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에 읽은 책 세 권을 추천해본다. 소개가 아니라 추천이라고 말하는 까닭은 세 권을 읽으면서 참 기분이 좋았기 때문이다. 좋은 책들이다. '근래에 읽은' 책들은 대개 그 근래에만 머무는 경우가 많은데 지금 추천하고자 하는 세 권의 책들은 잔영이 오래 남아있다.  [헤세의 문장론]을 가장 최근에 읽었고, [담장을 허물다]를 그 사이에, [나, 제왕의 생애]를 가장 먼저 읽었는데 지금껏 가장 크게 이야기가 살아 움직이는 것은 [나, 제왕의 생애]이다. 이 책의 존재감이 스스로도 놀랍다. 쑤퉁의 소설이기에 그런 것인가, 내가 본래 중국의 역사 이야기를 좋아하기 때문인가. 어쩌면 그 둘이 만났기에 그러할 테지만 쑤퉁의 힘에 대해서는 추후에 다른 작품을 읽어보고프다는 마음이 증명한다.  최근에 읽은 작품부터 추천해본다.

 

 

 

 

 

 개인적으로는 속표지의 민트빛이 더더욱 맘에 들고, 제목의 폰트가 예쁘다.

 

장장 10장에 달하는 편역자의 머리말을 통해서도 느껴지지만 12권의 헤세의 책 외에 많은 글 속에서 책읽기과 글쓰기에 대한 글들을 모아 엮은 열정이 그득하다.

 

무엇보다도 기존에 내가 알고 있었던 소설들과 그림 그리고 시가 아닌 헤세의 목소리가 직접적으로 담긴 이 글들을 통해 헤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 아닌가 싶다. 읽으면서 그저 눈으로만 따라가기가 아까워 꽤 많은 분량의 글들을 옮겨 적었다. 주로 책읽기에 대한 글들이었는데 그가 말하는 책에 관한 이야기들은 현대에도 그대로 유효하다.  옮겨 적은 글들 중 몇 편을 여기에 올리는 것 대신 미처 옮겨 적지는 못했지만 기억해두고픈 글들을 몇 편 소개해 본다.

 

요즘 공간 대비 책의 양이 많아 고민 중인 내게 헤세가 말한 친구의 이야기는 큰 가르침이 되었다.

나의 한 친구는 미리 한두 번 읽어보고 만족스러웠던 책만 구입한다. 그렇지만 그의 집 책장에는 벽면 가득 책이 들어차 있다. 그는 그 책들을 거의 예외 없이 전부 혹은 부분적으로 여러 번 읽었다. (51쪽)

 

 세상에나! 읽지 않은 책이 책장에 가득 차 있는 나로서는 심히 부끄러워진다.

 

소설이자 시인이었던 헤세가 말하는 시쓰기의 즐거움에 공감한다. 시를 읽는 것도 충분히 행복하지만 아주 가끔이나마 시를 쓸 수 있을 때의 행복감을 알기 때문이다.

 

형편없는 시를 읽는 것은 극히 단기간의 즐거움이니 금세 그것에 질리고 만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읽어야 한단 말인가? 누구나 직접 형편없는 시라도 지어보면 안될까? 그렇게 해 보라. 그러면 형편없는 시를 짓는 것이 심지어 최고 아름다운 시를 읽는 것보다 훨씬 행복함을 알게 될 것이다. (158쪽)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무조건 추천하고픈 책이다. 다만 현재 의문이 드는 사항이 있어 메일로 문의를 해 두었는데 답신이 오면 추가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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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시집을 읽은 것 같다. 7월에 사고 안 산 것 같은 느낌? 헤세의 충고처럼 시를 쓴 것도 아니니 시에게 조금 소원했나보다. 아니지! 최근에 서예교실 작품을 준비하면서 이문재 시인의 작품을 써 보았으니 너무 한 작품에만 몰두한 모양이다.

 

공광규 시인은 그림책 [구름]을 통해 알게 되었고, 시는 처음 읽는다. 평범해보이는 제목과 낯선 시인에게 마음을 완전히 열지 않은 채 읽었지만 어느 새 오픈된 나의 마음의 담장! 이 담장이 그 담장이었구나!!!!!

 

45편의 많지 않은 작품이 수록되었는데 작품들이 모두 좋다. 어디를 펼쳐봐도 내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는 시들이 그득하다. 위로받고 싶을 때, 온기를 느끼고 싶을 때 이 시집을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마음이 괜시리 평안해진다.

 

아름다운 시를 읽는다는 것은 헤세의 말처럼 형편없는 시를 쓰는 일보다는 덜 행복할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 시를 쓴 시인의 마음을 헤아려보는 일은 애틋한 마음이 든다. 시를 소비하려 하지 말고 시를 음미하여야 한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이달 초에 한 편의 시를 붓글씨로 반복해서 쓰면서 쓸 때마다 그 시를 점점 더 사랑하게 된 경험을 했다. 시는 자뭇 그렇게 읽어야 하는 건 아닐까?

 

 

 속 빈 것들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것들은 다 속이 비어 있다

 

줄기에서 슬픈 숨소리가 흘러나와

피리를 만들어 불게 되었다는 갈대도 그렇고

시골집 뒤란에 총총히 서 있는 대나무도 그렇고

가수 김태곤이 힐링 프로그램에 들고 나와 켜는 해금과

대금도 그렇고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회의 마치고 나오다가 정동 길거리

에서 산 오카리나도 그렇고

 

나도 속 빈 놈이 되어야겠다

속 빈 것들과 놀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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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둥! 드디어 오늘 책 소개의 하이라이트! [나, 제왕의 생애]이다.

 

쑤퉁의 소설을 가장 먼저 읽은 것은 [다리 위의 미친 여자]라는 다소 파격적인 제목의 소설집이었다. 중국의 냄새가 물씬 나면서도 다양한 이야기를 만드는 이야기꾼 쑤퉁에게 빠져들게 되었고 이후 그의 책을 틈틈히 샀다(읽었다는 말이 아니다.). 그 책들 중에 단연 내 눈길을 끈 것이 바로 이 책인데, 평소 중국 역사 드라마 좋아하는지라 어떤 왕이 나올라나 궁금해하는 마음으로 읽었고 표지의 저 여성(책을 읽어보니 여성이 아니었어!)을 보고 흔한 드라마의 구조를 예상해보았었다.

 

그러나 이 책은 중국의 역사 속에 없는 가상의 나라 섭국의 멸망과정과 그 나라의 다섯번째 섭왕의 생애를 그린 이야기이며, 여인들의 암투가 있기는 하되 그들의 비중이 크지 않고 오로지 섭왕에 집중된 단조로운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어느 시대에 짧게나마 존재했을 것만 같은 개연성과 역사 소설에서 거의 쓰지 않는 1인칭 시점으로 소설을 끌고 나가는 집중력은 소설가 쑤퉁의 힘을 여실히 느끼게 한다. 책장을 덮으며 영상으로 보고픈 마음이 간절해졌다. 정말 재밌을 것 같다. 영화 감독님들께서 애정하는 소설가이니 이 작품도 언젠간 영상화 되길 기대해 본다(영화보다는 드라마를 원한다.)

 

외로운 왕, 섭왕.

줄타기 왕이 된 섭왕.

궁에서보다 줄 위에서 더 행복했던 섭왕이, 보고 싶다.

 

"꽃은 사람의 마음을 알아주려니" 「나, 제왕의 생애」p225,쑤퉁

 

 

 

 

헤르만 헤세와 쑤퉁은 내가 평소에도 좋아하는 작가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들의 책을 얼마나 읽었느냐고 따진다면 나는 남들보다 적게 읽었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누구를 좋아하는 것과 누구를 알고 있는 것은 엄연히 다른 말이고, 나는 그들을 알지 못하지만 그들을 좋아한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여러 번 읽지도 않고 전부 읽지도 않았으면서 그를 좋아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이 일련의 과정들이 '책에 대한 진지한 태도'를 갖게 하는 것 같다. 나는 그동안 책을 너무나 가벼이 생각한 것이 아닐까? 다음 주에 구리에 김중혁 작가가 강연을 하러 오는데 평소 그를 혁사마라 부르며 좋아한 나는 마찬가지로 그의 작품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지도 전부 다 읽지도 않았다. 나는 그를 혁사마라 부를 자격이 있는가 모르겠다. 작품과 작가를 좀더 진지하게 대해봐야겠다. 집에 있는 그들의 책도 다시 살펴보고 한 번 더 읽을 수 있는 작품은 다시 읽는 것도 좋겠다. 쉽게 되진 않겠지만 의미있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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