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의 빛나는 순간 - 르네상스를 만든 상인들
성제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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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립 도서관에서 문화강좌로 '르네상스 미술'을 듣던 참이었다.  이탈리아를 벗어나 북유럽의 르네상스 미술까지를 듣고 있던 중에 도서관 서가에 꽂힌 이 책을 보았고 당연한 듯 뽑아들었ㄷ. [피렌체의 빛나는 순간]이라는 제목 곁에 부제인 '르네상스를 만든 상인들'가 보였고 망각 곡선이 아직 적용되기 전인 나의 기억은 어렵지 않게 메디치 가를 떠올렸다. 읽어보자, 고 마음 먹은 것은 거기에서 오는 자신감이었다.

 

내가 배운 르네상스의 미술은 철저히 화가와 미술작품 위주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원자의 존재는 그 시대의 미술에서 가벼이 다루어질 수 없었다.  그림은 화가가 그렸으되, 그 그림의 시작과 내용은 후원자의 요구에 의해 이루어지는 게 그 당시의 일반적인 예술 활동이었다. 물론 그 그림은 돈으로 지불되는 바 작품의 소유권자는 그 후원자들이었으니 지금은 우리가 지금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미켈란젤로, 보티첼리의 그림이라고 부르지만 숨은 주인들은 바로 그 후원자들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 후원자들은 당시 상업의 발달로 인해 막강한 부를 가지게 된 상인계층의 사람들이었고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메디치 가문이 포함되어 있다.

 

[피렌체의 빛나는 순간]은 우리가 르네상스 시기라고 부르는 1300년대 중반부터 1500년대 중반까지 대략 200년 동안 피렌체를 지배한 가문들을 소개하며 당시 힘의 지형을 드러낸 책이다. 묘하게도 이 책은 '피렌체'라는 도시의 역사를 탐구한 역사서이기도 하고, 당시의 '빛나는' 예술 작품을 소개하고 설명하는 예술서이기도 하며 그 '순간'에 대한 막연한 향수와 동경을 갖게 하는 산문집이기도 하다. 이 점이 이 책이 갖는 독특한 매력이기도 하다.

 

중세에서 르네상스로 넘어가는 기점에는 고리대금업자들의 등장이 있었다. 십자군원정으로 인해 피폐해진 수도원들을 재정비하기 위한 교황의 노력도 함께 있었다. 이 두 계층의 사람들이 만나 지금 우리가 감탄하며 볼 수 있는 르네상스의 수도원 미술들이 존재하게 되었다. 수도원을 교황의 의도에 맞게 화려하고품위있는 미술 작품으로 채우는 것은 기존의 귀족계층이 아닌 고리대금업으로 막강한 부를 갖게 된 신흥상인들이었고 그런 상인들에게 교황은 손을 내민다. 상인들은 돈을 지불하는 가문만의 특별한 기도실을 제공받게 되고 각 기도실에는 가문을 상징하는 그림들이 그려지기 시작한다. 그러니 당시의 그림은 보는 것이 아니라 읽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보는 편이 더 옳을 지도 모르겠다.

 

그 중심에 메디치 가문이 있었다. 조반니 디 비치에서 코시모 데 메디치를 거쳐위대한 로렌초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그 이후 다시 교황 레오 10세와 클레멘스 7세에 다시 집권하기까지 르네상스의 절반의 시기를 지배한 가문이다. 메디치 가문 앞에 소개된 스트로치 가문이나 브란가치 가문 그리고 르네상스 후반에 등장한 마키아벨리를 모두 함친 것보다 더 큰 힘과 영향력을 가진 막강한 상인 계층. 이 책의 중심에도 바로 메디치 가문이 있었다.

 

이 책보다 더 넓은 의미의 르네상스 미술사 강좌를 들으면서도 이 메디치 가문에 대한 부분이 2-3강을 걸쳐 나왔을 정도이니 메디치 가문이 르네상스에 미친 영향은 그것의 부정성을 떠나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사실이다.  그들이 플라톤 아카데미를 만들어 인문학적으로 피렌체를 발전시킨 것, 미켈란젤로와 보티첼리 등 역사적인 미술가들에게 기회를 주고 그 아름다운 작품들을 현재에까지 물려준 것은 그들이 지배한 100년에 가까운 시간이 준 긍정적인 결과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비판의 여지도 상당히 있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그들에게 권한 이유와 같이 그들이 애당초 표방했던 '시민 공동체'의 모습을 잃어가고 '독재 권력'으로 시민들에게 비춰진 점에 대해서는 분명 권력에 대한 야욕이 있었음을 드러낸다. 지배자의 자리란 원래 그러한 것일까? 견제할 대상이 없는 지배자의 모습은 충분히 그러할 수 있을 것 같다. 문득 오늘 읽은 정약용 시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그 시를 당시의 로렌초 메디치와 지금 우리의 정치인들에게 바친다.

 

 

 

述志2(술지2)
-丁若鏞(정약용)
내 품은 뜻은


嗟哉我邦人(차재아방인)  아, 우리나라 사람들 애닯아라
辟如處囊中(벽여처낭중)  주머니 속에 처한 듯하도다
三方繞圓海(삼방요원해)  삼면으로 바다에 에워싸여
北方縐高崧(북방추고숭)  북방애는 산맥이 누르고 있도다
四體常拳曲(사체상권곡)  사지를 항상 펴지 못하니
氣志何由充(기지하유충)  기상과 마음을 어찌 채울 수 있을까
聖賢在萬里(성현재만리)  성현은 만 리 먼 곳에 있으니
誰能豁此蒙(수능활차몽)  누가 능히 이 몽매함 밝혀 줄까
擧頭望人間(거두망인간)  고개 들고 온 세상 바라보아도
見鮮情瞳曨(견선정동롱)  보이는 것 드물고 마음만 답답하도다
汲汲爲慕傚(급급위모효)  남의 것 모방하기 급급하고
未暇揀精工(미가간정공)  결점은 미처 정밀히 따지지 못하네
衆愚捧一癡(중우봉일치)  여러 바보들 한 천치를 치켜세워
裾唅令共崇(거함령공숭)  왁자지껄 함께 받들게 된다네.
未若檀君世(미약단군세)  단군 시재보다 못하나니
質朴有古風(질박유고풍)  그 때는 질박하고 고풍이 있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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