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리커버 특별판, 양장) -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룰루 밀러 지음, 정지인 옮김 / 곰출판 / 2021년 12월
평점 :
품절


 올해 초 책좀 읽는다 하는 사람들마다 추천하는 책이 있었다. 본래 영화든 책이든 이런 책을 의도적으로 패스하려고 하는 터라 초반엔 못 본 척 지나치곤 했다. 하지만 신간도서의 전투적 마케팅이라고 하기에 리뷰들은 너무 진지했고 꾸준히 이어졌다. 올해가 반도 안 지났는데 '올해의 책' 운운하는 것은 다소간 성급해보이기도 했지만 내 궁금증이 비로소 움직였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도서관 서가에서 이 책을 꺼내 빌린 후 읽어내려간 문장은 불명확하지만 아름다웠다. 그 불명확성에 의아함이 더해지면서 의도를 파악할 수 없어 힘들기도 했다. 그래서, 룰루 당신,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거죠? 하지만 아름다움 때문에 끝까지 다 읽어낼 수 있었고 사람들의 평가에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었다. 단순히 분류학의 오류를 짚어낸 책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이 책은 대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책에 가까웠다. 그래도 내겐 '올해의 책' 정도는 커녕 그달의 책도 되지 못했다. 그 달 내가 꼽은 베스트책은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였다. 초반에 너무 헤맨 탓일까?


9개월이 지나 다시 읽게 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이미 알고 있는 상태에서 읽는 것이기에 좀더 집중하며 읽을 수 있었다. 반전은 이제 중요한 재미가 아니다. 처음 읽었을 때 나완 좀 결이 다르지만 작가가 추앙한 대상이라고 하니 강제적으로 좋은 점을 찾으려 했던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이제 처음부터 숭배의 대상이 아니다. 그는 그저 오만함을 정기적으로 복용한 사이코패스에 가까웠다. 자기가 연구하는 대상에 가차없이 바늘을 꽂고 독을 풀다니, 처음 읽었을 때 불쾌한 감정이 이젠 무엇 때문인지 명확해졌다. 자기 멋대로 질서를 부여하고 질서에 벗어나는 것을 참지 못했던 사람, 물고기가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사람, 그저 자신이 만든 질서를 지키는 데에만 평생을 할애한 사람이었던 데이비드 스타 조던을 더이상 좋게 보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런데 그게 또 맘이 편하지만은 않은 게 그의 맹목적인 모습 속에 언뜻언뜻 내가 보였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질서를 추구하는 걸지도 모른다. 나 역시도 내 머릿속에서 폭력적으로 질서를 만들고 그에 따라 행동했을 지도 모른다. 그게 편하니까. 그런 나의 모습이 떠올라 가끔 부끄러웠다. 나는 데이비드처럼 큰 힘을 가지지 않았으니 나의 행동은 내 가까운 사람들에게만 영향을 주었겠지만. 


다윈의 진화론 이래 사람들은 다윈을 들먹이며 얼마나 진화론을 자기 입맛대로 이용했을까? 루이 아가시와 데이비드 스타 조던, 히틀러....힘을 가진 사람들의 무자비한 줄세우기는 다양성을 존중하고 기꺼이 환영했던 다윈의 생각과 반대였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커져버렸다. 우리가 말하는 어류, 자연의 질서가 아닌 인간 편의의 질서로 분류된 어류 역시 마찬가지이다. 아직도 우리는 학교에서 척추동물의 다섯번째로 어류를 배우고 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데.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질서를 창조했을 때, 설사 그때는 그것이 옳았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왜 우리는 아직도 어류를 배우는 거지? 한 번 만들어진 이름을 지우는 것이 이렇게나 힘들다는 걸, 자신이 분류한 성과가 이렇게 견고하다는 걸 알면 데이비드 조던은 저 세상에서도 웃고 있을까? 얄밉다. 그는 사는 동안 멈춤이 없이 질주했고 질서라는 이름 하에 현재의 혼란을 만들어버렸다. 과학적 사실에는 언제나 '현재까지 밝혀진 바로는'이라는 전제가 붙어서 제시되어야 한다. 


하지만 불멸하는 진리는 우주 안에서 인간은 매우 작은 존재라는 점이다. 우주와 자연을 공부할 때면 한없이 작아지는 인간의 존재를 알게 된다. 그때마다 느껴지는 허무감은 내 인생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혼란을 주기도 했다. 혼돈은 아름답지만 때때로 그 혼돈 때문에 사람은 미치기도 한다. 그 혼돈을 참지 못해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무자비한 질서를 만들어냈고 나는 혼돈 그 자체가 그다지 큰 의미는 없었기에 그 안에서 적응하려고 했다. 그저 삶을 살아내는 존재로서의 인간이 되자. 그것은 겸손과 비슷한 말이기도 하지만 겸손이라고 이름붙이기엔 보잘 것이 없었다. 겸손이라고 이름을 붙이면 내 삶이 내내 겸손해져야 할 것만 같아 내키지 않는다. 이름이란 그렇게 무서운 것이다. 하지만 민들레 법칙이라는 이름은 무척 맘에 든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자연의 한 구성원으로서 한 사람은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람의 가치는 그런 물질적 가치만 가지지 않는다. 나는 너에게, 너는 우리에게 중요하다. 그것이 민들레 법칙이라고 하는데 이 부분을 읽으면서 불안감이 해소되었다. 허무하지 않구나 인간의 삶은.


처음엔 분류학을 얘기하면서 이렇게 장황하게 말할 필요가 있었나 의아했던 점이 두번째 읽으면서 그 장황한 문장에 반해버렸다. 흐느적흐느적 한 느낌도 드는데 과학책에 가졌던 특정한 문체라는 프레임을 나 역시 만들었었나 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마음을 계속 갖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함께 흐느적거리며 룰루 밀러의 성장담에 나를 맡겼다. 룰루의 삶은 다른 모든 사람들의 삶처럼 혼돈 덩어리이다. 세상은, 자연은, 인간의 삶은 하나의 이름으로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자존감은 높았다가도 낮아지고 다시 높아지기도 한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과 같이 자기기만을 건강식품처럼 계속 복용하며 자존감을 가장 꼭대기까지 올려 살아간 사람의 모습이 롤모델로 멋져보일 수는 있겠지만 환각에 빠진 사람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그가 죽는날까지 그 모습 그대로 개인적인 행복을 느끼며 살았다는 게 영 얄밉지만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언제든 틀릴 수 있는 존재라는 점을 배운다. 내 옆에서 재잘되는 아이의 말이 오늘은 틀려도 내일은 옳을 수 있고 반대로 오늘 옳았던 내 말이 내일은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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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2-11-29 1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사서 읽다 말았네요.

갠춘다 해서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접어 버렸네요.

마저 다 읽어야겠습니다.

그렇게혜윰 2022-11-29 22:26   좋아요 0 | URL
두 번 읽어도 좋은 책인데요 ㅋㅋㅋㅋ
 

진화는 기회주의적이다. 아예 새롭게 무언가를 만들어 내기 보다는 기존에 있는 것을 땜질해 쓰는 경향이 있다. - 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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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리 정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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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한 문장] 연필로 쓰기



자기 시대의 가수 노래가 제일 든든하듯
자기 시대의 작가 글이 제일 공감이 많이 가는 듯 하다.

들을 말이 없는 게 아니지만 재미가 없다 내겐.




청중은 자기 시대의 가수들과 함께 나이먹어가고 있었다. 나는 내 또래 청중 속에서 동지들에 둘러싸인 듯 든든했다. 나는 신세대의 노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게 부끄럽지 않았다. 내생애의 음악은 풍요롭지 않지만 초라하지 않다.  - P194

박정희 소장이 한강을 건너올 때 비틀스가 따라왔다. 나는 한국 현대사에서 이 사태가 가장 난해하고 통쾌하다.
이것을 역사의 섭리라고 해도 좋을는지. 노래는 섭리다. - P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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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 시시비비를 가리다 보면 자칫 서로 수렁에 빠질 수 있습니다. - P38

어떤 한 가지 방법으로 아이를 바꾸겠다는 각오 보다는, 여러 방법으로 자극을 주면서 아이 스스로 고칠 때까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 물론 쉽지 않은 일입니다 . 그래도 선생님이 아이에게 지치지 않으려면 마음을 느긋하게 먹는 것이 좋습니다 . - P72

저는 ‘질서‘라는 이름으로 모두에게 똑같은 기준을 요구하는 것을 조심스러워하는 편입니다. 중요한 것은 학급이라는 공간에서 삶을 재미있게 살아가는 주도 집단이 형성되어 자발적인 학급 문화를 만드는 것입니다. - P76

살펴보면 교육은 숨 쉬는 것 하나하나가 모두 가능성입니다. - P84

아이의 행동이 오라서가 아니라, 그렇게나마 이해하려 할 때 대화가 시작되기 때문이지요. - P99

교실에서 벌어지는 어떤 활동이든 관건은 아이들의 ‘공감‘입니다 . - P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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