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마법서 중국 아동문학 100년 대표선 6
장자화 지음, 전수정 옮김 / 보림 / 2013년 10월
평점 :
품절


며칠 전부터 아들이 챙겨보는 TV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EBS의 ‘보니와 하니’가 그것인데 그 안에는 다양한 개별 프로그램들이 구성되어 내가 봐도 흥미로웠다. 그중 수요일에 본 두 편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내 친구 아서’와 ‘꼬마 철학자 휴고’라는 프로그램의 내용이었는데 우연인지 계획적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날 둘 다 ‘상상’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덕분에 아들은 머릿속에 ‘상상’이라는 개념을 제대로 인식하는 듯 했다. 보림출판사에서 꾸준히 출간되고 있는 중국 아동문학 100년 대표선의 최근작 [바다 마법서]를 읽으면서 그 날의 TV가 떠오른 것은 이 책에 수록된 일곱 편의 동화들이 모두 ‘상상’ 혹은 ‘환상’의 이야기라는 점 때문이었다. 특히, <떠 있는 배>라는 작품에서 형과 아우가 창고 지붕에서 바다를 상상하며 그곳이 배라고 생각하고 놀며 들개를 바다괴물이라고 상상하는 모습은 유달리 그날 보았던 프로그램을 떠올리게 하여 아이에게 소리 내어 읽어주기도 했다. 여섯 살 아들은 그 대목이 무척 흥미로운 듯 눈망울을 반짝이며 귀를 기울였다.

 

장자화의 단편동화집 [바다 마법서]는 ‘바다에 관한 환상 동화’들을 모은 책이다. 바다에 관한 동화도 읽은 적이 있고, 환상 동화도 읽어봤지만 오직 ‘바다에 관한 환상 동화’만을 모은 책은 이 책이 처음이라 기획도 신선하고 내용도 신선했다. 우리가 아는 바다에 관한 환상 동화는 아주 오랜 시간동안 [인어 공주] 하나뿐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토록 다양한 상상이 가능했다니, 왜 아무도 지금껏 시도하지 않았을까? 단편 동화집이 이렇게 하나의 주제로 구성되는 점이 뭔가 특별해보였고 내용 면에서도 만족스러웠다. 물론 이 책에서도 [인어 공주]를 모티브로 한 동화도 있다. <바다로 보낸 편지>가 바로 그것인데, 우리가 알고 있는 [인어 공주]의 이야기에서 변형된 이야기이지만 할머니에 대한 애틋함이 상상력과 결부되어 더 따뜻해진 것 같았다. 사실 물거품이 되는 이야기는 내가 아이였을 때 너무 슬펐다.

 

현실이 팍팍해질수록 우리에게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밀림의 신기한 배>의 배경인 밀림 속에서는 바다를 볼 일이 없어 “바다가 뭐야?”라고 물어야 하지만 치치의 꿈처럼 우리는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무한한 상상을 할 수가 있다. 결국 그 아이들이 밀림 속에서도 바다를 느낄 수 있었다. 이 동화를 읽고 동화의 마지막에 ‘바다를 보는 것은 정말 그렇게 어려운 일이란 말인가?’라는 질문에 ‘상상력이 있다면 어디에서든 가능하다’라고 대답할 수 있게 되었다. 앞선 동화 <깊은 바다 세계>에서 고양이 얼굴을 한 물고기가 “아무 것도 없어요! 상상 때문에 괴로워할 필요는 없다고요.”라며 상상에 반대하였지만 결국 허시가 자신의 그림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은 우리에게 상상력은 삶과 맞먹는 커다란 위험이 될 수도 있지만 난 이 작품을 통해 그것이 위험하다기 보다는 나도 그 그림 속에서 헤엄을 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실로 오랜만의 느낌이었고, 이 동화를 비롯한 모든 동화들을 통해서 상상의 힘을 새삼 느껴 무척 감회가 새로웠다.

 

하지만 독자로서의 상상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님을 작가는 조심스레 작품 속에서 말한다. 이 책의 표제작이기도 하고 가장 정점의 동화이기도 한 <바다 마법서>에서 노법사가 아제에게 한 말이 바로 그것이다.

“아제야, 조급해하지 마라. 일단 어떻게 자기를 풀어 놓는지를 깨달아야 하니까. 고무줄처럼 팽팽하게 행동하지 마라. 물처럼 부드러워야 어떤 그릇에든 담길 수 있느니라.”

이 말은 노법사가 아제에게 한 말이기도 하고,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 말은 짐짓 상상력에 국한된 말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들여다보면 삶을 꿰뚫는 철학적 메시지이기도 하고 그런 철학적 메시지들이 동화마다 불쑥불쑥 이야기를 뚫고 나와 상상의 힘을 환기시켜준 것만으로도 충분한데 더 나아가 철학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의 무게를 느낄 수 있었다.

 

아주 잘 읽히는 이 동화집에서 내 안의 화석처럼 굳어진 상상의 봉인을 풀어버린 것 같아 기분이 가벼워졌고, 아이와 함께 읽을 때 함께 상상하고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줄 수 있는 책 같아 무척 인상적이었다. 매번 읽을 때마다 다양한 느낌을 주는 중국 동화들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졌다. 그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다 되어있다. <바다 마법서>에서 아제가 말한 것처럼 ‘수용이란 바다와 같은 것’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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