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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의 철학자들 - 철학은 어떻게 정치의 도구로 변질되는가?
이본 셰라트 지음, 김민수 옮김 / 여름언덕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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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인간이 품을 수 있는 가장 심오하고 복잡한 사고를 소유함으로써 존경을 한 몸에 받는 그러한 천재, 그러한 '슈퍼맨'이 히틀러처럼 사악한 인물에게 매수당한다는 게 가능했을까? (159쪽)

 

과연 의식이 있는 철학자가 나치의 당원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한다는 것이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은 '그렇다'라는 답을 얻기 위한 질문에 불과했다. 생각해보면 많은 일들이 그러하다. 국가가 시민을 향해 총을 쏘는 것, 단지 민족이 다르다는 이유로 셀 수도 없는 사람들을 대량 학살한 점, 한 나라의 대통령이 국가의 재산을 자기 주머니에 넣기 위해 온갖 머리를 굴리는 점 등은 보통 사람으로서는 가능할 것 같지 않은 일들이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다. 공통점은 있다. 그들은 권력을 사랑했다. 그 지랄맞은 권력이 이 모든 일을 만든다는 생각이 들면 과격하게는 그들이 벌레처럼 하찮아 보이는데 그들이 그토록 위대한 철학자이며 위대한 철학 이론을 가진 사람들이라니, 인간 참 하찮다.

 

우리 나라 역사에서도 20세기 초반은 암울하다. 다른 나라의 역사에 대해서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그것이 전세계적인 일이었을지라도 멀게만 느껴진다. 지금 팔레스타인의 삶에 대해 뉴스에서 흘려 듣는 그 이외의 것을 내가 어찌 더 알겠는가 말이다.

내가 히틀러라는 사람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은 찰리 채플린의 [위대한 독재자]라는 영화를 통해서였는데, 어린 나이였기에 희화화된 주인공에 대한 반감은 가졌지만 그것이 얼마나 참혹했는지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러다 몇 년 전에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를 읽었고 작년에 [백년의 지혜]를 읽으며 도대체 어떻게 히틀러의 사상과 행동이 그 오랜 시간 동안 받아들여졌는가에 대한 의문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어떻게 한 사람의 생각이 그토록 견고한 성처럼 무너지지 않고 지켜질 수 있었는지 정말 가능할 것 같지 않은데 말이다.

 

 

2.

 

[히틀러의 철학자들] 표지 속의 히틀러는 책을 읽고 있다. 그가 읽은 책이 니체와 하이데거의 책이고 읽지 않은 책이 벤야민과 아렌트의 책이라고 되어 있다. 전혀 사실 관계를 모르는 입장에서 니체와 하이데거 같은 위대한 철학자를 히틀러가 읽었다고?라는 놀라움 정도이지 하이데거가 나치당원이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더구나 서로 반대의 입장에 있던 아렌트와 연인 사이었다는 점은 씁쓸해진다. 결국 하이데거는 아렌트의 사랑 때문에 여전히 하이데거로 행세할 수 있기 때문이니까. 어디 가서 히틀러의 사상과 행동을 존경한다고 하면 단번에 돌을 맞고 미친 사람 취급 받을 테지만 하이데거를 존경한다고 하면 막연하게나마 대접을 받기도 하는데 도대체 하이데거가 히틀러'의' 철학자라니 가당키나 한 일인가 말이다. 모른다는 이유로 무턱대고 찬양한 범죄자들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허용적인가에 대해서는 멀리 독일로 갈 것도 없이 우리나라에서도 빈번히 볼 수 있다. 최소한 알기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그들이 얼마나 나쁜 놈들이며 미친 놈을 위해 나쁜 짓을 서슴치 않았다는 사실을.

 

저자는 에필로그에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그들의 사상을 가르쳐야 하는가? 우리는 그들이 쓴 언어의 맥락을 무시한 채 거리낌 없이 학생들에게 [존재와 시간]을 읽으라고 권하고 슈미트의 저작과 논리학자 프레게의 책을 읽으라고 권해야 하는가?" 아마도 그 말을 하고 싶어서 저자는 이 책을 썼는지도 모르겠다. 왜 히틀러의 철학자였던 그들은 여전히 존경받고, 그들의 이론은 살아있는가 말이다. 앞서 이 위대한 학자들이 히틀러에게 동조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그렇다'라고 답할 수 밖에 없는 씁쓸함이 있다면 이번엔 단호함으로 저자의 이 질문에 '아니다.'라고 말하며, 그 답이 옳다고 믿어본다. 그들의 책을 읽고 배워야 할 사람들은 일반 대학의 철학과 학생이다. 교양 철학 수강생 혹은 철학 서적을 읽는 사람들이 아니라 이 책의 저자 이본 셰라트처럼 그들의 행위를 비판하고 당시의 참상을 밝혀내기 위한 이들 뿐이라고 믿는다.

 

 수백 만 명의 유대인들이 도살장으로 보내질 때 하이데거가 자신의 고국 독일에서 잠 못 이루는 밤에 시달렸다는 증거는 없다. 히틀러 정권 아래에서 하이데거의 가족은 호의호식했고 그 자신은 많은 영광과 화려한 경력을 누렸다. 여러 가지 면에서 그의 직업적 경험은 크리크와 보임러, 로젠베르크, 슈미트의 직업적 경험에 견줄 만했고 그 점에선 히틀러 치하에서 활동한 수많은 철학자들도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헌신적인 나치당원이든 기회주의자이든 평범한 철학자이든 탁월한 철학자이든 그들은 모두 부역의 과실을 따먹었다. (189쪽)

 

 

 

3.

한 사람의 허세와 가식, 자아도취와 분노조절장애 및 열등감의 결과물 치고는 너무나 많은 희생이 있었다. 전범국가로서 일본의 태도에 비해 독일의 태도는 성숙했다고 믿어왔던 것이 그들도 그저 눈가리고 아웅 밖에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도대체 악행은 저지르는 것에 비해 처벌은 얼마나 미약한지 새삼 확인하여 씁쓸하다. 얼마 전에 본 기사에 수십 억대 사기를 쳐도 고작 1년 정도의 징역을 사는 것이 우리의 법이라고 한다. 그 기사를 읽은 사람들은 댓글로 화를 내기도 했지만 그보단 자조 섞인 농을 던지는 글도 많았다. 신뢰가 무너진 것이다. 전쟁이 끝나고 히틀러의 지식 홍보단으로 활동했던 많은 철학자들이 그대로 교수직을 가지고 학생들을 가르치며 태연히 삶을 누렸다는 사실은 실망을 넘어 허탈했다. 히틀러의 세계가 끝이 났다면 그들에 대한 신뢰도 무너져야 마당하거늘 어찌하여 그들은 자신들의 자리를 지속할 수 있었단 말인가.

 

한 영역에서 한 사상의 권위자로서 굳건히 여전히 위세를 누리는 하이데거와 슈미트 등의 학자들을 믿을 수는 없다. 그들의 이론을 들먹거리며 자신의 이론을 설명하는 이들도 믿을 수 없다. 그럴 수는 없는 것이다. 이것은 감정적인 결론이 아니라 본질적인 결론이다. 철학이 윤리학에서 시작되었다는 본질적인 이유에서 뿐만 아니라 극악한 학자의 학문은 그것이 철학이든 건축학이든 사람을 향하고 있지 않기에 믿을 수가 없다. 최소한 이 책을 읽는 나는 이 책에 거론된 '히틀러의 사람들'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다. 무너져야 한다. (칸트나 니체가 반유대교적 이론을 펼쳤고 그들의 사상을 히틀러가 추종하고 나치주의에 깊게 적용했다손 치더라도 그들에 대한 판단은 잠정 보류할 것이다. 이 책에서도 말했듯이 아마 히틀러는 그들의 책을 제대로 읽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해석한 것을 동시대의 철학자들이 용인했다는 것이 더 문제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 히틀러의 총질은 나치가 패망하면서 멈추었지만 그 때 호사를 누리던 그의 철학자들의 펜질은 여전히 큰 힘을 발휘 중이다. 유대인 철학자들은 히틀러 치하에서 출판이 금지된 이래 책이 출간되지 않는데에 반해 하이데거는 '20세기 가장 위대한 철학자'라는 호칭까지 받으면서 말이다. 이제 그만 그 펜질을 멈추라고 말하고 싶다.

 

 

4.

이 책을 읽으며 공교롭게도 지금의 대한민국을 많이 떠올렸다. 아마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은 문득 문득 이런 저런 사람들이나 사건들이 스쳐지나가게 되었을 것이다. 지금도 우리는 그 사람들이 사건들을 잊어가고 있다.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이본 셰라트가 [히틀러와 철학자들]이라는 책을 썼듯이 우리에게도 용기 있는 비평가가 필요하다. 지금 시민단체나 학생단체에서 서명 운동을 하고 용기 있는 미디어에서 사실 규명을 하는 움직임이 있다는 것이 고맙다. 그들이 소수라는 점이 미안하고 안타깝지만 그들의 용기는 다수의 비겁함에 비할 수 없이 값지다. 이 책도 그러하다. 모르면 모르는 채 덮어둘 뻔 했던 이들을 다른 시각에서 보게 해 주었다. 잊지 않겠습니다, 라고 말하게 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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