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바라따 3 - 2장 회당: 세상을 건 노름 : 명예와 혼을 팔아 천하를 얻은 자, 형제와 아내와 자신을 팔아 명예를 잃은 자 마하바라따 3
위야사 지음, 박경숙 옮김 / 새물결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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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하바라따』를 읽다가 깜짝 놀라 멈춘 부분이 있다. 2-23 부분인데, 중국인에 대한 언급이 나오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가운데 위치한 나라를 중국이라고 번역했나'했었는데 이후에도 중국/중국인이 계속 언급되는 것으로 보아 그 중국이 맞는 것 같았다.


§2-23 (『마하바라따』 3권 p.109 9째 줄)
-쁘라그조띠샤는 늪지대의 사냥꾼들과 중국 병사들, 바닷가에 사는 다른 많은 병사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2-47 (3권 p.194 1째 줄)

-중국인, 훈족, 샤나까, 오드라 그리고 깊은 산에 사는 사람들, 우르슈니족, 하라훈의 왕들, 검은 종족, 히말라야에 사는 왕들이 와서 문 밖으로 들어가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중국인’이라. 정말 그 중국인인가? 그것도 인도의 고대 문학에. 위키피디아를 찾아보니 우리가 아는 그 중국인이 맞는단다.

 

The Chinas or Chīnaḥ (Sanskrit चीन:) are a people mentioned in ancient Indian literature from the first millennium BCE, such as the Mahabharata, Laws of Manu, as well the Puranic literature. They are believed to have been Chinese.

   

   그러면 언제부터 중국인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낼 정도의 규모로 인도에서 정착을 한 것일까? 그리고 저런 발음이라면 적어도 진(秦)나라 이후로 알려졌어야 하는데, 그러면 통일 이전부터 인도 대륙과 교역이 있었나? 더 들어가니 도통 모르겠다. 어쨌거나, 재미있는 사실은 『마하바라따』에는 중국/중국인에 대한 언급이 꽤 있다는 점이다. Ganguli의 영역본에 나온 중국인이 언급된 부분은 아래와 같다.
 
Kisari Mohan Ganguli Translation
1-177
And from the froth of her mouth came out hosts of Paundras and Kiratas, Yavanas and Sinhalas, and the barbarous tribes of Khasas and Chivukas and Pulindas and Chinas and Hunas with Keralas, and numerous other Mlechchhas.

 

3-51
And even Krishna himself beholding the sons of Pritha dressed in deer skins, became filled with rage, and addressing Yudhishthira, said, 'That prosperity which the sons of Pritha had acquired at Indraprastha, and which, unobtainable by other kings, was beheld by me at the Rajasuya sacrifice, at which, besides, I saw all kings, even those of the Vangas and Angas and Paundras and Odras and Cholas and Dravidas and Andhakas, and the chiefs of many islands and countries on the sea-board as also of frontier states, including the rulers of the Sinhalas, the barbarous mlecchas, the natives of Lanka, and all the kings of the West by hundreds, and all the chiefs of the sea-coast, and the kings of the Pahlavas and the Daradas and the various tribes of the Kiratas and Yavanas and Sakras and the Harahunas and Chinas and Tukharas and the Sindhavas and the Jagudas and the Ramathas and the Mundas and the inhabitants of the kingdom of women and the Tanganas and the Kekayas and the Malavas and the inhabitants of Kasmira, afraid of the prowess of your weapons, present in obedience to your invitation, performing various offices,--that prosperity, O king, so unstable and waiting at present on the foe, I shall restore to thee, depriving thy foe of his very life.

 

3-176
And crossing the difficult Himalayan regions, and the countries of China, Tukhara, Darada and all the climes of Kulinda, rich in heaps of jewels, those warlike men reached the capital of Suvahu.

 

5-86
I will also give him a thousand deer-skins brought from China and other things of the kind that may be worthy of Kesava.

 

6-9
Among the tribes of the north are the Mlecchas, and the Kruras, O best of the Bharatas; the Yavanas, the Chinas, the Kamvojas, the Darunas, and many Mleccha tribes; the Sukritvahas, the Kulatthas, the Hunas, and the Parasikas; the Ramanas, and the Dasamalikas.

 

 

   한 가지 더 흥미로운 얘기. 5-74에 언급되는 중국의 왕 "Dhautamulaka"는 하(夏)나라의 걸(桀)왕을 가리킨다는데,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Dhautamulaka의 뜻이 ‘깨끗한 뿌리’라는 뜻이고 桀의 뜻 또한 ‘깨끗하다’는 뜻이므로 동일인”이란 설명인데, 桀의 뜻에 ‘깨끗하다’라는 뜻이 있나?)

 

5-74
Janamejaya among the Nepas, Vahula among the Talajanghas, proud Vasu among the Krimis, Ajavindu among the Suviras, Rushardhik among the Surashtras, Arkaja among the Valihas, Dhautamulaka among the Chinas, Hayagriva among the Videhas, Varayu among the Mahaujasas, Vahu among the Sundaras, Pururavas among the Diptakshas, Sahaja among the Chedis and Matsyas, Vrishaddhaja among the Praviras, Dharana among the Chandra-batsyas, Bigahana among the Mukutas and Sama among the Nandivegas.

 

   원래는 『서유기』와 관련한 이야기를 하려 했는데, 글이 길어져서 여기서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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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바라따 2 - 1장 태동: 신들은 영생을 위해 불사주를 구하고, 인간들은 사랑과 명예를 위해 삶을 버린다 마하바라따 2
위야사 지음, 박경숙 옮김 / 새물결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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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p.465

    쪽수가 이상하게 붙어 있다. 1권은 p.506에서 끝이 나는데(부록 4까지 포함시킨다면 p.510에서 끝난다.) 2권은 p.465에서 시작한다. 부록의 쪽수는 표기를 다르게 하는 게 책의 연속성에 맞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니면 각 권 모두 p.1에서 시작하는 게 나을 것 같다.

 

§색인 작업

    마하바라따에는 엄청난 수의 인물들이 등장하고 사라진다. 하지만, 어떤 이는 조용히 등장했다 이야기에서 사라진 후, 갑자기 등장해서 엄청난 사건을 일으키기도 한고 누구는 갑자기 등장하는 것 같은데 주인공들의 운명을 뒤집는 엄청난 일을 저지르기도 한다. 전자의 대표적 인물이 암바라면, 후자는 샤꾸니가 될 것이다.

 

    암바는 1-96(마하바라따2p.480)에서 처음 등장하고 곧 사라진다. 이때는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라 생각하게 되지만, 후에, 꽤 후에, 다시 등장해서 주요 인물을 없애는 역할을 맡는다. 암바를 기억하면 다행이지만, 그냥 흘려보낸 독자들은 암바를 갑자기 툭 튀어나온, 마치 기계 장치의 신(deus ex machina)’의 역할을 맡는 것으로 여기기 쉽다. 이정도 인물엔 약간의 주석, 아니 이정표를 달아주는 게 이 거대한 미로에서 길을 잃지 않는 방법이 되지 않을까. 아쉬운 마음에 조금 언급해봤다. 왜냐하면 역자는 제대로 등장조차 하지 않은 와수데와도 친절히 설명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인물들에 주석을 달기란 쉽지도 않고, 때로는 내용 누설이 필요하게 되어 읽는 이의 입장에서는 김이 빠지기 쉽다. 때문에 마하바라따에는 주석보다 색인 작업이 더 필요할 듯하다.

 

    마하바라따를 각색한 영화와 드라마에서는 암바를 매우 비중 있게 다룬다. 그 이유는 매체의 특성 때문이기도 할 것인데, 책은 읽다가 멈추고 다시 앞으로 갈 수 있지만, 영화와 드라마는 그냥 속절없이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Babubhai Mistri 감독의 1965년 영화에서 암바는 영화의 절정부인 꾸루꾸쉐트라 전투에서 이런 기괴한 모습으로 잠시 등장한다. 이렇게 묘사할만한 이유가 있는데, 그걸 밝히면 내용 누설이니 그냥 넘어간다.

 

 

 

B. R. Chopra가 제작한 1988년 드라마에서는 원래 정혼한 샬와 왕에게 갔다가 다시 쫓겨난 후 비슈마를 저주하며 떠나는 장면까지 묘사한다. 한 여인이 복잡한 정치적 상황(과 남자들 사이의 유치한 자존심) 사이에 끼어 본의 아니게 농락당하는 모습을 처절하게 보여준다.

 

 

 

Peter Brook이 연출한 1989년 영화에서도 위의 드라마와 같은 상황까지 묘사된다. 다른 점이라면 매우 담백하게 절제된 대사와 연기로만 이루어졌다는 점인데, 암바의 마지막 대사 “Never forget me, Bhishma. I am your death.”가 큰 울림을 준다. 암바의 대사는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Julius Robert Oppenheimer)가 트리니티 핵폭탄 실험을 두고 했던 말 “Now I am become death, the destroyer of worlds.”를 떠올리게 하는데, 이 놀라운 비문(非文)바가와드 기따에서 따온 것이며, 마하바라따에도 포함되어 있다.

 

 

 

Swastik Pictures 제작한 2013년 드라마에서는 더욱 더 적극적이고 대담무쌍한 암바를 볼 수 있다. 책에서는 도도한 암바라고 단 한마디로 묘사했지만, 21세기 드라마답게 매우 입체적으로 그렸다. 암바는 2회에서 처음 등장하는데, 샬와 왕과의 밤중 데이트를 위해 갈대밭을 홀랑 태우는 정열적인 여성으로 그려진다. 이야기도 약간 변형 되어서, 암바는 정혼자인 샬와 왕의 복수(?!)를 위해 비슈마를 처단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데, 책에서는 뒤에 나올 이야기들 몇몇을 조금 당겨썼다. 특히 비슈마와 빠라슈라마와의 대결, 그리고 이를 중재하는 마하데와 쉬와가 등장하는 장면은, James Cameron 감독이 이 이야기를 그토록 영화로 옮기고 싶어 하는 가에 대한 힌트가 될 것이다. (영화에서 특수효과의 단계는 이제 얼마만큼 사실적으로 그리는가의 영역에서 이제는 무엇을 그릴 것인가의 영역으로 넘어온 지 오래다. 이제는 상상력의 콘텐츠가 중요해졌으며, 마하바라따는 그런 상상력의 보고라 할 수 있다.)

 

 

  

   샤꾸니2-43(3p.178)에서 본격적으로 등장을 하지만, 이미 1-103(2p.502)에서 첫 등장을 한 바 있다. (지금까지 읽어본 바에 따르면) 마하바라따에는 미지의 인물이 갑작스럽게 등장해서 중요한 역할을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사실 갑작스러운 등장인물이나 사건이 갑자기 중요한 분기점이 되는 것은 작품의 격을 떨어뜨린다. (드라마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주인공의 출생의 비밀이라던가, 영화의 속편에서 볼 수 있는 죽은 주인공의 쌍둥이 동생이 갑자기 언급된다든지.) 하지만 마하바라따에서는 그런 것들을 찾아볼 수 없다. 마하바라따가 완성된 1,000여 년 간, 수많은 위야샤들이 이런 것들을 방지해놓았다. 이 등장인물이 어디에서 처음 등장했고, 누구에게 처음으로 언급되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바로 이런 점 때문에라도 색인이 필요하다.

 

 

 

Babubhai Mistri 감독의 1965년 영화에서 샤꾸니는 영화의 첫 장면, 까우라와들과 빤다와들의 무술 대회에 처음 등장한다. 이후로도 계속 등장, 까우라와들을 (좋지 않은 방향으로) 부추기는 역을 맡는다. 한 번에 척 봐도 악당같이 생겼고, 노름에 쓰이는 주사위를 부적처럼 사용한다.

 

 

 

B. R. Chopra가 제작한 1988년 드라마에서 샤꾸니는 간다라 왕국의 왕이자 아버지인 수발라와 노름을 하는 장면으로 처음 등장하며, 이후 비슈마가 등장해 수발라의 딸 간다리와 드르따라슈트라간에 중매를 선다. 첫 등장에서 샤꾸니가 수발라에게 노름 기술을 배우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후에 노름이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임을 알려준다. 이 장면에서만큼은 샤꾸니는 평범하게 나오지만, 후에 지속적으로 등장, 드르따라슈트라와 빤두의 사이를 이간질시킨다.

 

 

 

Peter Brook이 연출한 1989년 영화에서는 주사위 노름직전에 등장한다. 간다리에게 “Shakuni, your brother!”하며 간단명료하게 자기소개를 하면서 극으로 슬그머니 스며든다. 이 영화에서 샤꾸니는 중요한 인물이라기보다는, 이야기 전개를 위한 어떤 분기점 같은 역할을 맡는다.

 

 

 

Swastik Pictures 제작한 2013년 드라마에서 샤꾸니는 산을 타며 간다리 왕국으로 향하는 모습으로 처음 등장한다. 밧줄이 끊어지려 하자 자신이 살기 위해 가차 없이 밑에 있는 부하를 떨어뜨리는 전형적인 악당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이후 모습은 반전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왕성에 도착한 샤꾸니는 부모에게 드르따라슈트라와 간다리의 결혼을 막는다. 이유는 드르따라슈트라가 장님이기 때문. 동생의 행복을 위해 결혼을 반대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간다리는 결혼을 선택한다. 냉혈한이긴 하지만 동생을 위하는 마음만큼은 따뜻한 샤꾸니는 동생을 하스띠나뿌라로 데리고 가 결혼식을 올린다. 샤꾸니가 드르따라슈트라와 간다리의 자식들인 까우라와들의 편에 서서 빤다와들을 망치려고 하는 이유가 이 드라마의 짧은 인물 설명에서 드러난다.

 

  

    1-143(2p.635)의 가토뜨까짜, 1-213(2p.870)의 아비만유 또한 후에 중요한 역을 맡는 인물들이므로, 간단한 언급 혹은 색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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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바라따 2 - 1장 태동: 신들은 영생을 위해 불사주를 구하고, 인간들은 사랑과 명예를 위해 삶을 버린다 마하바라따 2
위야사 지음, 박경숙 옮김 / 새물결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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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대로다. 『마하바라따』는 옳고 그름을 논하지 않고, 선과 악에 대한 가치를 판단하지도 않는다.  『마하바라따』는 그냥 있는 그대로 벌어지는 사건들을 나열할 뿐이지 그에 대한 가치 판단을 하지 않는다. 아마도 그것이  『마하바라따』까 문학이라기 보다는 이띠하사("실제로 있었던 일")로 불리는 이유가 아닐까.

 

   1-74(『마하바라따』 1권 p.370)에 있는 아수라들의 스승인 우샤나스 슈끄라와 그의 딸 데와야니의 대화를 한 번 보자. 언젠가 데와야니는 아수라의 왕 우르샤빠르완의 딸 샤르미슈타와 언쟁을 벌여 호되게 당했다. 분해서 울고 있는 딸에게 대선인 슈끄라는 이런 말을 하며 딸을 위로한다.

 

   데와야니야, 다른 이의 어떠한 극적인 말도 견디는 자는 모든 것을 다 이길 수 있는 사람이란다. 그래서 현자들은 치솟는 화를 말 다루듯 잘 다루는 사람을 몰이꾼이라고 한단다. 말을 고삐에 매어두는 사람을 몰이꾼이라고 하지 않는단다. 데와야니여, 치솟는 화를 평정심으로 다스리는 자가 모든 것을 다 이기는 사람인 줄 알거라. 치솟는 화를 용서로 훌훌 털어버리는 것은 뱀이 낡은 옷을 벗어버리는 것과 같다. 화를 누르는 사람, 다른 이의 비난에 무심한 사람, 괴롭힘을 당해도 그를 다시 괴롭히지 않는 사람은 반드시 풍요를 얻을 것이다. 백 년 동안 지치지 않고 달마다 희생제를 지내는 사람과 누구에게도 화내지 않는 사람을 비교한다면 화내지 않는 사람이 당연히 더 훌륭한 사람이란다.

   암 것도 모르는 사내아이들과 계집아이들이 아무리 으르렁 거리고 싸워도 지혜로운 사람은 그들의 싸움을 모방하지 않는단다. 아이들은 어떤 것이 힘 있는 것인지, 또 어떤 것이 나약한 것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출력해서 책상 앞에 딱 붙여 생각날 때마다 읽고 싶은 잠언이다. 대부분의 고전문학이었다면, 여기서 멈춰 큰 교훈을 얻는 것으로 마무리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다음에 데와야니가 받아치는 말이 걸작이다.

 

   아버님, 제가 비록 어리긴 하지만 여러 다르마가 어떻게 다른지는 압니다. 또한 평정할 때와 비방할 때 무엇이 힘 있고 무엇이 나약한 것인지도 압니다. 그러나 제자가 제자답지 못한 행동을 할 때 스승은 그들을 용서해서는 안 된답니다. 이런 이유로 전 행동거지가 바르지 않는 자들 틈에서 지내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최상의 것을 구하는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의 거동과 태생을 잘 알아주는 좋은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것이 가장 잘 사는 것이라고 합니다. 우르샤빠르완의 딸은 제게 너무나 무서운 막된 말을 했습니다. 그보다 더 참기 어려운 일은 삼계엔 없을 것입니다. 경쟁자가 잘되는 꼴을 보며 그를 칭송하는 것은 못난 사람이나 하는 짓입니다.

   마치 21세기에 사는 우리들이 할 법한 말을 천역덕스럽게 한다. 그래도, 이런 말을 들었으면 위대한 브라만이신 슈끄라는 딸을 바라 잡아주어야 할 텐데, 그러지 않는다. 슈끄라는 이 말을 듣고 우르샤빠르완을 찾아가 딸이 모욕을 받았으니 이곳을 떠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결국 슈끄라는 남아있는 조건으로 샤르미슈타를 딸의 하녀로 삼는다.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일까? 모욕을 당했을 때, 슈끄라의 말대로 참아야 옳은 것인가? 아니면, 데와야니처럼 복수를 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이 둘 중 누가 잘못됐나? 『마하바라따』는 쉽사리 가치판단을 내리지 못하게 한다.

 

   『마하바라따』의 주인공은 빤다와들이고, 반대편에서 적대 관계를 맺는 이들이 까우라와들이다. 대부분의 문학이(특히나 고전문학) 선과 악의 관계를 명확히 맺는 반면, 『마하바라따』는 그러지 않는다. 아니, 빤다와들이 선, 까우라와들을 악으로 명시하기는 한다. 하지만 이들의 행동들은 그렇게 쉽게 가치판단을 내리지 못하게 한다.

 

   까우라와들은 빤다와들을 죽이기 위해, 와라나와따에 큰 저택을 짓고 빤다와들을 그곳으로 보낸다. 빤다와들은 까우라와들의 계책을 눈치 챘지만, 모른척하고 그곳으로 간다. 그 저택에 보시를 받으러 온 '니샤다의 여인과 다섯 명의 아들'이 대접을 받고 술에 취에 잠들자 빤다와들을 저택을 불로 태워버리고 도망친다. 저택에는 빤다와들의 숫자와 같은 여섯 구의 시체가 발견되고, 까우라와들은 빤다와들을 드디어 없앴다고 좋아하며, 빤다와들은 까우라와들의 마수에서 당분간을 피할 수 있을 거라며 안심한다.

 

   다 좋은데, 그럼 그 때 죽은 여섯 명의 목숨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빤다와들이 선이라면, 이들을 구했어야 옳지 않은가? 이들이 도착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스스로 방화를 저지르고 이들의 시체를 이용하는 것은 위대한 영웅들의 행동이 아니다.

 

   끄르슈나와 아르주나가 저지르는 칸다와 숲에서의 학살은? 이들의 모습은 흡사 악귀와도 같다. 이 부분은 선악의 문제라기 보다는 상위 다르마와 하위 다르마의 차이로 볼 수도 있겠지만, 확실한 것은 일반적인 선악의 개념은 아닌 것 같다.

 

   어쩌면 옳고 그름, 선과 악에 대한 개념들은 모두 다르마로 통합되는 것으로 볼 수 있겠다. 각자에겐 각자의 다르마가 있고, 모두들 그 다르마를 따르려고 노력한다. 내가 따르는 다르마는 남들의 것과 다를 수 있고, 나는 내 다르마가 최선이라 생각하지만, 남들의 눈에는 다르게 보일 수도 있다. 그 수많은 다르마가 충돌하면서 공존하고, 그 안에서 공통되는 하나의 다르마로 수렴되어지는 과정이 『마하바라따』를 관통하는 주제가 아닐까 감히 생각해본다. 그리고 이러한 각자의 다르마가 서로 충돌해나가면서도 잘 살아가는 것이 바로 인도의 모습이 아닐까 또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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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바라따 1 - 1장 태동: 신과 아수라와 인간과 영물들의 탄생 마하바라따 1
위야사 지음, 박경숙 옮김 / 새물결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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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하바라따를 3권까지 읽다가 계속 무언가가 걸려서 조금씩 정리를 해봤다. 딴지는 아니고, 그냥 책을 읽다가 멈춘 지점에서 생각을 하고 정리를 한 것이기 때문에 리뷰라 보기에는 뭣하지만, 그냥 몇 자 적었다. 다음 3쇄가 나올 때는 더 좋은 책이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에, 그리고 제발 완역이 완간 될 수 있기를 바라며.

 

 

 

 

 

 

 

 

§1p.23 꾸루 가문의 가계도

    책에서 밝힌 꾸루 가문의 가계도(본 이야기의 실질적인 시작점인) 샨따누 왕에서 (이 이야기의 청자인) 자나메자야 왕까지의 족보로, 사실상 마하바라따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의 관계도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오류로 보이는 것도 있는데, ‘드르따라슈트라-간다리에서 까우라와’(두료다나, 두샤사나를 포함한 100명의 아들들)로 이어지는 선에 까르나가 겹쳐져있어서, 이 가계도만 보면 두료다나를 포함한 까우라와들이 까르나의 자식인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이건 명백히 편집자의 실수다.) 그리고 간다리와 샤꾸니는 남매사이인데, 도면상으로 보면 결혼한 사이로 보인다. 점선과 실선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이러한 오해를 피할 수 있을 것 같다.

 

 

 

 

 

(출처:Wikipedia)

 

   그런데 이 정도의 간략한 가계도는 단권짜리 축약판에나 어울리지, 완역 마하바라따에는 어울리지 않지 싶다. 이 거대한 서사시에 걸맞은 가계도 정도라면, 1-70, 1-89(마하바라따1장 태동, 7089)에서 언급된 닥샤 쁘라자빠띠, 마누 와이와스와따, 바라따, 꾸루, 뿌루, 아지마다 계보에 속하는 성스럽고 다복하며 풍요와 명예와 장수를 누린 야다와, 빠우라와, 그리고 바라따의 모든 가계를 올리는 게 어울리지 않을까? Penguin Books에서 출간한 2010년 판 Mahabharata에서는 그런 무시무시한 작업의 결과가 실려 있다.

 

         

                                       

 

 

 

§ 일러두기 (1p.24, 2p.461, 3p.5)

1. 이 책은 뿌네의 반다르까 동양학 연구소에서 편찬한 보리(BORI)본을 원전으로 삼아 옮겼으며, 이야기의 흐름상 필요한 경우에는 다른 이본의 이야기들을 삽입하고 주에 따로 표시해두었다.

 

    새물결에서 출간한 마하바라따는 뿌네(Pune)의 반다르까 동양학 연구소(Bhandarkar Oriental Research Institute, BORI)의 판본을 원전으로 삼았다고 했다. 이 보리본을 Critical Edition, 일명 결정판이라고 하는데, 이 설명이 빠져 있어서 조금 적는다. 마하바라따는 약 1천여 년에 걸쳐 완성된 작품이므로, 수많은 판본, 혹은 교정본이 존재한다. 뿌네의 반다르까 동양학 연구소가 이 수많은 판본을 취합, 후대에 추가된 이야기들을 삭제하면서 제작한 것이 바로 결정판이다. 1919년에 시작해서 1966년에야 출간했는데, 이때는 부록인 하리 왕가가 빠져 있었으며, 1970년에야 하리 왕가를 부록으로 추가, 진짜 결정판을 출간했다. 이 결정판이야 말로 진정으로 공인된판본이라 할 수 있는데, 문제는 다른 판본에서 설명을 위해 삽입했던 구절들이 후대에 추가된 것들이라는 이유로 삭제가 되어서 이야기 진행이 널을 뛴다는 데 있다. 오히려 이본(異本)들이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더 낫다는 것인데, 역자도 그렇게 생각해서인지 삭제된 부분을 추가로 집어넣었다. 추가된 부분은 1-107 (2p.515), 1-119(2p.558), 1-215(2p.879)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결정판에는 매우 유명한 두 개의 이야기가 삭제되어 있다. (더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3권까지 읽었을 때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두 이야기들이다.) 하나는 이 위대한 이야기의 저자인 위야사와 가네샤에 대한 이야기, 다른 하나는 드라우빠디와 끄르슈나에 대한 이야기이다. 역자는 다른 삭제된 이야기들은 집어넣었으면서 왜 이토록 유명한 이야기들은 언급조차 하지 않았을까?

 

    먼저 위야사와 가네샤에 대한 이야기. 위야사는 이 위대한 이야기를 생각해냈지만, 이를 기록할 사람이 없었다. 그러자 창조주 브라흐마는 가네샤를 보내어 이를 받아 적게 했다. 가네샤는 위야사가 낭송을 하되 절대 멈추지 않고 계속 낭송을 한다면 받아 적겠다는 조건을 걸었다. 그러자 위야사는 자신이 이야기하는 각 시구의 의미를 깨닫고 이해해야만 가네샤가 기록을 할 수 있다는 조건을 내세웠다. 가네샤는 이를 받아들였으며, 위야사는 낭송을 시작했고 가네샤는 기록을 시작했다. 때때로 위야사는, 가네샤를 당황스럽게 하고 생각할 시간을 주기 위해, 아리송한 단어들을 선택하고 이야기 구성을 비틀었다고 한다. (그래서 마하바라따가 그토록 복잡한 구성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신조차도 생각에 빠져 집필을 멈춰야 했으니 인간들은 오죽하겠는가!)

이 이야기는 1-1 (마하바라따1p.45)에서 삭제된 이야기인 듯하며, 삭제된 부분은 Ganguli의 번역본에서 찾아볼 수 있다. (Ganguli가 번역했을 때에는 결정판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았으니...) Peter Brook의 작품(연극/영화)에도 이 이야기가 언급되어 있다.

 

 

 

 

 

1989년 영화. Peter Brook 감독. 구술하는 위야샤와 기술하는 가네샤. 그 뒤로 이를 보고 있는 소년의 모습.

 

 

 

Kisari Mohan Ganguli Translation

 

The son of Satyavati having, by penance and meditation, analysed the eternal Veda, afterwards composed this holy history, when that learned Brahmarshi of strict vows, the noble Dwaipayana Vyasa, offspring of Parasara, had finished this greatest of narrations, he began to consider how he might teach it to his disciples. And the possessor of the six attributes, Brahma, the world's preceptor, knowing of the anxiety of the Rishi Dwaipayana, came in person to the place where the latter was, for gratifying the saint, and benefiting the people. And when Vyasa, surrounded by all the tribes of Munis, saw him, he was surprised; and, standing with joined palms, he bowed and ordered a seat to be brought. And Vyasa having gone round him who is called Hiranyagarbha seated on that distinguished seat stood near it; and being commanded by Brahma Parameshthi, he sat down near the seat, full of affection and smiling in joy. Then the greatly glorious Vyasa, addressing Brahma Parameshthi, said, "O divine Brahma, by me a poem hath been composed which is greatly respected. The mystery of the Veda, and what other subjects have been explained by me; the various rituals of the Upanishads with the Angas; the compilation of the Puranas and history formed by me and named after the three divisions of time, past, present, and future; the determination of the nature of decay, fear, disease, existence, and non-existence, a description of creeds and of the various modes of life; rule for the four castes, and the import of all the Puranas; an account of asceticism and of the duties of a religious student; the dimensions of the sun and moon, the planets, constellations, and stars, together with the duration of the four ages; the Rik, Sama and Yajur Vedas; also the Adhyatma; the sciences called Nyaya, Orthœphy and Treatment of diseases; charity and Pasupatadharma; birth celestial and human, for particular purposes; also a description of places of pilgrimage and other holy places of rivers, mountains, forests, the ocean, of heavenly cities and the kalpas; the art of war; the different kinds of nations and languages: the nature of the manners of the people; and the all-pervading spirit;--all these have been represented. But, after all, no writer of this work is to be found on earth.'

 

"Brahma said. 'I esteem thee for thy knowledge of divine mysteries, before the whole body of celebrated Munis distinguished for the sanctity of their lives. I know thou hast revealed the divine word, even from its first utterance, in the language of truth. Thou hast called thy present work a poem, wherefore it shall be a poem. There shall be no poets whose works may equal the descriptions of this poem, even, as the three other modes called Asrama are ever unequal in merit to the domestic Asrama. Let Ganesa be thought of, O Muni, for the purpose of writing the poem.'

 

"Sauti said, 'Brahma having thus spoken to Vyasa, retired to his own abode. Then Vyasa began to call to mind Ganesa. And Ganesa, obviator of obstacles, ready to fulfil the desires of his votaries, was no sooner thought of, than he repaired to the place where Vyasa was seated. And when he had been saluted, and was seated, Vyasa addressed him thus, 'O guide of the Ganesa! be thou the writer of the Bharata which I have formed in my imagination, and which I am about to repeat."

 

"Ganesa, upon hearing this address, thus answered, 'I will become the writer of thy work, provided my pen do not for a moment cease writing." And Vyasa said unto that divinity, 'Wherever there be anything thou dost not comprehend, cease to continue writing.' Ganesa having signified his assent, by repeating the word Om! proceeded to write; and Vyasa began; and by way of diversion, he knit the knots of composition exceeding close; by doing which, he dictated this work according to his engagement.

 

I am (continued Sauti) acquainted with eight thousand and eight hundred verses, and so is Suka, and perhaps Sanjaya. From the mysteriousness of their meaning, O Muni, no one is able, to this day, to penetrate those closely knit difficult slokas. Even the omniscient Ganesa took a moment to consider; while Vyasa, however, continued to compose other verses in great abundance.

 

 

The wisdom of this work, like unto an instrument of applying collyrium, hath opened the eyes of the inquisitive world blinded by the darkness of ignorance. As the sun dispelleth the darkness, so doth the Bharata by its discourses on religion, profit, pleasure and final release, dispel the ignorance of men. As the full-moon by its mild light expandeth the buds of the water-lily, so this Purana, by exposing the light of the Sruti hath expanded the human intellect. By the lamp of history, which destroyeth the darkness of ignorance, the whole mansion of nature is properly and completely illuminated.

 

 

    드라우빠디와 끄르슈나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내용 누설이니 간략하게 언급한다면) 두샤사나가 회당에 끌려나온 드라우빠디의 옷을 벗기자 드라우빠디는 끄르슈나에게 간절한 기도를 올린다. 기도에 응답한 끄르슈나가 조용히 나타나 드라우빠디의 몸이 드러나지 않도록 끊임없이 옷이 나오게 했다.

    생략된 부분은 2-61 (마하바라따3p.258 11째 줄) 부분이고, 끄르슈나가 등장하지 않음으로써 그저 놀라운 장면으로만 묘사가 되어 있다. 그런데 이 생략된 이야기는 워낙에 강렬한 부분이어서 그런지, 마하바라따를 다룬 (거의) 모든 영화와 드라마에서는 이 이야기에 끄르슈나가 등장을 한다. 심지어 결정판이 나온 1970년 이후의 영화와 드라마에서조차도 이 부분만큼은 이본(異本)의 이야기를 따르고 있다. 삭제된 부분은 Ganguli의 번역본에서 찾아볼 수 있다.

 

 

 

1965년 영화. Babubhai Mistri 감독. 왼편에 두샤사나가 드라우빠디의 옷을 당기고 있고 오른편에 끄리슈나가 천을 내리고 있다. 드라우빠디 뒤편으로 왼편엔 까우라와들이 이를 보고 있고 오른편엔 빤다와들이 옷을 벗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다.

 

 

 

 

1988년 드라마. B. R. Chopra 제작. Babubhai Mistri의 영화와 거의 같은 구도이다. 단 까우라와들과 빤다와들의 위치가 바뀌었다.

 

 

 

 

 

1989년 영화. Peter Brook 감독. 드라우빠디 뒤에서 천을 주고 있는 끄르슈나. 뒤편에 샨따누가 놀란 표정으로 있다. 백인 배우들이 역을 맡고 있는데, 이는 연극을 영화로 담았기 때문이다.

 

 

     

 

2013년 드라마. Swastik Pictures 제작. 천상에서 끄르슈나가 천을 내리고 있다. 이 에피소드만으로 한 회를 진행한다. (한 회가 20분 분량이긴 하지만...)

 

 

 

Kisari Mohan Ganguli Translation

Vaisampayana continued,--"When the attire of Draupadi was being thus dragged, the thought of Hari, (And she herself cried aloud, saying), 'O Govinda, O thou who dwellest in Dwaraka, O Krishna, O thou who art fond of cow-herdesses (of Vrindavana). O Kesava, seest thou not that the Kauravas are humiliating me. O Lord, O husband of Lakshmi, O Lord of Vraja (Vrindavana), O destroyer of all afflictions, O Janarddana, rescue me who am sinking in the Kaurava Ocean. O Krishna, O Krishna, O thou great yogin, thou soul of the universe, Thou creator of all things, O Govinda, save me who am distressed,--who am losing my senses in the midst of the Kurus.' Thus did that afflicted lady resplendent still in her beauty, O king covering her face cried aloud, thinking of Krishna, of Hari, of the lord of the three worlds. Hearing the words of Draupadi, Krishna was deeply moved. And leaving his seat, the benevolent one from compassion, arrived there on foot. And while Yajnaseni was crying aloud to Krishna, also called Vishnu and Hari and Nara for protection, the illustrious Dharma, remaining unseen, covered her with excellent clothes of many hues. And, O monarch as the attire of Draupadi was being dragged, after one was taken off, another of the same kind, appeared covering her. And thus did it continue till many clothes were seen. And, O exalted on, owing to the protection of Dharma, hundreds upon hundreds of robes of many hues came off Draupadi's person. And there arose then a deep uproar of many many voices. And the kings present in that assembly beholding that most extraordinary of all sights in the world, began to applaud Draupadi and censure the son of Dhritarashtra. And Bhima then, squeezing his hands, with lips quivering in rage, swore in the midst of all those kings a terrible oath in a loud voice.

 

 

 

§ 일러두기 (1p.24, 2p.461, 3p.5)

2. 이 책은 전부 18장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각 장의 분량이 동일하지 않아 몇몇 장은 2~3권으로 분권된다. 이와 관련해 각 장의 권수 표시와 부제는 편집부에서 따로 작성한 것이다.

 

  

   장, , 이 말들에 대한 용어가 먼저 확립이 되어야 할 것 같다. 마하바라따는 약 10만여 개의 shlokas(시구)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결정판은 정확히 (부록인 하리 왕조를 포함하여) 79,857개의 shlokas로 이루어져 있다. shlokas가 모여 작은 이야기 단위를 이룬 게 adhyaya(소단원), 현재의 챕터 구성과 같은 방식이다. 그리고 이 adhyayas가 모인 게 parva. 마하바라따는 분류하는 방식에 따라 18개 또는 100개의 parvas로 나뉜다.(결정판에서는 부록을 포함해 정확히 19/98개지만, 관용적으로 18/100개라고 한다.) 18개로 분류하는 것은 현재의 분권 형식에 가깝고, 100개 분류는 소제목 혹은 section 형식에 가깝다.

    아쉬운 점은, 새물결의 편집부는 19개의 parvas와 각 adhyaya도 결정판에서 분류한 대로 따랐지만, 98개의 parvas로 분류한 것은 따르지 않고 편집부 임의대로 나누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1p.79에 그에 대한 각주가 달려있다.) 이런 분류 방식은 일장일단이 있는데, 장점은,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마다 소제목으로 구분을 해서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고, 단점은, 원본의 형태가 어떤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최소한 원본이 어떻게 분류되어 있는지 알려주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 그래서 염치없게도 Bibek Debroy가 분류한 것을 옮겨 놓는다. 

 

 

   

 

   그리고 분권 형식에 대한 걱정이 있는데, 영역본의 경우엔 parva에 관계없이 대개 10권 정도의 볼륨으로 나뉜다. 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parva의 볼륨이 들쭉날쭉해서 parva에 맞추어 책을 출간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보통은 Adi parva1권으로 맞추고 그에 맞게 볼륨을 조절하는데, 새물결 판본은 각 parva에 맞추어 책을 출간하고 있다. 그래서 각 권마다 볼륨이 제각각이다. parva에 맞춘다면 Mousala parva는 거의 팸플릿 수준일 텐데... 20권에 맞춰서 출간할 계획이라니까 아마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뱀다리. 위 표에 따르면 결정판에서 부록인 하리 왕조는 6,073개의 shlokas로 구성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1권과 2권 뒤에 있는 부록 1(p.462, p.918)에서 하리왕샤16,000개의 시구는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1p.36 각주 나라야나와 나라

마하바라따에서 나라야나는 주인공 아르주나와, 나라는 전지전능한 끄르슈나와 동일시된다.

→ 『마하바라따에서 나라는 주인공 아르주나와, 나라야나는 전지전능한 끄르슈나와 동일시된다.

 

    나라와 나라야나가 반대로 명시되어 있다.

 

 

The Hindu epic Mahabharata identifies the god Krishna (an avatar of Vishnu) with Narayana and Arjuna - the chief hero of the epic - with Nara. The legend of Nara-Narayana is also told in the scripture Bhagavata Purana. Hindus believe that the pair dwells at Badrinath, where their most important temple stands.

 

 

 

(출처:Wikipedia)

 

 

 

§1-1 (마하바라따1p.37 1째 줄)

로마하르샤의 아들 우그라쉬라와스, 떠돌이 가객이자 옛이야기에 달통한 그가 나이미샤 숲에 들었다. 숲에서는 샤우나까를 수장으로 열두 해째 희생제가 거행되고 있었다. 엄격히 서약을 지키며 함께 모여 수행하던 제석천의 선인(仙人)들에게 가객이자 가객의 아들이기도 한 우그라쉬라와스가 공손하게 예를 갖추었다.

 

 

Bibek Debroy Translation (Critical Edition)

 

The great sages, performers of difficult austerities, were present at the twelve-year sacrifice of Kulapati Shounaka and were comfortably seated in Naimisharanya. Ugrashrava, the son of Lomaharshana and the son of suta, learned in the Puranas, and also known as Souti, once approached them, bowing in humility.

 

Kisari Mohan Ganguli Translation

 

Ugrasrava, the son of Lomaharshana, surnamed Sauti, well-versed in the Puranas, bending with humility, one day approached the great sages of rigid vows, sitting at their ease, who had attended the twelve years' sacrifice of Saunaka, surnamed Kulapati, in the forest of Naimisha.

 

 

    Debroy의 번역이건 Ganguli의 번역이건, 마하바라따에서 우그라쉬라와스의 이름 표기는 처음에 한 번 나오고 이후는 계속 사우띠(Souti/Sauti)’로 표기된다. 그런데 역자(박경숙)우그라쉬라와스로 고정시켰다. 역자는 1권과 2권 뒤에 있는 부록 1(p.467, p.923)에서 가객의 아들(사우띠)이자 본인도 가객인 우그라쉬라와스라고 이야기했는데, Bibek Debroy사우띠를 우그라쉬라와스의 가문(혈통)을 나타내는 말이라 했고(Souti refers to his birth.), Ganguli는 성()이라고 번역했다. 뭐가 맞는 표현일까? 만약에 사우띠가 가객의 아들이라는 뜻이 맞는다면, ‘우그라쉬라와스가 말했다.’는 모두 가객의 아들이 말했다.’로 바꾸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마하바라따의 등장인물들은 하나의 이름으로 고정되지 않고 여러 이름으로 불리기 때문이고, 역자 역시 그 이름들 옆에 친절하게 누가 누구인지를 표기해주었기 때문에 우그라쉬라와스만 특별대우를 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본래는 싼스끄리뜨 원본과 비교해야 하지만, 알지 못하니 차선책으로 다른 번역본을 비교해봤다. 이들 번역본이 원본과 일치한다는 보장은 없으므로 하나 마나 한 일이 될 터이나,(Debroy는 자신의 번역이 이전의 번역들보다 더 낫고 정확하다고 자부하긴 한다.) 비교해 보고픈 욕망을 차마 거스를 수 없었다. 참고로 Bibek Debroy의 영역은 2010년에 Penguin Books에서 출간됐으며, 박경숙의 번역과 같이 결정판(Critical Edition)을 번역했다. Kisari Mohan Ganguli의 영역은 1883(!)에 출간됐고(이후 1896년 완간!) 최초의 영역본이며 저작권 소멸로 인터넷에 공개되어 있다.

 

 

§1-53 (마하바라따1p.267)

    adhyaya번호가 빠져 있다. 본문 위에 ‘53’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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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바라따 1 - 1장 태동: 신과 아수라와 인간과 영물들의 탄생 마하바라따 1
위야사 지음, 박경숙 옮김 / 새물결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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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바라따』를 알게 된 것은 순전히 『서유요원전』 때문이었다.


당시 난 『서유요원전』을 읽으면서 관련된 원전을 관심있게 찾아보고 있었다. 원전인 『서유기』를 읽으면서, 손오공의 모델이 인도의 『라마야나』 에 나오는 원숭이왕 하누만에 영향을 받았다는 설을 알게 되면서 『라마야나』를 찾아보게 되었고, 그와 관련하여 『마하바라따』를 알게 되었다. 이때까지만해도 그냥 '이런 "게" 있구나'하는 정도였었다.


그러다 우연히, 정말로 우연히, 도서관에서 굵은 볼륨의 5권의 『마하바라따』를 발견하고 바로 대출을 해왔더랬다. 1권을 읽은 지 중반부 쯤 되서야, 이 책은 (시간에 쫓기며) 빌려 읽을 게 아니라, 내 책으로 진득하게 읽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고, 책을 덮은 후 도서관에 반납을 했었다. 그리고 그 후 얼마 되지 않아 도서정가제 "덕분에" 『마하바라따』를 반값에 구매할 수 있게 됐다.


좀 뭣한 말이지만, 난 책을 '작정하고' 읽을 때 꽤 꼼꼼히 읽는다고 자부하는 편이다. 『열국지』를 읽으면서 워낙에 큰 골탕을 먹었었기에, 책을 읽으면서 거의 색인을 만들 정도로 인물과 사건을 꼼꼼하게 정리를 하는 버릇이 들었다. 『마하바라따』 역시 그런식으로 읽으면 될 것이라 생각했었다. 난 『열국지』 도 완벽히 완독했는데, 뭐가 무섭겠는가.


그런데, 세상은 넓고 책은 많았다.


『마하바라따』는 뭐랄까... 비유를 하자면, 마르셸 푸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은 열 명의 김연수가 '작정하고' 베베꼬아 내게 그 소설의 줄거리를 번갈아가면서 이야기하는 느낌이랄까. 조금만 방심을 해버리면, 이 이야기의 화자가 누구인지, 도대체 어디에서 이 이야기가 시작된 것인지, 왜 이 이야기가 튀어나왔는지, 그래서 어쩌라는 것인지, 도저히 알 수 없는, 그야말로 이야기의 미로 속에 빠져버리게 되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따라가기 어려운 것은 아무래도 이야기 구조가 복잡하기 때문일 것이다. 『마하바라따』1권의 절반 분량을 거칠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① 떠돌이 가객인 우그라쉬라와스가 희생제를 치루고 있는 나이미샤 숲의 선인들에게 자나메자야왕의 희생제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한다. ② 우그라쉬라와스가 들은 이야기는 자나메자야왕의 희생제를 치룬 제사장 중 한 명인 와이샴빠야나가 자나메자야왕에게 한 이야기이다. ③ 자나메자야왕이 희생제는 뱀 희생제인데 이는 부친이 뱀에게 물려 죽었기 때문이다. ④ 자나메자야왕의 부친인 빠릭쉬뜨왕은 성자 끄르샤에게 모욕을 줬다. 그 사실을 안 성자의 아들 슈릉긴이 빠릭쉬뜨왕에게 뱀에게 물려 죽으라는 저주를 내려, 빠릭쉬뜨왕은 뱀 왕 딱샤까에게 물려 죽는다. ⑤ 이러한 뱀 희생제는 브라만 아쓰띠까의 간청으로 멈추게 되는데, 아스띠까는 고행자 자르뜨까루와 뱀 여인 자라드까루(이름이 같다) 사이에서 난 자식이다. ⑥ 뱀 왕 딱샤까에 대한 내력과 족보가 나오는데, 쁘라자빠띠의 두 딸 위나따와 까드루가 그 기원이다. 이 둘은 브라만 까샤빠와 결혼을 하는 데, 위나따는 천 명의 뱀 아들을 낳고, 까드루는 태양의 마부 아루나와 뱀 사냥군 독수리 가루다를 낳는다. (가루다와 관련해서 신들과 아수라들이 합심해 '소마'를 얻는 이야기가 나온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끝이 없다.)


복잡한 것은, 이 이야기가 이렇게 진행되는 게 아니라, ①→②의 순서로 진행이 된다. 이 순서가 끝이 나서야 우린 그제야 와이샴빠야나와 자나메자야 왕의 대화로 들어갈 수 있다.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라,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한 밑밥인 것이다. 이만큼 풀어놓은 후에야, 비로소 본 이야기를 진행하기 시작한다. 아마도 1권을 다 읽은 독자들이라면, 1권 마지막에 있는 와이샴빠야나의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마하바라따에 대해 이야기하겠"다는 말에 경악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이제껏 열심히 읽었건만, 이제 이야기를 시작한다니, 나는 대체 무엇을 읽었나?


이런 밑밥은 ①의 우그라쉬라와스와 나이미샤 숲의 선인들의 이야기에 나온다. 그 이야기들은 『마하바라따』 본편의 줄거리 요약이자, 하이라이트 부분을 요약/압축한 것이다. 패를 다 보여줘도 속수무책 당하고 만다. 이야기 자체에 압도 당하고 만다. 아니, 압사당한다는 말이 맞을 것 같다.


기나긴 대서사시 중에 이제 겨우 0.5/19를 읽은 것이다. 내가 만지는 부분이 코끼리 다리인지 몸통인지, 아니 코끼리가 맞는지도 모르는 불확실함 속에서 성급하게 평가하고 단정짓기 보다는, 서서히 깨달아 나아가는 게 중요할 것 같다.


지금으로서는 부디 완간만 되기를 쏜꼽아 기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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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4-12-30 22: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흠 저도 마하바라따 살까 말까 망설였던 책이죠.50% 세일이어도 워낙 가격이 만만치 않아서 결국 못샀어요ㅜ.ㅜ 근처 도서관에서 빌려봐야 될것 같아요.

Tomek 2014-12-30 23:24   좋아요 0 | URL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가에 간직할만한 책인 것 같아요. 아쉬운점이 없진 않지만...

고맙습니다. ^^

라로 2014-12-31 03: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르던 책이네요,,,덕분에 좋은 책 알게 되었어요!!

둥이들은 잘 자라고 있죠???^^

Tomek 2014-12-31 07:31   좋아요 0 | URL
2022년 ˝번역완결˝ 예정이라 얼마나 기다려야햘지 모르지만, 그래도 모국어로 이런 위대한 서사시가 번역된다는 사실이 기뻐요.

둥이들은 매일 징징대서 힘이... ㅠ.ㅠ

고맙습니다.

2015-01-01 02: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1-01 16:5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