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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의 신간들을 쭉 찾아보다보니 유난히 내 취향인 책들이 많다. 이전엔 꼭 내 취향이 아니더라도 읽어보고 싶은 신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다면 지난달의 신간엔 내가 한번쯤은 만나봤을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 책들이 출간되어 유난히 반갑다.

 

<민음한국사 17세기 대동의 길>이 출간되었다. 올 초에 시작된 민음한국사 조선편의 세번째 책으로 이미 15세기와 16세기의 책을 읽었기에 이 책을 읽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민음 한국사의 가장 큰 장점은 뛰어난 편집과 알찬 사진 자료들이다. 책을 쓴 사람도 만든 사람들도 이 기획에 대한 애정이 높아 책이 잘 만들어진 좋은 예라고 생각한다.

<논어>에 대한 관심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저 아이들이 문제 상황에 있을 때 그 구절을 읽고 한번씩 써보게 하는 용도였는데 쓰기 전에 내가 몇 줄 씩 써주다보니 자연히 내가 그 글들을 취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이후 <논어>에 대한 책이 나올 때마다 관심을 가졌는데 마침 지난달 <한글 논어>가 출간되었다. 본격 <논어> 이전에 공자의 삶에 대한 내용도 있다고 하니 좀더 도움이 될 것 같다.

조선의 아름다운 여인이라고 하면 누가 떠오르려나, 대체로 기생인 황진이나 매창을 떠올리지 않을까? 하지만 소설 속의 춘향이를 빼놓으면 서운하지 않겠는가? <옛 여인에 빠지다>는 아름다움으로 많은 이들을 현혹시킨 한국 고전 소설 속의 여주인공을 다룬 책으로 이런 기획 자체가 무척 신선하다. 더구나 문장 좋기로 소문난 책들을 출판하기로 유명한 마음산책의 책이 아니던가! 그녀들의 삶, 지금 우리들의 삶과 얼마나 멀어져 있을까? 개미 한 마리 정도의 거리는 되려나?

 

 

 

 

 

 

 

 

 

 

 

 

 

 

<묵자>. 사실 묵자하면 유덕화의 얼굴만 떠오르는 묵자 무식쟁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궁금하다. 공자와 맹자의 사이에서 그는 무엇을 말하였을까? 이참에 야무지게 제대로 알아보고픈 마음이 생긴다.

지그문트 바우만을 언제쯤이면 제대로 읽어낼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몇 달 전 스스로에게 던진 적이 있다. 권수로 따지자면 세 권을 읽었건만 그저 그의 생각을 아주 엿볼 수 있었다. 하지만 역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늘 그의 생각을 알고 싶다. <희망, 살아 있는 자의 의무>는 인터뷰집이라고 하니 그래도 좀더 쉽게 더 많은 걸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이상하게 야심한 밤에 내 취향인 신간들을 소개하고 나니 침이 고인다. 허기진다. 채워줘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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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4-07-04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하~~ 바우만을 세 권이나 읽으셨다구요? 완전 멋지십니다~~
저는 한 권도 안 읽어봐서..... @@
<17세기> 표지가 완전 눈길을 끄는데요. 저도 15세기는 간단히 ㅋㅎ 훑어봤습니다.

그렇게혜윰님 취향과 제 취향이 언뜻 비슷한데요. 바우만 빼고요^^

그렇게혜윰 2014-07-05 09:19   좋아요 0 | URL
읽다가 이제는 접어야 하는갑다 하면서도 [부수적 피해]를 사두던 참에 새 책도 나왔네요^^

우리가 취향이 비슷하다는 것을 저도 느끼고 있었구만요^^
 
아빠와 함께 그림책 여행 아빠와 함께 그림책 여행 1
이루리 지음 / 북극곰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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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버닝햄, 레오리오니, 이보나흐미엘레프스카, 이수지, 이혜리, 피터레이놀즈,유리슐레비츠, 모리스샌닥, 데이비드스몰, 또 누가 있을까? 내가 좋아하는 그림책작가들 말이다. 이런 기호 때문에 대체로 책꽂이에 한 작품씩 있는 작가들에 비해 이 작가들의 책은 적게는 3권 많게는 8권씩 갖고 있다. 구매권이 나에게 있기 때문이다. 아이의 책 취향이 많은 부분 엄마의 취향에 영향을 받는 것은 이런 까닭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아이와 함께 책 고르는 시간이 많아지고, 아이 역시 나름의 선택 기준이 생기기에 그 영향력은 점차 옅어지고 있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아이와 엄마가 함께 그림책으로 아주 오랜 시간 여행을 하다보면 그 힘의 기울기가 조금씩 변하게 된다. 아이가 스스로 자신의 책을 잘 고를 때까지 엄마는 곁에서 함께 있어주면 된다.

 

이 책이 [아빠와 함께 그림책 여행]이라고 해서 이 책을 요즘 많이 출간되는 '아빠 육아서' 중 하나로 봐서는 곤란하다. 물론 이루리 작가는 엄마가 아닌 아빠이지만 이 책의 정체성은 '함께 그림책 여행'이지 '아빠'가 아니기 때문이다.  엄마든 아빠든 '함께' 그림책 여행을 떠난다는 것, 참 낭만적인 일이다. 앞서 말했듯 처음엔 여행의 키를 엄마나 아빠가 가져야겠지만 차츰 그 키를 아이에게 넘겨주기 위함이 이 여행의 목적이다. 물론 함께 아름다움을 즐긴다는 것은 여행의 본래 목적이기도 할 것이다. 이 즐거운 여행 안내서로서 [아빠와 함께 그림책 여행]은 무척 마음에 든다. 책에 관한 책들이 대체로 쓴 사람의 성향에 의존해야하기에 그 성향이 맞지 않으면 읽는 게 큰 의미가 없는 경우가 많은데 다행히 이 책을 읽으면서 작가님과 왠지 성향이 맞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가격이 좀 높게 형성되어 있는 것만 제외하면 흠잡을 곳이 별로 없다.

 

요즘 아들은 공룡의 세계에 빠져 있다. 늦게 배운 도둑질에 밤새는 줄 모른다더니 다른 남자애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공룡 사랑에 빠졌다는데 내 아이는 그럴 기미가 전혀 없었다. 사랑은커녕 질색팔색을 해서 '그 과'가 아니가보다 하던 터였는데 일곱 살이 되어 갑자기 '내 사랑 공룡'이 되어버렸다. 빠지면 질릴 때까지 하는 성격인지라 지금 좀 어려운 책들을 읽는 걸 보니 곧 나올 때가 되었다면 그간 공룡책을 사들인 것만 60권을 육박하고 있다. 그런데 공룡책들이 대체로 지식책인 경우가 많아 어떻게 하면 아름다운 그림과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는 책을 사줄까 하는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러면서 고른 책들이 데이비드 스몰의 [공룡이 공짜]나 장성훈의 [네 등에 집 지어도 되니?]라는 그림책들이다. 그 외에도 여러 그림책들을 골라주긴 했는데 좋아한 것도 있고 별 관심이 없는 것도 있다. 관심이 있던 책들은 위의 책들처럼 내가 공들여서 골라준 책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도서관 서가에 꽂혀 제목만 보고 고른 책들이다. 아이와 그림책 여행을 할 때, 엄마의 안목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지점이다. 그런 안목을 길러주는 데에 이루리 작가의 그림책 여행이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 같다.

 

무엇보다도 높은 가격을 만든 결정적 역할을 했을 그림책의 일부를 수록한 그림들이 그러하다. 각 작품마다 두페이지씩을 할애하여 시원하고 품질좋게 작품을 삽입했다. 59편의 그림책을 다루었으니 59작품 이상이 실린 그림책 도록으로 보아도 좋다. 개인적으로는 그림책 도록으로 보아도 무방할 그 페이지들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그림책에서 그림은 글 이상의 가치를 가진다. 그러므로 시원하게 펼쳐진 그림책의 일부를 만나는 것은 그림책을 선택하는 데에 있어 큰 기준이 된다.

 

 

59편의 그림책 이야기를 하면서 글이 아닌 그림으로서 보여주어야 옳다는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 아마 작가 자신이 그림책 작가이기에 할 수 있는 생각이 아니었을까 싶다.

 

또 이 여행이 즐거웠던 것은 그림책들을 분류한 기준이다. '제1장 우리 가족 이야기, 제2장 내 친구 이야기, 제3장 우리 아이가 자라는 이야기, 제4장 이야기와 상상력, 제5장 우리 아이가 사는 세상 이야기, 제6장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며' 로 분류되어 엄마나 아빠가 그림책을 고를 때 고민의 과정을 좀 덜어준다. 이런 기준 자체의 장점도 있지만목차나 부록이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다. 목차를 통해 알아보고 싶은 책을 선택하고 페이지를 펼쳐 여행을 먼저 한 뒤 부록을 통해 책을 구하여 아이와 새로운 여행을 떠나게 하는 구성이 기본에 충실한 느낌이 들어 신뢰감이 높아졌다. 가볍지 않은 것이다. 사실 시중에 나오 수많은 책에 관한 책들 중 가볍기가 이 리뷰처럼 그저 한 장의 종이만큼 가벼운 느낌을 받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면서도 무거운 척 하기까지 하는 경우도 있으니 이 책은 무거운 체 하지 않되 가볍지 않아 좋다.

 

아마도 윌리엄 스타이그와 엠마누엘레 베르토시를 좋아하는 듯한 작가의 취향도 엿볼 수 있고(물론 이 취향이 나와 같지는 않지만 글쓰는 사람이 자신의 책에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동안 읽은 수많은 그림책들 중 두루두루 신경쓰며 골랐을 그 수고로움도 목차를 보며 생각했다. 내가 이 책을 읽고 작가와 공감을 한 것은 이러한 작가의 취향이나 수고로움 때문이 아니다. 그저 그림책을 대하는 마음이 고운 한 작가에 대한 진심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마도 책은 그런 사람이 써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좀 먼 이야기로까지 생각이 뻗쳤다. 이루리 작가와 북극곰 출판사의 콜라보레이션이 괜찮다. 좋은 안내서가 될 것 같다. 그래도 가격은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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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마을 오라니 철학하는 아이 1
클레어 A. 니볼라 글.그림, 민유리 옮김 / 이마주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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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꼭꼭! 

오라니를 계속 찾았습니다.

클레어 A. 니볼라(Claire A. Nivola)

미국의 화가이자 조각가이며 어린이책 작가이기도 하다. 지은 책으로는 《검은 땅에 핀 초록빛 꿈》, 《나의 아름다운 바다》, 《숲 속으로》, 《엘리자베스》등이 있으며 《오라니》로 2012 볼로냐 라가치상 논픽션 부문을 수상하였으며 2011 스쿨 라이브러리 저널 선정 ‘최고의 논픽션 책’, '
2011 혼 북 선정 ‘최고의 논픽션 책’, '2011 키르쿠스 리뷰 선정 ‘최고의 어린이책’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개인적으로는 처음 만난 작가의 작품이다.

 

작품 뒤에 그림책에서는 드물게 작가의 말을 길게 적었는데 이 책이 자신의 고향인 오라니를 그린 작품이라 그런가 보다. 지중해 한가운데에 있던 오라니를 떠나 미국에 정착한 작가의 아버지를 위한 작품처럼 느껴지기도 하다.

 

◐ 내용 꼭꼭!

그 안에 오라니라는 마을이 있습니다.

아마도 미국에서 출발한 가족은 지중해 한가운데 사르데냐 섬의 오라니마을에 도착한다. 그 마을은 도착하자마자 우리를 반겨주는 친척들이 있고 수많은 좁은 골목마다 이야기가 숨어 있다. 아기가 태어나기도 하고, 둥지에서 떨어진 새를 발견하기도 하고, 한 노인의 장례가 치러지는 중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마을의 할머니들은 과자와 초콜릿을 가지고 다니며 아이들에게 나눠주기도 하고, 친척 아저씨는 가게에 들린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을 주고, 어느 집 부엌에 들러 아무렇지 않게 밥을 먹기도 한다. 책 속의 글처럼 '마치 마을 전체가 우리 것인 것만 같'다. 그 마을이 바로 아버지의 고향 오라니 마을이다.

 

"글쎄, 여기가 더 좋은 것 같은데."

 

지난 주엔 아이를 시골 할아버지댁에 데리고 갔다. 가기 전부터 아이는 집이 낡았다느니 파리랑 모기가 많다느니 하며 썩 내켜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려가서 아빠와 함께 싸이카를 타고 논과 밭을 돌아다니고 한참 있다 돌아오더니 자기는 시골이 정말 좋단다. 산도 가깝고 바람도 시원하고 눈이 시원하다고 한다. 다음날 아침, 자면서 입으 내복을 입은 채로 동네 한 바퀴를 돌며 실컷 논 아들을 놀려보았더니 '여긴 시골이라서 괜찮다.'는 답이 돌아왔다.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밭에 가서 따오면 되고 마을 입구의 정자에서 내복입고 떠들고 놀아도 아무도 이상하게 보지 않는 것이 무척 마음이 편했던 모양이다.

 

오라니 마을의 사촌들이 '나'에게 묻는다.

"미국은 어때?"

"글쎄, 여기가 더 좋은 것 같은데."

 

그 마음 나도 알 것 같다. 오라니 사람들은 어느 곳에서건 서로를 마주하고 있는데에 반해 뉴욕의 사람들은 일행이 아니라면 눈조차 마주치지 않으니까. 요즘은 일행들끼리도 각자의 휴대폰만 보느라 그들마저도 눈

 

 

 

을 마주치지 않는다고 하니 마주한다는 경험 자체가 귀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귀한 경험이 일상적인 곳이 오라니이다.

 

 

◐ 마음 꼭꼭!

자기만의 오라니가 있을까?

어릴 적 자신에게는 하나의 세계였던 오라니를 어른이 되어서도 자꾸만 찾고 싶어지는 것은 좁은 골목을 누비며 모두가 서로에게 눈을 맞추던 그 시간을 그리워하기 때문이다. 우리 세대에만 해도 도시에서 태어나고 도시에서 자란 순수 도시 토박이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런 우리들의 아이들은 명절이 되어 할아버지댁에 가도 또 다른 도시로 가는 것일 뿐일 때가 많다. 다행히 우리 부부는 시골서 나고 도시에서 자라 때가 되면 시골로 향하니 저절로 아이에게 할아버지댁은 시골의 다른 말이 아니다. 아이가 커 갈수록 그렇다는 사실이 고맙게 여겨지곤 했는데 이 책을 읽으니 더더욱 귀한 마음이 든다.

 

공동체가 사라지는 시대이다. 이런 시대를 다시 과거의 모습으로 돌린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썩 의미 있는 일은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변화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그 변화에 따라 우리가 과거의 모습을 그리워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자기만의 오라니는 비행기를 타고 배를 타고 한참을 달려 가야만 하는 아주 먼 거리의 물리적 지역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닐 것이다. 돌아가고 싶은 어느 지점, 그것을 추억해본다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운 일이다. 저기 깊은 곳에 자기만의 오라니를 한 번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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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 - 구효서 장편소설
구효서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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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봤을 땐 윤동주를 떠올리지 못했다, 전혀. 아마 여러 온라인 페이지를 드나들며 주워들은 것 같다, [동주]가 윤동주라는 사실을. 물 속에 둥둥 떠 있는, 출구가 열렸지만 그곳으로 나가려는 어떠한 의지도 찾아볼 수 없는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한 저 남자가 윤동주라는 말인가?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의 화자는 좁게는 둘, 넓게는 넷이다. 좁게 말하자면 느즈막이 모국어를 배워 그 글로 이야기를 진행하는 아이누족인 이타츠 푸리 카와 한국인(조선인) 김경식의 글이고, 넓게 말하자면 어린 이타츠 푸리 카인 요코의 목소리와 글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작가 구효서의 목소리가 있다. 나머지 셋은 작가의 목소리 그 안에 있다는 점에서 사실 구효서 작가의 다른 작품들보다 더 카리스마가 느껴지기도 한다. 이를테면 각 장의 제목들이다. 저토록 많은 말들을 적었다며 '작가의 말'은 생략 혹은 간략할 만도 하지만 작가는 그마저도 잔뜩 힘을 주어 말한다. 그렇다. 이 소설은 '말'에 대한 이야기이다. 언어가 가지는 힘, 언어로 인한 정체성의 완성에 대한 소설이다.

 

마을의 수호신당에서 양부모가 주워다기른 아이 요코, 양어머니와 요코에게 잔인한 양아버지와 그에게 비굴하고 무력한 양어머니를 원망하며 살아온 요코는 잔망스럽다는 말로는 표현이 안될만큼 사악한 구석이 있었고 가엾다는 말로도 표현이 안될만큼 처참한 아이이다. 하지만 그것은 동주가 죽기 전까지의 일이다. 어쩌면 동주의 죽음에 결정적인 책임이 있는 그녀이지만 그의 죽음이 일본에 대한 저항이 아닌 시인의 언어를 말살하는 데에 대한 저항이었음을 아는 순간부터 언어와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다.

 

사람을 죽이는 일이다. 시를 능지처참하는데 어찌 시인이 참멸을 면하겠느냐. 감히 시인의 손으로 제 시를 훼손케 하다니, 극악하고 무도하기 이를 데 없는 육살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그러다 문득 물었다.

요코가 본래의 이름이더냐?

하도 갑작스러워 나는 딸꾹질하듯 대답했다.

네.

 

요코는 요코가 기억하는 한 자신의 첫 이름이었지만 그것이 본래의 이름은 아닐 것이라는 것을 요코는 알았을 터였다. 김춘수의 시처럼 이름의 의미는 글자 몇 자의 의미를 훨씬 넘는 것일 터이니 말이다. 아마 그때부터이지 않았을까, 요코가 자신의 '본래'를 찾기 시작한 것이. 그렇게 그녀는 이타츠 푸리 카가 되었다.

 

이타츠 푸리 카의 글을 읽고 친구 시게하루의 배신을 겪은 겐타로는 어떻게 김경식이 되었을까? 말하지 않아도 그 속을 안다고 생각했던 두 사람이었다. 같은 일을 하던 시게하루가 어느 날 사라지고 그가 누구보다도 더 걱정이 되었던 겐타로는 그를 찾아 헤맨다. 그 모험의 길이 그를 이타츠 푸리 카에게로 닿게 하였다. 그 사이 돌아온 시게하루에게 왠지 모를 낯섬이 느껴지지만 그 까닭은 이타츠 푸리 카의 번역된 글을 읽고 나서이다. 한국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재일교포 3세 겐타로, 그는 이타츠 푸리 카의 윤동주에 대한 글을 읽으며 자신의 정체성을 생각한다. 같은 땅에서 살고 같은 언어로 말한다고 하여 결코 시게하루와는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없는 그 역사적인 사연이 너무 국가주의적인가 싶기도 하지만 꼭 아니라고는 할 수 없는 씁쓸함이 있었다. 결국 겐타로 역시 자신의 '본래'를 찾기 위해 한국어를 배우고 한글로 이렇게 글을 남긴다.

 

윤동주를 사이에 두고 요코와 겐타로가 이타츠 푸리 카와 김경식이 되는 그 과정이 [동주]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것은 윤동주가 간도(사이의 섬)에서 살았던 경험과 비슷한 종류의 성장기이다. 애시당초 명확한 세계에서 살고 있다면 별 고민없이 그저 살면 되겠건만 세상에 그렇게 명확한 일이 얼마나 될 것인가. 다만, 불명확한 그것에 괴로워하거나 모르는 척하지 않고 그 사이에서 더 깊이 들어가 자신의 근원을 파헤치는 것의 의미에 대해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작가 스스로 해설이라고 칭한 '작가의 말'을 인용하자면 외부의 자극이든 내부의 발현이든, 두 개 이상의 세계를 궁구하여 스스로를 그 '사이'에 위치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해지는 까닭이다. 보통 용기로는 되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필요한 일이다. 요코가 동주의 훼손된 시를 찾고 그것을 없애며 아이누어로 자신과 동주에 대한 이야기를 공들여 적어가는 그 마음과 같은 것이다. 실제의 이야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고마운 마음이 생기는 것이 바로 그녀의 그 마음 때문이다.

 

저녁마다 나는 글을 적어나갔다. 동주를 불러다 마주 앉히기 위해서였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가 형사에게 끌려갈 때까지. 열다섯에 적어놨던 요코의 서툴고 짧은 글을 재료 삼아 동주를 회상했다. 이따금 그는 방안의 어둠을 타고 내려와, 글 쓰는 나를 지켜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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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타츠 푸리 카가 보기에 동주의 죽음은 저항인의 저항적 죽음이 아니라, 시인의 시적 죽음이었다. 그의 망설임과 부끄러움은 연약한 이의 성정이 아니라, 세상의 온갖 가차 없는 것들에 대한 반성이었으며 고요한 자기 응시여다. 굳이 저항이었다고 한대도 그것은 국가나 민족 차원의 것이었다기 보다는 더 근본적으로, 모든 여지없는 것들에 대한 의도적 머뭇거림이었으며 성찰적 저항이었다.

 

작가 구효서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하고 글을 마무리지어야겠다. 작가로서 말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은 이가 있을까마는 인정받는 문단의 중견 작가가 최근에야 이런 고민으로 한 편의 소설을 완성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 역시 자신의 어느 '사이'에서 많은 것들을 의도적으로 머뭇거리고 있는 중이라는 결론을 내려본다.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인정을 받고 모든 것이 그저 가는대로 내버려두어도 될 것만 같은 사람이 그것을 의도적으로 멈추어 세운다는 것, 그것은 그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새로움을 느끼는 이유가 된다. 어린 요코와 이타츠 푸리카, 김경식의 글을 각각의 다른 글씨체로 교차하며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윤동주를 '사이'에 두고 팽팽하게 엮되 하나의 방향으로 가게 하는 것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랩소디 인 베를린]에서와 마찬가지로 작가의 카리스마가 빵빵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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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집으로 나오기 직전 RHK 출판사에 들렀다가 구입한 책이다. 사실 마이클 코넬리의 명성을 경험하지 못한 나로선 어떤 책을 고를지 몰랐지만 마침 이 책이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의 첫 책인데다 판매대에 착한 가격으로 올라와 있는 것을 보고는 한번 알아보자는 마음으로 샀다. 500쪽이 훨씬 넘는 두꺼운 책이었고 그날 양손에 쇼핑백을 가득 든 상태라 지하철에 서서 가는 입장으로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이 사실 잘못된 선택이었지만 이상하게 좀더 얇은 책이 아닌 가장 두꺼운 이 책을 펼치며 집으로 향했다.

 

표지의 사내 어깨에  땅굴쥐를 그린 문신을 봤지만 그저 지나쳤고(아마 미키마우스가 그려졌다고도 아주 잠깐 생각했었던 것 같다), 마찬가지로 '블랙 에코'가 무엇을 뜻하는지도 크게 궁금해하지 않으며 해리 보슈를 먼저 만났다. 사건 접수가 되는 날인 '5월 20일 화요일'을 제목으로 하는 첫 장의 앞에 쓰인 두 줄의 글귀도 지금에 와서야 다시 확인하였다. 영어로 된 제목을 즉각적으로 한국어로 환원시키지 못하는 나의 우둔함에 실소가 나왔다.

 

땅굴은 검은 메아리

그 안에 있는 것은 죽음뿐이었다.

 

형사 해리 보슈는 베트남 전쟁 당시 땅굴쥐로 활약한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5월 20일 화요일 그가 사고를 접수받은 현장인 굴에서 발견된 시신의 주인공인 메도우스는 그와 함께 전쟁에서 땅굴쥐로 참전한 전우였다. 그리고 그의 새 파트너이자 사랑의 감정이 싹튼 FBI의 앨리노어 위시의 죽은 오빠도 베트남 전에 참전하였고, 그들이 함께 수사 중인 메도우스 사건은 1년 전 웨스트랜드 안전금고 도난사건과 연관되어 있으며 그 사건은 땅굴쥐로 보이는 범인들이 땅속에서 안전금고를 모두 털어간 사건이다. 그야말로 땅굴쥐에 의한, 땅굴쥐를 위한, 땅굴쥐의 사건이다. 범죄를 계획한 것도 땅굴쥐(이 점은 스포일러의 여지가 있으므로 구체적인 언급은 피하겠다.), 범죄를 실행한 것도 땅굴쥐, 범인을 추적하는 것도 땅굴쥐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사건으로 깊이 들어가면 갈수록 베트남 전쟁과 땅굴쥐의 존재가 점점 커져가는 것이 굉장히 놀랍다. 내가 전혀 모르는 존재가 이토록 막강한 존재감을 낼 수 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묘한 감정이었다.

 

사건을 해결하는 뛰어난 살인사건전담 형사인 해리 보슈는 분명 뛰어난 수사관이지만 부패하고 자기 밥그릇 챙기기 바쁜 경찰 조직 내에서는 썩 잘 어울리는 인물이 아니다. 물론 그러하기에 독자인 우리들과는 썩 잘 어울린다. 아직 해리 보슈를 더 만나봐야 알겠지만 그가 탐정이 아닌 형사로서의 위치를 고수하는 면에 알 수 없는 공감을 느낀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다. 하지만 그러한 선택 덕분에 언제나 내사과 등 경찰조직내부에서 감시와 질타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그 피곤한 일상이 안되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물론 본인은 그마저도 선택한 것이라 여기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 하지만 말이다. 아닌가? 하긴 소설 속에서 그들은 해리 보슈의 손바닥 밖을 벗어나지 않는다. 담이 작은 나는 사실 아슬아슬한 것을 잘 견디지 못하는데 해리 보슈의 사건을 읽다보면 모두가 해리 보슈의 예상을 벗어나지 않아 마음이 편했다. 홈즈의 사건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물론 그보다는 훨씬 긴장감이 있지만. 어쩌면 누군가는 그것 때문에 좀 싱겁다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도청장치가 발견되고 난 후에 내가 의심했던 그 일이 실제로 벌어졌을 땐 예상이 적중했다는 기쁨과 동시에 실망감이 들기도 했지만 홈즈의 사건처럼 도무지 독자가 실마리를 잡을 수 없는 것보다는 참여의 기쁨이 커서 개인적으로는 만족한다.

 

어찌 됐든 처음 만난 해리 보슈에 대한 느낌이 나쁘지 않다. 오늘 도서관에 갈 일이 있는데 한 권을 빌려올까 싶다. 궁금하다 이 형사, 아니 이 남자가. 어머! 그래 로맨스에도 적극적인 이 형사는 남자였던 게다, 그게 아무래도 여성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비결 중의 하나는 아닐까? 마침 요즘 출파사에서 온라인 서점에서 아주 파격적인 가격행사를 하던데 몇 권 더 사야겠다. 그리고 이번에 안 사실인데 집에 있는 [밤과 낮 사이]라는 작품에도도 마이클 코넬리 작품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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