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하려다 인터넷에서 방황하던 중에 이런 기사를 봤다. 


   '고시 수준' 말까지 나오는 환경미화원 채용 - 클릭


   기사는,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남에 따라 환경미화원 채용 응시인원의 70% 이상이 대학을 졸업한 고급인력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세태 한탄을 하려고 기사를 들먹이는 게 아니다. 나도 그 중 한 명이었으니까.


   꿈이 없어서 그랬다. 목표가 없는 삶이었기에, 그 어떤 항로표지도 없이 인생을 표류하고 있었다. 무얼 하고 싶다는 생각도 없었고, 무얼 해야겠다는 마음가짐도 없었다. 그래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직업들, 아파트 경비, 청소업체, 도서 물류, 청원경찰, 배달 등의 일들을 구했다. 


   지금 하고 있는 귀농귀촌 교육 또한, 꼭 이거야 한다는 이유가 없었다. 저 위에 기술한 여러 직업들 중 하나였다. 운이 좋으면 걸리는 거고, 아니면 마는 거고. 그런 생각을 하며 인생을 허비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요즘 매주 시골에 내려가 교육을 받으면서, 한 가지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농촌 생활에 관한 책을 만들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고 할까. 귀농귀촌에 대한 전반적인 매뉴얼도 좋고, 귀농귀촌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도 좋고... 소박하지만 사람 냄새 나는 책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책을 만드는 일을 했었지만, 시험 성적을 높이기 위한 기능서들만 만들어서였을까, 이제는 다시는 뒤돌아보지 않으려했던 출판 일을 다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아직까지는 생각일 뿐이다. 책을 만들 능력도 여력도 아직은 내게 없으니까. 하지만 하나씩 해보려고 한다. 구체적인 기획을 만들고 있지만, 시행착오를 겪게 될 것이다. 그래도,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앞으로 내가 귀농한 농부가 될지, 귀촌한 편집인이 될지, 농사 짓는 작가가 될지, 아니면 도시에서 생활하면서 다른 직업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꿈이 있어 한 발 한 발 내딛는 인생의 즐거움을 느끼는 요즈음이다.


   오랜만에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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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3-11-14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덩달아 두근두근하네요. ^^

Tomek 2013-11-14 13:09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Forgettable님.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죠?

:)

동생 2013-11-14 0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우와~~~~ 나도 말만들어도 설레고 흥분되!!
넘넘 신나는 일일거같아....
그리고, 이렇게 가슴뛰는 일을 발견했다는것자체가 넘 부럽네.
난 오빠말대로 무기력해지고 고립된게 지금 내 몸상태의 원인인거같아.
나도 어서 오빠처럼 가슴뛰는일을 구하고싶어.

Tomek 2013-11-14 13:10   좋아요 0 | URL
일단은 사람들을 만나. 그러면 절반은 해결되는 것 같아. 시작이 반이랬으니.

타지에서 몸 건강하고!
 

  지난 주말에 정읍에 가서 다섯 번째 귀농귀촌 교육을 받았다. 이번 주는 교육 장소가 내장산 초입에 있는 정읍농경문화체험장으로 바뀌어 정읍역에서 내장산으로 가는 171번 버스를 탔다. 때는 바햐흐로 단풍이 절정을 맞이하는 음력 10월 7일. 버스는 등산객들을 가득 채우고 출발했다. 정읍에 주말마다 (다섯 번째로) 내려왔는데 내장산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해 못내 서운했었는데, 이렇게 근처에서나마 내장산의 내음을 맡을 수 있어... 조금 서글펐다고 해야하나 아쉬웠다고 해야하나. :)


   이번 주에도 여러 교육을 받았는데, 일요일 하루는 온종일 아로니아 식재 실습을 했다. 아로니아는 10월 20일에 텃밭 실습장에서 식재실습을 했고 11월 3일에 농장견학을 했기에 어쩌다보니 전북귀농학교에서 총 세번의 집중 교육을 받은 셈이 되었는데, 이는 여러가지 복합적인 상황이 만들어낸 결과이기도 했다. 우선은 아로니아가 아직까지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지만, 앞으로 충분히 전망있는(안정적인 수입을 보장하는) 작물이라는 점에서 귀농귀촌을 준비하는 우리 학생들에게 소개하는 목적 외에도, 이제 2기수를 진행하고 있는 사회적 기업인 '전북귀농귀촌학교'의 안정적인 운영비 확보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나의 교육으로 여러 효과를 기대하는 김준성 대표님의 모습에서 농사 짓는 사람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농부는 한 걸음을 걸어도 열 걸음 후를 생각한다. 쌀이나 고추같은 안정적인 작물이 아닌 이상, 아로니아 같은 특수작물은 풍요로운 수확을 준비함과 동시에 유행이 끝날 그 이후를 생각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다. 그리고 이런 것은 비단 농부뿐 아니라, 자기 사업체를 가진 수많은 자영업자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11월 10일. 가을의 흔적을 남기고 성큼 다가온 겨울의 날씨 속에서 교육생들은 아로니아 식재를 했다. 약 600여 평의 빈 땅을 개간하며 비닐을 씌우고 묘목을 식재하는 일은, 혼자 힘으로 한다면 아마도 며칠을 걸렸을 테지만 20여명의 인력들이 붙으니 금새 끝이 났다. 게다가 두 번째 반복하는 일이다 보니, 전체 그림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고, 예상보다 더 빠르게 일을 끝낼 수 있었다. 하지만 내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기술의 숙련도를 확인하는 것이 아닌, 이렇게 많은 인원이 공동으로 작업하는 것이었다.


   같이 일을 하면서 즐거움을 느꼈던 때가 언제였던가? (적어도 나의 경우) 회사에서의 일은 점점 개인화 되어간다. 내 할 일은 내가, 네 할 일은 네가. 사고가 나면, 역추적해서 원인 제공자를 발견하고 다른 사람으로 대체하면 그만이다. 나는 그저 큰 공정 중에 하나를 책임지는 부품에 불과하다. 나 하나만 잘하면 되는 시스템. 아니, 남을 신경쓸 수 없는 체계. 그런 생활 속에서 여러 사람들과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땀을 흘리는 일은 정말로 벅·찼·다. 향약이니 두레니 품앗이니, 각기 명칭도 다르고, 행한 주체도 다르고, 일어난 지방도 다르지만, 결국엔 다같이 일을 하는 즐거움을 표현하는 저 조선시대 단어들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러니까 결국, 나에게 귀농이란, 잃어버렸던 사람다움을 찾아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는 생각이 들었다. 농촌에 사는 것도 도시에 사는 것과 같이 처절하다면, 그 처절함 속에서 그나마 인간다움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런저런 상념이 머릿속을 파고드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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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만에 마눌님께서 스콘을 자시고 싶다고 명하사, 직접 만들어봤다. 스콘은 쿠키에 가깝기 때문에, 홈베이킹이 빵보다는 수월하지만, 그래도 왠만한 빵보다 손이 더 많이 가기 때문에 성가시기는 마찬가지이지만, 어쩌겠나, 하명을 받들어야지.


   재료를 저울에 정확히 계량하고 반죽한 후, 반죽에 어느 정도 윤기가 흐르기 시작할 때 비닐(혹은 랩)에 잘 싸서 냉장실에 1시간 정도 숙성시킨다. 반죽은 두 번에 걸쳐서 하는 데, 처음 버터를 넣을 때는 가루가 고슬고슬하게 만드는 것이 포인트고 두 번째 우유와 계란을 넣을 때는 위에 기술한 대로, 글루텐이 형성될 (윤기가 보이기 시작할) 정도로 쳐주는 게 좋다.





   숙성된 반죽을 꺼낸 후, 성형을 하기 시작한다. 내가 (전에) 배웠을 때, 스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반죽 숙성과 성형이었는데, 홈베이킹의 특성상, 그냥 손가는 대로 만들었다. 이스트가 없어 구울 때 부풀지 않으니, 패닝은 적당한 간격으로 하면 끝. 반죽을 꺼낼 때 오븐을 미리 예열시키는 게 좋다. 마지막으로 오븐에 넣기 전에 계란물을 위에 살짝 발라주면 끝. 귀찮다면 귀찮고, 간단하다면 간단한 스콘 만들기다. (이렇게 대충하면 안되는데... 귀차니즘과 홈베이킹의 어드벤티지라 생각하...)





   이 상태에서 오븐에 넣고 약 15~20분간 구워지기만을 기다리면 된다. 오븐에서 구워지는 스콘이, 가운데 부분이 (마치 조개처럼) 살짝 갈라지면, 반죽이 잘 됐다는 증거다. 당연히 쩍쩍 갈라지기 시작했다. :)





   마눌님 이 모습을 보시고 흐뭇하시어, 남편이 이렇게 제 할일을 하는데, 나도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 하시며 냉장고에서 호박을 꺼내 볶음 반찬을 시작하시는데, 고소한 버터향 풍기는 스콘에 얼큰한 새우젓 향이 스며들기 시작, 이 복잡 미묘한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야 할지 남편은 심히 울적했더라. 그렇게 멜랑꼴리한 감성에 빠진 때, 잠깐의 빈틈을 알아차린 스콘들이 스스로 제 몸을 태우니, 아뿔사, 스콘이 타버렸구나. ㅠㅠ





   자세히 보면 맨 위아래 두 개만 좀 탔지 나머지는 그래도 양호한 편이다. :) 음식을 만들고 나면, 손이 먼저 음식을 먹기 때문에, 입은 별로 먹고 싶어하지 않는다. 집사람의 손은 다행이 호박볶음을 먹었기에, 스콘을 무리 없이 먹었다. 난, 탄 거 두 개 먹었고. 평범한 일상도 이렇게 터치를 하니 새롭게 느껴지는 것 같다. 일상에 대한 의미 부여랄까? 그런 것에서 예술이 시작하는 것이겠지.


   오늘의 예술: 음식, 스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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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0월 12일부터 (주)예비사회적기업 전북귀농귀촌학교와 정읍시에서 주관하는 귀농귀촌강의를 매주 듣고 있다.



   귀농에 대한 생각은 어렴풋이 가지고만 있었다. 각박하기만 한 도시에서의 삶에 몸도 마음도 다쳐, 어딘가 나를 치유해줄 공간이 필요했었다. 자연으로 되돌아가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이 갈망이든, 회피든간에, 이 지긋지긋한 공간에서 멀리 떠나고 싶었다. 그렇게 떠올린 게 귀농이었다. 하지만, 이전에도 그랬듯, 잘 알아보지 않고 감상적으로 택한 결정은 언제나 비싼 대가를 치룬다는 것을 미리 경험했기에, 이번에는 늦더라도 천천히 다가가기로 결정했다. 그 첫걸음이 바로 귀농귀촌학교의 입교였다.


   "매주 1박2일 총 8번에 걸쳐 총 108시간 동안 실습과 이론 교육을 실시"한다는, immersion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깊이 있는 교육이라 생각해, 큰맘 먹고 교육을 신청했고, 지금까지 총 4번의 교육을 받았다. 교육 내용은 마음에 들었다. 귀농에 대해 무조건적인 찬사나 입에 발린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귀농이 얼마나 어려운지, 성공한 사람들조차 밝히기를 꺼려하는, 감추고 싶은 민낯까지도 가르쳐주곤 했으니까.


   

   지금까지 들은 바에 따르면, 아니 내가 느낀 것을 얘기하자면, 귀농은 정말 쉽지 않은 선택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할 일도 없는데) 농사나 해볼까?"라는 마음가짐이 아니라, "(내가) 농사를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앞서나가야 겨우 첫발을 뗄 수 있는 것이다. 부모님의 영농기반이 없거나, 귀농하려는 지역에 인맥이 없거나, 최소 2~3억의 자본이 없으면, 귀농은 그냥 실패라고 보면 된다. 물론 성공한 사례가 있으나, 만일 당신이 그렇게 성공한다면, 아마도 TV에 나올 것이다. 쉽게 말해, "공부가 제일 쉬었어요" 인간 승리의 부류들. 그정도로 처절하게 들러붙지 않으면 백이면 백 모두 실패다.


   물론, 농촌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농사 말고도 다양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농사에 관심을 두는 까닭은, 농촌의 실상을 알면 알수록, 농촌이 신자유주의의 최전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이제 농촌에서는 농사만 잘 지어서는 무능력한 사람이 되기 일수다. 농사 하나만 제대로 짓는 것도 어려운데, 1차산업인 농산물을 생산하고, 2차산업인 가공품을 만들고, 3차산업인, 유통과 판로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렇게 못하면 국가나 지자체 혹은 대규모 중간상인이 헐값에 사들이는 것만을 기대해야 한다. 이 모든 걸 혼자서 감내해야 하는데, 요즘엔 6차산업(=1×2×3차산업)이라고 해서 이 모든 걸 다 하면서, 거기에 또 체험장, 민박 같은 부대시설도 만들어야 한단다.


   신자유주의가 무엇이었나, 간단히 말해 국가가 할 일을 개인에게 떠넘기는 것 아니었던가? IMF이후 비용절감을 핑계로 인력을 줄인 후, 남은 인력에게 그 일을 떠맡는, 결국 개인이 수퍼맨이 되어야 하는 비극 아니었던가? 하긴, 이런 추세는 내가 몸을 담았던 출판계에서도 보이는 현상이다. 처음 출판사에 입사했을 때는, 기획과 편집만 했었다. 그러다 회사를 옮기게 되면서 점차 편집인이 해야할 일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마지막에는 거의 혼자서 출판 과정 전체를 떠앉는 경우도 있었다. 이 사회 전체가 신자유주의라는 유령에 쥐어 짜이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원하는 삶은 귀농이라기 보다는 귀촌에 가까운 것 같다.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피해받지 않으며, 내 먹거리는 스스로 생산하고, 자연에 귀의하는 삶. 하지만 현실은, 모두들 겉으로는 스콧 & 헬렌 니어링의 삶에 감동을 받으면서, 정작 속으로는 빌 게이츠를 꿈꾼다. 그걸 뭐라 탓하지는 않는다. 돈이란 숭고까지는 아니더라도, 살아가는데 충분히 존중받을만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니까. 하지만, 농촌에 대한 감성, 혹은 향수가 사라지는 듯한 서글픔이 느껴지는 것은 진심으로 슬픈 일이다.


   이렇게 만신창이가 된 농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귀농에 대한 희망 혹은 설렘을 간직하는 것은 바로 생명의 신비, 생명의 순환을 다루는 일이기 때문이 아닐까. 처음 심어본 무청이 싹을 틔우고, 상추 모종이 고개를 들며, 양파 모종이 빳빳하게 허리를 곧추세우는 모습을 매주 확인할 때면, 바로 이맛에 농사를 짓는 게 아닐까 하는, 현실과 동떨어진 감상이 나를 지배한다.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모르겠지만,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가보려 한다. 어쨌든 내 삶 전체를 바꾸는 일이 될테니까. 그러기 위해선 열심히 공부하고 알아나가야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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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회 - 액정궁에서 차녀姹女가 양陽을 탐하고 삼라전에서 심원心猿이 괴怪를 만나다



   차녀(姹女)는, 『요원전』 제1회의 소제목에 나온 ‘영아(嬰兒)’와도 관련이 있는 단어인데, ‘하상차녀(河上姹女)’의 준말로 ‘외단(外丹)’에서 수은을 가리키며, 도교(道敎)에서는 연단술(煉丹術)의 비방(秘方)이자 약물의 은어로 사용된다. 여기에서는 원래의 뜻인 ‘아름다운 색녀(色女)’, 즉, 지용부인(地湧夫人)을 가리키는 단어이다.

   심원(心猿)은 『서유기』의 소제목들에서 손오공을 일컫는 말로 자주 등장한다. 이 심원에 대해서 청나라 때 황주성(黃周星)은 『서유증도서(西遊證道書)』의 주해(註解)를 통해 다음과 같은 견해를 밝혔다.

   “마음이란 항상 안정되기 어려운 것이므로, 반드시 오행(五行)으로 안정시켜야 한다. 불이 단 한 순간이라도 타지 않으면 불이 아니듯, 원숭이 역시 이 세상에서 움직이기를 가장 좋아하는 동물이다. 따라서 원숭이의 기질을 인간의 마음에 견줄 수 있을 것이다. 삼장 법사 일행은 백마까지 합쳐서 모두 다섯이다. 이들을 오행으로 나누어 안배한다면, 심원은 마음이 그 중심이기에 손오공은 의당 화(火)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저오능의 별칭은 ‘목모(木母)’, 사오정의 별칭은 ‘금공(金公)’이므로, 저팔계는 마땅히 목(木)에 속할 것이고, 사화상은 금(金)에 해당한다. 삼장 법사에게는 별칭이 없으나. 일행 가운데 중심이 되는 어른이요 스승이므로, 오행가운데 ‘만물의 모태’가 되는 토(土)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며, 용마는 바다에서 태어나고 또 응수두간(鷹水陡澗)이란 물에서 귀의하였으므로 마땅히 수(水)에 해당시켜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하여, 삼장 법사 일행은 오행으로 화합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임홍빈 역 『서유기』제1권 제7회 주1에서 인용)



p.108

안인문安仁門



p.109

승천문承天門의 위병들은 대체 뭘 했단 말인가! 곰을 실어온 관원들도 그렇고... 죄다 목이 달아날 일이야!”


승천문承天門 → 순천문順天門


승천문은 618년에서 705년까지 순천문이라 불렸기 때문에, 순천문順天門이라 표기해야 한다.



p.109

“나도 나서겠다. 도적이 결코 주명문朱明門을 지나도록 해서는 아니 될 것이야!



p.111

“도적은 한 놈이라 했으렸다? 아직 태극전太極殿을 넘지는 못했을 터.”



p.116

“어딜 가시는 게요! 이 너머는 비빈妃嬪마마들께서 계시는 액정궁掖庭宮이올시다!



p.129

“여봐라, 혹시 누군가 이 현무문玄武門으로 나가지 않았느냐?”



圖 7 8 世紀前半的長安宮城、皇城에서 발췌



p.112

“가, 강하다...!”


   위징(魏徵)과 손오공의 첫 대면이다. 이 단순한 첫 대면에서 손오공은 너무나 허무하리만치 위징이 자신보다 한 수 위임을 인정하는데, 이는 위징의 캐릭터를 『서유기』에서 가져왔기 때문으로 보인다. 『서유기』에서 위징은 당태종 아래서 승상 벼슬을 받고 일하는 신하이면서, 동시에 옥황상제로부터 명을 받아 경하(經河) 용왕을 참수하는 신인(神人)이기도 하다. 역사에서의 위징은 참으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었는데, 어릴 때 출가하여 도사(道士)가 되었고, 후에 무양군승(武陽郡丞) 원보장(元寶藏)의 전서기(典書記)가 되었다가 원보장을 따라 이밀(李密)에게 귀순했다. 다시 이밀을 따라 당고조(唐高祖) 이연에게 귀순하여 이연의 장자 이건성(李建成)의 측근이 되었다. 이력만을 두고 봤을 때는 썩 믿음이 가지 않는 사람이지만, 상황을 재지 않고 내지르는 직간(直諫)으로 당태종의 환심을 사 재상이 되었다.



p.120

“배짱 한 번 대단한 사내 아닌가. 어쩌면 의외로 이 액정궁 안 누군가의 처소로 숨어들었는지도 모를 일이야.”

“공주마마, 지금 그런 농담을 하실 때가 아니옵니다. 그냥 도적이 아니라 요물이라는 말도 있사옵니다. 커다란 원숭이라고...”


   이 급박한 상황에서 도도하고 차분한 기품을 풍기는 이 공주는, 평양공주(平陽公主)가 아닐까 감히 짐작해본다. 평양공주는 당고조 이연의 셋째 딸로서(그는 딸만 19명을 두었다) 아마도 일남 이건성과 차남 이세민 사이에 위치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녀는, 후에 당나라 능연각 24공신 중 14번째를 차지하는 시소(柴紹)와 결혼을 했는데, 아버지 이연이 617년 거병을 했을 때 낭자군(娘子軍)을 조직, 장안을 함락하고, 그 후 관중의 여러 군벌들을 토벌했던 것으로 추정한다. 평양공주는 623년 6월 초에 죽었고, 군례로 장례를 치렀다는 기록이 있다. 그녀가 죽음은 아마도 돌궐과의 전투(그 당시 군벌들은 모두 돌궐과 동맹관계를 넘어서 군신관계를 맺고 있었다)나 유흑달 토벌 중에 전사 혹은 부상을 당했는데, 상처가 도져서 죽은 것으로 보인다.

   역사상으로는 626년에 평양공주가 나올 수 없는 상황이지만, 특별히 누구라고 지칭하지도 않았고, 역사의 기록 또한 너무 부족한 것으로 보아, 평양공주로 봐도 무방할 듯싶다.



p.123

“지용부인地湧夫人마마, 도적을 찾는 중이옵니다. 잠시 들어가겠나이다.”


   드디어 지용부인이 등장했다. 지용부인은 『서유기』80~83회에 걸쳐서 등장하는데, 빈파국(貧波國) 흑송림(黑松林)에서 삼장일행과 조우한 후, 진해 선림사(鎭海禪林寺)에서 티베트 승려들의 색심(色心)을 일으켜 유혹한 후에 잡아먹는 무시무시한 요괴다. 원래 정체는 ‘금빛 코에 흰 틀을 지닌 늙은 쥐(金鼻白毛老鼠精)’로 영취산 뇌음사에 몰래 들어가 향화(香花)와 보촉(寶燭)을 갉아먹다가 탁탑 이천왕에게 잡혔으나, 죄를 용서하고 목숨을 살려주자, 그 은덕을 기리고자 탁탑 이천왕을 부친으로, 나타 삼태자를 오라비로 받들었다.

『서유기』에서 지용부인을 묘사한 글은 다음과 같다.


髮盤雲髻似堆鴉,身著綠絨花比甲。

一對金蓮剛半折,十指如同春筍發。

團團粉面若銀盆,朱唇一似櫻桃滑。

端端正正美人姿,月裡嫦娥還喜恰。

今朝拿住取經僧,便要歡娛同枕榻。

   친친 감아서 땋아 올린 구름머리는 까마귀 떼가 내려앉은 듯 새카맣고, 몸에는 초록빛 융단 바탕에 꽃무늬 곱게 박아 지은 갑옷을 입었다.

   두 발목은 절반 꺾인 금빛 연꽃처럼 한들거리는데, 열 손가락은 봄날에 갓 돋아 나온 죽순처럼 곱고 여리다.

   둥그스름하게 분 바른 얼굴 모습은 은 쟁반처럼 더 환하게 빛나고, 새빨간 입술은 앵두처럼 매끄럽게 윤기가 흐른다.

   어느 모로 뜯어보나 단정한 미녀의 자태, 달 속의 항아님도 기꺼이 자리를 양보하겠다.

   오늘 아침 경을 가지러 가는 스님을 잡아왔으니, 오늘밤에 동침하여 즐겁게 놀아볼 작정이다.



p.124

“대궐 지하에 비밀통로가 있다니... 어디로 통하는 걸까?”


   『요원전』에 나오는 지하 비밀통로는 (지금까지는) 지용부인만이 알고 드나드는 통로이다. 이와 비슷한 것이『서유기』에도 나오는데, 지용부인의 소굴인 ‘함공산 무저동(陷空山 無底洞)’이 바로 그것이다.

   “패루 아래 비탈진 산기슭에 어림잡아 둘레가 10여리나 되는 거대한 바윗돌이 하나 있는데, 둥글둥글한 바위 한복판에 지름이 물독만한 구멍이 뻥 뚫려 있고, 구명 주변에는 무엇인가 기어서 드나들었는지 번들번들한 자국이 나 있었다. (牌樓下,山腳下有一塊大石,約有十餘里方圓,正中間有缸口大的一個洞兒,爬得光溜溜的。)”

   “히야! 이거 정말 지독하게 깊구나...... 동굴 속 둘레만도 삼백여리는 좋이 되겠는데, 깊이가 또 얼마나 되는지 끝도 안보이네 그려!(咦!深啊,周圍足有三百餘里。) 이름이 ‘무저동(無底洞)’이라더니, 과연 글자 그대로 밑바닥 없는 동굴 아닌가!”



p.138

“과인은 이 삼라전森羅殿의 주인 나타태자哪吒太子이니라!”


   인간이 죽으면 삼혼(三魂)과 칠백(七魄)으로 나뉘는데 혼은 영혼, 백은 육체로, 삼혼은 하늘로 올라가고, 칠백은 땅에 묻힌다. 이 혼이 명계로 가서 시왕(十王)들에게 각자의 죄업을 심판받는 곳이 바로 삼라전이다. 『요원전』에서 나타태자가 홀로 지내고 있는 곳이 삼라전이라는 말은 곧, 이곳 땅 밑이 저승이라는 뜻이다. 『서유기』에서는 ‘유명지부귀문관(幽冥地府鬼門關) 삼라전(森羅殿)’이라고 무시무시하게 적혀있다.

   나타태자는 『서유기』와 『봉신연의(封神演義)』에 같은 캐릭터로 등장한다. 『서유기』에서 나타태자는 꽤 여러 번 등장을 하는데, 처음엔 손오공과 대립했으나, 후에 손오공이 불문에 귀의한 후로는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한다. 5회와 6회에서는 옥황상제의 명으로 손오공을 제압하러 갔다 실패하지만, 32회에서는 손오공의 요청으로 하늘을 호리병 속에 담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51회에서 독각시대왕(獨角兕大王)을 제압하기 위한 구원병으로 출격하며, 81회에서는 지용부인과의 해묵은 관계(?)를 풀어주기도 한다. 『요원전』에서 나타태자와 지용부인의 관계는 『서유기』 81회의 내용을 바탕으로 창작한 것이다. 나타태자는 아버지 탁탑 이천왕과의 관계가 아주 살벌한데, 자세한 내용은 나타태자의 본격적인 이야기가 진행되는 29회에서 이야기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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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3-10-04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글을 읽을때마다 감탄하는 것이지만 이런 내용을 다 어디서 얻으셨는지 무척 궁금해 집니다^^

Tomek 2013-10-05 12:26   좋아요 0 | URL
읽으면서 조금씩 메모한 것들 참고하는 편입니다. 새로운 지식은 없지만, 널리 퍼져있는 것들을 한 데 모으는 작업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