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알을 찾아 - 방글라데시 땅별그림책 8
비쁘러다스 버루아 글, 하솀 칸 그림, 로이 알록 꾸마르 옮김 / 보림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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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이 책이 방글라데시의 그림책이라 반가웠다.  물론 아들은 지갑에 꽂혀 있는 꽃보다 예쁜 방글라데시 소년의 사진조차 질투할 정도여서 일부러 외면했지만 말이다. 표지에 호랑이 허리가 길어보여 책을 쫙 펴보았더니 과연 호랑이 허리가 참 길었다. 왜 이렇게 길까? 다리는 참 짧은데 말이야? 호랑이와 무슨 관련이 있는 걸까? 이런 저런 궁금증을 가지고 책장을 펼쳤다.

 

  신기한 것은 그림책에 나온 나무와 꽃의 그림에 방글라데시에 사는 아이로부터 처음 받은 지 속 그림의  색 참 닮았다는 것이었다. 내가 외국에서 어떤 그림을 그리게 된다면 한국의 느낌이 나게 될까? 그런 궁금증이 들었다.

 

  이야기의 내용은 아들의 떼에 못 이긴 아버지가 <말의 알>을 찾아 떠나는 여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과정을 읽다보면  왠지 언젠가 한 번 쯤 들었던 이야기들이 섞여 있는 느낌이 드는데 그건 마치 우리가 구전으로 이야기를 전해들었던 느낌과 닮았다. 가령, <호랑이와 곶감>으로 시작해서 <토끼의 재판>으로 이어질 것만 같은.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의 옛날 이야기보다는 덜 재밌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다른 나라의 정서이기 때문인 것 같다.  책을 읽기 전 궁금했던 호랑이를 타는 장면에 대한 부분도 내 기대와는 사뭇 달랐다.

  하지만 말이 필요하다고 '말의 알'을 구하려고 시도하는 탄티의 바보같은 모습이 이상하게 내게는 바보같아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할 때에도 왠지 나 역시 탄티처럼 '말의 알'이 실제로 있을 것만 같았다. 거기에서 말이 태어나 아들을 기쁘게 해 줄 수 있기를 함께 바랐다. 아버지의 사랑은 없는 것도 만들어낼 수 있는 게 아니겠는가. 말을 얻거나 말의 알을 얻는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은 긴 호랑이의 허리만큼이나 길게 말의 알을 찾아 해멘 탄티의 부정이 아니겠는가. 순박하고 진실된 그 마음이 참 좋다. '말의 알'이 있다고 아무 계산 없이 믿어버린 그 마음이 참 그리운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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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 위화, 열 개의 단어로 중국을 말하다
위화 지음, 김태성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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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화, 열 개의 단어로 중국을 말한다 >라는 부제에서 우리는 로 넘어올 수 있다. 어느 나라에 대입해도 가능한 타이틀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열 개의 단어가 무엇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점에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이것은 어느 나라에나 대입 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지금의 중국, 그리고 이상하게 거꾸로 가는 듯한 대한민국이 묘하게 일치한다. 그 단어들 보다 더 큰 대한민국이라는 하나의 덩어리가 더 아프게 느껴진다. 나름 책의 목차와 지금 우리 시대의 키워드를 즉흥적으로 끼워 정리해 본다.

 

 

 

 

 

인민 對 국민

인민이 단결할 때 그들의 목소리는 빛보다 더 멀리 전달되고 그들 몸의 에너지가 그들의 목소리보다 더 멀리 전달되는 것이다. 마침내 나는 '인민'이라는 단어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39쪽)

 

며칠 전 본 영화 <레미제라블>에서도 시민 혁명단의 모습에서 광주를 비롯한 항쟁의 모습이 겹쳐졌다. 아팠지만 우리의 저항은 마음과 마음을 지나 빛보다 멀리 전달되는 그런 울림이 있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이 나라의 국민으로서 '국민됨'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의 내가 지금의 나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는 겸손함. 우리는 진정 우리를  위해 싸운 사람들을 존경하고 보호해야 한다. 그럴 수 있겠습니까?

 

영수 對 대통령

"착취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갈등이 있기 마련이고, 압박이 있는 곳에는 반항이 있기 마련이다." (58쪽)

 

이런 철학을 좀 가지면 좋을텐데......물론 마오쩌둥처럼 절대 권력인 것도 요샌 웃긴 일이라는 점.

 

독서와 글쓰기 -금지된 것들

 우리 나라에도 일찌기 어이 없는 이유들로 금지된 노래와 책이 많다고 들었다. 그런 것들을 읽지도 못하게 할 세상이었으니 그런 글을 쓴다는 것은 목숨을 내놓고 하는 행위였으리라. 위화가 이야기 하는 것은 중국의 문화대혁명 시기에서부터 한국의 현재까지에 해당하는 이야기이다. 당시 중국의 대자보와 현재 우리의 블로그라는 공간의 목적성이 그의 말처럼 자신의 존재 가치를 드러내기 위한 것(115쪽)인데, 자신의 존재 가치를 드러냈다고 해서 처벌하는 행위는 지금 한국이 거꾸로 가고 있음을 증명하는 셈이다. 모두들 입 다물고 있어야 평화로운 건가? 아니다. 그건 누가 말한 것처럼 가짜 평화이다. 

 

루쉰 對 김지하

한 작가가 하나의 단어가 된다는 것은 사실 그 작가 본인에게 커다란 손해 (183쪽)

 

나는 루쉰도 김지하도 잘 모르지만, 아마 김지하는 하나의 단어가 되기는 싫었나 보다.

 

차이 對 차별

  차이를 인정하지 않다 보면 결국 차별로 이어지게 된다. 나와 생각이 다르고, 생활 양상이 다른 사람을 인정하지 않은 채로 내가 권력을 가질 때 그들에게 가하는 차별이 수도 없이 많이 일어나는 곳이 지금의 대한민국이다.

 

빈곤과 기아의 존재를 무시하는 것이 빈곤과 기아 보다 더 무서운 것이다. (215쪽)

 

왜 안그렇겠는가? 빈곤과 기아를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마저 짓밟는 것이니 어찌 무섭지 않겠는가 말이다.

 

폭력

중국 경제가 빠르게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정치적으로 충분히 투명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241쪽)

 

책에서는 정부의 폭력적 진압을 포함한 숱한 격한 행동들을 혁명이라고 표현하였는데, 아마 우리의 혁명과는 다른 의미를 가진 단어인 것 같다. 아무리 읽어도 이것은 폭력의 이야기이다. 지금 우리 나라에는 정치적 불투명을 담보로 하고서라도 경제적 성장을 빠르게 일으키고 싶은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그 단계를 지나왔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불투명하더라도 폭풍 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 다시 과거로 돌아갈 것이라는 환상조차도 가능하지 않다는 말이다. 그러니 부디 그런 말도 안되는 논리에 자신을 묶지 말자. 결국 갚아야 하는 것은 힘이 없는 그대들이다.

 

풀뿌리 對 개천의 용

  중국의 풀뿌리들은 기복도 극심한가 보다. 우리에겐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는 경우는 없다고 한다. 풀뿌리는 풀뿌리고 용은 용일 뿐인 세상이다.

 

산채와 홀유

참 재밌는 말들이다. 짝퉁이나 사기라고 하지 않고, 극구 그건 아니란다. 하긴 진짜가 진짜 구실을 못하니 진짜보다 나은 산채가 나오고, 정의가 정의롭지 못하니 속임수가 스스로를 합리화한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제대로 알기 위해선 산채도 홀유도 다 알고 있어야겠다. 언젠가 사회가 맑아지는 날, 사회의 염증인 산채와 홀유도 말끔히 떨어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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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소설가 - 오르한 파묵의 하버드대 강연록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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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책>을 읽으며 느꼈던 모호함에 대해 답을 얻기 위해 선택한 책 <소설과 소설가>는 오르한 파묵이 얼마나 좋은 소설가이며, 얼마나 좋은 선생인지 알게 해 준다.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고 모두 담아두고 싶어 기록하게 된다.

읽을 때마다 적다보니 꽤 여러 장 적게 되었지만 아마 마음만 같았다면, 책 전체를 옮겨적고 기억하고 싶었다.

소설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 소설 쓰기를 좋아하는 사람, 그 둘을 업으로 가진 사람 모두에게 읽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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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사용법 - 제16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대상작 신나는 책읽기 33
김성진 지음, 김중석 그림 / 창비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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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는 모든 집에 어울리는 완벽한 제품입니다. 조립을 마친 후 깨어나기 버튼을 누르면 엄마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엄마와 함께 행복한 집을 만들어 보세요.

 

   이 글귀는 동화의 초반 현수가 생명장난감인 '엄마'를 조립하기 위해 설레임을 가지고 꺼내든 사용설명서이자  동화 마지막 엄마로서의 '엄마'를 맞이하기 위해 버린 사용설명서의 내용이다. '엄마'라는 물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초반의 '엄마'와 마지막의 '엄마'가 모두 '바이오 토이'사에서 만든 제품이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우리의 엄마가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쭉 우리의 엄마였듯이 말이다.

   달라지는 것은 인식이다. 제품을 대하려던 처음의 마음과 달리 현수는 '엄마'에게 사랑을 기대한다. 마치 제품 엄마도 제품보다는 사람이 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현수의 마음에 꼭맞는 그런 엄마가 된다. 현수가 원하는 대로 해 주는 것이 자신의 본분인 양 다른 마음은 먹지 않는다. 잠들기 전에 [해와 달이 된 오누이]를 읽어주고, 등하교할 때 웃으며 큰 소리로 인사해 주고, 서로 손을 꼭 잡고 산책을 하는 것을 하며 둘은 정말 행복하다. 그러니 결국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다. 무언가를 많이 포기해야 하는 일도 아니다. 그 일을 해 줄 사람이 없던 현수에게 갑자기 생긴 '엄마'라는 존재는 얼마나 귀한지 모른다. 더구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해주며 행복해하는 '엄마'가 아닌가. 자신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그런 '엄마'가 아닌가 말이다.

    현수에게는 처음부터 실제 엄마는 없다. 작가는 이런 설정을 통해 실재적 엄마의 부재가 아니라 존재적 부재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자 한다. 실제로 엄마가 없는 아이들에게 이 책은 그저 단순한 그리움과 애틋함의 이야기일테지만 그것은 작가가 의도한 부분은 분명 아니다. 대부분의 엄마가 있는 아이들은 이 책을 읽으며 자신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엄마를 그리워하게 된다.  좋은 감정을 잃어버린 마치 로봇같은 우리 엄마들의 모습. 그런 제품 엄마를 사람 엄마로 바꾸는 과정을 작가는 다소 판타지적인 요소를 섞어 우리에게 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 엄마가 내 마음을 알아주면 좋겠어요!"라고 울부짖는 아이들의 모습이 느껴지지 않는가.

    최근 문학계에서는 인간성 상실에 대한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온다. 어제 오늘 나온 이야기는 아니지만 요즘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꽤나 직접적이고 사실적으로 경고한다. 최근 읽은 임성순 작가의 [문근영은 위험해]를 비롯하여 동화 [열 세 번째 아이], 그리고 이 책 [엄마 사용법]이 대표적이다. 작가들은 기술적으로 로봇이 인간과 대등해지는 시점에서 인간이 로봇과 달라야하는 점들에 대해 경고한다.  마음을 잃어버린 어른이 기르는 아이에게 마음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사람답지 않은 특성을 가진 아이들이 살아갈 그 날들이 슬퍼지고 두려워진다. 그 미래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기에 더욱 더 깊이.

    인간은 태초 지구가 태어날 때의 그 물질이었던 시절로 퇴화하려는 것일까, 마음을 잃어버린 인간에게 지구는 언제까지 지금의 위치를 허락할까하는 조금은 먼 질문까지 떠오른다. 행복한 집, 행복한 삶에 대해 가끔은 사람답게 자문해 보는 것도 허락될 수 있는 그런 삶이었으면 한다. 그건 아주 잠시만이라도 엄마답게 아이의 손을 꼭 잡고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그런 몸짓에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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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피는 거시기다 - 카피, 시, 혹은 아이디어를 위한 메타포 50
윤제림 지음 / 난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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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피는 거시기다 - 윤준호

2012. 12. 17

 

"뭐라고요?"

"메타포라고!"

"그게 뭐죠?"

시인은 마리오의 어깨에 한 손을 얹었다.

"대충 설명하자면 한 사물을 다른 사물과 비교하면서 말하는 방법이지."

"예를 하나만 들어주세요." -<네루다의 우편 배달부> 중

 

   여기 카피에 대한 50개의 메타포가 있다. 카피만으로도 50개가 되는 메타포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마리오가 알았다면 얼마나 놀랐을까. 마리오의 성질이 급했다면 찔끔찔끔 알려주는 네루다보다 이 책을 사서 읽지 않았을까.

   이 책은 카피라이터 윤준호가 자신의 카피 철학을 50개의 메타포를 정해 펼쳐놓은 책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광고인들만을 위한 책은 분명 아니다. 나만 하더라도 광고와 관련 있는 일은 전혀 하지 않음에도 책에는 수많은 밑줄이 그어져 있고 끄적끄적 몇 마디 글도 적지 않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우리는 모두 광고와 관련이 있다. 우리는 모두 소비자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카피라이터로서 글을 썼지만 우리는 소비자로서 그의 글을 읽는다. 주고받는 관계가 명확하다 보니 합이 잘 맞는다. 또한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 모든 사람이라고 믿고 싶지만- 창조자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우리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기 보다는 유를 변형하는 창조를 하기에 이 책에 대한, 카피라는 것에 대한 공감이 예술 원론의 책들보다 더 공감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카피는 제록스이고, 카피는 돌밭의 버팔로이고, 물음표 너머의 것이라는 비유는 매력적이다.

   창의적인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대한 언급이나 좋은 카피의 매력은 여백과 심플함에 있다는 이야기도 매우 좋았다. 예전에 광고 언어에 관심이 있어 논문들을 찾아보고 분석하려고 시도한 적도 있었지만 능력 밖의 일이라 포기한 채 이런 저런 광고 문구들을 많이 읽어본 적이 있었는데, 저자의 메타포 중 하나인 ‘카피는 한판승을 꿈꾼다.’와 유사하게 ‘카피는 한방이다.’라는 생각을 했었다. 카피라이터가 공들이지 않은 문장이야 있겠나 만은 캬~하고 감탄사가 나오는 때는 주로 짧은 문장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아마 저자는 50개가 아니라 100개도 더 만들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그것들이 때로 너무 유사하여 재미가 좀 적은 비유도 있었지만 무궁무진하게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 하나의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물론 그 무궁무진한 카피를 하나로 묶는 것이 바로 <카피는 거시기다>이겠지만 말이다. 역시 마지막 장에서 밝힌 것처럼 ‘카피는 제목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의 카피는 이 책이 선택할 수 있는 최고의 카피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책을 읽으면서 카피라이터는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그에 대한 메타포도 10개만 정의해주었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카피라이터는 문디다>라는 책이 따로 나오려나? 문득, 내 삶의 카피도 한 번 제목을 정해보고 50개의 메타포를 만들어보고 싶어진다. ‘내 삶은 무인도다’, ‘내 삶은 얼음이다.’, ‘내 삶은 최면이다.’ 등등의 메타포가 만들어 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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