인연으로 관세음이라고 합니까?”


佛告 無盡意菩薩 善男子 若有無量百千萬億衆生 受諸苦惱 聞是觀世音菩薩 一心稱名 觀世音菩薩 卽時 觀其音聲 皆得解脫 若有持是觀世音菩薩名者 設入大火 火不能燒 由是菩薩 威神力故 若爲大水所漂 稱其名號 卽得淺處

부처님께서 무진의보살에게 말씀하시되, “선남자야, 만일 한량없는 백천만억 중생이 갖가지 괴로움을 당할 적에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듣고 한마음으로 그 이름을 부르면 관세음보살이 그 음성을 관하고 곧 해탈하게 하느니라. 만일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지니는 이는 혹 큰 불속에 들어가더라도 불이 그를 태우지 못할 것이니 이것은 보살의 그 위신력 때문이며, 만약 큰물에 떠내려가더라도 그 이름을 부르면 곧 얕은 곳에 이르게 되고 (...)”



p.337

“그러고 보니 여기랑 대불당 사이였지? 위지 장군께서 귀신을 놓치신 데가...”


위지 → 울지



p.346

현장과 황포의 만남


   현장이 낙태관에서 만난 사내는 황포(黃袍)다. 황포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다음 장에서 하는 것으로 한다. 짧게 소개하자면, 홍해아와 마찬가지로 손오공과 현장에게 있어서 아주 지긋지긋한 인연을 이어나가는 인물이다.

   이 장면에서 눈에 띄는 것은 황포가 현장에게 다가올 때 황포의 몸에 찍히는 창호지 도장이다. 오세영 작가도 단편 「투계(鬪鷄)」에서 이런 창호지 도장을 그린 바 있었는데, 모로호시 선생이 표현한 것이 위협과 공포의 감정을 느끼게 한다면, 오세영 작가의 것은 아련함과 따뜻함을 느끼게 한다. 두 거장의 같은 묘사는 한 번 찬찬히 살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첨언하자면, 모로호시 선생이 그린 빛과 그림자의 경계에서 스멀스멀 다가와 현장을 위협하는 장면은 가히 동양의 표현주의, 오리엔탈 느와르라 불러도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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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황파파蝗婆婆에게 부탁해볼까...”


   황파파는 바람의 신으로 『서유기』45회와 98회에 걸쳐 두 번 등장한다. 황파파는 항상 손이랑(巽二郞)과 함께 다니는데, 황파파가 바람주머니를 풀어 바람을 쏟아내는 역할을 맡고 있고, 손이랑은 바람주머니를 뒤에서 잡아 원하는 방향으로 돌리는, 풍향을 전담하기 때문이다. 『서유기』에서는 비중이 미미한 역이었지만 모로호시 선생은 『요원전』에서 황파파와 손이랑, 이 둘을 「반사령의 장」, 「관음원의 장」, 「황풍대왕의 장」, 세 장에 걸쳐 등장하게 한다. 더 자세한 내용은 이들이 등장할 때 풀어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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