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처음 그의 소설을 읽었을 때의 충격을 잊지 못한다. 제목부터가 무척이나 자극적이었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는 소설은 이제는 내용을 거의 잊었지만 당시로선 파격적인 제목과 표지 그리고 내용에 스무 살 나의 아드레날린의 분비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그 때부터였다. 내가 그의 이름을 서가에서 찾아 읽고 책꽂이에 하나씩 꽂아두기 시작한 것이.

 

  작가의 말에서 그는 자신이 쓴 것들이 모두 ‘살아 있’는 것이라고 했다. 굳이 그 말을 하지 않았더라도 이번 단편집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를 읽은 독자라면 그의 글이 살아 있다는 것을 지체 없이 감지할 수 있다. 솔직히 처음엔 당황했다. 내가 그를 사랑하기 시작했던 그 강렬한 이야기와 상상이 언제부턴가(아마도 내가 생각하기엔 <퀴즈쇼>부터) 사라져가고 있다고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단편집을 읽으며 머리가 아닌 가슴이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건 바로, 지금 우리들의 살아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13편의 단편들을 읽으면서 나는 8시, 9시 뉴스들을 떠올렸다. 그만큼 그의 이야기는 사건적이었고, 그만큼 효율적이었고, 그만큼 개연성이 있었다. 이 말은 13편의 이야기가 속도감 있고 흥미롭게 전개되어 누가 보아도 이건 소설이지만 그 주인공들이 모두 내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내가 만나는 그 누군가가 「로봇」이었을 수도 있고, 나의 오래 전 연인이 나를 찾아와 「여행」을 떠날 수도 있었고 아니면 그러기를 바랄 수도 있었으며, 내 남편이 「조」일 수도 있지 않을까 - 실제로 난 「아이스크림」의 이야기처럼 아들의 스틱분유에 들어있던 유충을 가지고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었다.

 

  그의 단편이 장편이 주는 매력과 다른 점이 있다면 단편에서는 조금은 엉뚱하거나 기괴한 상상력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순간적으로 하게 되는 망상과 같은 것을 그는 이야기 속에 집어 넣어 기가 막히게 정곡을 찌른다. 가령, 「로봇」을 만나는 순간이나 자신이 「악어」가 되는 순간을 우리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런 순간들 조차도 지금, 우리에겐 숨쉬고 있는 살아있는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아까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고 외치는 순간, 내 머릿속의 프로그램이 이제 당신을 떠나야 할 때라고 경고했습니다. 이런 열정적인 사랑은 인간인 당신을 해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내게 떠나지 말라고 명령하기 전에 내가 먼저 가야 합니다. 그래야 로봇3원칙의 딜레마에 빠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p30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자신이 살던 곳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보내다 만 문자메시지가 남아 있는 휴대폰과 돈과 신용카드가 잔뜩 든 지갑까지 남겨둔 채, 심지어 입으려던 바지까지 침대 위에 걸쳐둔 채, 그는 말 그대로 증발해버렸다.

그로부터 며칠 후, 그가 살던 아파트 잔디밭에서 악어 한 마리가 발견됐다. 악어는 입이 벌린 채로 죽어 있었다.

p76

 

 

  뉴스의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그의 이야기는 무척 사건적이고 그래서 흥미진진하고 또한 대중적이기도 하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와 「거울에 대한 명상」이 영화화되었고, <검은 꽃>이 영화화될 것이라는 점을 굳이 꼬집지 않더라고 그의 이야기는 현대인 혹은 미래인의 욕구를 여지없이 충족시켜준다는 점은 그의 이야기의 가장 큰 장점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번 단편집에서 굳이 SF적이고 몽환적인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현대인 혹은 미래인의 욕구를 충족시켜줄 이야기는 여럿 있었다. 「조」나 「퀴즈쇼」가 주는 서스펜스적인 요소들이 그러하다.

   ‘조’라는 인물은 우리가 영화나 TV에서 흔히 본 그저 그런 형사의 캐릭터이다. 그런 면에서는 백화점의 점원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두 요소들 간의 차이점은 관찰자에게 있다. 우리는 ‘조’는 눈여겨보지만 점원들을 눈여겨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조」의 이야기가 그저 그런 경찰의 이야기가 아니라, 눈여김의 대상이 아닌 우리의 이야기이며 여기에 작가는 ‘조’라는 인물이 투입하여 그저 그런 삶이 아니라 일종의 생명력을 불어넣은 서스펜스적인 이야기를 만들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퀴즈쇼」에 나오는 사람을 우리는 TV를 통해 혹은 그 밖의 루트로 일주일에도 수십 명, 혹은 수백 명을 보고 있다. 우리는 쇼를 보면서 주어진 상금에 대하여 그리고 우승자의 기분에 대하여 아주 잠깐 흥분의 감정을 느낄 수는 있지만 채널을 돌리면서 마주하게 되는 드라마의 이야기 속에 더 오래 빠져든다. 우승자의 사생활 따위에는 큰 호기심을 갖지 않게 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읽은 후엔 수많은 퀴즈쇼 우승자들이 ‘은이’ 혹은 ‘자말’(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주인공)으로 보일 것이다. 조만간 영화나 드라마가 되지 않을까?

 

  이번 단편집은 아주 두꺼운 분량의 책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3편이라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다. 때로는 50페이지가 넘게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2페이지짜리 이야기도 인상적이다. 김소진의 짧은 소설과 분량은 비슷하지만 느낌은 사뭇 다르다. 김소진의 이야기가 현실 속에서 유머와 슬픔을 준다면, 김영하의 짧은 소설은 비현실적인 내용에서 현실감을 준다는 점이 다르다. 다시 말해, 순간 멍해지는 느낌을 받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이내 든다.

 

  형식과 내용면에서 다양한 시도를 추구한 결과물이 바로 이번 단편집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이다.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청탁이 들어오지 않은 채 쓴 단편들도 많이 실렸다고 하는데 그러하기에 더 자유로운 이야기가 들어있을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점에서는 잘한 선택이었다고 본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다른 사람들은 표지를 보고 깊은 인상을 받은 듯 하지만 난 이번에 새롭게 찍어낸 일괄적인 모든 표지들이 작가의 개성과 자유로움과 거리가 멀어 불편했다. 가장 기계적인 느낌을 주어 미래 독자들의 호감을 목적이어서 아직은 미래인이 되지 못한 내게만 유독 그리 느껴지는지는 모르겠다만 그 점을 제외한다면 이번 단편집이 김영하라는 작가에게 품은 개인적 의구심을 어느 정도 해소시켜주는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문득 몇 해 전 김영하 작가 홈피에 글을 남기던 날들이 생각난다. 그 때의 홈피는 지금처럼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지금처럼 길을 잃지도 않았다. 그 때 난 늘 끝인사로 ‘사랑하는 하루’가 되라고 남기고는 했는데 그는 아마 이미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사랑하고 있는 중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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