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IN PEAKS〉
        시즌 2 
        에피소드 8 (16)
        타이틀 Drive with a Dead Girl
        각본 Scott Frost 
        감독 Caleb Deschanel
        방영일 1990
년 11월 17일 
 

 

   
 

        <시즌 2 지난회 보기>
       
9. May the Giant Be with You
        10. Coma
        11. The Man Behind Glass 
        12. Laura's Secret Diary 
        13. The Orchid's Curse 
        14. Demons  
        15. Lonely Souls

 
   

 

 

 

1. 이야기  

로라 파머의 살인 혐의로 구류중인 벤자민 혼은 동생이자 변호사인 제리 혼을 통해 혐의를 벗어나려 하지만, 상황은 벤자민에게 좋지 않게 흘러간다. 데일은 벤자민이 범인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하지만, 해리 보안관은 벤자민을 구속한다. 밥의 악령이 쓰여 있는 리랜드는 매디의 시체를 골프 가방에 넣고 돌아다니며, 벤자민을 범인으로 몰아넣을 증거를 흘리고 다닌다.  

피트는 벤자민을 찾아와 캐서린의 음성을 들려준다. 그녀는 로라가 죽은 날 벤자민의 알리바이를 입증해주는 대신 유령숲 개발권과 제재소를 돌려달라고 요구한다. 한편, 바비는 리오의 구두 속에서 발견한 테이프에 벤자민과 리오의 목소리가 담겨 있는 것을 알아내고 협박 편지를 보낼 준비를 한다.  

노마 제닝스의 엄마 비비안이 찾아온다. 그녀는 새 남편 어니와 신혼여행 중이다. 행크는 어니가 자신과 같은 감옥에 있었던 것을 알아채고 그를 이용할 계획을 짠다.  

그날 밤, 매들린 퍼거슨의 시체가 발견된다.  









 

 

2. 딜레마  

데이빗 린치와 마크 프로스트는 ABC의 압력에 못 이겨 결국 밥의 실체를 공개했다. 밥의 등장은 대부분의 시청자들을 경악하게 했으며, 등장에 이어 새로운 살인까지 보여주었기 때문에 그 충격은 굉장했다. 게다가 TV는 물론, 주류 영화에서도 금기시 되는 수많은 이미지들이 실체를 입게 되었으니, 그 충격의 여파는 엄청났다. 그런데 새로운 문제가 발생했다. 밥의 정체를 드러냄으로써 수많은 시청자들의 궁금증은 해결됐지만, 시청자들의 궁금증은 다른 문제로 옮겨갔다. "리랜드는 언제 어떻게 잡힐 것인가?"  

이 문제는 데이빗과 마크를 딜레마에 빠지게 했다. 지금까지는 밥의 정체를 숨겼기 때문에, 트윈 픽스의 모든 사람들이 혐의가 있었기에 드라마를 진행할 수 있었지만, 이제 사람들은 리랜드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리랜드가 빨리 사라지지 않으면, 시청자들은 오로지 리랜드에게만 집중할 것이고, 지금까지 데이빗과 마크가 공들여 이끌어온 수많은 캐릭터들은 그들의 생명력을 잃을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리랜드를 시리즈에서 아웃시키면, 드라마는 지금까지의 동력을 잃을 것이 분명했다. "누가 로라 파머를 죽였는가?"라는 질문은 아무것도 아닌 동시에 시리즈를 이끈 열쇳말이기도 때문이다.  

결국 데이빗과 마크는 로라 파머에 대한 사건을 종결하고 새로 이야기를 이끌어나가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이 결정이 <트윈 픽스>는 물론, 그들 자신에게도 어떤 영향을 끼칠줄은 알지 못했다.  





 

 

3. 보안  

드라마에서는 지난 회에서 밥의 실체를 보여주었지만, 미리 완성된 스크립트에서는 밥의 실체를 숨겨야 했었다. 때문에 시즌 2의 7번 째 에피소드 스크립트에서는 밥을 벤자민 혼으로 묘사 했었고, 이번 8회에서는 빅 에드 헐리로, 다음 9회에서는 다시 벤자민 혼을 밥으로 묘사했었다.  

빅 에드가 범인? 말도 안 돼! 

 

물론 다른 설정으로 접근했을 수도 있다. 밥은 영혼이기 때문에, 여러 사람들의 몸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그러니까 어쩌면, 트윈 픽스의 주민들은 모두들 밥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후에 이런 설정으로 접근하기도 했으나, 아쉽게도 결과는 영 신통치 않았다. 결국 <트윈 픽스>에서 밥은 리랜드 파머로, 마이크는 필립 제라드로 고착화되고, 데이빗 린치는 극장판 <트윈 픽스>로 다시 새로운 이야기를 펼치려 했으나, 시리즈 마지막 에피소드와 같이 닫힌 느낌의 열린 결말로 끝을 맺었다.  

 

 

4. 정상과 비정상 혹은 이성과 비이성  

데일의 수사 방식은 이제 확실히 정상인의 범주를 훌쩍 뛰어 넘었다. 그는 물리적인 증거 대신 마이크의 직감만을 믿는다. 데일도 지금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알고 있지만, 이제 와서 어쩔 수 없다. 그는 수사 기록에 자신의 심정을 남긴다.  

다이앤, 지금은 오전 10시, 그레이트 노던 호텔이야. 지금까지 외팔이 사내와 함께 호텔 방에 있었어. 아니 어쩌면 필립 제라드일지도 모르지. 다른 시대, 다른 문화권이었다면, 이 사내는 예언자나 무당... 어쩌면 지도자일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 이 세계에서는 신발 외판원이자 사회의 음지에서 살아가는 사람이지.   

 

해리 보안관은 여러 가지 정황과 물증으로 벤자민 혼이 로라 파머의 범인임을 확신하고 그를 구속한다. 데일은 벤자민이 범인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벤자민을 풀어주라고 이야기하지만, 해리는 더 이상 이런 비이성적인 수사방식을 참지 못한다.  

이봐요, 쿠퍼, 난 당신의 수사를 매번 도와주려고 노력했고, 항상 당신 옆에 있었어요. 하지만 거인이라든지, 난쟁이, 꿈, 돌 던져서 범인 알아내기, 티베트 같은 이야기는 이제 충분해요. 누군가가 범행을 저질렀으면, 범인을 가두는 게 내 일이에요. 그리고 내 양심상 범인이 확실한 사람을 감옥에서 나가게 할 수는 없습니다. 난 그렇게 할 수 없어요.   





 

우리의 상식으로는 해리 트루먼 보안관의 말이 옳게 들린다. 하지만 트윈 픽스는 우리의 상식이 통하지 않는 마을이다. 우리는 마을 사람들의 시선으로 트윈 픽스를 둘러싼 숲을 바라보고 있는 중이다. 혹시 그 반대라면? 숲의 시선으로 트윈 픽스를 바라본다면?  

 

 

5. 아버지와 딸  

벤자민이 로라 파머를 죽인 범인이라는 혐의는 해롤드 스미스의 집에서 발견된 로라의 일기장 때문이다. 대부분이 찢어졌지만, 중요한 부분이 발견 됐다. 벤자민 혼에 대한 언급이다.  

"난 벤 혼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 해. 난 벤 혼이 진짜 어떤 사람인지를 세상에 밝히고 말거야." 

하지만, 로라는 벤자민 혼에 대해 이야기를 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로라는 벤자민이 애꾸눈 잭을 운영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사실은 벤자민 혼 본인의 평판은 물론, 그의 가족에게까지 위협이 되는 사실이다. 제 3자가 보기에도 벤자민이 로라를 죽일 이유는 너무나 자명하다. 



 

하지만, 벤자민은 로라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딸인 오드리는 아버지에 대한 배신감과 질투로 인륜을 저버리고 그녀가 사랑하는 데일을 위해 아버지를 신고했다. 사랑의 상실, 질투, 또 다른 사랑의 갈구. 로라 파머는 어쩌면 아프로디테의 화신일지도 모른다.  

 

 

6. 기억할만한 지나침  



매디가 살해된 로라의 집은 <아미티빌 호러>의 귀신들린 집을 연상시킨다. 실제 살인 사건과 기이한 심령 현상은 그 자체로 으스스한 기운을 불러일으킨다. 

 

로라 파머의 살인범이라는 워낙에 엄청난 사실이 밝혀진 터라, 이전에 촘촘하게 직조한 이야기들(장 르노, 윈덤 얼)은 모두 미루어졌다. 그 중 음식 평론가인 엠티 웬츠에 관한 이야기도 있었는데, 이번 회에서 엠티 웬츠는 비비안임을 친절히 알려준다. 아마도 더 이상의 미스터리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그동안 쌓아온 미스터리를 너무 한 순간에 풀어버리는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이때부터 <트윈 픽스>는 어느 정도 자포자기의 순간을 보여준다.  

 

앤디는 루시에게 자신이 루시의 임신 사실을 알고 화를 냈던 이유는 자신이 아이를 갖지 못하기 때문이었지만, 재검사 결과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자신도 루시가 밴 아이의 아버지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이야기를 듣는 루시의 표정이 가관이다.  

 

오드리: 내가 말한 것 때문에 아빠가 체포됐나요?
쿠퍼: 조금은.
오드리: 제가 도움을 드린 셈이네요.
쿠퍼: 그래요.
오드리: 난 아빠가 단지 날 사랑해주길 바랐어요.
쿠퍼: 아버진 당신을 사랑해요.
오드리: 아니에요, 아빤 날 부끄러워해요.
쿠퍼: 그렇지 않아...
오드리: 말씀드릴 게 있어요. 그때, 내가 애꾸눈 잭에 있었을 때, 난 절대로 아무 일도...
쿠퍼: 아무 말도 하지 말아요. 다 알고 있으니까.
오드리: 그래도...
쿠퍼: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 다 알고 있어요.  

오드리가 데일을 찾아와 아버지에 관한 일과 애꾸눈 잭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한다. 스크립트 상에서는 오드리와 데일의 로맨스가 조금 더 적극적으로 표현되어 있지만, 화면에서 보이는 상황은 무언가 어정쩡한 모습인데, 오드리 혼 역의 셔릴린 펜과 데일 쿠퍼 역의 카일 맥라클란이 둘의 로맨스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배우들의 사이가 나빠서가 아니라, 데일 쿠퍼라는 캐릭터의 성격에 맞지 않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마크 프로스트를 비롯한 작가들은 로라 파머의 사건이 해결된 후 오드리와 데일의 사랑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려 했으나, 배우들의 거부로 다른 플롯을 작성해야 했다.  

 

 

7. 덧붙임  

a. 대부분 사실에 기초하여 썼고, 개개의 세부사항은 사실에 부합하지만,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사실의 전후부분이 바뀐 경우도 있습니다.  

b. 콘텐츠 중 캡처 이미지에 대한 권리는 해당 저작권사에게 있습니다.  

c. References
- 『Lynch on Lynch, Revised Edition』 크리스 로들리, Faber & Faber
- 『데이빗 린치의 빨간방』 데이빗 린치, 곽한주 옮김, 그책
- 『TWIN PEAKS #2.008』 스크립트, 4th Revisions
- 〈Twin Peaks: Definite Gold Box Edition〉 Lynch/Frost Productions, CBS DVD, Paramount Home Entertainment
- 위키피디아 http://en.wikipedia.org/
- IMDB http://www.imdb.com/


댓글(1) 먼댓글(0) 좋아요(5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감만자 2018-01-16 0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배우들의 거부가 아니라 다나 역할의 배우가 카일과 사귀고 있어서 반대했다고 하더군요
 

『다세포소녀』는 B급 달궁(채정택)의 온라인 연재만화로 시작했습니다. 딴지일보에서도 연재했던 기억이 있는데, 무쓸모 고등학교를 중심으로 성(性)에 대한 이야기를 매회 풀었습니다. 교복 입은 고등학생과 한계를 넘어서는 수위 때문에 변태만화라는 오명도 들었지만, 명랑만화와 순정만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가의 필력 때문에 연재 당시 엄청난 열광을 이끌어냈던 만화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화의 내용을 거의 그대로 차용한 이재용 감독이 만든 <다세포소녀>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만화에서는 다 가능했던 이야기들이 배우들의 연기로 육신화하면서, “말이 안 되는 이야기”로 변질됐던 것이죠. 이재용 감독은 그동안 작업했던 로맨스라는 장르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다세포 소녀>를 선택했지만, 영화는 '가난을 등에 업은 소녀'(김옥빈)의 로맨스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장편 영화라는 함정이 있습니다. 원작은 에피소드별로 진행이 되지만, 장편 영화는 기승전결의 내러티브가 필요한 법이죠.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 억지 결말식의 이무기(?!)의 등장은 이 영화를 더욱 기이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반면에, 극장판과 거의 같이 작업을 시도한 시리즈 <다세포소녀>는 원작의 흥취를 담으면서 시리즈의 매력을 흠뻑 맛보게 한 작품입니다. 원작의 인물과 상황을 차용하지만, 그 해석은 신선하고 각 에피소드별로 장르를 달리해 "골라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며칠 전 <다세포소녀> 시리즈를 보던 중 반가운 얼굴이 눈에 띄었습니다. <똥파리>, <집나온 남자들>의 배우(이자 감독)인 양익준 씨의 모습이었죠. 물론 고등학생(!) 역입니다. 지금 본다면 뜨악한 설정이었겠지만, 당시엔 무명이라 어느 정도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우선호 감독의 <뽀르노의 추억> 에피소드는 말 그대로 학창시절의 포르노테이프에 대한 수다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성담론으로 가득한 무쓸모 고등학교에서 공부만 하는 열남(양익준)은 이런 이야기들에서 제외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열남은 포르노테이프에 대한 잊지 못할 추억이 있습니다. 

  

열남이 어렸을 때, 열남의 아버지(박광정)는 장롱 속에 무엇인가를 숨겨놓고 있습니다. 열남은 장롱 속을 궁금해 하지만, 열쇠를 찾을 수 없습니다. 열남은 손재주가 좋은(?) 친구를 데려와 장롱을 열어봅니다. 그 안에는 엄청난 양의 비디오테이프가 있었고, 열남은 더 이상 장롱 문을 열지 못했습니다.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 열남은 친구들과 돈을 모아 세운상가에 가서 포르노를 살 계획을 합니다. 마침 아이들에게 접근하는 어른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어른이 열남이 아버지입니다.   







 

 

<뽀르노의 추억>은 그렇게 특별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반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대부분(?) 경험해봤음직한 이야기입니다. 이런 뻔한 이야기가 울림을 갖는 이유는 지금은 사라진 포르노‘테이프’, 세운상가, 그리고 연기자 박광정 씨에 대한 회한이 크기 때문입니다. 우선호 감독은 지금은 모두 사라져버린 존재들에 대한 강한 회한을 학창시절의 포르노테이프를 통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물론 우선호 감독은 세운상가가 철거될 줄은, 박광정 씨가 유명을 달리할 줄은 모르고 있었을 것입니다. 모든 것은 너무 갑작스럽게 찾아옵니다. 종묘를 앞에 두고 세운상가 계단 벽에 기대어 담배를 피우는 아버지의 모습은, 지금은 모두 사라진 풍경 같은 느낌을 불러일으킵니다. 아련하고 애틋한, 상처뿐인 풍경.   







 

이제 포르노테이프라는 물리적 저장매체는 야동이라는 파일로 존재합니다. 세운상가는 철거되었고 그 자리엔 공원이 들어설 예정입니다. 하지만 아들에게 욕구(포르노테이프)와 돈을 조달하는 아버지의 자리는 다른 것이 대체할 수 없습니다. 그곳은 처음부터 빈자리로 남아있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내가 그 자리를 채워야할 것입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ephistopheles 2010-06-22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폐암이었죠.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비굴함과 섬찟함을 함께 보여주는 보기 드문 배우였는데. 종종 드라마나 영화의 조연의 모습을 보며 저 배역에 박광정씨였으면 어땠을까..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Tomek 2010-06-23 05:31   좋아요 0 | URL
생각할 때마다 아쉬운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ㅠㅠ
 

 

 
        〈TWIN PEAKS〉
        시즌 2 
        에피소드 7 (15)
        타이틀 Lonely Souls
        각본 Mark Frost 
        감독 David Lynch
        방영일 1990
년 11월 10일 
 

 

   
 

        <시즌 2 지난회 보기>
       
9. May the Giant Be with You
        10. Coma
        11. The Man Behind Glass 
        12. Laura's Secret Diary 
        13. The Orchid's Curse 
        14. Demons

 
   

 

※ 시리즈 가장 큰 비밀이 밝혀지는 에피소드입니다. 혹여 나중에라도 감상을 원하시는 분들은 절대 읽지 마시기 바랍니다.  

 

 

1. 이야기  

데일과 해리는 마이크를 데리고 그레이트 노던 호텔에서 밥을 찾지만, 소란만 일으키고 찾지 못한다. 해롤드 스미스가 로라의 일기장을 가지고 있다는 제보에 호크가 찾아가지만 해롤드는 자살하고 일기장은 찢어져 있다.  

매디는 사라와 리랜드에게 다음날 고향인 미줄라로 떠날 거라는 이야기를 한다. 코마에서 깨어난 네이딘은 자신이 여전히 고등학생인줄 알고 있다.  

오드리는 아버지 벤자민에게 로라와의 관계를 실토받고 데일에게 알려준다. 해롤드의 집에서 발견한 로라의 일기장에 쓰인 문구와 그레이트 노던 호텔에서의 정황을 파악한 데일은 영장을 발부해 벤자민을 체포한다.  

통나무 여인에게 로드하우스에 가라는 말을 전해들은 데일은 로드하우스에서 거인의 환영을 본다. 바로 그 시각, 매디는 실체를 드러낸 밥에게 살해당한다.   

 













 

 

2. 밥 (BOB)

애초 이야기했듯이 데이빗 린치와 마크 프로스트는 로라 파머에 대한 이야기를 동력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펼쳐 놓으려고 했었다. 최소한 두 번째 시즌의 5번째 에피소드까지는 그들의 의도대로 이야기를 진행시켰다. 하지만, 그들이 예상치 못한 상황이 있었다. 드라마가 이렇게까지 성공할 줄 생각지 못한 것이다.  

1990년대 문화 현상으로 불리는 <트윈 픽스>의 인기는 이제 데이빗과 마크의 통제를 훨씬 넘어서 있었다. 로라 파머라는 매력적인 장치는 이 시리즈를 매주 챙겨보는 시청자들이 꼭 알아야 할 문제가 되었고, ABC의 중역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엄청난 압력을 매주 데이빗과 마크에게 행사하고 있었다. 

"누가 로라 파머를 죽였는가?

 

게다가 내부적인 문제도 있었다. 데이빗은 잘 직조된 시나리오로 영화를 찍기 보다는, 항상 현장의 즉흥성에 영감을 받아 작업을 해왔다. 그가 처음에 작업한 시나리오와 그 결과물인 영화를 비교해보면, 그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는 것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인상주의 화가처럼 이야기의 재현보다는 분위기를 카메라에 담아낸다. 그런 그에게 매주 완성된 이야기로 정해진 시간 내에 드라마를 ‘납품’해야 하는 사실은 <트윈 픽스> 시리즈를 조금씩 멀어지게 했다. 한창 시즌 2를 준비해야 할 때에 그는 <광란의 사랑>을 만들었고, 시즌 2가 진행할 때는 안젤로 바달라멘티와 줄리 크루즈와 함께 뮤지컬 공연까지 기획했었다. 게다가 계속되는 압력으로 그는 결국 백기를 들었다. 시즌 2의 초반부에 그는 결국 밥의 실체를 드러냈다.   

 

데이빗은 이 결정을 두고두고 후회했다. 그는 이것을 "매일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른 것"이라 얘기했다. 원래의 시놉은 장 르노와 윈덤 얼, 그리고 밥이 시즌 2의 중반부에서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펼치는 것으로 정했었는데, 밥의 등장으로 장 르노와 윈덤 얼에 대한 이야기는 뒤로 미루어졌기 때문이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만일 계획대로 했었다면, <트윈 픽스>는 현실의 위협과 초자연적인 공포가 뒤섞인, 지금보다 더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됐을 것이다.  



 

 

3. 또 다른 살인  

문제는 과연 밥의 영혼이 씐 인물을 누구로 할 것인 지였다. 대부분의 시청자들과 심지어 드라마의 스태프들조차도 로라를 죽인 범인은 벤자민 혼이라 생각했었다. 그것은 당연한 추리다. 그는 이 마을에 사는 그 누구보다도 사악했으니까. 그리고 처음 시작된 아이디어도 ‘금발의 소녀가 지역 유지와의 스캔들로 살해당하는 이야기’에서 출발했으니 이는 얼핏 당연하게 느껴진다. 드라마가 아무리 초자연적인 이야기를 펼친다 하더라도, <트윈 픽스>는 현실에 바탕을 둔 드라마지 <환상 특급>이 아니기 때문이었다(물론 지금은 그 계보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지만).  

데이빗과 마크는 범인을 벤자민, 자코비, 리랜드로 압축했다. 그리고 로라의 사촌인 매들린을 살해하는 장면을 찍기 전, 자코비를 탈락시키고 벤자민 역의 리차드 베이머와 리랜드 역의 레이 와이즈를 불러 촬영 준비를 했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 데이빗은 의자에 앉아있는 레이에게 다가가 그 앞에 쭈그려 앉은 뒤 이렇게 말했다. “미안하네, 레이. 자네가 살인자야.”    



 

레이 와이즈는 이번 에피소드를 찍기 전까지, 한 번도 자신이 살인자라는 것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밥의 실체가 드러나고서부터 그의 연기 톤이 달라진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다. 범인의 실체에 관한 사실은 데이빗 린치, 마크 프로스트, 레이 와이즈, 리차드 베이머만 알고 있었다. 때문에 드라마가 방영되기 전까지,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비밀 유지를 위해 매들린이 밥에게 살해당하는 장면은 한번은 벤자민 혼, 다른 한 번은 리랜드 파머, 마지막 한 번은 악령 밥, 이렇게 세 번을 찍었는데, 상대역인 쉐릴 리가 거의 죽을 고생을 했다. 게다가 그녀는 살해당한 로라 파머 역까지 맡았으니, 왠지 안쓰럽게까지 느껴진다.  

"그리고 그 말을 듣고 생각했어요.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4. Cinematic Magic  

걸작으로 칭송받는 영화를 보면 말로는 설명할 수 없고,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장면들이 있기 마련이다. 이런 장면들은 영화의 완성도와는 상관없이 들어있어서 감동 혹은 경외감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인데, 데이빗 린치의 작품에서도 이런 장면을 여럿 발견할 수 있다. 이번 에피소드에서 로드하우스 장면도 그 중 하나다.  

로드하우스 장면은 스크립트에서는 짧게 묘사됐었다. 다나와 제임스가 해롤드 스미스에 대한 죽음을 언급하고 자리를 뜬 후에 데일과 해리, 통나무 여인이 로드하우스에 들어온다. 그리고 갑자기 데일은 거인의 환영을 본다. 그리고 그는 다른 살인이 벌어졌다는 것을 깨닫는다. 단순히 내러티브의 진행을 간략하게 언급한 장면을 데이빗은 전혀 다르게 만들었다. 이것은 데이빗의 연출 때문이 아니라, 줄리 크루즈의 노래 때문이었다.   





 

줄리 크루즈가 노래를 부르자 그 자리에 앉아있던 다나 역의 라라 플린 보일이 울기 시작했고 그 분위기는 촬영장을 감쌌다. 데이빗은 이 장면을 매디의 죽음 뒤로 편집해서, 살아있는 자들의 미안함과 무력함 그리고 슬픔을 형상화했다. 이 로드하우스 장면은 극장판 <트윈 픽스>의 마지막 장면과 대구를 갖는다. 끔찍함과 슬픔 그리고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데이빗 린치의 가슴시리는 장면이다.  











 

이번 에피소드에서 줄리 크루즈가 부른 곡은 「Rockin' Baby Inside My Heart」와 「The World Spins」다. 두 곡 모두 데이빗 린치가 작사를 하고, 안젤로 바달라멘티가 작곡을 했다.  

 

  

5. 누락된 이야기들  

마크 프로스트가 쓴 스크립트에는 다양한 이전의 미스터리가 연계되는 이야기가 들어있으나, 데이빗이 감독한 에피소드에는 대부분 삭제되어 있거나 축약되어 있다. 마크 프로스트가 언급한 부분 중 완전히 삭제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범행 장소인 열차에서 발견한 노트는 해롤드 스미스의 집에서 발견된 로라 파머의 일기장에서 찢은 종이와 동일한 것으로 판명됐다. 범인은 로라를 죽이기 전에 일기장에 손을 댔고, 위협을 느낀 로라는 일기장을 해롤드에게 맡긴 것으로 추정된다. 마이크 역시 해롤드의 집에 가보지만, 이곳엔 밥이 왔던 흔적이 없다는 것으로 보아 해롤드와 밥의 상관관계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외팔이 필립 제랄드는 헤로인 중독이지만, 헤로인을 맞지 않으면, 마이크로 변한다. 문제는 오랜 시간 헤로인을 복용하지 않으면, 숙주인 마이크가 견디지 못한다는 것이다. 의사 윌 헤이워드가 데일을 찾아와 필립의 상태를 설명해주지만, 밥을 잡기 위해 데일은 헤로인 투여를 막는다.  

피트 마르텔이 해리 보안관을 찾아와 조시가 떠난 사실을 이야기한다. 그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같이 있던 동양인 남자에 대한 이야기가 서로 어긋나는 것을 발견한다. 피트는 그를 사촌으로 알고 있는 반면, 해리는 그를 비서로 알고 있다. 이 어긋난 진실은 조시에 대한 의심을 하게 만든다.  

 

 

6. 기억할만한 지나침  







 

데이빗 린치는 의도적으로 매디를 로라의 사진과 함께 보이도록 했다. 매디는 이곳 트윈 픽스에서 로라 파머로 여겨졌다. 매디의 죽음은 로라의 죽음과 반복이며, 이는 첫 번째 살인인 테레사 뱅크스와 대구를 이룬다. 세 번의 살인이 발생했지만, 결국 로라가 세 번 죽은 것이다. 

 





 

사라가 계단에서 내려오는 장면은 <주온> 시리즈에서 인상적인 귀신 가야코를 연상시킨다. 그래서일까? 그레이스 자브라스키는 <주온>의 영어 버전인 <그루지>에 캐스팅되어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다.  

  



또 다른 살인이 벌어지기 전, 사라는 방에서 말(馬)의 환상을 보고 기절한다. 말은 여러 가지를 떠오르게 하는데, 에모리 베티스가 언급한 순결한 처녀인 유니콘을 연상하기도 하고, 로라가 어렸을 적 벤자민 혼에게 생일 선물로 받은 말을 떠오르게도 한다. 그 어떤 것을 연상하든 사라가 본 말은 로라가 연상되며, 결국 이 집에서 또 다른 순결한 처녀가 살해당할 것이란 강한 암시를 나타낸다. 그리고 시리즈의 거의 마지막 회에서 말(馬)은 다시 한 번 기괴한 모습으로 등장해 보는 이를 거의 패닉 상태로 몰고 간다.

 

 

7. 덧붙임  

a. 대부분 사실에 기초하여 썼고, 개개의 세부사항은 사실에 부합하지만,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사실의 전후부분이 바뀐 경우도 있습니다.  

b. 컨텐츠 중 캡쳐 이미지에 대한 권리는 해당 저작권사에게 있습니다.  

c. References
- 『Lynch on Lynch, Revised Edition』 크리스 로들리, Faber & Faber
- 『데이빗 린치의 빨간방』 데이빗 린치, 곽한주 옮김, 그책
- 『TWIN PEAKS #2.007』 스크립트, 3rd Revisions
- 〈Twin Peaks: Definite Gold Box Edition〉 Lynch/Frost Productions, CBS DVD, Paramount Home Entertainment
- 〈Twin Peaks: Fire walk with me〉 Lynch/Frost Productions, CIBY2000, New Line Cinema
- 위키피디아 http://en.wikipedia.org/
- IMDB http://www.imdb.com/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6월 2주

 

이번에 개봉하는 <H2: 어느 살인마의 가족 이야기>는 롭 좀비 감독의 <할로윈: 살인마의 탄생>의 속편입니다. 국내 포스터 제작사가 어디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상단 우측부에 표시된 <2009 충무로 국제 영화제 공식 상영작>이란 문구를 보고 거의 쓰러졌습니다. 이런 센스쟁이들 같으니라고. 이건 누가 보더라도 '칸 영화제'같아 보이는데!  

<할로윈> 이야기를 하기 위해선 존 카펜터 감독의 원작을 이야기해야 하지만, 그보다 먼저 감독 롭 좀비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역겹고 기상천외한 상상력으로 4편의 영화를 만들어온 감독 롭 좀비(Rob Zombie)는 1990년대 음악계의 한 구석을 차지한 화이트 좀비(White Zombie)의 리더입니다. 마를린 맨슨과 마찬가지로 이들의 음악은 온갖 금기시 되는 내용이 다 들어가 있습니다. 아마도 번역된 가사를 읽으신다면 청심환이 필요할지도 모르겠어요. 그만큼 이들의 음악은 듣는 이를 불안하게 만들고 끊임없이 이 세계를 회의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롭 좀비가 감독 선언을 하고 만든 작품이 있으니 바로 <살인마 가족(House of 1000 Corpses)>입니다.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토브 후퍼 감독의 <텍사스 전기톱 살인사건>의 구성을 취하고 있습니다. 여행을 떠나는 젊은 남녀들이 어떤 외딴 집에 들르게 되는데, 그 집은 가족 전체가 살인마라는 이야기! 영화의 원제처럼 그들이 머무는 집에는 1000구가 넘는 시체들로 쌓여있고, 영화는 시간, 악마주의, 생체실험, 인육식사 등 온갖 금기시되는 것들이 흘러듭니다. 문제는 이 모든 것들이 단순히 유희에 끌려있다는 점입니다. 어떠한 쾌락도 없고 반성도 없이 영화는 그저 변태적 고문 쇼를 나열하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면 정말 "내가 왜 이런 영화를 보고 있나"하는 한심한 생각이 들 정도로 영화라는 매체와 공포라는 장르에 대해 회의를 불러일으킵니다. 매체와 장르에 대한 자기반성? 그렇다고 보기에 이 영화는 너무 치기어리고, 야심이 가득하며, 게다가 자신의 취향까지 꾹꾹 눌러 담은 신인감독의 영화입니다. 살인마 가족이라는 구성과 각 캐릭터는 놀랍고 친근하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아찔하지만, 영화는 그 이상을 나가지 못했습니다. 이 영화는 2001년에 유니버셜에서 제작했으나, 너무 지루하다는 이유로(롭 좀비의 말에 따르면 너무 끔찍하다는 이유로) 공개를 하지 않다가 감독 자신이 판권을 사서 캐나다 영화사 라이온스 게이트에 팔아 2003년에 개봉했습니다. 뮤지션 출신의 영화감독은 한 편의 해프닝으로 끝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 그가 2005년에 <살인마 가족2(The Devil's Rejects)>를 내놓았습니다. 이 영화는 정말로... 끝까지 간 영화입니다. 영화는 전편의 이야기에서 바로 시작합니다. 경찰들이 이 가족의 존재를 알아채고 들이닥칩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경찰들이 죽고, 살인마 가족들도 무사하지 못합니다. 베이비, 오티스, 스폴딩(딸, 아들, 아빠의 관계)만 도망치고 이들은 추격을 받게 됩니다. 이 도주 상황에서도 이들 가족은 끔찍한 유희를 벌이는데, 잔인한 장면은 없지만, 정서적으로 정말 견디기 힘든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들은 정말로 '악마도 거부'할 것 같은 무시무시한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을 쫓는 보안관 윌리엄 또한 이들과 별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는 공권력의 힘을 한껏 이용하여 전편에서 죽은 그의 형에 대한 복수를 합니다. 살인마 가족들은 결국 그에게 잡히고, 그는 가족들에게 그들이 행한 고문을 똑같이 합니다. 여기서부터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바뀌는데 보는 이의 입장에서는 살인범을 처단한다는 통쾌함의 쾌감보다는 피해자 입장의 안타까움을 느끼는 기이한 경험을 합니다. 물론 이런 주제는 크쥐시도프 키에슬롭스키 감독이 <살인에 관한 짧은 필름>에서 이미 다룬 주제이지만, 롭 좀비는 극단까지 밀어붙입니다. 아무런 죄의식 없이 단순한 유희로 1000여명을 학살한 괴물들을 그와 똑같이 고문한다면, 우리는 그 자격이 있는 것인가? 아니, 우리는 견딜 수 있을까? 우리도 똑같이 괴물이 되는 것 아닐까? 롭 좀비 감독은 아주 지독한 방법으로 우리에게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현란한 액션과 고문 사이에서.   

 

그래서일까요? 존 카펜터 감독의 <할로윈>을 리메이크한다고 했을 때, 여러 감독이 물망에 올랐지만, 결국 낙점된 것은 롭 좀비였습니다. 이 두 작품을 본 관객들은 도대체 롭 좀비가 어떻게 <할로윈>을 그려낼지 궁금했습니다. 존 카펜터 감독의 <할로윈>은 사실 급조된 프로젝트입니다. 제작사측에서 할로윈에 개봉할 기획영화를 준비하고 있던 차에 존 카펜터가 바로 수락하고 한 달이 안 되는 기간에 영화를 만들었지요. <할로윈>은 '부기맨' 이야기와 보모 이야기를 결합한 싸이코패스 스릴러입니다. 살인마의 시점으로 그려낸 영화의 오프닝은 오손 웰즈의 <악의 손길>에 맞장 뜰만 하고, 시네마스코프 사이즈를 최대한 활용한 마이클 마이어스의 등장과 제이미 리 커티스의 비명은 그야말로 명불허전입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업적은, 가면 쓴 살인마의 원형을 만들어냈다는 점입니다. 이후 80년대 이후 슬래셔 영화에서 <할로윈>의 영향을 벗어난 영화가 얼마나 있는지 한 번 확인하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존 카펜터 감독의 <할로윈>은 설명을 하지 않습니다. 상황을 보여주고, 진행을 한 후 조금씩 그 빈자리를 정보로 채워주지만, 그 정보가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짐작만 있고 설명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등장인물들은 무력하게,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합니다. <할로윈>뿐 아니라, 70년대에 등장한 많은 영화들, 윌리엄 프레드킨의 <엑소시스트>, 브라이언 드 팔마의 <캐리>, 리처드 도너의 <오멘>, 토브 후퍼의 <텍사스 전기톱 살인사건>, 데이빗 린치의 <이레이저 헤드> 등의 영화들이 다 그렇습니다. 설명은 없고 불긴한 기운이 감돌며 엔딩은 거의가 배드엔딩이지요. 이런 분위기는 당시 베트남 전쟁의 분위기와 맞물려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이 사력을 다해 참전한 베트남 전쟁은 지옥을 보여주었고, 그 지옥은 설명되지 않는 현상이었습니다. 그 당시의 분위기는 "아마도 지금이 종말에 가까운 순간"이라 느꼈으며, 그 당시를 반영한 이런 공포영화들은 선은 악을 이기지 못하고 혹은 이기더라도 그 악은 사라진 게 아니며, 진정한 구원은 자신만의 세계로 침전하는 것뿐이라는 탄식에 가까운 절망을 보여주었습니다.   

 

롭 좀비 감독이 리메이크한 <할로윈: 살인마의 탄생>은 원작에서 10여분에 그린 이야기를 한 시간에 걸쳐 이야기합니다. 이 부분이 <할로윈> 리메이크의 강점이자 단점입니다. 강점이라 생각되는 이유는 원작에서 설명을 하지 않았던 부분을 주의 깊게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는 마이클 마이어스가 내면이 텅 빈 인물임을 알고 있지만, 그 깊이가 얼마나 깊은지 알지 못합니다. 롭 좀비는 그 깊이를 보여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작에서는 유령같이 보였던 마이클이 리메이크에서는 실체가 부여됩니다. 게다가 원작에서는 무차별적인 살인이 리메이크에서는 어느 정도 개연성을 찾게 되었습니다. 바로 '가족'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런 개연성이 반대로 영화의 공포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점입니다. 원작의 무차별적 살인은 그 누구도 안전할 수 없다는 공포를 불러일으키지만, 리메이크에서는 그 공포가 한 발 비껴 있습니다. 가족이라는 안전장치 때문이지요. 하지만, 롭 좀비의 리메이크는 원작과 버금가는 흥미로운 작품입니다. 플래티넘 듄스가 어설프게 리메이크한 일련의 작품들보다 스튜디오에서 기획한 고전들의 리메이크보다, 훨씬 창의성 있는 리메이크입니다.  

흥미롭게도 롭 좀비 감독이 그리는 세계는 (<그라인드 하우스>에서 감독한 가짜 예고편 <나치 친위대의 늑대여자(Werewolf Women of the SS)>를 제외한다면) 모두 1970년대입니다. 그는 1970년대와 가족이라는 구성체에 대해 (스필버그와는 정반대의 접근으로) 끈질기게 질문합니다. 전작 <할로윈>에서는 어린 마이클 마이어스의 내면의 텅 빔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이번 속편 에서는 바로 마이클 마이어스라는 괴물을 탄생시킨 가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따라사 이 영화는 상당히 호불호가 갈리는데, 마이클 마이어스의 이야기를 변질시켰다는 분노도 있는 반면, 새로운 접근이라는 찬사도 있습니다. 물론 영화를 보면서 무엇을 선택할지는 관객의 자유입니다. 

  

*덧붙임: 

롭 좀비 감독의 가짜 예고편 <나치 친위대의 늑대여자>를 보시면 이 감독의 취향이 어떤지 조금 짐작할 수 있습니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ephistopheles 2010-06-09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이트 좀비라는 그룹에서 음악하는 아저씨가 영화도 아주 자기가 하는 음악 분위기와 딱 맞춰서 만들더군요..^^

Tomek 2010-06-10 08:26   좋아요 0 | URL
보기에 꽤 힘들더군요. <살로 혹은 소돔의 120일>만큼의 정서적 고문이랄까. 파졸리니는 파시스트에 대한 이야기로 풀어놓았지만, 롭 좀비는... 아직까지 뭐라 평가하기는 좀 그렇지만, 그저 그런 시시한 영화들과는 달리 제 맘 속에 남더군요. 일라이 로스의 <호스텔>은 애교 수준인 것 같더군요. ㅠㅠ

Mephistopheles 2010-06-10 10:09   좋아요 0 | URL
음악이나 영화나 극단으로 열심히 달려나가는 아저씨니까..앞으로 어떤 사고(?)를 칠지...궁금합니다. 그리고 전 H20에서 마이클 마이어스의 집착의 대상인 누나(제이미 리 커티스)에거 도끼로 목이 댕강 날라가는 걸 보고 아 이제 프래디와 제이슨만 남는구나 했는데....부활하더군요...ㅋㅋ

Tomek 2010-06-10 15:54   좋아요 0 | URL
식칼 하나로 호러계를 평정한 전설인데 그만한 예우는 갖춰야죠~ :)
고맙습니다.

카스피 2010-06-10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우 정말 대단한 영화 분석이네요^^ 그나저나 공포 영화라 여름에 보면 더위가 싹 달아나겠죠^^

Tomek 2010-06-10 15:56   좋아요 0 | URL
문제는 식상한 공포영화들이 너무 많다는 게 문제겠죠. 아마 90% 이상은 쓰레기가 확실합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감식안이 철저하게 필요한 장르인 것 같아요.
고맙습니다~ :)
 

 

 
        〈TWIN PEAKS〉
        시즌 2 
        에피소드 6 (14)
        타이틀 Demons
        각본 Harley Peyton, Robert Engels 
        감독 Lesli Linka Glatter
        방영일 1990
년 11월 3일 
 

 

   
 

        <시즌 2 지난회 보기>
       
9. May the Giant Be with You
        10. Coma
        11. The Man Behind Glass 
        12. Laura's Secret Diary 
        13. The Orchid's Curse

 
   

 

 

1. 이야기  

다나와 매디는 제임스의 도움으로 해롤드의 집에서 빠져나온다. 해리는 오드리를 납치한 사람이 르노 형제의 맏형 장 르노임을 확인하고, 그가 데일에게 복수를 원한다는 것을 알아낸다. 쿠퍼의 상관 고든 콜이 데일에게 윈덤 얼의 메시지를 전한다. 데일은 장 르노와 윈덤 얼 두 명에게 위협을 받고 있는 셈이다.  

조시는 홍콩으로 떠나기 전, 벤자민에게 자신의 몫을 받아낸다. 해리는 조시를 막지만, 조시는 해리의 안전을 위해 떠난다.  

바비와 셜리는 출소한 리오를 집에 데려와 축하 파티를 연다. 하지만, 다달이 받는 보험금의 액수가 예상보다 적어 실망한다.  

외팔이 필립을 보안관보 호크가 데려온다. 필립은 마이크의 모습을 드러내고 살인자 밥이 그레이트 노던 호텔에 묵고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2. 클라이맥스  

이번 6화부터 9화까지는 <트윈 픽스> 시리즈의 최대 절정부분이라 할 수 있다. 음산한 분위기만 드러났던 지금까지의 이야기와는 달리, 로라 파머를 죽인 범인, 밥의 실체가 드러나고 검거되는 이야기가 포함됐기 때문이다.  

물론 이야기가 갑작스레 절정으로 치달아가는 이유는 빨리 범인을 드러내라는 ABC 방송국의 엄청난 압력 때문이었다. 이 엄청난 압력을 견디지 못한 데이빗 린치와 마크 프로스트는 결국 요구에 굴복하고 범인을 드러내기로 결정했다. 때문에 느긋하게 진행되던 지금까지의 이야기와는 달리 이제 이야기는 로라를 죽인 범인을 향해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물론 이 같은 결정은 데이빗과 마크가 <트윈 픽스> 시리즈를 떠나게 하는 결심을 하게 했다. 좀 더 자세한 이야기는 데이빗 린치가 감독한 다음 에피소드에서 밝히기로 한다.  

 

  

3. 여성 감독  

레슬리 링카 글래터(Lesli Linka Glatter) 감독은 <트윈 픽스> 시리즈에 몇 안 되는 여성 감독이다. 이들이 감독을 맡은 부분은 등장인물들의 감정의 결을 드러내는 섬세한 부분이 많이 있는데, 이번 회에서도 그런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여담이지만, (특히 아카데미로 대변되는) 영화계는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보수성이 강하다. 그래서인지 영화를 이끌어가는 프로듀서나 감독을 여성이 맡는 것을 상당히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다. 역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에 노미네이트된 여성 감독이 몇 명인지, <에일리언 2(Aliens)>에서 여성 프로듀서인 게일 앤 허드(Gale Anne Hurd)가 영화 촬영 시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 확인해보면 쉽게 느낄 수 있다. 

  

이번 아카데미에서 캐서린 비글로우(Kathryn Bigelow) 감독이 아카데미에서 ‘여성’ 최초로 감독상을 받았지만, 아카데미가 정말 ‘여성’ 감독에게 상을 수여한 것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캐서린 비글로우의 영화는 남성들의 취향에 가깝지, 여성을 대변한다고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물론 그녀의 수상을 비하하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충분히 상을 받을 작품을 만들었으니까.  

 

 

4. 선과 악  

제임스와 다나는 <트윈 픽스>에서 가장 강력한 민폐를 끼치는 커플들이다. 이들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살해당하거나, 자살하거나, 혹은 살더라도 심각한 부상을 당한다거나, 감옥에 가는 등 이전의 삶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다. 어쩌면 로라도 이들과 어울렸기 때문에 죽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들의 주변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물론 제임스와 다나는 연인이자 오랜 친구인 로라 파머의 죽음을 파헤치기 위해서 스스로 고군분투 하는 것이지만, 이들의 개입은 끔찍한 결과만을 불러일으킨다. 로라의 비밀 테이프를 가지고 있는 정신과 의사 자코비에게는 그가 사랑했던 로라를 현실 세계에 불러내 그의 마음을 상처 입혔다. 그리고 로라의 비밀 일기를 가지고 있는 해롤드에게는 그의 마음을 흔들어 놓은 후 그를 배신하고 상처입혔다. 제임스와 다나의 의도는 선한 것이지만, 그들의 방법은 악하다. 아무리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악한 결과를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트윈 픽스에 악이 존재하고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로라는 악을 피해 해롤드의 집으로 피하곤 했지만, 다나는 악을 이끌고 해롤드의 집으로 들어갔다. 그의 안전한 가옥은 더 이상 안전하지 못하다.  

 

  

5. 사랑에 목이 메다  

<트윈 픽스>의 정조는 (앞에서도 밝혔듯이) 사랑이다. 드라마에는 얽히고설킨 커플들의 사랑 이야기가 수를 놓으며, 이들의 사랑은 애절해 보인다.  

제임스, 다나, 매디, 해롤드의 애정 관계는 제임스와 다나의 극적인 화해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다. 때문에 매디와 해롤드는 상처를 입는다.  





 

데일과 오드리 역시 사랑을 확인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이성간의 사랑이 아니다. 데일은 끝까지 자신의 선을 지킨다. 데일과 오드리의 관계는 자매 혹은 부녀간의 사랑이다. 그 자리에 친부인 벤자민이 끼어들 자리는 없다.   







 

바비와 셜리는 식물인간 상태인 리오를 앞에 두고 리오의 죄를 물으며, 그 앞에서 애정 행각을 벌인다. 리오는 이때부터 조금씩 (분노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보안관 해리는 떠나는 조시를 붙잡고 사랑한다고 이야기하지만, 조시는 머뭇거리며 떠난다. 그녀는 자신이 떠나지 않으면 해리가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엔 정답이 없고, 윤리 또한 벗어나지만, 이와 같은 엇갈림은 보는 이의 안타까움을 배가시킨다. 사랑과 죽음. <트윈 픽스>는 선과 악, 에로스와 타나토스가 공존하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그리고 있다.  

 

  

6. 협약 위반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항상 선을 지키는 데일 쿠퍼는 트윈 픽스에 와서 협약을 두 번 위반했다. '애꾸눈 잭'은 캐나다에 있기 때문에 수사를 벌이려면, 캐나다 당국과 협의가 이루어져야 했으나, 데일은 무시하고 바로 감행했다. 그는 그렇기에 오드리가 납치되어 위험에 빠졌다고 자책한다.  

그는 이런 자신의 행동으로 이미 사랑하는 한 사람을 잃었다. 그 사람은 전 파트너 윈덤 얼의 아내였고, 윈덤 얼은 지금 데일에게 복수를 하려 한다. 장 르노 역시 자신의 동생 둘을 잃었다. 그 또한 데일 쿠퍼가 이곳에 왔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긴 것이라 생각하고 데일을 죽이려 한다. 데일은 로라를 죽인 살인범 밥을 추적하면서 동시에 윈덤 얼과 장 르노의 복수도 대비해야한다. 이 모든 것의 발단은 데일의 협약 위반으로 생긴 일들이다. 선의를 가진 행동이 위험을 불러일으킨다.  

 

  

7. 불 (Fire)  

로라의 범행 현장에서 발견한 쪽지에는 “불이여, 나와 함께 걷자(Fire, Walk with me)"는 경구가 쓰여 있다. 불은 여러 의미로 쓰인다. 어둠을 밝히는 희망의 도구로도 여겨지지만, 불행히도 <트윈 픽스>에서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였다. 고통, 분노, 욕망, 지옥의 의미를 담고 있는 불은 로라의 죽음과 살인마 밥의 행적을 통해 더욱 더 미스터리하게 나타나고 있다.   



 

로라의 죽음뿐 아니라, 제재소 방화 사건에서도 불을 볼 수 있다. 이 방화 사건은 수많은 사람들의 직업을 앗아갔으며, 가진 자들의 음모로 비롯됐다. <트윈 픽스>에서의 불은 죽음과 탐욕을 가리킨다. 그런 불과 함께 걷자는 밥의 제안은 상당히 섬뜩하게 들린다.  

   

8. 기억할만한 지나침  







윈덤 얼은 체스 말의 움직임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냈다. 조시와 벤자민 역시 자신들의 밀고 당기기를 체스로 표현했다. 체스는 게임이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의 목숨을 담보로 게임을 치루고 있다.  

 



리랜드 파머는 벤자민 혼의 사무실에서 박제된 동물의 털을 주머니에 넣는다. 아마 이번 회에서야 데이빗과 마크는 로라 파머를 죽인 범인을 정했음이 분명하다.  

 



리랜드가 그레이트 노던 호텔에서 부르는 노래는 <왕과 나(King and I)>에 삽입된 「Getting to know you」다.  

 

피트 마르텔은 일본인 사업가 토지무라에게 끌린다. 그의 거칠고 냉소적인 말투에 어딘가 모르게 끌리기 때문이다. 토지무라의 정체는 다음 회에 나온다.  

 

 

9. 덧붙임  

a. 대부분 사실에 기초하여 썼고, 개개의 세부사항은 사실에 부합하지만,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사실의 전후부분이 바뀐 경우도 있습니다.  

b. 컨텐츠 중 캡쳐 이미지에 대한 권리는 해당 저작권사에게 있습니다.  

c. References
- 『Lynch on Lynch, Revised Edition』 크리스 로들리, Faber & Faber
- 『데이빗 린치의 빨간방』 데이빗 린치, 곽한주 옮김, 그책
- 『TWIN PEAKS #2.006』 스크립트, 4th Revisions
- 〈Twin Peaks: Definite Gold Box Edition〉 Lynch/Frost Productions, CBS DVD, Paramount Home Entertainment
- 위키피디아 http://en.wikipedia.org/
- IMDB http://www.imdb.com/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