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만 보면 꼭 로쟈님 글 제목 같기도 하다만 아니라서 낚인 분들께 죄송. 또한 이 세 사람이 관련이 있나 싶어서 오신 분들께도 미리 죄송. 그저 어쩌다 보니 최근 세 권이 이 세 사람에 대한 책이었을 뿐이었나이다.

 

[중국행 슬로보트]를 읽고선 무라카미 하루키가 궁금해져  [하루키 스타일]을 읽다보니 하루키에 대한 작가의 느낌이 달달하여 에세이를 읽는 듯 했고 간간히 전해지는 필력이 좋아 그 전작인 [손석희 스타일]을 찾아 읽었다.

 

 

 

 

 

 

 

 

 

 

 

 

우선 [하루키 스타일]의 경우는 이 세상에 나온 하루키의 글과 거기에 담긴 생각을 한데 정리한 '하루키의 모든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하루키에 대한 그 어떤 책들보다 하루키를 많이 알게 해 주었다. 세련된 책 표지와 편집과 더불어 주로 내 스타일의 글은 아니었지만 비교적 많은 책을 써낸 작가인 만큼 필력 또한 만만치 않았다.

 

아픔은 피할 수 없지만 고통은 선택하기에 달렸다. Pain is inevitable, Suffering is optional.

와 같이 무라카미 하루키가 한 멋진 말들도 많이 실려있지만 그것들에 연결 고리를 만들면서 쓴

단순히 어떤 일을 잘할 수 있는 '재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것이 삶의 태도이자 철학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방향 감각이 있어야 한다.

과 같은 작가의 소리도 매력적인 경우가 종종 있었다. 더구나 이런 책의 경우 중언부언인 때가 많은데 이 책에서는 그런 면에서도 담백했다. 그런 기대감을 가지고 굳이 [손석희 스타일]을 도서관 서가에서 찾아 읽었다.

 

[하루키 스타일]이 작년 초에 나오고, [손석희 스타일]이 2009년에 나온 만큼 제목은 비슷해도 모든 면에서 많이 차이가 났다. 물론 최근의 [하루키 스타일]이 훨씬 좋다. 앞서도 말했지만 이 책은 에세이나 오마주의 느낌이 드는데 반해 [손석희 스타일]은 자기계발서의 냄새가 많이 난다. [하루키 스타일]을 읽으면서는 하루키가 내게 아주 가까워진 느낌인데 반해 [손석희 스타일]을 읽고 나서도 물론 손석희란 인물에 대한 호감은 있지만 가깝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후자의 경우 '성공'이라는 키워드에 주제를 맞추다 보니 그렇게 된 모양이다. 아마 그때엔 그런 책들이 유행이 아니었겠나 짐작해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필력은 다소간 느낄 수 있었다

 

철학이 있는 준비가 철학이 있는 시작을 만들고, 철학이 있는 시작이 철학이 있는 변화를 만들고, 철학이 있는 변화가 철학이 있는 인생을 개척해 나간다.

라는 글은 지금 이 시대에도 유효한 좋은 문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키는 글을 쓰는 사람이고 손석희는 말을 하는 사람인 만큼 손석희에게도 좋은 말들이 많이 흘러나왔다. 그것을 역시 저자는 놓치지 않는 것을 보면 진희정 작가의 정리 능력은 인정할 만 하다.

"전 지도층이라는 말을 쓰지 않습니다. 민주사회에서 지도층은 없으니까요."

2005년 <시선집중>에서 한 말이라는데 지금 그의 행동을 보자면 그때나 지금이나 그의 생각은 한결같음을 알 수 있다. 저자가 한 말처럼 손석희의 방송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늘 한결같고 변함이 없다. 하지만 그의 방송은 늘 의미 있는 변화와 흐름의 중심에 놓여 있다.

 

하루키건 손석희건 누군가는 좋아할 수도 누군가는 시큰둥할 수도 있다.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이 책들이 더 확고해지는 역할을 해 줄 것 같다. [손석희 스타일]에서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심리학자에 따르면 사람은 누구나 자신과 좋은 경험을 나눈 사람들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하루키는 책으로 우리와 좋은 경험을 나누었지만 안타깝게도 선인세 문제로 인해 나쁜 경험도 함께 갖고 있다. 그래서 그에 대한 호불호가 더더욱 갈리게 되기도 하였다. 손석희의 경우 JTBC 사자으로 취임하면서 사람들에게 실망과 걱정과 기대를 동시에 받았지만 이번 세월호 보도로 인해 그는 우리와 경험을 바른 방식으로 공유했다. 그래서 우리는 손석희에 열광했다. 우리와 최악의 경험을 공유하는 스스로가 지도층이라고 여기는 그 사람들을 떠올릴 때 누가 당신들의 이름을 걸고 [000 스타일]이라고 불러주기나 하려나 묻고 싶다.

 

문득 시오노나나미가 [남자들에게]라는 에세이에서 쓴 '스타일'의 정의가 생각난다.

그 누구도 모른다. 그러나 누가 보아도 그런 줄 아는 것이 스타일이다.

 

이 두 책의 사이에서 읽은 책도 우연히 사람에 대한 책이다. 지금 우리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가 아닌 16세기에 살았던 기생 매창에 관한 학술서 [이매창 평전]이다.

 

  [매창 시집]은 들어봤지만 그녀에 대한 평전이 있는 줄은 몰랐다. 그것도 교육대학의 국어교육과 교수가 쓴 기생의 평전이라니 조금 의외이긴 했다. 하지만 김준형 교수는 이매창에 대하여 모든 것을 이 책에 실은 듯 했다. 매창이 기생인지라 그녀와 에피소드가 있는 남성의 입장에서 그녀가 조연 혹은 여주인공처럼 등장한 경우는 왕왕 봤지만 이렇게 그녀가 원톱으로 나머지 모든 남성들이 조연으로 등장하는 경우는 처음이라 신선했다. 더욱이 학술서의 성격을 띠고 있는지라 자뭇 진지한 책의 성격이 매창을 좀더 고귀한 인물로 느끼게 해 주었다. 더더욱 김준형 교수는 글을 쉽게 잘 풀어쓰는 능력이 있으신 듯 인물에 대한 정보와 흥미를 모두 만족시켜주었다. 특히 그 자신은 후대의 사람들이 매창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고 남말 하듯 하였지마는 그 역시 그러한 오류에 대해서는 한발짝 물러나 있었지만 매창에 대한 애정만큼은 숨기지 못하였다. 애정으로 가득 찬 평전의 느낌은 좋다. 위의 두 책처럼 가볍지 않지만 읽으면서 좋았더랬다.

 

매창과 당시 문인들의 좋은 시도 읽을 수 있고,

-매창 <스스로 한스러워1>

 

기생의 삶에 대한 각종 사료들도 접할 수 있었고 당시 조선 시대의 흐름도 살짝 짚어볼 수 있는 좋은 책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트위터로 허균의 천재적인 시 비평을 올렸더니 한 출판사에서 허균에 대한 책도 곧 나온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그에 대해 아는 바가 너무나 없다는 생각이 들어 기대해 본다.

"권필의 시는 화장을 하지 않은 절대가인이 알운성으로 등불 아래에서 우조와 계면조를 번갈아 부르다가 곡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문득 일어나서 가버리는것과 같다"니!

 

이젠 이야기를 읽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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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찬샘 2016-08-13 08: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준형 교수님 수업을 이번 여름에 들었는데 어찌나 재미있게 이야기를 하시던지요. 이게 전형적인 스토리텔링 수업입니다~~~ 하시더라고요! 이매창 책 검색하다가 살까말까 고민하던 중이었는데 마음의 결정을 내리게 해 주셨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