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랫 지역과 통화할 때는 '비 좀 내려야 쓰겄는디~'라는 말을 듣고, '비 좀 그만 왔으면 좋겠어요.'라는 말로 통화의 2/3를 소비하는 요즘이다. 어제 오늘 '햇빛의 모든 것을 용서하기'로 정하였지만 요즘 컨디션이 나쁜 아들과 나들이까지는 못하고 집 안에서 여전히 비도 피하고, 햇빛도 피하고 있었다. 요즘 밖에서 울려 오는 소란스럽고 활기찬 움직임들을 듣자면 부럽기도 하거니와, 고생이다 싶은 마음도 든다. 건강의 소리이고 몸짓이라 부러움이 더 크지만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는 피서에는 독서가 능사라는 생각이 들어 여름철에 책을 많이 읽게 되는 것 같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닌 듯 여름, 참 좋은 책들이 많이도 나와 나의 촉을 세우게 만드는구나! 쏟아지는 좋은 책들 중 관심 가는 몇 권을 골라본다. 이 여름에 잘 어울릴.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 헤르만 헤세 - 알라딘가 11,250원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화가가 누구냐고 물으면 헤르만 헤세라고 말할 것이다.  그의 그림이 얼마나 잘 그린 그림인지,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처음 그의 그림과 시가 실린 책을 읽었을 때 얼마나 큰 위안을 얻었는지 모르겠다. 당시 그의 소설은 내게 너무 어려웠지만 그의 그림은 정말 편안했다. 그런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갖고 싶었다. 개인적으로는 펜의 세밀함이 느껴지는 그림보다는 테두리가 뭉툭하고 선명한 수채화를 더 좋아하는데 그런 그의 그림들을 보고 있자면 그가 얼마나 자연을 사랑하는지 알 것 같다. 이번에 출간된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은 그런 헤세의 생활을 엿볼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된다. 더운 여름, 헤세의 수채화처럼 눈이 편안해지고 휴식이 되는 이 책을 읽으면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헤세의 글이 편안함을 준다기보다는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는 점에서 이 책에 숨겨진 혹은 드러날 그의 삶에 대한 태도를 엿보는 것도 중요한 읽을 거리일 것이다.  

 

<여름의 묘약>, 김화영 - 알라딘가 12,600원

 

얼마 전 김화영 선생님의 <어린 왕자를 찾아서>를 읽고 홀딱 반한 터라 다른 책을 읽어볼까나 싶어 <행복의 충격>에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신작이 나왔다. 제목도 이 여름에 딱 맞게 <여름의 묘약>이다. 표지도 참 시원하다. 볕 좋은 날 그늘 진 곳에 파라솔 의자 하나 놓고 읽고 싶어지는 책이다.

영주라는 소도시(나의 고향이기도 하다.)에서 우리 나라를 대표하는 불문학자가 되기까지 그 당시 얼마나 어려움이 많았을까. 후원을 받아 유학을 갔던 프로방스를 2011-2012년에 다시 찾은 후에 쓴 글을 모은 책이다. 2011년의 여름, 프로방스는 어떠했을까? 40년만에 다시 찾은 그곳을 느끼는 작가님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왠지 따뜻한 시원함이 느껴질 것만 같다.

 

 

<죽음>-테마명작관7, 루신 외 - 알라딘가 10,800원

 

이런 기획이 있는 줄 몰랐다. 세계 유명 작가들의 작품들을 각 테마에 맞게 엮은 기획도서(아마도 모두 저작권이 만료된 작가들인 모양이다.)인데, 다행인 것은 각 작품들의 번역가가 다르다는 것이다. 나라도 제 각각인데 행여 '베스트트랜스'와 같은 번역팀이 번역을 했다면 아마 신뢰도가 많이 떨어졌을 것이다.

 7가지 테마 중 이번에 나온 <죽음> 편이 가장 궁금하다. 작가들이야 다른 테마들도 모두 유명한 분들이 나오니 그것으로 가늠할 수 없고, 그저 죽음이라는 주제가 여름엔 되려 생각해볼만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가을, 겨울에 죽음을 생각하기엔 너무 쳐지지 않겠는가!헤밍웨이의 죽음의 이야기에는 '킬리만자로의 눈'이 수록되어 있다는 점 책을 갖고 있는 분들은 참고하길1

 

 

 

 

 

 

 

제 14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대상 <방학탐구생활>, 김선정

- 알라딘가 9,900원

 

아니 언제 또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대상작이 나온거지? 최근 몇년 동안 놓치지 않고 읽은 것 같은데 이번엔 나오는 줄도 몰랐다. 이 여름 딱인 작품이 선정되었구나! 방학을 맞아 아이들에게 선물해주면 좋을 것 같다. 각 장이 '방학탐구생활-'의 제목을 띄는 이 동화책은 초등학교 마지막 여름방학을 천편일률적인 방학계획표에 맞춰 보내고 싶지 않은 소년 백석의 생활형 모험스토리라고 보여진다. 보름달문고이니 4학년 이상의 어린이가 읽으면 쉽게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 참고로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대상작품은 나를 실망시킨 적이 없다!

 

 

 <느긋하게, 한옥 마실>, 이민정- 알라딘가 11,700원

 

 고가의 한정식당을 제외하곤 사실 근처에서 한옥 찾기가 쉽지 않다. 가장 가까운 곳이라면 남양주종합촬영소의 맨 꼭대기에 위치한 양반한옥집인데, 나는 그곳 대청마루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는 게 참 좋다. 거기에 앉아 바람을 느끼고 있노라면 한옥 참 멋스럽구나, 하는 마음도 들고 어찌나 시원한지 과학적인 구조라는 생각도 든다. 그 다음으로 가까운 곳이 아침고요수목원의 한옥인데 그곳의 대청마루에 앉아 있으면 또 한옥 참 아름답구나 싶다. 뻥뚤린 뒷마당의 꽃들이 마치 큰 작품을 걸어놓은 듯 아름답다. 마치 이 책의 표지처럼 말이다.

서울과 전주의 한옥마을을 상업 공간인 카페나 게스트하우스, 가게 들을 소개한 이 책을 읽으면 자연스레 그곳들을 찾아갈 것 같다. 아파트, 너무 답답한 걸!

 

사실, 이 책들 외에도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과 김경욱의 <야구란 무엇인가>도 있고, 미스다미리의 만화책들도 새로 나왔다. 이 또한 얼마나 여름과 잘 어울리는지! 다른 많은 분들이 소개해주시니 나는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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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김영하느님 http://blog.aladin.co.kr/tiel93/6473969

2편 김경욱이옵 http://blog.aladin.co.kr/tiel93/6475135

 

사실, 내가 지금 페이퍼에 쏟을 정신이 있는 것은 아닌데 아이가 잠자는 동안 잠들 수 없고, 깨어 있는 동안도 잠들 수 없는 입장인지라 짬을 내어 써 본다. 괜히 혁사마에게 미안하다. 아마, 혁사마라는 말은 아는 분이 김연수 작가를 연수느님이라고 불러서 그에 맞추느라 그리 부른 기억이 난다. 기억이란 늘 불명확하므로 '아마도'라는 말은 필수적이다.

 

 

김중혁 작가님을 처음 알게 된 것은 그의 소설도 아니고 그의 기사도 아니고 에세이도 아니다. 글은 아니다. 그럼? 목소리이다. 한창 사이버문학광장(문장)에, 특히 '문장의 소리'에 관심을 가질 무렵 DJ가 김중혁 작가였다. 누군가는 그의 목소리가 매력적이라고 했지만 내가 기억하는 그는, 이동진 작가님 말씀처럼 독특한 음악적 취향이 있는 하지만 그것이 치명적이게 매력적인 DJ였다. 그의 소설을 읽어볼까, 하는 마음을 가졌지만 무엇부터 시작해야할지 망설여졌다.

 

그러다가 2010년이 되어서야 문학동네 제1회 젊은작가상수상집으로 그의 소설을 처음 만나게 되었으니 다른 2金 작가님들에 비해 소설로 알게 된 것은 그 역사가 너무 짧다. 이후 문학동네 카페에서 책선물 릴레이에서 마침 김중혁 작가님의 <악기들의 도서관>을 선물받았고, 그 책에서 작가님에 대한 애정이 퐁퐁 샘솟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이후 <미스터 모노레일>과 에세이 <뭐라도 되겠지>, <대책없이 해피엔딩>을 읽게 되었고 가장 최근엔 <헬로 미스터 디킨스>에서 그의 작품을 읽었다. 물론, 집에는 읽지 않은 <좀비들>과 <1F/B1>이 있다만.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면 앞서 말한 김연수작가님을 연수느님이라고 부르는 분이 연수느님의 책을 사인받아 선물해주셨는데 내가 원하는 문구로 해주신다기에 <뭐라도 되겠지>라고 적어달라고 부탁했더니 센스만땅 연수느님이 또 '뭐라도 되라지'라고 적어주셨다. 두 분 참 부러운 관계이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상한 것은 작가님 소설에 대한 제 리뷰가 잘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 지금까지 인식하지 못했는데 이 페이지를 작성하려고 리뷰 기록들을 뒤적뒤적해보는데 리

뷰가 생각보다 없었다. 왜일까? 뭔가 엉뚱하고 신선하고 세련된 소설들을 읽으면서 그것을 표현할 말을 고르다 시일을 넘겨버린 것 같다. 그랬던 기억이 난다. 특히 <악기들의 도서관>이 그랬다. 개인적으로는 작가님의 장편 소설보다는 단편소설을 좋아하는데 특히 <악기들의 도서관>에 실린 '무방향 버스'는 지금도 기억이 난다.(읽고는 일주일을 안가는 나로서는 드문 일이다.) 이 단편집을 읽을 때 사실 아무 음악도 틀지 않았는데도 음악을 듣고 있는 듯 착각했다. 음악영화를 좋아하듯, 음악 소설도 좋아하는 모양이다.

 

물론 제 1회 젊은작가상 대상 수상작인 '1F/B1'도 신선했다. 도대체 이 작가의 신선함이란 정말 낯설고도 흥미롭다. 장편 소설인 <미스터 모노레일>의 엉뚱하고 신선하면서도 묘하게 현실적인 느낌도 나쁘진 않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의 매력은 단편에서 그것들이 좀더 밀도 있게 다가오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2010. 6.28

무심히 지나쳤을 그 공간, 그 사이를 어쩌면 이토록 세상 밖으로 잘 끌고 나올 수 있을까. 이것은 김중혁이 가진 독특하고도 우주적인 시각 덕분이리라. 이전에 이상문학상 수상집에서 읽었던 차별성있던 작품 '3개의 식탁, 3개의 담배 ' 그 이상의 모든 것이 이 이야기에 담겨있다는 나의 말은 읽어가면서 거짓이 아님이 증명될 터이다.

 

 

2011. 8. 20

슈스케를 보고 있자면 윤종신이 '희소가치'를 외치는데 그런 면에서 본다면 김중혁은 소설계에서 정말 윤종신이 찾는 바로 그 목소리가 아닐까? 취향의 문제나 공감의 차원가 아니라 감탄의 차원이다.

 

 

 

요즘 이동진의 <빨간 책방> 덕분에 그의 목소리를 한 달에 두 번씩 꼬박꼬박 들을 수 있다. 나는 그의 유머가 좋다. 그런 그의 유머는 고스란히 그의 에세이에 남아있다. 절친인 김연수 작가와 공저한 <대책없이 해피엔딩>을 읽고 나서 내가 그의 유머를 정말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았는데, 이유인즉슨 접어놓은 페이지들이 죄다 김중혁 작가 편이었다. 정말이지 단 한편도 김연수 작가의 귀퉁이는 접혀 있지 않았다는 점이 김연수 작가에게 미안할 정도였다. 명색이 누군가에겐 연수느님인데 말이다.

 

 

그러다가 만난 <뭐라도 되겠지> 밑줄 대박, 공감 백만배의 에세이였다. 재미로만 치자면 그의 모든 작품들 중에 최고로 재미있었다. 패러디면 패러디, 발명이면 발명, 풍자면 풍자 유머의 모든 것을 구사해주시는 김중혁 작가님 되시겠다!

 

 

집에 두고 아직 읽지 못한 두 권의 책을 포함하여 그의 데뷔작을 올해 안에 읽는 것이 목표인데, 3金 작가님의 못다 읽은 책 몇 권 언제 다 읽으려나 싶은 마음이 급 들어 맹세는 못한다. 참고로 <헬로, 미스터 디킨스>에서는 김중혁 작가님 작품이 아마도 젤 분량이 길었던 것 같은데 제일 빨리 재밌게 읽었다. 올해 한국 소설이 3金 작가님들 덕분에 더욱 든든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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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金♥작가 1편 김영하 작가편(http://blog.aladin.co.kr/tiel93/6473969)에 이어 김경욱 작가에 대하여 페이퍼를 올려보고자 한다. 올해가 김경욱 작가의 등단 20주년인 해라고 한다. 김영하 작가가 1996년에 등단했으니 그보다 3년 더 빠르지만 개인적으로 내가 김경욱 작가의 소설을 읽은 것은 그보다 훨씬 늦다. 

 

 

 요즘 와서 보니 김경욱 작가야 말로 미남이시다는^^; 사실 김영하 작가의 프로필 사진에 반했던 데에 반해 김경욱 작가의 프로필 사진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미남인 줄 모르고 진심 작품 때문에 좋아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만 변명이 안되,겠지?^^ 작가님 소설로는 2005년에 처음 읽은 <장국영이 죽었다고?>로 시작해서, <천년의 왕국>, <위험한 독서> 그리고 공통 집필한 <소설가로 산다는 것>과 <헬로, 미스터 디킨스>를 읽었는데 희한한 건 이 책들이 집에 하나도 없다. 팬이라고 하기엔 참 미안한 지점이다. 대신 집에는 읽지 않은 <동화처럼>과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만 빳빳하게 서 있다. 김영하 작가의 소설이 오래된 연인처럼 읽은 듯 안읽은 듯 다 읽고 다 곁에 두었다면, 김경욱 작가의 소설은 연애가 시작되기 전 엇갈리는 인연처럼 아직까지는 이렇게 어긋나고 있다. 읽은 책은 집에 없고 읽지 않은 책만 집에 있으니 읽고 나면 이 책들도 왠지 어디론가 보내버려야할 것 같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신간이 나왔으니 어여들 읽자고!

 1999년부터 읽은 김영하 작가의 소설에 비해 6년이나 늦게 만난 김경욱 작가의 소설이지만, 오래된 연인처럼 마침 그 즈음 살짝 눈돌릴 때였는데(?) 김경욱이라는 작가를 만나게 되어 또 눈이 하트 뿅뿅 되었다. 독자 마음 참 간사하다. 그래도 김영하 작가의 작품들 보다는 많이 덜 읽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두 분의 색깔이 많이 달라서 누가 더 좋으냐고 묻는다면, 아니 어쩌면 다음에 이야기할 김중혁 작가를 포함해 세 분의 색깔이 정말 달라서 독자로서는 셋을 동시에 다 좋아할 수 있어 정말 행복하다. 아직도 한창 연애 중(나 혼자만,,,,^^;)인 김경욱 작가의 작품을 소개해본다.

 

<우리 처음 만난 날 - 장국영이 죽었다고?>

 

 이 책이 생각난 것은 바로, 장국영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 때문이었다. 작가는 이 소설집을 통해 '소통'을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소설 속 인물들이 많이 외로워보였다.  기록 중 표제작 '장국영이 죽었다고?'에 대한 기록 중 일부를 옮겨본다.

 

2005.10. 18

개인적 추억은 개인적으로, 대상에 대한 그리움 역시 개인적으로, 바로 그 개인적인 멋스러움이 인터넷에 의해 사라져버리고 오히려 그것이 뭔가 잘못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에 대한 잘못을 느껴본다.

 

 

<아, 작가님 사릉합니다 ♥ - 천년의 왕국>

 

 역사 소설을 쓸 줄은 몰랐다. 단편을 통해 느꼈던 섬세함을 기대했는데 돌아온 것은 묵직함 그리고 탄탄한 문장력이었다. 책을 읽은지 한참이 지났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몇 번이고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문장이 정말 좋았기 때문이었다. 사실 김경욱 작가의 소설을 읽은지가 꽤 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팬이라고 말하는 데에는 이 소설의 역할이 크다.

 

(그나저나 리뷰를 적은 것 같은데 또 없다. 새로 찾은 공책엔 김영하 작가의 두 작품의 리뷰가 있었다. 참, 기록은 열심히 하는데 정리가 좀...^^:)

 

<사랑의 확신 - 위험한 독서>

 단편을 읽어도 장편을 읽은 듯한 느낌이었다. 편편이 무게감이 느껴졌다. 김경욱 작가에 대한 무한한 신뢰감이 형성되었다.

 

2009.

대체로 몇몇 작품만 인상적인 많은 단편집과 비교해볼 때 지금 난 꽤나 ‘유익한 독서’를 한 듯 하다.

 

<내 눈엔 너 밖에 안 보여♬ - 소설가로 산다는 것>

여러 작가들의 소설쓰는 이야기가 담긴 <소설가로 산다는 것>의 첫 글은 김경욱 작가였다. 에세이라고 하기엔 매우 진지했고, 나는 그런 진지함이 정말 좋았다. 이후에 이어진 소설가들의 이야기는 그에 비해 가벼웠고, 나는 그런 가벼움이 정말 가벼웠다. 이 책에선 김경욱 소설가만 보였다.

 

2012. 1. 23

-17명의 작가가 글을 썼고 나는 그중 대여섯 명의 글을 어렴풋이 기억하고 단 3명의 글을 좋아했고 그중 으뜸은 김경욱이다. 그러니까 내게 이 책은 <-김경욱 외>이다.

 

<더 알고 싶어요!>

 사놓고 읽지 못한 책, 분명 솟구치는 궁금함으로 샀을 거면서 이렇게 밀려있다. 새로 나온 소설 <야구란 무엇인가>에서 느낄 묵직함도 기대하게 한다. 내가 알지 못했던 <장국영이 죽었다고?>이전의 작품도 궁금하다. <헬로, 미스터 디킨스>에서의 김경욱 작가님 작품도 좋았지만 개인적으로는 김중혁 작가님 소설이 좀더 좋아서 이 책은 3편에 소개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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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애정하는 3김 작가가 있다. 좋아하게 된 순서로 소개하자면 김영하, 김경욱, 김중혁 작가가 바로 그들이다. 나는 각기 그들을 영하느님, 욱이옵, 혁사마 라고 부른다. 별명은 혁사마, 영하느님, 욱이옵의 순서로 지었다. 사실 김경욱 작가의 경우엔 괜히 설레어서 별명을 지어 부르지 못했다가 신간 출간 기념으로 별칭으로 부르기로 했다. 물론 대상없는 호칭이다.

 

 

김영하 작가를 좋아하게 된 것은 스물두 살로 기억한다. 그의 데뷔작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읽고 충격과 매력을 동시에 느꼈었다. 그땐 두세줄 메모로 기록했을 기록장에 나는 무어라 적었을까? 그즈음의 기록을 찾아보니 다행히 있다.( 잠시 후에 소개^^) 책장 한 칸엔 이 3金 ♥작가의 책이 옹기종기 모여있는데 개인적으로는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제외하고는 모두 읽었으니 전작은 아니더라도 9할작주의는 된다고 생각한다. 작정하고 읽지 않았는데 새 작품이 나올 때마다, 혹은 그것을 놓친 다음에는 늦은 후에라도 찾아 읽다보니 스물두 살로부터 13년이 멀어진 지금, 나는 작가의 경력과 함께 나이를 먹었다.

 

 

개인적으로는 그의 초기작부터 <빛의 제국>까지를 좋아한다. 이후의 작품들은 장편보다는 단편이 더 좋았다. 그를 가장 신뢰하게 된 작품은 단연 <검은 꽃>이다. 이번에 출간된 <살인자의 기억법>은 왠지 내가 가장 좋아했던 그의 작품들을 닮았을 것 같은 기대를 해 본다. 새로우면서도 탄탄한 문장과 사건을 만나고 싶다.

 

 

 <처음 그에게 반했던 작품들- 1999년 이후의 기록과 함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로 시작한 줄 알았는데 기록을 보니 <호출>을 먼저 읽었었다. 사람의 기억이란 참. 이 책을 읽고 스물 두살의 나의 기록 중 한 줄을 소개해 본다.

1999.7.1

- 신선하다. 깬다. 이게 내가 그의 소설을 찾는 이유이다.

 

 

1999. 7. 26 

- 착한 소설이다. 나비효과. 그런 맘이 들 때가 있다.

 

 

 

 

 

 

1999. 8. 21

- 푹빠져 있는 지금 그의 소설에 대해 평을 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담배같은 소설.

매캐한 중독성.

 

 

  

 

이 책이 네번째 읽은 소설이라는 점에 스스로 깜짝 놀랐다. 이 책의 인상이 컸던 모양이다. 그것도 2002년에야 읽었다니!!!

 

2002. 1. 7

-난 왜 김영하의 글을 좋아하는 걸까? 형식을 파괴하고 기존의 안정된 내용들을 완전히 탈피했기 때문이지. 사실 뭘 말하고자 하는 지는 파악이 잘 안된다.

 

<권태기랄까? - 2005년 이후의 기록과 함께>여기서부턴 리뷰를 길게 쓰던 시기이다.

 

2005. 1. 12

- 다소 부드러워진 그의 글 속에도 예전의 느낌을 찾아낼 수 있는 것은 나도 함께 물러진 탓이리라.

 

 

 

2005. 1. 26

영화평을 읽을 땐, 그가 글을 잘 쓰는 사람같지는 않다. 그저 사고가 유연하다고 느껴질 뿐. 그러하기에 여전히 난 그가 소설을 쓰기를 바란다.

 

 

 

 

 

 

2006. 11.2

일반인으로서의 김영하, 일명 지식인으로서의 김영하, 소설가로서의 김영하가 사는 글이었다. 물론 그 안에 일반인으로, 일명 지식인으로, 직업인으로 나도 살고 있는 글이었다. 그래서 나는 10년 가까이 그의 글을 사랑하나 보다.

 

 

 

2008. 10. 30 (시기상으론 절정기지만 작품상으론 권태기인듯)

-길었고 쉽게 읽히긴 했다. 다음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도 궁금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실망하기도 했던 소설이었다.

 

 

 

 

 

<애정의 절정기 -2008년 이후의 기록과 함께>

 

  2008. 10. 9

-끔찍했던 어떤 일들이 아무렇지 않게 여겨지는 것, 그런 일이 반복되는 것, 혹시 그런게 인생이 아닐까

‘끔찍’까지는 아니더라도 깜짝 정도는 놀라야 하는 일, 못 견딜 것 같던 슬픔과 아픔, 고통의 일들이 여러 번 반복 되면 그것은 정말 일상처럼 느껴지고 그들이 인생이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 함께 들었다.

 

 

 

찾았다 이 책의 리뷰를!

2006. 11. 19

역사 소설치고 이 소설만큼 민족주의와 영웅주의가 눈에 띄지 않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글을 읽는 내내 나는 특정 인물에 대해 과도한 애정과 연민, 존경을 가진 적이 없다.

 

 

 

2010. 8. 15

- 김영하의 짧은 소설은 비현실적인 내용에서 현실감을 준다는 점이 다르다. 다시 말해, 순간 멍해지는 느낌을 받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이내 든다.

 

 

 

 

그 외 읽었지만 기록이 없는 책들

 

 

 

 

 

 

 

 

 

 

읽지 않았지만 읽고 싶은 책들

 

예약 판매로 구매하고 기다리는 <살인자의 기억법> 제목만으로도 읽고 싶은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 그리고 사놓고 읽지 못한 <옥수수와 나>!

 

 

 

남은 2金의 이야기는 다음 이시간에,,,, 근데 나 사실 영하느님 데뷔하셨을 때 프로필 사진에 반했었는데 그때 생각만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잘생겼다고 말하고 다니다가 무시당함...확인해보니 미남은 아니신걸로! 목소리가 좋으시니까! 남자는 목소리지!라며 다시 신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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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교육
로맹 가리 지음, 한선예 옮김 / 책세상 / 2013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지난 주말에 문득 스스로의 무지에 놀라 '나만 모르는 소설가들, 나만 안읽은 소설들'이라는 페이퍼(http://blog.aladin.co.kr/tiel93/6463792)를 쓴 적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한 2년 전쯤까지만 해도 로맹 가리 또한 그런 소설가들 중에 하나였고, 그의 소설이라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의 제목만 들어본 때였다. 그러다 우연히 소식(아주 오래된 소식이지만 내게는 새로운 소식)을 들었다. 콩쿠르 상을 두 번 수상한 작가가 바로 로맹 가리이며 그의 다른 이름은 에밀 아자르라는 것이다. '다 아는데 또 나만 모르는건가?'싶은 마음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것은 없지만 최소한 로맹 가리를 알고, 로맹 가리의 소설을 세권째 읽는다는 사실만은 다행스럽다. 에밀 아자르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자기 앞의 생>은 메시지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사랑스러웠다. 사랑이라는 주제를 다루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어린 아이의 시각으로 서술한 덕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흰 개>의 로맹 가리는 냉소적이고 직설적이었다. '도대체 이 작가의 정체가 무엇이지?'라는 의문을 품게 되었다. <자기 앞의 생>이 술술 잘 읽혔다면 <흰 개>는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지만 이상하게 에밀 아자르의 책보다 로맹 가리의 책이 더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확신할 수 없었다. 그의 책을 내가 즐겨 읽을 수 있을까 하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유럽의 교육>은 그의 첫 장편 소설이었고 당시 베스트셀러가 된 소설이라고 한다. 이 책의 개정판이 올해 초에 나왔을 무렵 로맹 가리를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큰 관심을 끌기도 했지만 정작 유명해진 것은 도서전에서 대통령이 구매했기 때문이었다. 대통령이 이 책을 고를 때 이 책이 교육정책과 관련된 줄 알고 골랐을 것이라는 추측을 하는 한 개인으로서 무턱대고 이 책을 산 사람들이 로맹 가리의 이 소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심히 궁금해진다. 하지만 그들은 최소한 이 책을 흥미롭게 읽었을 것이라고는 생각한다. 내 염려와 달리 이 책은 <흰 개>보다는 훨씬 흡입력이 있었고,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 야네크와 함께 했다.

 

최근 몇 년간 세계대전과 관련된 여러 편의 책을 읽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내 배경 지식은 '히틀러 나쁜 놈'에서 벗어나지 못했었는데 이 달에 그 당시의 책 두 편을 읽자하니 스스로에게 꿀밤을 먹이고 싶어졌다. 어쩌면 생각이 이리 단순한지, 다각도에서 그 당시를 알고 싶어졌다. 독일과 유대인의 문제를 넘어 유럽 전반의 문제로 더 넓혀 세계적인 시각에서 당시를 이해하고 싶었다. 당시에 살았던 사람들을 이해하고 싶었고, 더 깊이 안타까워하고 더 따뜻하게 이해하고 싶었다. '유럽의 교육'을 바라보는 야네크와 도브란스키의 반대되는 입장 모두를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이해하고 싶어졌다. 도대체 히틀러는 왜 그런 전쟁을 벌였고, 독일 사람들은 어떻게 하다가 그를 받아들이게 된 것이며, 유럽은 어쩌자고 그를 그대로 두었단 말인가? 의문스러웠다. 독일군의 아버지이였지만 그런 독일을 마음 아파하는 아우구스투스 슈뢰더의 모습, 순수하다고 착각하는 아내를 위해 목숨을 희생한 변호사 스타니슬라브 스타히에비치의 행동을 이해하는 척하기 보다는 진짜로 공감하고 이해하고 싶었다. 야네크의 입장과 도브란스키의 입장을 공평하게 받아들이기 보다는 야네크의 입장에서 좀더 화를 내고 싶어졌다. 그의 말처럼 그 유명한 유럽의 교육이 가르치는 것은 결국, 자기한테 아무 짓도 하지 않은 사람을 죽이는 데 소용이 될 만한 그럴싸한 이유들과 용기를 찾아내는 법일 뿐(328쪽)이라는 것에 동조하고 싶어졌다. 지금 대한민국에서도 유효한 그 말에.

 

나는 참 어정쩡하다. 절망과 희망의 그 정가운데에서 어느 쪽을 봐야할 지 언제나 모르는 상태인 듯 하다. 그 둘이 함께 한 폴란드의 한 숲속의 묘한 아름다움이 쉬이 잊힐 것 같지는 않다. 아마 나처럼 불완전한 채 어정쩡한, 때로는 절망하고 때로는 희망을 품는 묘한 상태라는 것이 인간이 세상에 자리하는 좌표가 아닐까 싶은 생각도 해 보지만 그래도 늘 어정쩡한 스스로에게 조금은 답답함이 느껴진다. 지금 '대한민국의 교육'은 무엇을 가르치고 있으며, 나는 야네크와 도브란스키 중 누구의 마음인지 조금 더 생각해 보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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