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회 - 흑송림黑松林에서 대왕이 봉을 탈취하고 백니강白泥崗에서 촌민이 기이한 일을 목격하다


   흑송림은 『서유기(西遊記)』80회에 등장하는 지명으로, 빈파국(貧婆國)의 진해 선림사(鎭海禪林寺)가 있는 곳이다. (참고로 빈파국은 토번국吐蕃國으로 예상되는데, 토번국은 지금의 티베트에 해당하는 곳이다. 티베트인들은 그들의 땅을 Bod라고 불렀는데, 중국말로는 Tǔbō 또는 Tǔfān 으로 발음되며 문자로 적으면 토번吐蕃이 된다.) 모로호시 선생이 「현무문의 장」을 시작하면서 흑송림이라는 지명을 쓴 게 참으로 흥미로운데, 『서유기』에서 삼장법사 일행은 이곳 흑송림에서 지용부인(地湧夫人)을 만나게 된다. 지용부인은, 『서유기』에서도 그렇지만, 『요원전』「현무문의 장」에서 가장 중요하면서 무시무시하면서 섹시한 캐릭터로, 용아녀와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백니강은 아마도 『수호전(水滸傳)』의 황니강(黃泥崗)을 변형한 지명 같다. 『수호전』에서도 황니강이 어디에 있는지 자세한 설명이 없다. 『수호전』에서 황니강은 탁탑천왕(托塔天王) 조개(晁盖)를 비롯, 지다성(智多星) 오용(吳用), 입운룡(入雲龍) 공손승(公孫勝), 적발귀(赤髮鬼) 유당(劉唐), 입지태세(立地太歲) 완소이(阮小二), 단명이랑 (短命二郞) 완소오(阮小五), 활염라(活閻羅) 완소칠(阮小七), 백일서(白日鼠) 백승(白勝) 천강 6명과, 지살 1명의 영웅들이, 북경의 양중서(梁中書)가 장인인 당조태사(當朝太師) 채경(蔡京)에게 보내는 생신강(生辰綱)을 강탈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역사 속의 채경에 대해 (아주) 조금 알아보자면, 북송(北宋)의 8대 황제(라기 보다는 예술가에 가까운) 휘종(徽宗)이 정치에 무지한 것을 이용, 태사의 권력을 집중, 장악했으며 신법(新法)의 이름으로 백성들에게 중과세를 징수, 대토목공사를 통해 왕실의 재정을 탕진 시켰다. 물론 상황을 모르는 휘종은 즐거워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런 정치인이었으니, 착복하는 것은 얼마나 많았겠는가. 『수호전』에서 조개를 비롯한 호걸들이 채경의 생신강을 탈취하는 것은 불법, 일탈의 행위이지만, 한편으로는 백성들의 원망을 대신 풀어주는 행위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살인과 방화로 얼룩진 이 하드고어 소설이 지금까지 꾸준히 읽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백성들의 원망과 원통함을 이야기하는 것은 『요원전』하고도 상충된다. 모로호시 선생이 괜히 『수호전』을 인용하는 게 아니다.



p.339

“아무튼 한동왕 유흑달 어르신도 요양饒陽에서 붙잡혀 명주로 압송된 모양이잖나...”


   『자치통감(資治通鑑)』권190을 보면, 623년 “봄, 정월 기묘일(3일)에 유흑달이 임명한 요주(饒主, 허베이성河北省 헝수이시衡水市 라오양현饶阳县) 자사 제갈덕위(諸葛德威)가 유흑달을 잡아가지고 성을 들어서 항복하였다. (...) 제갈덕위는 군사를 챙겨가지고 그를 붙잡아서 호송하여 태자에게 갔고 (...) 유흑달은 동생 유십선(劉十善)과 명주(洺州, 유흑달의 도읍지)에서 목이 베어 죽었다”고 한다. 고로, 지금은 623년임이 분명한데,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이번 챕터의 제목이기도 한 ‘현무문의 변’은 626년에 일어나는데, 곧 현무문의 변에 관한 이야기가 진행될 것이기 때문이다.



p.341

“역시 그때 죽여 버리는 편이 나았을 것을...”


   홍해아가 용아녀의 배다른 언니들, 호마・녹저 자매를 죽임으로써 세 자매는 모두 죽게 되었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이들 호마・녹저는 『서유기』 44회~46회에 등장하는 호력대선(虎力大仙)과 녹력대선(鹿力大仙)에서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호력・녹력・양력대선(羊力大仙)은 삼장법사 일행과 법력 대결을 벌이다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는데, 호력대선은 머리를 잘랐다 붙이는 작두법(斫頭法)으로 대결을 한답시고, 머리를 자른 후 붙이려다가 손오공의 술법으로 사냥개가 호력대선의 머리를 낚아 채 먹어버려, 목을 잃은 호력대선의 몸은 피를 뿜고 죽는데, 자세히 보니 그 정체는 머리통이 없어진 얼룩 호랑이였다. 녹력대선은 배를 갈러 오장 육부를 꺼내고 다시 집어넣는 부복법(剖腹法)으로 대결, 칼로 자신의 배를 가른 후 오장 육부를 꺼내는 순간, 또다시 손오공의 술법으로 굶주린 매 한 마리가 녹력대선의 창자를 낚아채 가서, 뱃속에 핏물만 고인 채로 죽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뿔 달린 사슴 한 마리였다. 양력대선은 기름 솥에 들어가는 것으로 대결을 벌였는데, 역시 손오공의 술법으로 실패, 기름 솥에서 녹아 죽고 만다.



p.358

“유흑달이도 붙잡혔으니 이제 천하도 태평해지겠지...”

“그러게 말이야. 그 치가 더 일찍 항복했으면 싸움도 진즉에 끝났을 것을...”

“어차피 이기지도 못할 거... 우리 같은 백성들한테는 오히려 폐란 말이지.”


   어찌 보면 냉정하고 무관심한 말로 들릴 수 있지만, 그 오랜 기간 동안 여러 나라로 갈려 끊임없는 전쟁을 치러왔던 민중들에게는 하나로 통일이 되어 수많은 전란이 없어지는 걸 가장 바랄 것이다. 그러다 진시황이나 수양제와 같은 폭군들이 등장하거나 무능한 황제들이 실정을 펼치면, 통일된 왕조는 다시 갈라져 전란에 휩싸이고... 아마도 중국의 역사는 이와 같은 역사의 반복일 것이다. 그런 역사 속에서 대를 거듭해 체득한 것이 아마도 중국인들 특유의 낙천주의와 순응주의가 아닐는지.



p.369

“두건덕은 어떤 사람이었지?”

“어르신께서는 우리 농민들을 위한 국가를 세우고자 싸우셨어. 사오년 전에는 하북 사람들이 어르신과 함께 단결하여 하夏라는 나라도 세웠다고. 하지만 이세민에게 패해서... 거기다 십 년 동안 계속된 난리에 다들 질려서 이제 그만 평화가 오기만을 바라게 된 거야...”


   두건덕(竇建德)이 농민들을 위한 국가를 세우려고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정치적인 선택이었겠지만, 그는 철저히 수의 신하라고 했다), 수 말기에 궐기한 여러 군웅들 중 가장 ‘협(俠)’의 기치를 드높인 것만은 틀림없다.

   『자치통감(資治通鑑)』권187의 기록을 보면, “두건덕은 매번 싸워서 승리하고 성곽에서 이길 때마다 얻은 재물은 모두 장사(將士)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자신은 갖는 것이 없었다”는 기록과 “두건덕이 명주(洺州)에서 농업과 잠업을 권장하니 그 경계 안에서는 도적이 없었고, 상인과 여행객들이 들에서 잠을 잤다”는 기록으로 보아, 두건덕의 다스림을 받는 명주의 백성들은 양제 때보다 훨씬 윤택하고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두건덕은 “나(두건덕)는 수의 백성이고 수는 우리의 군주이다. 지금 우문화급이 시역을 하였으므로 바로 나의 원수니, 내가 토벌하지 아니할 수 없”다고 말하며 양제를 죽인 우문화급을 쳤고, “성으로 들어가서 우문화급을 산 채로 잡아서 먼저 수의 소(簫)황후를 알현하였는데, 말하면서 모두 칭신(稱臣)하였으며 소복을 입고 양제에게 곡(哭)하면서 슬픔을 극진히 하였”다고 한다. 그는 하(夏)라는 나라를 세우고 스스로 왕이 되었지만(황제를 칭한 것은 아니었다), 스러져가는 국가에 대해 끝까지 충성을 바친 유일한 군웅이기도 했다.



p.372

우르 우르 → 우르르 / 우르르 우르르 (출처 불명의 의태어 수정)



p.375

“뭐야? 관음보살님의 석장錫杖이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관음보살 → 관세음보살


   중국에서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이 관음보살(觀音菩薩)로 불리게 된 것은 당태종 이세민이 즉위하고 난 후, 즉 이세민(李世民)의 世를 피휘(避諱)하기 위해서다. 피휘란 군주의 이름을 피한다는 뜻으로 조상이나 군주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는 유교문화권의 옛 관습에 따라, 때에 따라서는 글자 뿐 아니라 음이 비슷한 글자를 모두 피하기도 했다. 『요원전』의 시대적 상황에 볼 때, 아직 이세민이 즉위하지 않았으므로, 아직은 관세음보살로 불려야 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 ‘관세음보살’이란 말이 오역이라는 것인데, 이것을 바로 잡은 것이 바로 현장 스님이라는 점이다.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권3을 보면 북인도 오장나국(烏仗那國, Uddiyana)의 한 사원에서 아박로지저습벌라(阿縛盧枳低濕伐羅)보살이라 불리는 불상을 한 기 보는데, 바로 그 불상이 우리가 아는 관세음보살이다. 현장이 기록한 오류 정정은 다음과 같다.


唐言觀自在。合字連聲,梵語如上;分文散音,即阿縛盧枳多譯曰觀,伊濕伐羅譯曰自在。舊譯為光世音,或云觀世音,或觀世自在,皆訛謬也。

   당나라 말로는 관자재(觀自在)라고 하는데 글자를 합하여 연달아 소리를 내어 발음하면 범어(梵語)는 위와 같아진다. 단어를 나누어 하나씩 발음을 내어볼 때 아박로지다(阿縛盧枳多)는 번역하면 관(觀)이고, 이습벌라(伊濕伐羅)는 번역하면 자재(自在)이다. 구역에서는 광세음(光世音)이라고 하거나 또는 관세음(觀世音)이라고 하거나 또는 관세자재(觀世自在)라고 하는데 모두 잘못된 것이다.


   현장이 주석을 달아 놓은 것이 너무 어려워, 그 주석에 주석을 단 첸원중 교수의 설명을 빌리면, 아발로지저습벌라는 산스크리트어 ‘Avalokiteśvara, 아발로키데스바라’의 음역인데, 이 낱말은 avalokita(‘본다’는 뜻의 아발로키타)와 īśvara(‘자유자재’란 뜻의 이스바라) 두 음절의 합성어이다. 산스크리트 문법에 따르면, 앞 음절의 끝 모음 ‘a’와 뒤 음절의 첫 모음 ‘ī’는 반드시 붙여서 ‘e’로 읽어야 하는데, 이 명칭을 처음 번역한 사람이 이 두 개의 모음을 잘못 읽어 Avalokiteśvara를 avalokitasvara로 보았고, 여기서 ‘svara’를 ‘목소리’ 즉 음성의 뜻으로 풀이했다. 이래서 ‘보다’와 ‘음성’을 하나로 붙여 ‘관세음’이라 번역한 것이다.

   이렇게 오류를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습관의 힘은 무서운 것인지, 오랜 시간 관세음보살로 받아들인 불교도들의 힘인지 아니면 고집인지, 관자재보살은 여전히 관세음보살로 받아들이고 있고, 당태종 때 피휘로 영향 받아 관음보살로도 굳어지고, 심지어 관세음보살과 관자재보살의 차이에 대한 해석도 나와 있는 형편이라, 현장 스님은 이걸 어떻게 생각할지 자못 궁금하기도 하다.


   석장(錫杖, Khakkhara)은 비구18물(比丘十八物) 가운데 하나로 승려들이 길을 나설 때 짚는 지팡이로 유성장(有聲杖), 성장(聲杖), 명장(鳴杖) 등으로 불린다. 승려들이 밖에 나가서 길에서는 지네, 독사 등 해충을 막고, 소리를 들은 미물들이 피하게 함으로서 살생을 피하며, 걸식을 할 때는 이것을 흔들어 소리를 내서 비구가 온 것을 알리며, 노승이 몸을 의지하는 것으로도 사용하는 등 승려들의 생활 용구로서의 역할과 지장보살의 상징물, 천수관음보살의 지물로 표현되기도 한다. 『서유기』에서 삼장법사가 들고 다니는 것이 바로 이것이며, 『수호전』에서 화화상 노지심이 들고 다니는 선장(禅杖)이 바로 석장에서 파생된 무기이다.



천수천안관세음보살


삼장법사


화화상 노지심


   참고로 비구18물이란 출가생활의 기본인 수행자의 일상 필수품으로, ①양치할 때 쓰는 가는 나뭇가지(칫솔), ②손 씻을 때 쓰는 비누, ③세 가지 가사, ④물병, ⑤발우, ⑥방석, ⑦석장, ⑧향로, ⑨물거름 천, ⑩수건, ⑪머리 깎는 칼, ⑫불붙이는 부싯돌, ⑬코털 제거용 칼, ⑭간이 의자나 침상, ⑮경전, ⑯율장, ⑰불상, ⑱보살상으로 구성된다.



p.378

손오공과의 대결을 준비하는 금각대왕의 모습


   손오공과 전투를 벌이려는 금각대왕의 모습은 『서유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頭上盔纓光燄燄,腰間帶束彩霞鮮。

身穿鎧甲龍鱗砌,上罩紅袍烈火然。

圓眼睜開光掣電,鋼鬚飄起亂飛煙。

七星寶劍輕提手,芭蕉扇子半遮肩。

行似流雲離海岳,聲如霹靂震山川。

威風凜凜欺天將,怒帥群妖出洞前。

   머리에 쓴 투구 끈이 불꽃처럼 빛나고, 허리를 질끈 동인 디에 채색 노을빛이 선명하다.

   몸에 걸친 미늘 갑옷에는 용의 비늘이 기왓장처럼 포개지고, 그 위에 덧입은 붉은 전포는 사납게 타오르는 불길 같다.

   고리눈을 부릅뜨니 그 광채가 번갯불처럼 빛나고, 강철 같은 구레나룻이 흩날리는 연기 속에 어지러이 나부낀다.

   칠성보검 칼자루를 가볍게 거머쥐고, 파초선 부챗살이 어깻죽지를 전발쯤 가리었다.

   몸을 쓰는 품이 흐르는 구름장 해악(海岳)을 떠나가듯 하고, 목청은 뇌성벽력이 되어 산천을 뒤흔들어놓는다.

   하늘의 장수를 얕잡아보는 늠름한 그 위풍, 분노에 찬 기세로 요괴의 무리를 휘몰아 동굴 앞에 나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제19회 - 제천현녀는 현문玄門을 건너고 구천九天의 비문秘文은 진토塵土로 돌아가다


   현문은 불교를 달리 이르는 말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도교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문맥에 맞춰 해석을 해보면, 불교와 도교 둘 다 맞는 것 같다.

   먼저, 현문을 불교라 상정하자. 불교를 현문이라 하는 까닭은 불교의 교리가 깊고 묘하므로[玄], 절대의 이상경(理想境)인 열반에 들어가는 길[門]이라 이르기 때문이라 한다. 즉, ‘제천현녀는 현문을 건너고’라는 뜻은 ‘제천현녀는 열반에 오르고 → 죽고’의 뜻을 지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무지기에게 잡힌 지살의 사슬, 그리고 여자를 포기해야했던 자신의 사슬을 ‘죽음으로’ 끊어내는 것을 이야기한다.

   다음, 현문을 도교라 상정한다. 제천현녀가 현문을 건넌다는 것은 제천현녀가 도교를 떠난다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무지기의 사슬에서 벗어나고, 중국의 전통 종교인 도교에서 벗어난다는 것으로 보아, 용아녀가 죽기 전에 바랐던 ‘천축으로 가는’ 꿈을 (손오공이 대신해) 이룬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구천은 하늘을 아홉 방위 구역으로 나눈 것으로, 하늘의 중앙을 균천(鈞天), 동방을 창천(蒼天), 동북방을 변천(變天), 서방을 호천(顥天), 서남방을 주천(朱天), 남방을 염천(炎天), 동남방을 양천(陽天), 북방을 현천(玄天), 서북방을 유천(幽天)으로 구분지은 것이다. 도교에서는 ‘일기(一炁)가 삼청(三淸)으로 나뉘었다’는 학설에 따라, 삼청천(三淸天), 구중천(九重天), 이십칠천(二十七天)을 두었고, 구중천과 이십칠천을 합쳐 삼십육천(三十六天)을 삼청경(三淸境)에 나누어 각기 12천씩 관할한다고 한다. 간단하게 얘기해, ‘하늘’을 뜻한다.

   참고로, 고대 인도의 우주론을 살펴보면, 세계 최하위인 허공(虛空) 위에 풍륜(風輪)이 있고, 그 위에 수륜(水輪), 그 위에는 금륜(金輪)이 있다고 한다. 금성지륜(金性地輪) 혹은 단순히 지륜(地輪)이라고도 한다. 산이나 바다나 섬은 이 금륜상에 존재한다고 한다. 금륜의 최하단을 금륜제(金輪際)라 한다.



p.294

“어... 어찌 된 영문이지? 산채가 당군에게...?!”

“대... 대왕마마... 이미 틀렸습니다...! 다... 달아나십시오!”


   금각이 당군과 대적한 사이, 손오공이 은각을 비롯한 산채의 패거리를 모조리 학살했으며, 어부지리로 뒤를 급습한 당군이 산채를 차지한 상황이 발생했다. 금각은 『서유기』에서 동생 은각의 죽음은 물론, 어머니, 외삼촌을 비롯, 동굴의 수많은 요괴 수하들까지 모조리 죽는 것을 목격하는, 흔치 않은, 어찌 보면 참 기구한 요괴이기도 하다. (사실 요괴는 아니지만...)

   금각이 어리둥절해하는 장면은 『서유기』의 이 장면을 떠오르게 한다. 손오공이 ‘신외신’ 술법으로 자신의 분신들을 이용, 금각의 부하들과 싸움을 벌이자, 금각은, 파초선을 써서 동굴을 불태워버린다. 불길이 워낙 드세, 몸을 잠시 피한 사이, 손오공은 금각의 부하들을 모조리 때려죽이고, 스승과 사제들을 구해 동굴을 도망친다. 잠시 후 금각이 소굴로 돌아왔는데, “사면팔방 어디를 둘러보아도 눈에 뜨이는 것이라곤 모조리 참혹하게 맞아죽은 부하 요괴들의 시체뿐이다. 그는 너무나 기가 막혀 하늘을 우러러 가슴을 치면서 대성통곡을 터뜨렸다.(但見屍橫滿地,就是他手下的群精。慌得仰天長嘆,止不住放聲大哭道)”



p.297

“아우야...! 설령 온 천하가 우리에게 등을 돌린다고 해도 우리 형제의 결속만은 끊어지지 않을 줄 알았거늘...! 그런 애송이 때문에 네 목숨이 다할 줄이야...! 내 이 원수는 기필코 갚아주마!”


   금각이 동생 은각의 죽음을 알고 절통해하는 부분 역시, 『서유기』에서 절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那老魔聞得此言,諕得魂飛魄散,骨軟觔麻,撲的跌倒在地,放聲大哭道:「賢弟呀!我和你私離上界,轉託塵凡,指望同享榮華,永為山洞之主。怎知為這和尚,傷了你的性命,斷吾手足之情。」滿洞群妖,一齊痛哭。

   늙은 마귀가 이 말을 듣더니 혼비백산하도록 놀라 자빠졌다. 뼈마디는 사개가 물러나고 힘줄은 녹신녹신하게 풀어졌으니 제가 무슨 수로 서 있으랴. 금각대왕은 아예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채 목놓아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아우님아! 아우님아......! 내가 그대와 하늘나라를 몰래 떠나 속세에 몸을 던지고 부귀영화를 함께 누리며 영원히 평정산 연화동의 주인이 될 것을 바랐더니, 저따위 중 녀석 하나 때문에 그대 목숨을 다치고 형제간의 정분마저 끊길 줄이야 어찌 알았겠는가!”

   대왕이 통곡을 하니, 동굴 안의 부하 요괴 패거리들도 덩달아서 일제히 울음보를 터뜨렸다.



p.310

“저들에게 이 비문을 보일 수야 없지... 백운동에는 한 발짝도 들이지 않겠어...”


   용아녀는 역사에 기록되고, 앞으로 기록될 천강・지살의 인명부를 지키는 것을 결심했다. 이것은 두 가지 의도가 섞여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데, 하나는 (당연히) 손오공을 보호하기 위해서이고, 다른 하나는, 인명이 유출됨으로 해서, 이제 좀 진정 되가는 중국 대륙에 또 다른 피바람이 불 수 있는 것을 막으려는 것이다. 마치 『칼의 노래』에서, “길삼봉이 지리산 피아골에서 역모의 군사를 기르고 있다”는 소문이 실체를 얻자, 전국에 길삼봉이 창궐, “길삼봉이 누구냐”라는 질문이 “누가 길삼봉이냐”로 바뀌면서 그 존재하지 않는 길삼봉들을 죽이려 온 산천에 피를 뿌렸듯이.

   용아녀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도참서(圖讖書)’ 때문이다. 이는 일종의 예언서인데, 『자치통감』권183에도 기록이 되어있다. 수양제 대업 12년 (616년)에 “근래 사람들 사이에 불리는 노래로 ‘도리장(桃李章)’이 있는데, ‘도리자(桃李子)여, 황후가 양주(揚州)를 두르고 화원 안에서 굽혀 구르네. 여러 말을 하지 말아요, 누가 허락하였는지.’라고 하였소. 도리자란 도망한[桃] 사람 이씨(李氏)의 아들을 말하며, 황(皇)과 후(后)는 모두 주군이고, ‘화원 안에서 굽혀 구른다’는 것은 천자가 양주(揚州)에 있고 돌아올 날이 없어서 장차 도랑에 구르게 된다는 것을 말하며, ‘여러 말을 말아요, 누가 허락하였는지’란 비밀이란 말이오.”라고 이현영(李玄英)이 이밀에게 말을 했다. 이 말을 들은 이밀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는데, 즉, 수나라가 멸하고, 이씨가 왕이 될 것이라는 예언으로 자신이 왕이 될 거라 생각했었던 것 같다. 물론 그 자리는 이밀이 아니라 이연이 차지하게 되지만. 어쨌든, 이런 확인되지 않은 도참서로, 수많은 효웅들이 수양제의 실정을 기회로 일어서게 되고, 전국이 초토화가 된 상황에서, 이런 불길한 인명이 유출된다면, 앞으로, 이 인명들을 핑계로 수많은 백성들의 피가 뿌려지게 될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모로호시 다이지로는 『제괴지이』「귀시(鬼市)」, 「연견귀(燕見鬼)」편에서 이런 도참서와 비슷한 예언서 ‘추배도(推背圖)’를 다루었는데, 아쉽게도 ‘방랍(方臘)의 난’이 일어나기 직전에 미완으로 이야기를 맺었었다. 이는 2011년에 일본에서 완전판 형태로 재편집하는 과정에 약 50p 정도의 분량으로 남은 이야기를 맺어 ‘완결’을 맺었다는데, 평가는 그리 썩 좋은 것 같지는 않은 것 같다. 아마도, 새로운 50p를 위해 본 걸 또 사야한다는 억울함이 그런 평가를 내리는데 한몫 하는 것 같다.


      



p.316

“지금 내게는 제천현녀의 힘이 없어... 그래도 백운동의 비밀을 지키려면... 대성이시여... 나에게 마지막...”


   무지기는 수많은 인간들의 피를 원한다. 그렇기 때문에 무지기는 이 인명부가 나가는 것을 내심 바라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왜냐하면, 이 인명부가 세인들에게 전해지면, 국가는 체제를 지키기 위해, 그 명부에 올라있는 사람들을 찾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죽일 것이며, 그 이름들을 핑계 삼아 난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것이다. 이 명부가 세상에 알려진다면, ‘도참서’와 같이 단 한 번밖에 사용하지 못할 것이다. 명부에 실린 대로, 천강이든 지살이든 시간을 두고 난을 일으켜 많은 사람들이 죽는 것을 바라는 것이 바로 무지기가 원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지기는 용아녀의 소원을 들어준다.



p.320

무지기의 눈에 박힌 은고봉


   용아녀의 은고봉이 제천대성의 눈에 박히자 백운동이 무너진다. 이것이 제천현녀의 마지막,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바랐던 소원을 무지기가 들어준 것인지, 아니면 신진철의 힘인지는 모르겠으나, 흥미로운 것은 제천대성의 눈에 은고봉이 박히니 마치 마법이 깨지듯, 백운동이 무너진다는 것이다. 화과산에서 다른 공격에는 끄떡 않던 제천대성이 눈을 향해 날아오는 화살에는 민감한 반응을 보인 점, 황허에서 보았던 눈을 잃은 무지기가 하급 요괴 같이 보인다는 말, 그리고 『오뒷세이아』에서 눈을 잃은 폴리페무스 역시 눈을 잃은 후 무언가를 감싸고 있던 오라가 사라지는 평범한 요물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하나 더 추가하자면, 모로호시 선생은 『머드멘』에서 아엔의 눈에 화살이 박히자, 주술이 풀리는 것을 그린 바 있다.




p.322

“오공... 천축에 가보고 싶었는데...”


   자신이 선택한 운명을 위해 오행산을 벗어나지 못했던 용아녀가 죽기 전에 이야기한 것은 인도에 가보고 싶다는 말이었다. 오공은 자신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랑한 여인의 죽음을 받아들이며, 용아녀의 말은 오공의 가슴속에 남는다. ‘천축’이라는 말은 앞으로 끊임없이 오공의 주위를 맴돌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제18회 - 취의청聚議廳에서 오공은 불씨에 불을 붙이고 평정산平頂山에서 장군은 주검을 목격하다


p.276

파산호의 죽음


   앞서 정세귀와 영리충이 손오공에게 죽임을 당한 데 이어서, 파산호가 죽음을 맞는다. 『서유기』에서 파산호와 의해룡은 은각의 심부름으로 압룡산 압룡동으로 가는 길에 손오공에게 여의봉으로 뒤통수를 맞아 즉사한다. 정세귀와 영리충은 두 보배를 손오공에게 빼앗겼지만, 은각의 용서로 목숨을 구하기는 하지만, 후에 은각이 손오공에게 죽고, 금각과 크게 싸우는 중에 손오공이 신외신(身外身) 술법을 사용, 손오공의 분신들이 평정산 연화동에 있는 요괴들을 깡끄리 도륙할 때 죽는다.

   『요원전』에서 손오공의 학살에서 유일하게 살아남는 도적이 바로 의해룡인데, 그의 죽음은 금각을 위해 조금 미루어졌을 뿐, 『서유기』의 운명을 벗어나지는 못한다.



p.271~272

은각의 죽음


   『요원전』에서 은각은 손오공에게 단번에 금고봉을 맞아 머리가 깨져 뇌수를 흘려 죽는 것으로 묘사되었지만, 『서유기』에서는 서로 일대 격전을 치룬다. 손오공과 은각의 싸움을 묘사한 시가 있다.


棋逢對手,將遇良才。棋逢對手難藏興,將遇良才可用功。那兩員神將相交,好便似南山虎鬥,北海龍爭。龍爭處,鱗甲生輝;虎鬥時,爪牙亂落。爪牙亂落撒銀鉤,鱗甲生輝支鐵葉。這一個翻翻復復,有千般解數;那一個來來往往,無半點放閑。金箍棒,離頂門只隔三分;七星劍,向心窩惟爭一蹍。那個威風逼得斗牛寒,這個怒氣勝如雷電險。

   바둑판에 호적수를 만나고, 장기판에 솜씨 좋은 인재를 만난 격이라.

   바둑판에 호적수를 만났으니 신바람을 감추기 어렵고, 장기판에 좋은 인재를 만났으니 머리를 짜내고 힘을 써야 할 판이다.

   두 사람의 신장이 맞닥뜨리니, 마치 남산의 호랑이가 싸우고 북해의 용이 다투는 듯하네.

   용이 다투는 곳에 비늘 갑옷이 번쩍번쩍 광채가 나고, 호랑이가 싸우는 곳에 발톱과 송곳니가 어지러이 떨어진다.

   발톱과 송곳니가 흩어져 떨어지니 은 갈고리를 흩뿌린 듯하고, 비늘 갑옷이 번쩍번쩍 광채를 쏟아내니 철엽(鐵葉)의 장벽을 버텨 놓은 듯하다.

   이편에서 엎치락뒤치락 천만 가지 재주를 다 부리면, 저편은 오락가락 일진일퇴, 조금도 빈틈을 열어주지 않는다.

   금고봉이 상대의 이마빼기에서 떨어지기 고작 서 푼이라면, 손행자의 심장을 노린 칠성검은 겨우 손가락 한 마디를 다툴 뿐이다.

   저편의 위풍은 두우궁(斗牛宮)의 성좌를 핍박하여 간담이 써늘하게 만들고, 이편의 노기는 뇌성벽력에 섬전보다 더욱 험악하다.


   이렇게 30여 합을 싸우고도 승부가 나지 않자 손오공은 금각・은각의 노모에게서 빼앗은 황금승을 써 은각을 사로잡으려다가 되려 은각에게 잡힌다. 동굴로 잡혀 들어온 손오공, 술법을 부려 슬쩍 빠져나와 문밖으로 나와서 “손오공의 아우되는 자행손(者行孫)이 왔다”고 소리를 질러 은각과 또 사투를 벌인다. 이때 은각이 ‘자금 홍호로’를 가지고 자행손의 이름을 부르는데, 손오공이 대답하니 ‘쉬익’ 하는 소리와 함께 손오공의 몸이 빨려 들어갔다. 이 호리병에 갇히면 두세 시간 안에 몸뚱이가 녹아 고름이 되어 버린다. 손오공은 기지를 발휘, 자신의 몸이 다 녹은 것처럼 은각을 속여 호리병에서 빠져 나온 뒤 은각의 진짜 호리병을 자신의 털로 만든 가짜 호리병과 바꿔치기한 후 다시 동굴로 나와서 “여기 행자손(行者孫)이 왔다”고 소리를 질러 은각을 불러낸다. 은각이 호리병을 꺼내자 손오공도 호리병을 꺼내고, 서로 이름을 부르기로 한다. 먼저 은각이 “행자손아!”하고 부르자 손오공이 대답을 했지만, 호리병은 반응이 없다. 손오공이 “은각대왕!”하고 부르자, 내키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응답을 한 은각은 바로 호리병에 빨려들어가 고름이 되었다.



p.286~287

평정산 산채의 대학살


   은각에 대한 분노와 금고봉의 위력으로 폭주한 손오공은 결국 평정산 산채의 모든 이들을 학살했다. 이런 분노는 장철(張徹, Chang Cheh) 감독의 〈금연자(金燕子)〉에서도 볼 수 있는데, 은붕(銀鵬)이 금룡회 용문 분타에서 대학살을 벌이는 장면이다. 금룡회는 갖은 악행을 저지르는 사파인데, 은붕이 습격하는 순간까지도 반역자들을 잔인하게 처벌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은붕이 정의의 사도인가, 그것 또한 아니다. 은붕은 은둔하고 있는 사매 금연자(金燕子)를 만나기 위해, 온갖 죽일 놈들만 찾아 죽이고 그녀의 표식을 남기고 있다. (굳이 비교하자면 덱스터Dexter 정도?) 살려달라고 애원해도 눈 하나 깜빡 않고 모조리 죽여 버린다. 아마도 왕우(王羽, Wang Yu)의 배우로서의 매력이 가장 잘 산 영화가 아니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제17회 - 용아녀는 방황 끝에 마魔를 잊고 손대성孫大聖은 신진철神珍鐵을 얻다


p.222

“그래, 제천대성... 대성이라면 원수를... 황하에서 그랬던 것처럼... 원수를...”


   지금 손오공에게 말을 하는 자는 제6회에서 황하의 수신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이야기한 자이다. 그는 원수를 갚았지만, 다시 오공에게 나타나 자신의 원수를, 억울함을 갚아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제천대성의 힘을 끌어낸 손오공은 수많은 환상을 보게 되는데, 그 중 하나가, 자신이 목격했던,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의 모습이다. 이것이 억울하게 죽은 자들의 실제 원념인지, 아니면 손오공의 무의식에서 발현되는 환상인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이러한 원념들이 무지기가 존재하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요원전』에 등장하는, 원숭이 몸에 사람 얼굴인 괴수/짐승들은 『산해경』에 그 원형이 많이 기록되어 있다. 그 중 몇 개만 적어 본다.


① 부혜(鳧徯)는『산해경・서산경(西山經)』에 기록되어 있으며, 사람의 머리를 한 수탉의 모습을 하고 있고, 검산(鈐山)의 서남쪽에 잇는 녹태산(鹿台山)에 산다고 한다. 부혜는 이 새의 울음소리를 나타내며 이 새가 나타나는 곳에는 항상 전쟁이 일어난다고 한다.



② 영소(英招)는 『산해경・서산경』에 기록되어 있으며, 그 모습은 말의 몸에 사람의 얼굴을 하고 호랑이 무늬에 새의 날개가 있으며 온 천하를 돌아다닌다고 한다.



③ 육오(陸吾)는 『산해경・서산경』에 기록되어 있으며, 그 모습은 호랑이의 몸에 아홉 개의 꼬리, 사람의 얼굴에 호랑이 발톱을 하고 있다고 한다.



④ 알유(猰貐)는 『산해경・북산경(北山經)』에 기록되어 있으며, 소와 비슷하지만, 붉은 몸에 사람의 얼굴에 말의 다리를 하고 있다고 한다.



⑤ 합유(合窳)는 『산해경・동산경(東山經)』에 기록되어 있으며, 돼지와 비슷하지만 사람 얼굴에 꼬리가 붉고 몸에는 누런 털이 나 있다고 한다. 마치 애기 울음소리 같은 소리를 낸다. 이 짐승은 아주 흉악해서 사람을 해치며 잡아먹기도 한다. 이것이 나타나면 홍수가 일어난다고 한다.



⑥ 능어(陵魚)는 『산해경・해내북경(海內北經)』에 기록되어 있으며, 사람의 얼굴에 손과 발이 있고 물고기의 몸체로 바다 가운데에 있다고 한다.


   모로호시 선생은 『제괴지이』「견토(犬土)」편에서 돼지의 몸에 사람의 얼굴을 한 괴물과 사람의 몸에 돼지의 얼굴을 한 괴물이 등장했었는데, 익숙한 것들의 이상한 조합으로 기이한 공포를 이끌어냈었다.



p.240

“하지만 오공, 너는 달라, 너는 대성 본인에게 직접 칭호를 물려받았잖아... 너는 대성과 맞먹는 힘을... 아니, 대성 그 자체가 될 수 있을지도 몰라...”

“난 그런 건 되지 않을 거야...”

“그래... 이대로 단 둘이 산 속에 숨어 사는 게 나을 지도... 모든 걸 버리고...”


   자신의 여성을 억제하면서 살아온 용아녀는 기어이 무너지고 말았다. 이 장면에서, 여성에 대한 한계, 혹은 여성에 대한 차별이라 충분히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조금 더 생각해봐야할 것 같다.

   이 이야기는 명백히 『아녀영웅전(兒女英雄傳)』을 끌어오고 있다. 『아녀영웅전』은 청(淸)나라 때 문강(文康)이 창작한 소설로 아녀자의 정과 영웅의 기개를 겸비한 하옥봉(何玉鳳)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하옥봉은 영웅의 모습과 아녀의 모습을 지니고 있는데, 전반부에는 무협으로서의 영웅적인 모습을 그리고 있고, 후반부에는 남자 주인공이자 남편인 안기(安驥)의 현모양처로서의 모습을 나타낸다. 좋게 말하면, 영웅과 여성의 모습을 녹아낸 이상적인 여성 영웅이요, 나쁘게 말하면, 얼마나 잘났든 남편에게 순종하는 여성의 모습이다. 바로 이 부분이 『아녀영웅전』의 핵심이고, 작가가 바라던 이상인 것이다.

   모로호시 다이지로가 여성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요원전』에서 용아녀의 역할은 딱 여기까지였다. 손오공을 백운동으로 데려와 그의 천명을 알려주고, 제천대성의 힘을 이끌어냄과 동시에, 그 속박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길을 알려준 역할. 이런 기능적인 역할을 위해서 일부러 선택한 캐릭터가 『아녀영웅전』의 하옥봉이었고, 그녀는 자신의 역할을 100% 수행했다. 그것도 너무나 가슴 저리게...

   용아녀의 역할에 비판인 독자들이라면, 후에 등장할 지용부인(地湧夫人), 손이랑(巽二郞), 나찰녀를 참고해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이들 모두 각각 다른 의미로 여성성의 한계에 부딪힌 캐릭터들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아녀영웅전』은 2009년 지만지 출판사에서 출간됐었는데, 아쉽게도 완역이 아니라 발췌번역이다. 40회본 소설 중에서 고작 3회만 수록이 되어 있어서, 감히 이 책을 읽은 것이라 말을 할 수 있을까 싶다.『아녀영웅전』을 제대로 읽어보지 않은 터라, 어쩌면 내가 오독을 한 것일 수도 있겠다. 그저 빠른 시일 내에 제대로 된 완역본을 읽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모로호시 다이지로는 「무면목(無面目)」에서 무고지화(誣蠱之禍)를 일으켜 한나라를 공포에 떨게 한 난대(혼돈混沌)가 애첩 여화와 산 속에서 숨어 사는 것을 이야기했다. 물론 그 결과는 비참했다.



p.246

“용아녀, 섣부른 짓을... 계곡의 영기가 잠깐 사라졌다고 해서 지금껏 쌓은 수행의 성과를 죄다 날릴 셈이냐...


죄다 날릴 셈이냐... → 죄다 날린 것이냐...


   p.051에서 진원대선이 말하길 “만일 네가 단 한 번이라도 사내와 몸을 섞게 된다면 수행 끝에 얻은 일신의 능력을 모조리 잃고 말 것”이라는 말로 보아, 남자와 동침을 하면 제천현녀의 힘을 다시는 사용 못하는 게 맞다. 통비공은 용아녀가 오공과 동침한 상황을 먼저 확인했기 때문에, 혹시나 하는 일말의 기대감이 섞인 말 보다는, 포기하는 한탄의 말을 해야 하는 게 맞다.



p.257

“대성, 네가 바라던 대로 봉을 뽑았다! 만족하느냐? 좋아, 어디 그렇게 천년만년 바위에 들러붙어 실실 웃어봐라! 이 봉을... 너 따위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 마음대로 실컷 사용해줄 테니까!”


   그리고 방금 전까지 제천대성과 지살성의 운명에 대해 회의하던 오공이 드디어 금고봉을 뽑았다. 아녀의 정을 지니던 자가 영웅의 기상을 뽐내려는 순간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제16회 - 용녀는 고리를 던져 소년을 구하고 오공은 도적을 죽여 수행승을 구하다


p.169

“내 방천극方天戟을 가져오너라!!”


   방천극이란 봉끝에 강철로 된 창과 같은 뾰족한 날과 옆에 초승달 모양의 ‘월아(月牙)’라는 날을 부착한 장병기로, 손잡이에 색깔을 칠해 장식하고, 끝이 정(井)자 모양으로 되어 있는 극(戟)이다. (극은 고대 중국에 있던, 과戈와 창槍의 기능을 갖춘 무기이다.) 두 개의 월아가 손잡이를 중심으로 좌우대칭 형태로 부착되어 있는 것을 방천극이라 하며, 이 월아가 한쪽에만 달려 있는 방천극을 청룡극(靑龍戟) 또는 극도(戟刀)라 했다. 엄밀히 말해 『요원전』에서 금각대왕이 사용하는 것은 방천극이 아니라 청룡극(또는 극도)이어야 하지만, 요즘엔 그냥 섞어 사용하는 것 같다.



방천극 


청룡극


   『서유기』에서 금각대왕이 사용하는 무기는 칠성검이다. 아마 금각과 은각의 다섯 가지 보배 중 자금 홍호로와 양지옥 정병만 나눠 갖고, 나머지 세 개는 같이 쓴 것 같다. 그럼 방천극은 『서유기』에 등장하기는 하는가? 그렇다. 손오공이 잡혀간 삼장 법사를 구출하기 위해서 은각을 죽이고, 이들 요괴의 거처를 말 그대로 쑥대밭으로 만들었으며, 이들 요괴들의 어머니 또한 때려 죽여 금각의 분노가 극에 치달았을 때, 금각대왕의 외삼촌 되는 호아칠대왕(狐阿七大王)이 원군으로 오는데, 바로 그 호아칠대왕이 사용하는 무기가 방천극이다. 호아칠대왕은 저팔계의 쇠스랑에 등판을 내리 찍혀 누이와 조카의 원수도 갚지 못하고 죽었다.

   참고로 방천극은 『삼국지연의』에서는 봉선(奉先) 여포(呂布)가, 『수호전』에서는 소온후(小溫侯) 여방(呂方), 새인귀(賽仁貴) 곽성(郭盛)이 쓰는 무기이다.



p.184

“왠지 몰라도 네놈이 그렇게 저 중을 편들던 걸로 보아... 미끼가 돼줄 것 같았지. 예전부터 용아녀 꽁무니에 달라붙어 알짱알짱 대는 것이 그리도 눈꼴사나울 수가 없더니만... 이제 여기가 네 무덤이 될 줄 알거라!”


   플롯홀(plot hole)이다. 정세귀 일당은 손오공이 어떤 상황에 빠졌는지 전혀 모르는 상황이었고(앞에서 용아녀가 혼자 나타났을 때, 은각을 비롯한 여러 도적들이 손오공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은 것도 이상했다.) 손오공이 뒷길로 평정산 산채에 올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현장까지 인질로 잡고 있었는데, 이는 제13회, p.066에서 정세귀 일당이 현장을 죽이지 않은 것에 대한 일종의 변명이다. 그때 이들은 내광사에서 살인, 방화, 약탈을 자행했었기 때문에, 현장을 죽이지 않은 것은 누가 봐도 이상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때 현장이 죽었더라면 『서유요원전』은 이야기도 제대로 진행 못해보고 끝났을 것이다.)

   어쨌든, 손오공과 정세귀, 영리충 등을 한 데 묶은 것은 제천대성의 힘을 끌어낸 손오공에게 신진철을 연결, 그 힘을 보여주려는 모로호시 선생의 의중이 들어있을 것이다.



p.198

“그래, 아직 이게 있었지! 골짜기의 영기가 남았다면... 이 금환으로...”


   『요원전』에서 용아녀가 금환을 던져 손오공을 위기에서 벗어나게 하는 장면은 『서유기』 6회에서 태상노군이 손오공에게 금강탁(金鋼琢)을 던지는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금강탁이란 금강투(金鋼套)라고도 불리는데 “곤오(錕吾)에서 산출되는 강철을 두드려 만든 것으로 물과 불이 침범하지 못할 뿐 아니라, 이 세상 어떤 물건이라도 이것을 던져 올리면 모조리 빼앗는 힘까지 지닌 무기(乃錕鋼摶煉的,善能變化,水火不侵,又能套諸物)”이다. 태상노군은 이것을 호신용 병기로 사용하며, 평소에 왼 팔뚝에 끼고 다닌다.

   태상노군이 손오공에게 금강탁을 던지는 이유를 조금 살펴보면, 앞서도 이야기했듯이 손오공이 반도원의 9천년 된 복숭아를 모조리 따먹고 옥황상제의 칙령을 거짓으로 남발했으며 반도회의 음식들을 몰래 먹어 연회를 망쳐놓았고 태상노군의 구전금단을 몽땅 훔쳐 먹어 천궁을 뒤흔들자, 옥황상제의 명으로 탁탑 이천왕과 나타 삼태자를 필두로 천병 10만을 이끌어 치게 했다. 그러나 이천왕과 나타가 손오공에게 밀리게 되어, 마침 반도회에 참석하러 온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이 이천왕의 둘째 아들이자 자신의 제자인 혜안 행자(惠岸行者)를 시켜 이천왕을 돕게 했으나, 여전히 손오공이 우세였다. 그래서 이빙의 둘째 아들이자 옥황상제의 외조카인 현성이랑진군에게 명을 내려, 손오공을 토벌케 했는데, 손오공이 조금 밀리긴 했지만, 그래도 막상막하의 싸움실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걸 보고 있던 태상노군이 이랑진군을 도와주기 위해 금강탁을 던진 것이다. 금강탁을 맞은 손오공은 “난데없이 공중에서 떨어진 물체에 정수리를 얻어맞고 걸음걸이가 흐트러져, 올바로 서 있지 못하고 휘청거리다가 그만 그 자리에 털썩 고꾸라지고 말(卻不知天上墜下這兵器,打中了天靈,立不穩腳)”아 이랑진군을 비롯한 여섯 의형제들이 “꼼짝 못하게 짓눌러놓고 밧줄로 꽁꽁 얽어 묶은 다음, 그것만으로도 모자라 갈고리처럼 구부러진 칼로 비파골(琵琶骨, 견갑골)을 꿰뚫어(即將繩索捆綁,使勾刀穿了琵琶骨)” 잡아갔다는 이야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